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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치/법

’불멸의 신성가족’ 출간 (조선일보 2009.05.19)

법조계 안팎 23명이 말하는 사법 현실

’불멸의 신성가족’ 출간

민간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을 읽어내고자 일반 시민의 생활 세계를 연구대상으로 삼아 펴내는 ’우리 시대의 희망찾기’ 시리즈 중 법조계의 모습을 다룬 책 ’불멸의 신성가족’(창비 펴냄)이 출간됐다.

2004년 ’헌법의 풍경’을 통해 자신이 경험한 법조계 풍경을 이야기했던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종철 변호사 등 연구팀과 함께 법조계 안팎의 다양한 인물 23명을 심층 면접하고, 이들의 구술 내용을 종합 분석하는 ’질적 연구’ 방법을 통해 사법 현실을 재조명한다.

인터뷰 대상자는 판사와 검사, 변호사 외에도 법원 일반직 공무원과 경찰, 변호사 사무실의 직원, 법조계 출입기자, 교수, 철학자, 시민단체 간사, 각종 소송 경험자, 심지어는 사법시험 합격자들의 결혼을 중개해주는 일명 ’마담뚜’까지 다양하다.

법조계 외부에서 법조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소송 경험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난다. 음주운전자가 낸 교통사고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김기갑(가명) 씨는 사망한 상대 운전자에게 손해배상소송을 낼까 생각하다 포기했다.

“변호사를 선임해서 소송해봐야 딱 변호사 비용만큼만 돈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충 합의하는 것이 좋다”는 주변의 이야기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 수도 있다”라는 경찰의 말에 소송을 포기한 김씨의 이야기는 변호사에게 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시민에게 법은 ’잘 지켜야 하는 대상’일 뿐 ’현실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아님을 보여준다.

또 실제 소송 경험자의 구술 내용은 판ㆍ검사들이 청탁을 받고 그에 따라 결론을 바꾸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변호사 선임료 주면서 나는 그 생각 다 하고 주는 거에요. 딱히 ’내가 당신한테 얼마 더 붙여줄 테니까 판사에게 얼마를 줘라’ 이런 소리 못해도, ’아 이 사람이 얼마 받으면 지가 다 안 먹어’ 이런 짐작을 하지요.”(명성훈 가명 씨 구술 중)

법조계 내부에서 보는 법조계의 모습은 어떨까. 면담에 응한 전ㆍ현직 판ㆍ검사 대부분은 ’사건과 관련 없는’ 돈이나 상품권 등을 받은 경험을 들려줬다.

저자는 “상품권을 나눠주다가 거절당했을 때 얼굴이 흙빛이 되는 사람이 거절당하는 전관 변호사가 아니라 거절하는 검사라는 것은 법조계가 처한 기묘한 현실과 권력관계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책은 이밖에도 변호사에게 사건을 소개해 주고 수임료의 30%를 챙기는 일명 ’법조 브로커’, 결혼시장에서 노골적으로 ’강남의 아파트 한 채’를 원하는 사람부터 은근히 ’열쇠’를 바라는 사법시험 합격자 등 법조계 안팎의 다양한 모습을 전한다.

이처럼 법조계 안팎의 목소리를 두루 살핀 저자는 구조적인 차원의 사법개혁과 함께 시민에게도 ’판검사에게 말걸기’를 시작해 보자고 이야기한다.

“판검사들을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중략) 일단 용감하게 ’판사님, 저하고 얘기 좀 하시죠?’라고 말을 붙이면 의외로 판검사들이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발견할 겁니다. (중략) 시민들이 두려움의 장막을 걷고 법조계를 향해 말 붙이기를 시작하는 순간, 신성 가족은 눈 녹듯 해체될지도 모릅니다.”(322-326쪽)

344쪽.1만3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