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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간 떠돌던 동춘서커스단, 내 집 생긴다 (조선일보 2012.12.11 03:01)

87년간 떠돌던 동춘서커스단, 내 집 생긴다

[서울 광진구 구의취수장에 서커스 전용관 추진]
1925년에 목포에서 창설, 70년대까지만해도 단원 250명… 텔레비전 보급 따라 쇠퇴
박원순 취임 이후 서울시 추진, 광진구·시의원들은 반대

 

87년 전통 한국 최초 서커스단인 동춘서커스는 텔레비전도 영화관도 드물던 1960~1970년대 문화의 '아이콘'이었다. 단원들만 250명이 넘을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배우 허장강씨, 코미디언 서영춘·배삼룡·백금녀·남철·남성남씨에 가수 정훈희씨까지 수많은 스타가 동춘서커스 무대에 섰다. 침팬지·코끼리·낙타·호랑이·기린·사자 등 10여 종 동물 30마리도 자랑거리였다. 당시 어린이들은 동춘서커스에 열광했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동춘서커스는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곳곳에 영화관이 생기면서 동춘서커스는 더 이상 눈길을 끌지 못했다. 이후 지방 축제와 백화점을 돌며 재기를 노렸지만, 경영난에 허덕였다. 2000년대 말에는 중국인 곡예사 29명과 한국인 곡예사 5명으로 서커스단을 꾸려갔지만 2009년 11월 서울 청량리시장 공연을 끝으로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만류하고 경기 수원시가 수원야구장 주차장 부지를 무상 제공하겠다고 나서면서 다시 복귀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7년 동춘서커스단 단원들이 추석맞이 공연을 위해 연습을 펼치는 장면. 서울시가 광진구 구의취수장 부지에 서커스 전용관을 만드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전국을 떠돌며 공연을 갖던 동춘서커스가 제 집을 찾을 수 있을 전망이다. /김용우 기자
2010년 4월부터는 한국마사회가 서울경마공원에 동춘서커스를 위해 공연장을 마련하고 연중무휴 공연을 이어가면서 명맥이 유지되는 듯했으나 1년이 지나면서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됐고, 2011년 6월부터는 안산시 대부도에서 공연을 벌였다.

방랑자 처지를 면치 못하던 동춘서커스가 제 집을 찾을 전망이다. 서울시가 지난 6월 폐쇄한 광진구 구의취수장을 서커스 전용관인 '서울서커스예술센터'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연면적 5000㎡에 이르는 구의취수장은 1976년 개장 이래 하루 100만t 한강물을 끌어들여 정수장으로 공급했지만 지난해 6월 팔당댐 아래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에 새 취수장이 들어서면서 지난 6월 폐쇄됐다.

계획대로 2014년 말쯤 이 서커스 전용관이 문을 열면 동춘서커스를 비롯, 해외 서커스단과 공중 예술 공연단이 무대를 장식할 것으로 보인다. 가끔 찾아오는 해외 공연단을 제외하면 사실상 국내 하나뿐인 서커스단인 동춘서커스단 전용 공연장이 생기는 셈이다.

구의취수장 활용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박원순 시장은 지난 4월 취수장을 방문했고, 이후 서울시 산하 서울문화재단이 지난 9월 박 시장에게 구의취수장을 서커스 전용관으로 만들겠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했다. 보고서엔 "이 건물은 지하부터 지상까지 높이가 20m에 이르기 때문에 서커스 공연장으로 최적 공간"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박 시장은 희망제작소 시절인 지난해 4월 경남 진주에서 열린 '지역 공동체가 희망이다'라는 주제 강연에서 동춘서커스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동춘서커스는 목포에서 시작됐다. 요즘 서커스가 안된다고 하는데, 목포에 서커스 천막을 치고 365일 공연하면 사람들이 올 것이라고 했다"며 "캐나다 토론토 서커스단이 재작년 우리나라에 와서 공연해서 한 달에 100억원 정도 벌어갔다. 서커스단이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낳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동춘서커스단은 1925년 전남 목포에서 창설됐다. 일본 서커스단에서 활동하던 동춘 박동수씨가 독립해 30여명 조선인을 데리고 출발했다. 창단 2년 만에 목포 호남동에서 첫 공연을 시작으로 동춘서커스는 전용극장이 없던 시절 이동 천막을 세워가며 전국을 돌았다.

이에 대해 광진구와 광진구 시의원들은 반대 입장이다. 광진구 관계자는 "동춘서커스 공연장은 지역 발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시설"이라며 "서커스 전용관보다 다양한 문화 혜택을 얻을 수 있는 시설을 원한다"고 말했다. 김기만 서울시의원은 "서커스를 보기 위해 광진구를 찾아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구의취수장이 서울시 소유 부지이지만 광진구에 있는 장소인 만큼 주민들과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문화재단 관계자는 "주민들 우려와 달리 전용관은 전통 서커스가 아닌 '태양의 서커스'처럼 현대화된 예술 공연을 선보일 공간"이라며 "동춘서커스도 전용관 무대에 서면 현대화된 공연을 보여줄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