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집게 수사관 고영민의 범죄 없는 세상 5] CCTV와 사는 법
지난 2007년 1월 24일 경기도 안산시 4호선 안산역 1층 남자화장실 장애인 칸에서 토막난 여성의 주검이 여행가방에 담긴 채로 발견됐다. 이 경악할만한 범행을 저지른 자는 1주일 여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이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결정적 단서는 CCTV(closed-circuit television-폐쇄회로)였다. 당시 범인은 피해자의 원룸에서 말다툼 중에 살인을 저지른 뒤 사체를 유기할 쓰레기봉투를 사기 위해 인근 할인마트로 갔다. 하지만 이 장면이 CCTV에 찍혔고, 범행장소에서 약 800m 떨어진 안산역으로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담아 끌고 가는 장면도 CCTV에 찍혀 범인은 덜미를 잡혔다.
또 2006년부터 3년여 동안 경기 서남부지역에서 부녀자 배모씨 등을 잇따라 납치 살해한 강호순의 ‘엽기적 인간사냥’의 꼬리를 잡아낸 것도 CCTV였다. 그의 마지막 범행으로 알려진 군포 사건 당일 안산시 건건동 도로와 화성시 매송면 원리 도로 등에 설치된 2대의 CCTV에 그가 이용했던 에쿠스 승용차가 찍힌 것이 결정적 단서였다. CCTV가 없었다면 영화 ‘살인의 추억’처럼 미궁 속으로 빠질뻔한 사건이었다.
최근 신축 아파트의 단지는 물론, 엘리베이터나 지하주차장에는 어김없이 CCTV가 설치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버스·택시 안에도 설치되고, 지하철·학교·백화점·편의점·공장 등 도처에 CCTV가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일상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자치단체별로 방범용 CCTV를 설치하고 운영할 수 있는 관제센터를 건립하는 일에는 항상 찬반논란이 불같이 일어난다.
CCTV 설치를 반대하는 이들은 ‘사생활 침해로 인한 인권 침해’를 가장 크게 우려한다.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CCTV에 잡히므로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되고, 인간의 기본권인 행동의 자유가 제약된다는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CCTV 설치 및 유지에 들어가는 국민의 세금부담을 우려하거나, 사회적 관점에서 잘 사는 동네와 그렇지 못한 동네에 설치되는 CCTV의 개수와 성능이 달라질 수 있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반면, CCTV 설치를 찬성하는 이들은 ‘범죄 예방’에 주목한다. 범죄를 이미 저질렀거나 마음을 먹었던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CCTV가 설치된 곳에서 범죄나 잘못된 행동은 피하게 되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한번쯤은 제고하게 된다고 한다.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도 사건해결의 단서를 CCTV에서 찾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또 CCTV가 범죄예방이나 사건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경우 심리적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다.
찬성이나 반대나 다 일리는 있다. 하지만 CCTV를 설치해서 침해되는 부분과 얻게 되는 이익의 크기를 비교해 본다면 어떨까? 과연 사생활 침해를 우려해 행동에 제약을 받았는지, 공공장소에서 촬영된 CCTV 영상이 유출되어 피해를 당한 적이 있는지, 범죄해결을 위해 투입된 시간·비용·인력이 CCTV설치에 들어간 비용보다 적은지 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또 CCTV는 강력범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성추행, 절도, 폭행 현장에서도 증거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 같았으면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어서 용의자를 풀어주고 미제로 남겨야 했을 사건들도 요즘 경찰들은 CCTV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한 텔레비전 방송에 한의사가 나와 방청객들에게 ‘인삼이 약이냐, 독이냐’ 묻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것이니 약’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한의사는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약이 될 수도 있지만, 독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CCTV도 마찬가지 일 터. 갈수록 강력범죄가 고도화되고 인력만으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늘어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체질이라면, CCTV는 어느 정도 ‘약’의 성격을 가진 게 아닐까? 물론 ‘약효를 높이기 위한’ 보완대책(공공장소의 CCTV 촬영 및 확인은 인가된 자에 한하고, 무단 유출시 법적 처벌부과) 등도 필요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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