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마지막 500步…내리막은 너무 가팔랐다 | |||||||||||||||||||||||||||
평소 쉬어가던 약수터도 지나치고 그가 선택한 인적 드문 왼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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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前 대통령 서거 ◆
전날 없었던 조문객들 촛불이 그 길을 따라 타들어 가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등진 부흥이바위(부엉이로 알려졌지만 표지판에 정식 표기된 명칭은 부흥이였다)까지는 약간 가파르고 좁은 돌계단과 나무계단이 곳곳에 이어진다. 계단 너비는 딱 두 사람이 걸을 수 있을 정도다. 평소에는 권양숙 여사와 나란히 걸었던 길이지만 전날 그는 이병춘 경호과장을 뒤로하고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약 2~3분에 걸쳐 나무계단 30개를 오르니 이정표가 나타났다. 봉화산 정토원 35m, 호미곳 관음상당 60m, 사자바위 400m, 부흥이바위 300m.
다시 산을 10m 정도 오르니 갈림길 2개가 나타났다. 왼쪽은 마애불, 오른쪽은 봉하마을. 바로 파란만장했던 노 전 대통령 63년 인생의 삶과 죽음을 갈라놓은 갈림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왼쪽길을 택했다. 갈림길을 들어서는 순간 이전보다 훨씬 가파른 돌계단 길이 이어진다. 뒤를 돌아보니 아직 안개가 자욱해 봉하마을이 희미했다. 지금까지 나무계단과는 달랐다.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에다 높이도 급격히 가팔라졌다. 길이 좁고 미끄러운 돌길인 탓에 사고 위험이 있어 길가에는 쇠 기둥과 로프로 안전대를 만들어 놨다. 다시 200m쯤 걸었을까.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그 위로 3m 길이 갈색 나무다리가 나타났다. 다리가 없어도 뛰어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좁고 얕은 시냇물이지만 그에게는 `레테의 강`보다 아득했으리라. 나무다리를 건너가니 곧장 부흥이바위가 나타났다. 도착 시간은 6시 20분. 뒷짐을 진 걸음으로 딱 500보. 평평하게 다져진 큰 바위 중간에는 작고 풀이 듬성듬성 자라 초라하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아기무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부흥이바위 정상의 공기는 쌀쌀하고 차가웠다. 한 10분을 기다리니 이윽고 자욱했던 안개가 사라져 마을과 노 전 대통령 사저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는 이 바위에 올라 이생에서 마지막 20분간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20분 동안 그의 머릿속에 결코 쉽지 않았던 지난 63년 인생의 오르막과 정상, 내리막길이 마을 전경과 함께 오랜 흑백영화처럼 스쳐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결심을 까맣게 모른 채 새벽잠을 자고 있는 가족이 있는 자택 방향을 향해 곧장 몸을 던졌다. 부흥이바위엔 내려가는 길이 따로 있었다. 올라가는 길보다 훨씬 가파르고 미끄러워 내려오는 내내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다. 그의 인생 역정처럼 올라가는 길이 20분이었던 반면 내려오는 좁은 길은 채 2~3분도 걸리지 않았다. 내려가는 길 곳곳에는 돌계단이 빠져 있었다. 이 경호과장이 노 전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급하게 길을 뛰어 내려간 흔적이다. 논두렁이 보이는 평탄한 길로 내려서자 그가 최초로 낙하했던 지점에 현장 보존을 위해 `Evidence-Do not Touch`라고 쓰인 노란 경찰 깃발이 꽂혀 있었다. 낙하 지점은 부흥이바위에서 약 5m 떨어진 곳.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노란 깃발은 노 전 대통령이 굴러 내려온 지점을 따라 10m 이상 이어졌다. 마지막 노란 깃발은 주먹 3개 크기만 한 돌에 부착돼 있었고 그 위엔 그의 선혈 한 방울이 `마침표`처럼 얼룩져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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