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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치

[한승원 기고] 노前대통령의 슬픈 승부수 (매일경제 2009.05.24)

[한승원 기고] 노前대통령의 슬픈 승부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 새벽 김해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스스로의 삶을 푸른 허공에 던져 마감했다. 그가 금의환향한 마을 뒷산 부엉이바위 앞의 그 허공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답답하면 그곳에 올라 꿈을 키우며 바라보곤 한 푸른 허공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충격에 휩싸여 말을 잃었다. 그의 뇌물사건 폭로를 말하던 정적들까지도 충격에 휩싸인 채 옷깃을 여미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떠나간 그를 애도한다.

죽음이라는 것은 준엄한 성역이고, 침범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아성이다. 사실상, 사람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어떤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유서에서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이라고 했다. 그냥 죽는 것이 아니고, 삶과 죽음을 섞어 살기로 작정한 그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역사 속에 던진 하나의 슬픈 승부수였다.

그의 한평생을 되돌아보면 그는 한 사람의 입지전적인 승부사였다. 가난 때문에 부산상고를 다닌 그는 사법고시에 승부를 걸었고, 판사로서 삶을 버린 다음에는 인권변호사로 승부를 걸었다.

삼당합당 하는 무리에 참여하면 누릴 수 있는 영달을 버리고 꼬마 민주당에 들어갔고, 출마하기만 하면 당선될 수 있는 종로구를 버리고, 바보스럽고 고집스럽게 부산에서 출마해 낙선했다. 부산 근처를 여행 중이던 나는 그의 선거사무소에 찾아가 여비를 쪼개 내놓았다. 그가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는 아내와 함께 눈 어둡고 허리 굽은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세 개의 표를 모아주었다.

그의 서민적인 털털함과 바보스러운 착함에 환호하는 많은 사람들의 표들로 인해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직 수행 중에 정적들에게 받은 탄핵도 사실은 승부사인 그의 바보스러운 정면승부였고, 그 승부수는 결국 제3당인 열린우리당을 거대 여당으로 만들어놓는 역반응을 몰고 왔다.

그리고 이제 뇌물로 인한 형의 옥살이, 아들과 딸의 검찰소환, 아내의 재소환, 앞으로 감옥에 가게 될지도 모르는 고통스러운 삶을 앞에 놓은 그는, 도덕적으로 사망선고받은 스스로를 허공에 던짐으로써 역사에 승부를 건 것이다.

나는 관공서의 구태의연한 권위를 허물어 놓은 것을 그의 첫째 공적으로 삼고, 남북 화해를 도모한 것을 둘째 공적으로 삼고, 국방자주권을 가져오려 한 것을 셋째 공적으로 삼고,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곳곳으로 행정관청들을 옮기려 한 것을 넷째 공적으로 삼는다.

어쨌거나, 그의 서거로 말미암아 지금 세상은 두 쪽으로 갈라져 있다. 한쪽은 박연차의 태광실업 탈세와 이와 관련한 노 전 대통령의 사건을 수사하는 것을 즐기며 박수를 친 사람들이다. 다른 한쪽은 그 수사를, 전 대통령을 시정잡배처럼 희롱하다가 결국 감옥에 보내려는 정치보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경악과 분노에 휩싸인 채 봉화마을로 몰려들어 그동안 그를 궁지에 몰아 넣었던 사람들의 조문을 막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여당 사람들은 이 사건으로 세상이 흉흉해질까 싶어 침통해 있고, 경찰은 촛불이 대대적으로 번질까 싶어 긴장하며 분향소 주위를 철통 경비한다.

우리는 한 사람의 전직 대통령이 극단적으로 선택한 죽음 앞에서 솔직해지지 않으면 안 되고, 각자 참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너무 무책임하게 선정적으로 호들갑스러웠고, 수다스러웠고 남의 불행을 즐겼다. 자기 정파의 영달만을 위해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생각지 않았고, 돈 앞에서는 한 치 앞을 보지 못했고, 자기 자식들만 호의호식하게 하려는 탐욕과 허영에 인격과 양심을 팔았다.

부디 그의 극단적인 죽음이, 이 시대의 불행한 정치 행태에 하나의 굵은 획을 긋고, 밝고 맑고 깨끗하게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하면서 삼가 그분의 명복을 빈다.

[소설가 한승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