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년 만에 관광객 8배로… 남이섬 CEO 강우현
그의 상상력엔 남이섬 14만평도 좁다
'책벌레'와 '상상가'에게 빈 소주병을 주고 재활용을 주문한다. 병 속을 깨끗이 씻어 그 안에 기름을 담는 이는 책벌레다. 상상가가 피식 웃는다. 빈 소주병을 불에 녹인 다음 주둥이를 잡아당겨서 비튼다. 비췻빛 꽃병이다. 납작하게 누르고 뭉쳐도 본다. 비췻빛 타일, 보도블록, 샹들리에, 커튼, 심지어 크리스마스트리가 탄생한다.
삼류 유원지에 나뒹굴던 빈 소주병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작품'으로 변신했다. 고성방가 난무하던 쓰레기 섬이 대한민국에 유례가 없는 생태문화관광지로 부활했다.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른 상상가의 이름은 강우현(58). '우왕좌왕', '좌충우돌'을 모토로 삼고 사는 철없는 중년이다.
마흔아홉 살에 시작한 모험이었다. 교수 자리를 마다하고 접수한 문제투성이 섬이라 주위에선 혀를 찼다. 섬 주인에겐 두 가지만 요구했다. 월급 100원과 맘껏 상상하고 저지를 수 있는 자유. 10년 후. 27만명(2001년)이던 남이섬 관광객이 200만명(2010년)을 돌파했다. 1년 매출이 200억원대다. 삼성, 포스코, LG의 임직원들이 '경영수업'을 받으러 남이섬으로 몰려온다. "한 수 배우겠다"며 대통령도 오고 도지사도 온다. "재미나서 내 마음대로 한 것뿐인데 사람들이 창조 경영, 역발상 경영이라며 찾아오네요. 162명 중 157등이었던 낙제생을 찾아오네요. 하하!"
9월로 남이섬 CEO 취임 10년을 맞는 강우현을 만나러 갔다. 선착장엔 전에 없던 철탑이 솟아 있다. 25층 아파트 높이의 철탑에서 쇠줄을 타고 남이섬으로 날아서 들어오란다. 외마디 비명은, 반달 모양 14만평 섬의 풍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공(高空)에서 곧장 탄성으로 바뀌었다.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를 굴리며 강우현이 물었다. "배 타고 들어오는 것보다 100배는 재미나지요?"
- ▲ “이것도 내 작품!” 25층 높이의 철탑에서 강우현 사장이 쇠줄을 타고 남이섬으로 낙하하고 있다. 반달 모양 남이섬 풍광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재활용 은행잎
―10년 사이 스타가 되셨다.
"나는 그냥 53년생 강우현일 뿐이다. 영원히 53세이고 싶은 남자일 뿐이다.(웃음)"
―취임 10년을 맞은 소감은?
"날 잘 아는 사람들은 두 가지에 놀라워한다. 산만 한 내가 10년이 되도록 안 잘린 것, 매출이 한 번도 꺾인 적 없는 것."
―술병으로 트리 만들고, 고장 난 양변기로 화분 만들고, 죽은 나무엔 시를 쓴다. 쓰레기만 골라 섬을 단장한다.
"애당초 섬을 꾸미고 말고 할 돈이 없었다. 처음엔 돈 아끼려고 재활용, 지금은 습관이 되어 재활용한다."
―가을이면 온통 노란빛으로 물드는 '은행나무 길'도 재활용이라고 들었다.
"남이섬은 겨울이 일찍 온다. 은행잎도 빨리 떨어지고. 집이 서울 송파에 있는데 가을이면 거리에 은행잎이 천지여서, 구청장에게 물었다. 저 은행잎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고. 청소해 매립하는 데만 4000만원이 든단다. 옳거니, 전부 나 달라고 했다. 은행잎 200t을 남이섬에 뿌렸더니 연인들 뒹구는 은행나무 카펫이 됐다."
―'상상력'이 비결이라지만, 당신은 굉장한 현실주의자다.
"무지하게 현실적이지. 우리 어머니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 좀 그만하라'고 혀를 차셨지만 내게는 다 실현 가능한 일들뿐이었다. 나는 상상, 공상에서 멈춘 적이 없다."
―취임할 때 화제가 됐던 '월급 100원'도 결과적으로는 매우 실리적인 거래였다.
"월급은 100원만 달라고 했지만, 매출이 두 배 이상 오르면 수익금은 내가 다 갖겠다는 옵션을 걸었다. 그땐 누가 봐도 매출이 오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거래가 성사됐다.(웃음) 그만큼 뭘 해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남이섬 사장이 되기 전에도 벌여놓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본업인 그래픽 디자인에 동화도 쓰고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도 이끌고. 재생용지로 공책 만들어 나눠주는 환경운동까지 했더라.
"그래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거지. 그런데 그런 경험들이 지금 남이섬을 키워가는 데 엄청난 자양분이 됐다. 네트워크가 장난 아니다. 독에서 흘러나온 물이 흙에 스며들어 아무 데나 씨를 뿌려도 열매가 생기고 꽃이 핀다.(웃음)"
월급 100원 사장
내 맘대로 하는 조건으로 대학원장 자리 대신 택해
재미나서 한 것뿐인데 창조경영이라며 배우러 와
재활용으로 재탄생
술병 트리·양변기 화분… 서울서 버린 은행잎으로 명물 '은행나무 길' 만들어
직원 정년
80세경륜 넘치는 선배세대 조기퇴진은 어불성설
종신 직원 되면 죽을 때까지 月80만원
◆14만평짜리 캔버스
―유명대학 대학원장직을 제안받았다던데, 왜 남이섬을 선택했나.
"남이섬의 달빛, 별빛, 그리고 새벽 물안개를 보았다면 누구라도 이 섬에 매료당한다. 내가 섬을 좋아하니 주인장이 작업실을 하나 내주더라. 틈날 때마다 와서 그림을 그려 작업실 밖에 걸어두었더니 관광객들이 그 앞에만 모여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너가 찾아왔다. '디자이너가 남이섬 사장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하더라. 아무것도 간섭받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열에 아홉은 빚투성이 섬 대신 교수 자리를 선택한다.
"내 입장에선 14만평짜리 캔버스를 공짜로 얻는 셈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사장 되고 나서 처음 한 일이 청소였다.
"흥청대는 유원지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하니까. 음식 가격 내리고, 술집은 섬 밖으로 내보냈다. 술판, 스피커 고성이 사라지니 남이섬에 고요가 찾아왔다. 전깃줄은 땅속에 묻고, 알록달록한 천막은 치우고, 폐품은 재활용하니 남이섬에 자연색이 돌아오더라. 밤 10시면 무조건 불을 껐다. 별빛과 달빛이 살아났다. 나무에 농약을 안 치니 벌레가 생겼고, 벌레가 생기니 새들이 날아왔다. 새똥에 묻어온 씨앗에서 야생화가 피어났다."
―고생도 많이 했다. 섬에서 쫓겨난 상인들의 공갈협박에 시달렸고, 보복성 고소고발로 경찰서도 번질나게 드나들고.
"60번도 넘는다.(웃음) 한번은 밤 10시 넘어 배를 타고 섬을 나오는데 괴한들이 달려들어 나를 강물에 빠뜨리더라. 그 후론 어떤 일을 당해도 겁 안 난다. 당하고만 있을 수 없어서 라면 두 박스 분량으로 우리도 그들의 죄를 고발했다. 5년 만에 평화의 시대가 왔지. 재밌는 게, 고소고발로 전과가 수십 건인 나한테 대검찰청에서 남이섬 성공 스토리로 특강해달라는 요청이 온다."
◆'겨울연가' 그 후…
―한류의 원조 '겨울연가' 덕을 많이 봤다.
"취임한 그해 11월 윤석호 감독이 남이섬으로 답사를 왔다. 직원이 드라마 촬영 견적비를 200만원 잡아 제시했다기에 내가 깜짝 놀라 윤 감독에게 달려갔다. 촬영료라니! 언제든 와서 찍고 가시라고 했다. 제작발표회도 남이섬에서 해주면 통돼지 잡아드리겠다 약속했지. 운이 좋게도 그해 남이섬에 눈이 펑펑 쏟아졌고, 제작발표회 날 눈 덮인 남이섬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외국인 관람객도 1년에 20만명이나 된다더라. '겨울연가' 특수가 아직도 이어지는 걸까.
"드라마의 영향력은 길어야 3년이다. 한번 꺾이면 롤러코스터다. '겨울연가' 너머의 무엇을 팔아야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세계책나라축제' '세계청소년공연축제' 같은 국제문화 행사다. 유니세프, 환경운동 단체들의 활동 터전을 섬 안에 만들어주고, 국내외 예술가들이 창작활동 할 수 있게 방갈로를 예술가의 집으로 꾸몄다. 봄 축제 때는 국내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맘껏 놀고 쉬다 가라고 차편, 배편, 음료와 식사를 공짜로 제공한다. 세계 최고 아동문학상인 한스 안데르센상 공식스폰서 자격도 일본 닛산자동차를 제치고 우리 남이섬이 따냈다. 세계화가 살길이다."
―직원 100명 중에는 전직 교장, 대기업 임원, 공무원, 화가도 있다더라. 정년 80세라는 고용방식으로 화제가 됐다.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로 경륜 있는 선배 세대의 조기 퇴진을 당연시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직원을 뽑을 때 나이, 학력, 경력을 묻지 않는다. 정직하고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이 최우선 자격이다."
―남이섬엔 언제까지 있을 건가.
"딱 10년만 하려고 했는데 '조폭' 같은 우리 직원들이 다리를 잡고 안 놔준다. 내가 섬에 있으면 일이 많아져서 싫지만, 없으면 불안하단다.(웃음)"
―직원들을 혹사시키나 보다.
"남이섬은 온종일 행사고 1년 내내 축제니까. 행사도 외부에 용역을 주지 않고 직원들이 전쟁 치르듯 치열하게 한다. 직접 기획하면 엄청난 상상력이 동원되고 그 경험이 개인의 역량 개발로 이어진다."
◆책 읽지 말고 놀아라
―어릴 땐 산만하고 엉뚱한 게 공부 못하는 아이의 전형이었다.
"배운 게 많고 책에서 읽은 게 너무 많으면 상상할 수 없다. 빈 술병을 기름병 정도로 쓰는 게 책벌레들의 한계다. 술병을 녹여서 굴려보고 눌러보면 장난감도 만들고 조명등도 만들 수 있다. 나는 책읽기 대신 많이 보고 만지고 경험했다. 장난도 많이 쳤지. 유치해져야 상상할 수 있다."
―용의주도한 스타일은 아니다.
"투석문로(投石問路). 먼저 돌을 던져놓고 길을 묻는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야 한다는 말이 제일 싫다. 뒤도 잘 안 돌아본다. 돌아본다고 그 발자국을 도로 밟을 수도 없잖은가. 차라리 새로운 발자국을 내는 게 낫지."
―남이섬으로 낙하하는'집 와이어(zip wire)'는 강우현의 '상상+추진력'의 산물이다.
"나는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일단 그림으로 그린다. 2001년 남이섬에 들어와서 저 쇠줄을 그렸더랬다. 배 대신 공중에 줄을 매어 타고 들어오면 얼마나 재미날까, 하면서. 실제로 그런 기구가 해외에 있더라. 완전 무동력이다."
―2010년 집 와이어를 개시하던 날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도 왔다.
"남이섬에 쇠줄 타고 들어오라고 홍보해야 하는데, 두 도지사 얼굴이 떠올랐다. 남이섬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춘천이지만 지리적으로는 경기도 가평에 가까우니 두 도에 걸쳐 있는 셈이다. 두 분 다 참석 가능하다는 말을 전해 듣고 보도자료 안 뿌렸다. 방송카메라들이 안 따라오고 배기겠나. 내가 헤드라인은 좀 뽑을 줄 안다.(웃음)"
◆성공은 실패의 아버지
―집무실 천장에 매달린 '도깨비 방망이'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잘나갈 때 자만하지 말라고 뚝딱! 잘 안될 때 걱정하지 말라고 뚝딱!"
―낙천적이시다.
"안 되는 일 돌아보면서 불평할 시간이 내게는 없다. 할 수 있겠다 싶으면, '아닐 불(不)' 자는 다 빼고 뛰어든다. 성공 여부는 내가 정하는 거다."
―솔직히 남이섬이 '작품'으로서 완성도가 있는 섬은 아니다. 재미난 재활용 섬일 뿐이지.
"예술? 너나 하라고 하세요."
―남이섬의 성공 비결은?
"시동을 걸되 거꾸로 거는 것. 성공은 실패의 아버지! 웃음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성공했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이 위기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장난'은?
"남이섬 컨셉트를 가지고 산과 골짜기로 들어갈 거다. 돈 안 되는 일만 벌이는 괴짜들, 발명가들의 창조 밸리를 만들 거다. 헬기 타고 답사하러 다닌다고 내가 요즘 바쁘다. 하하!"
- ▲ 6일 오후 남이섬 자신의 집무실에서 강우현 대표가 지난 10년을 이야기하고 있다.
남이섬 대표이사 강우현 `박수 칠 때` 떠나다
(중앙일보 2011.08.09 18:06)
역발상 경영` 10년만에..한류열풍 진원지, 연매출 10배 키워
쓰레기로 몸살을 앓던 춘천 남이섬을 세계적인 생태문화관광지로 바꾼 대표이사 강우현(58·한국도자재단 이사장)씨가 오는 31일 대표이사직을 사임한다.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강씨가 국내 유명대학 대학원장직을 마다하고 섬을 일구기 시작한 지 꼭 10년 만이다.
강 씨는 9일 연합뉴스를 통해 "박수 칠 때 내려오고 싶다. 더 가치 있는 새 무대를 준비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사임 취지를 밝혔다.
그는 남이섬 경영을 통해 `창조 경영` 혹은 `역발상 경영`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강 씨가 취임할 당시 남이섬은 한해 입장객이 27만 명에 불과한 `삼류 유원지`(?)였다. 그러나 작년 말 남이섬을 방문한 국내외 관광객은 240만 명으로 늘었고, 20억원 수준이던 연 매출액은 딱 10배로 뛰었다.
그가 직원 70명과 빈 소주병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양변기로 화분을 탄생시키고, 서울에서 버린 은행잎을 모아 은행나무 길을 만들자 섬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재활용해 `유원지는 관광지로, 소음은 리듬으로, 경치는 운치로` 바꾸겠다는 그의 엉뚱한 발상은 남이섬 성공에 힘입어 상상경영ㆍ역발상경영ㆍ청개구리경영ㆍ환경경영 등 숱한 용어를 낳으면서 전국적인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2008년 일본 닛산자동차를 제치고 세계 최고 아동문학상인 한스 안데르센상 10년 공식스폰서 자격을 따냈으며, 작년 7월에는 남이섬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제8회 국가고용전략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강 씨는 "남이섬도 이제는 차세대 경영을 준비해야 한다"라며 "당장은 아쉽겠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노하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남이섬 대표이사직에서는 물러나지만 목표 방문객 300만명의 리모밸리(Rimovally)를 세울 꿈에 부풀어 있다.
리모밸리는 강(River)과 산(Mountain), 골짜기(Valley)를 뜻하는 영어단어들을 조합해 강 씨가 만든 신조어.
국토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쓸모를 찾지 못하는 강·산·골짜기를 자연스럽게 살려 자연생태 문화 관광단지를 만들자는 구상이다.
강 씨는 이를 `괴짜들의 상상밸리`라고 표현했다.
그는 "잡목들로 빼곡한 산골짜기는 전국 어디나 있고, 상상력이 풍부한 천재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사장돼 있다"라며 "괴짜 취급을 받는 발명가나 수집가, 예술가들과 함께 버려지는 귀한 재료들을 모아 세계적인 창조 파크를 만들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강 이사의 사임으로 남이섬은 이계영 부사장 체제로 전환된다. 남이섬은 유통사인 (주)남이시아이씨를 합병하고 19개 업무팀을 11개로 축소하는 등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이섬의 피터팬’ 강우현, 새 둥지 찾아 떠나다
[중앙일보] 입력 2011.08.10 00:19수정 2011.08.10 08:58
월급 100원 사장 ‘역발상 경영’ 10년, 이달 말 물러나
피터팬이 새로운 네버랜드를 향해 날갯짓을 시작했다.
강원도 춘천 남이섬을 한류관광 1번지로 일군 강우현(58·사진)씨가 이달 말 남이섬 대표이사를 그만둔다. ㈜남이섬 대표이사를 맡은 게 2001년 9월이니까 정확히 10년을 채우고 그만두는 것이다.
그는 최근 2∼3년 과로에 시달렸다. 2009년 7월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일주일에 이틀씩 경기도 이천 한국도자재단에 출근했고, 나머지 이틀은 서울 인사동 남이섬 사무실에서 보냈으며, 나머지 사흘은 남이섬에 들어갔다. 해마다 세계책나라축제를 열면서 전 세계 동화작가들과도 수시로 교류를 해야 했다.
여기에 지난달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을 2년 연임하게 된 게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강씨는 이후 계획에 대해 “다른 남이섬을 찾아 떠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들려준 계획이 ‘리모밸리(Rimovally)’ 건설이다. 리모밸리는 강(River)·산(Mountain)·골짜기(Valley)를 뜻하는 영어 단어를 조합해 만든 말로, 남이섬처럼 자연과 문화가 어울어지는 관광단지다. 대신 남이섬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새로운 남이섬은 최소 300만 명 수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실 강씨는 9일 사의를 밝히기 한참 전부터 제2의 남이섬 부지를 찾아 돌아다녔다. 제주도부터 강원도·경기도·충청북도까지, 심지어는 헬기를 타고 부지를 보기도 했다. 이 모든 게, 남이섬의 성공이 부러웠던 전국 지자체의 부탁 때문이다. “제2의 남이섬 장소는 정했냐”는 질문에 그는 “그건 아직 말할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10년 전 동화작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강우현이 남이섬 대표이사에 취임할 때 월급은 단돈 100원이었다. 대신 그는, 빈 소줏병 뒹구는 ‘향락지’였던 남이섬을 개조하기 위한 모든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른바 ‘역발상 경영’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법정 다툼을 불사하며 상인들을 쫓아냈고, 빈 소줏병을 모아 조형물을 만들었고, 종신고용제를 도입했다.
2006년부터 매해 1년 입장객 200만 명을 넘겼고, 그 중의 10∼20%를 외국인이 차지했다.
강씨는 9일 오후 불쑥 전화를 걸어와 사의를 밝혔다. 대뜸 하는 말이 “이달 말까지만 남이섬 대표를 맡는다”였다. “아예 남이섬과 연을 끊는 것이냐”고 묻자 “나는 대표만 그만둔다고 말했다”고 예의 짓궂은 말투로 답했다. 남이섬 관계자에 따르면 강씨는 대표에서는 물러나지만 어떤 형태로든 남이섬을 돕기로 했다.
확 바뀐 남이섬 맛집 찾아가봤더니
[여성중앙] 입력 2011.07.29 15:00
변변한 식당이 없던 남이섬에 이국적인 식당들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중국 요리사가 내놓는 카오야부터 화덕에 구운 나폴리 피자까지. 공화국 시민들이 좋아할 만한 이색 식당들로 뽑아봤다.
화쟈이웬 1층 내부
만국기 펄럭이는 유람선 타고 나미나라공화국에 입국했다. 지난 2006년 3월에 독립을 선언한 공화국은 놀 거리에 비해 먹을거리가 약했다. 그런데 지난 5월에 중국 10대 식당인 ‘화쟈이웬’이 남이섬에 정식 개장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칼로 저미듯 얇게 떠낸 오리고기 껍질 요리(카오야)를 남이섬에서 맛볼 수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동했다. 간 김에 새로 정비된 남이섬 식당들도 둘러봤다. 밥플렉스(Baplex)를 중심으로 이국적인 식당이 모여 있었다. 공화국의 배고픈 시민들은 알아서 그리로 몰렸다.
화쟈이웬 남이섬에서 카오야를 맛볼 줄이야
남이섬 강우현 사장이 직접 중국을 찾아 ‘화쟈이웬’의 화레이 사장을 설득해 분점 형식으로 문을 열었다. 밥플렉스의 1, 2층 오른쪽 측면을 쓰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 온 요리사들이 정통 방식 그대로 요리를 해서 낸다. 물론 식재료는 한국산. 동네 북경반점에서 깐풍기, 유산슬, 양장피를 즐기던 기자에겐 요리 이름부터가 생소하다.
팔기소양배, 궁보계정, 어향육사…. 이름에서 일단 대륙의 포스가 풍긴다. 먼저 이곳의 ‘카오야’는 얇은 밀전병에 소스를 찍은 바삭한 오리 껍질과 파채를 싸 먹는 전통 베이징 카오야와는 조금 다르다. 무채, 오이채 같은 채소와 파인애플 같은 열대 과일을 추가로 낸다. 또 춘장으로 만든 기본 소스인 ‘야장’ 외에도 두 가지 맛의 소스가 더 나온다. 현대적으로 맛을 살린 일종의 퓨전식이다. 베이징 오리 요리는 부위마다 맛이 다른데, 이 미묘한 차이는 칼질에서 나온다. 중국에서 온 전문가를 쓰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원파왕계’(2만5000원)는 닭고기를 좋아하는 여배우 무이임퐁(매염방)을 위해 화쟈이웬에서 특별히 개발한 요리. 유리 볼에 담긴 닭고기를 걸쭉한 마장(참깨장)에 찍어 먹고, 고기가 빌 때쯤 남은 채소 위에 면을 넣고 마장과 함께 비벼 먹는다. 톈진의 특산품인 마화(꽈배기)를 같이 내는데 매울 때 먹으면 우유와 같은 효과를 낸다. 술안주로는 ‘팔기소양배’(4만5000원)가 있다. 청나라를 주름잡던 만주족 지도층(팔기)이 먹던 양갈비 요리로, 새끼 양의 부드러운 갈비가 홍고추, 땅콩과 짝을 이룬다. 백주와는 찰떡궁합이다. 또 새우 요리인 ‘조초명하’(3만5000원)는 식감도 좋고 매콤 달콤해서 아이들이 좋아한다. 카오야 한 마리에 6만원으로 가격은 센 편이다. 문의_031-580-8081~2
디마떼오 피자 먹을 때만큼은 여기가 나폴리
연극배우 이원승이 대학로에 운영하는 피자집 ‘디마떼오’가 밥플렉스로 들어왔다. 전국에 딱 두 곳이다. 대학로 본점이 13년 역사를 지닌 클래식한 분위기라면 남이섬점은 나이를 거꾸로 먹은 듯 젊고 캐주얼해졌다. 이탈리아에서 화산재를 공수해서 지었다는 재래식 포르노(나폴리식 정통 장작 화덕)가 일단 눈에 띈다. ‘스페셜 피자’(3만원)를 주문하고 피자 만드는 모습을 지켜본다. 얇게 편 도우에 토핑을 마친 피자가 화덕 안에 입성한다. 노랗게 단 참나무 더미를 툭 치자 불길이 확 인다. 300℃가 넘는 고온의 화덕에서 2분 안에 재빨리 굽는 게 비법. 피자 삽을 다루는 이탈리아 조리사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사흘 안에 공수해 온 신선한 치즈에 버섯, 토마토소스, 옥수수, 올리브 오일 등 이탈리아 현지에서 들여온 식자재만을 써서 나폴리 현지 맛을 그대로 살렸다. 모차렐라 치즈와 민들레 잎을 닮은 루콜라, 얇게 썬 방울토마토가 도우와 함께 씹힐 때 식감이 좋다. 맛은 전체적으로 담백하다. 햄과 버섯을 좋아하면 프로슈토 풍기 피자를, 토마토소스 대신 크림소스가 당기면 알라셰프 피자로 가면 된다. 사람 좋은 이원승이 중앙광장에서 거리 공연을 하며 분위기를 띄우기도 한다. 가볍게 들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마르게리타 조각 피자(4000원)와 아이스크림도 인기가 좋다. 문의_031-582-8822
두 손으로 흔들어 먹는 ‘양은 도시락’
남이섬에서 누구나 한번쯤 맛본 음식이 ‘연가지가’의 도시락이다. 먹는 법은 간단하다. 도톰한 고무장갑을 손에 끼고 뜨겁게 달군 ‘옛날 도시락’(4000원)을 신나게 흔든다. 몇 초 후면 셰이커에 든 칵테일처럼 밥과 달걀, 볶은 김치가 먹기 좋게 섞여 있다. 흔드는 재미를 더한 한국식 패스트푸드 정도로 보면 된다. 애들을 위한 ‘어린이 주먹밥’(3000원)도 있다. 밥에 김 가루가 뿌려져 있고 들기름과 간장으로 간이 돼 있다. 비닐장갑을 손에 끼고 메추리알 크기로 주먹밥을 만들어 애들 입에 넣어주면 맛있다고 잘 받아먹는다. 또 김치전을 안주 삼아 가볍게 막걸리를 마실 수도 있다. 김치전 두께가 얇은 건 좀 아쉽다. 밥플렉스 지나 ‘남이섬 역사문화관’ 바로 옆에 있다. 문의_031-582-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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