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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치

불행한 전직대통령 고리를 끊자 (매일경제 2009.05.24)

불행한 전직대통령 고리를 끊자

제왕적 대통령 권한이 문제…권력구조 개편 공론화 할 때


청와대에 줄대야 `한자리`비리ㆍ청탁이 들끓게 마련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빈소에 헌화하기 위해 찾아든 조문객 행렬이 인사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충우 기자>
카를 마르크스가 말했다. 모든 권력은 `살부(殺父)의 본능`이 있다고. 전임자를 부정해야 자기 지지도가 높아지고 권력의 기반이 탄탄해진다는 아이러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비서실장을 역임한 문희상 국회 부의장은 "그것이 정치의 비극"이라며 "그 비극을 막기 위해 정치문화를 개선하고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불행하게도 한국 정치는 이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지난 23일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모두 9명. 전직 대통령마다 서로 다른 정치적 환경에 있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본인 또는 가족이 모두 불명예를 안았다는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4ㆍ19혁명으로 하야해 이국 땅에서 생을 마감하는 비운을 맞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측근에게 시해당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세 차례나 사법처리를 받았고,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은 2년간 옥살이를 했다.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들이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고, 급기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압박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는 최악의 비운을 맞았다.

전임 대통령 중 단 한 명도 퇴임 후 행복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에겐 왜 이런 불행이 반복되는가.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제왕적 대통령중심제`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헌법상 행정ㆍ입법ㆍ사법 3권 분립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나 권력은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다. 인사권만 해도 그렇다. 권력 3대 축인 검찰총장ㆍ국세청장ㆍ국가정보원장은 물론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까지 대통령 뜻에 따라 결정된다. 그 밖에도 직접적으로는 1500개, 간접적으로는 2만여 개 자리가 대통령 임명권 범위에 있다고 한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했다. 경쟁적으로 대통령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 구조가 극대화돼 터진 대표적인 사건이 1992년 대선을 앞둔 12월 11일 부산 초원복집 사건이다. 당시 초원복집에는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부산시장, 부산시 경찰청장, 안기부 부산지부장, 부산지검장까지 모였다. 이들은 당시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 조장` 등 대책을 마련했다. 정권 재창출이라는 미명 아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맹목적인 충성심이 만들어낸 후진적 사건이었다.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터지는 이유는 명료하다. 대통령에 당선만 되고 나면 `확실한 자리`로 보상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2006년 11월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사태도 큰 범주에서는 그런 사례다. 전 지명자는 2004년 10월 수도이전특별법 위헌 판결 때 유일하게 합헌 판결을 내 노 전 대통령에게 호감을 샀다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결국 스스로 노 전 대통령에게 지명 철회를 자진 요청한 뒤 헌재를 떠났다. 당시 야당은 물론 여당마저도 이 인사에 반대했지만 인사권자는 듣지를 않았다.

그 밖에도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로 회자되는 수없이 반복되는 지역 편중 인사, 측근 인사 등이 그런 예들이다.

`확실하고 달콤한 보상`이 보장이 되다 보니 정치인은 물론 독립적으로 지위가 보장된다는 관료와 법조인들까지 대통령에게 줄을 선다. 이 과정에서 온갖 청탁과 비리는 자연스럽게 움틀 수밖에 없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24일자 보도에서 "노 전 대통령 서거는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된 시스템적 문제와 이를 이용해 친인척과 측근들이 사리사욕을 추구하기 때문에 전직 대통령과 관련된 불행한 역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 대통령 권력 분산 절실

= `제왕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논의는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이런 논란을 해결할 수 있는 주인공은 다름아닌 대통령 자신이라는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논의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김민전 경희대 정치학과 교수는 "대통령제 원칙은 권력 분산"이라며 "권력을 의회와 정부가 나눠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가 대안으로 제시한 방안은 `감사원의 국회 이전`과 `고위직 인사권 양분`.

감사원은 기본적으로 행정부처를 감시하는 기능이기 때문에 행정부에 소속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국민을 대신하는 국회에 감사원이 소속돼야 행정부에 대한 감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는 논리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도 "(대통령에 대한 감시를)이중 삼중으로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메커니즘이 안 된다"며 "내각제 요소가 가미돼 여당은 무조건 정부를 옹호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국회의원들이 장관직을 겸직할 수 있도록 돼 있어 국회가 대통령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진영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할 수 없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지난 3월 3일 발의해 놓았다. 진 의원은 "현행 국회법은 국회의원직을 유지한 채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입각을 허용하도록 하고 있어 행정부 견제라는 입법부 본래 기능이 실질적으로 훼손될 여지가 있다"고 개정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진 의원이 이 같은 국회법 개정안을 추진하면서도 다른 국회의원에게 동의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 진 의원은 이 법안에 서명을 해주는 의원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다 겨우 10명을 확보했을 정도다.

◆ 정치자금법 재고 목소리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라는 비극을 낳은 단초는 `돈`이다.

덕성을 최대 무기로 했던 노 전 대통령이 `포괄적 뇌물수수죄`라는 명목 아래 청탁과 비리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 그를 궁지로 몰아 갔다.

정치인들은 선거법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으면서도, 어느 누구도 대놓고 선거법 개정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

한 중진 의원은 "지역구 주민에게 소주나 막걸리도 한잔 살 수 없게 만든 것이 바로 지금 선거법"이라며 "현행 선거법을 `법대로` 적용하면 현역 의원 중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