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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뉴스/세계가 놀란 한국

아시아 경제 기적은 `사람`의 힘이다 (조선닷컴 2010.02.27 14:07)

아시아 경제 기적은 '사람'의 힘이다

입력 : 2010.02.26 22:11 / 수정 : 2010.02.27 14:07

더 미러클

마이클 슈먼 지음|김필규 옮김|지식의날개|524쪽 1만5000원

서양인 눈으로 본 亞 고속성장 유교주의나 정부 덕이 아냐
창조력 가진 기업가 정신 조명

1976년 대만의 전자(電子)기업 퀄리트론(Qualitron)의 선임연구개발(R&D) 기술자 스전룽(施振榮·31세)은 고민에 빠졌다. 몸 담고 있는 회사가 파산 위기에 놓였는데, 오너는 회생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퀄리트론에 투자하려는 기업들도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였기 때문이다. 고뇌 끝에 그는 같은 해 기술자 3명을 영입하고 2만5000달러의 자본금을 모아 종업원 11명 규모로 멀티테크(Multitech)란 회사를 차렸다. 부인은 "학창 시절 수줍음 많고 아무 야망도 없어 보이던 남편이 창업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회고했다.

1200평방피트(약 34평) 크기의 아파트를 사무실 겸 연구소로 꾸민 스전룽은 2년 동안 집으로 월급을 갖다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
중국인이 국제사회에 더 많이 기여하고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아들을 혼자 키우며 오리알·수박씨·복권 같은 것을 팔아온 어머니로부터 강인함이라는 DNA도 물려받았다.

이미지-지식의날개 제공

회사 이름을 에이서(Acer)로 바꾼 스전룽은 1981년 게임과 기본적인 문서작업 등을 하는 휴대용 마이크로프로페서(MicroProfessor)를 개발, 처녀수출에 성공했다. 1983년에는 대만공업기술연구원(ITRI·우리나라의 전자통신연구원과 비슷한 국책기술연구소)과 협동작업으로 첫 번째 IBM 호환 PC를 출시하는 개가를 올렸다. 2년 만에 에이서의 매출은 세 배 이상 뛰었다. 다음해에는 100만달러를 들여 미국 실리콘밸리에 선텍(Suntech)이라는 연구소를 세웠다.

창업 10년 만인 1986년, 386칩을 탑재한 PC생산업체 가운데 세계 2위로 올라선 에이서는 1988년 들어 20초에 한 대씩 PC를 생산했다. 에이서는 지금 넷북 세계 1위, 노트북 세계 2위, 전체 PC 세계 3위로 세계 PC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만의 국보(國寶)'와 '대만의 스티브 잡스'로 각각 불리는 에이서와 스전룽의 창업 및 도전사(史)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아시아 국가들의 기적 같은 고속 경제성장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를 보여준다.

실제로 아시아의 경제적 도약은 눈부실 정도이다. 한국의 경제규모는 1965년부터 2007년까지 150배나 커졌다. 1981년 당시 하루평균 1.25달러 미만의 생계비로 사는 빈곤층 인구가 동아시아 인구의 80%에 육박했지만 2005년에는 그 비율이 18%로 급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포브스(Forbes)'지 아시아 특파원으로 일해온 마이클 슈먼(Schuman·현 홍콩 주재 타임지 특파원)이 저서 '더 미러클(The Miracle)'에서 내리는 결론은 이렇다.

"아시아의 경제 기적은 유교주의나 정부 개입 같은 복잡한 경제이론이나 자원들이 아니라 국가 정책을 만들고 자본을 투자하며 이를 실행한 '사람'들이 일궈낸 것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리콴유
싱가포르 자문장관,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잭 웰치 전 GE회장, 알리 와드하나 전 인도네시아 재무장관 등 유력 인사 50여명을 직접 인터뷰하고 방대한 문헌자료를 섭렵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김정렴 전 대통령 비서실장 같은 한국 인사들도 면담했다.

그는 에이서가 대만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것은 스전룽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에다가 대만의 수출 주도 고도 경제성장 정책을 입안해 실천에 옮긴 리궈딩(李國鼎)·쑨윈쉬안(孫運璿) 전 행정원장 같은 기술·경제관료들의 뒷받침이 접목됐기에 가능했다고 분석한다. 특히 아시아의 리더들은 세계화를 주도적으로 수용하면서 창조적 발상과 뛰어난 리더십으로 '반대 세력의 분노'를 이겨내면서 막대한 부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미국이 아시아 안보와 지역 안정을 지원하며 이바지했다고 강조한다.

서방인의 시각이 곳곳에서 감지되지만, 한국과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발전 과정을 음미하면서 선진강국(强國) 진입을 위한 고품격 리더십과 '기업가 정신'의 부활 필요성을 절감케 하는 역저(力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