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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치/법

`성범죄자 신상공개도 소용 없었다` 美서 여고생 강간살해 (조선닷컴 2010.03.03)

"성범죄자 신상공개도 소용 없었다" 美서 여고생 강간살해

입력 : 2010.03.03 21:17 / 수정 : 2010.03.03 22:36

지난달 조깅 도중에 실종됐다가 6일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여고생 첼시 킹.

전도유망한 17세 미국 여학생이 강간살해됐다. 피의자는 10대 소녀를 성추행한 전과가 있는 30대 남성이었다. 그는 미 법무부가 운영하는 ‘인터넷 성범죄자 신원조회 사이트’에 공개된 인물이기도 했다. 미국 사회는 분노와 허탈감에 휩싸였다.

2일 ABC뉴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첼시 킹(Chelsea King)으로 추정되는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첼시는 지난달 24일 샌디에이고의 한 숲속 산책로에서 조깅을 하다가 실종됐다. 그녀는 워싱턴대와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에 합격한 상태였으며, 고교시절 내내 A학점을 받던 수재였다.

첼시의 실종은 미국인들의 지대한 관심을 모았다. 그녀는 학업성적이 우수했을 뿐 아니라,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고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샌디에이고 청소년 교향악단의 프렌치 호른 주자였으며, 교내 크로스컨트리 팀 선수였고, 학생상담센터의 자원봉사자였다. 고교 친구들은 “늘 행복한 기운을 주던 아이였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했다”고 전했다. 주민 수천 명이 촛불을 들고 철야 기도를 하는 모습은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첼시의 행방을 찾기 위해 경찰과 연방수사국(FBI) 인력이 총출동했다. 항공 수색을 위해 무인정찰기와 헬리콥터가 동원됐고, 인근 호지스 호수를 뒤지기위해 수중음파 탐지기도 등장했다. 부모는 첼시가 살아 있으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첼시 킹 강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존 앨버트 가드너 3세. 그는 인터넷 성범죄자 신원공개 사이트에 정보가 공개된 전과자였다.
실종 4일째인 지난달 28일, 존 앨버트 가드너 3세(30)라는 이름의 유력한 용의자가 체포됐다. 산책로에서 발견된 첼시의 옷에는 가드너의 DNA가 남아있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묵비권을 행사했다. “첼시는 어디에 있느냐”는 추궁에도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첼시는 실종 6일만에 주검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시신은 호지스 호숫가에 얕게 묻혀 있었다. 샌디에이고 카운티 보안관은 “안타깝게도 첼시의 시신이 거의 확실하다”고 밝혔다. 현지 검찰은 가드너를 강간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후 가드너의 전력이 속속 드러났다. AP통신 등은 “가드너가 지난 2000년에도 13세 소녀를 강간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당시 가드너는 최고 징역 30년까지 받을 수 있었으나, 법원은 동종 전과가 없다는 이유로 징역 6년을 선고했다. 그와 면담한 심리학자들이 “앞으로 또 미성년자 성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인물”이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출소 이후 가드너가 재차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샌디에이고에 사는 캔디스 몬카요(23)는 가드너의 사진을 본 뒤 “몇 주 전 산책로에서 이 사람에게 강간을 당할 뻔 했으나 가까스로 도망쳤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2009년 2월 샌디에이고 근처에서 등교길에 실종된 앰버 드부아(14) 역시 가드너에게 희생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복역 5년만에 출소한 가드너는 샌디에이고 인근 호수에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다고 한다. 1996년 제정된 ‘메건 법’(Megan Law)에 따라 그는 자신의 이름·주소·차량번호 등을 의무적으로 경찰에 신고해야했다. 거주 지역도 제한돼 학교·공원 근처에는 살 수 없었다. 미 법무부가 운영하는 ‘인터넷 성범죄자 신원조회 사이트’에도 자세한 신상정보가 올라갔다.

이 같은 예방조치에도 불구하고, 가드너가 또다시 강간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미국인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선타임즈 미디어 등 현지 언론들은 “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만으로는 성범죄를 막지 못한다. 51개 주마다 제각각인 전과자 관리체계를 통일해야 한다”며 성범죄자에 대한 더욱 강력한 제재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