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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물열전

[전문가 리뷰] 더 늦기 전에 `독립` 하라 (조선닷컴 2010.03.13)

[전문가 리뷰] 약한 그대, 중년 男子들이여… 더 늦기 전에 '독립' 하라

  • 김정운 (명지대 교수, 문화심리학)

입력 : 2010.03.13 06:18

남자심리지도
비요른 쥐프케 지음|엄양선 옮김|쌤앤파커스299쪽|1만4000원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 어느날 갑자기 눈앞이 캄캄
끝없는 나락 떨어지기 전에 정서적으로 홀로 서야 산다

최근 신문이 오는 시간보다 먼저 잠을 깨어 본 적이 있는가? 한 번 깬 잠을 다시 이루지 못해, 아이들 방에 들어가 아이들의 얼굴을 만져보고, 거실과 부엌을 오가며 동트기를 기다려본 적이 있는가? 어쩌지 못하는 쓸쓸함과 허전함에 나는 이렇게 잠을 설쳐가며 힘들어하는데, 이런 내 사정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코까지 골며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아내의 모습에 왠지 모를 배신감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그런 적이 있다면 당신은 분명 중년남자다. 나이가 아직 중년이 안 되었다면, 심리적으로 중년이다. 이미 맛이 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나이 마흔이 될 때, 나는 중얼거렸다. 인간이 도대체 마흔이 될 수 있는 거야! 그랬던 내가 내년에는 쉰살이 된다. 정신없이 지나간 지난 십년처럼 앞으로 십년, 이십년이 또 후딱 지날 것이다. 내가 앞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의 한계는 명확해 보인다. 내가 지금까지 성취한 일이라곤 허접스럽기 짝이 없다. 맥이 풀린다. 이런 식으로 한 번 찾아든 우울함은 하루에도 몇 번씩 습관처럼 반복된다. 최근 남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던 대기업 부사장, 노벨상 후보로도 꼽혔다는 교수, 탁월한 능력의 의사가 잇따라 자살한 기사를 읽은 후로는 더욱 그렇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때론 비굴하게, 때론 무모하게 부대끼며, 정말 치열하게 살아온 내 삶에 대관절 무엇이 결핍되었기에 이토록 허전한 것인가? 이렇듯 중년남자들에게 불현듯 찾아와, 도무지 헤어날 수 없게 엉켜드는 이 무기력의 실체를 독일의 남성전문심리상담사, 비요른 쥐프케는 '알렉시티미(Alexithymie)'라고 정의한다. 한국어로는 '감정인지불능'으로 번역된다.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내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온통 변해버린 것을 깨닫는다. 눈앞이 캄캄하다. 더 이상 내가 설 자리가 없다는 느낌에 거꾸러진다. 한 번 무너지면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다시 일어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한방에 훅 간다는 이야기다.

남자들이 한 번 빠지면 도무지 헤어나오기 힘든 미로를 저자는 네 단계로 설명한다. 모든 문제는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과정을 외면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 감정부정, 혹은 감정회피의 결과로 두 번째 단계, 즉 '남성적 외향화'가 나타난다. 도무지 어느 구석에 쓰이는지 알 수 없는 '사내다움'에 집착한다는 이야기다. 이어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남성성은 영웅주의와 지배욕구라는 독단적 이데올로기의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간다. 그러나 그 딱딱한 외피에 숨겨진 실체는 '무기력'이다. 자신의 무기력함을 숨기려는 감정방어의 결과로 권력을 추구한다는 이야기다.

여기까지 온 남자들에게 남겨진 마지막 단계는 '우울증'이다. 자신의 무기력한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예를 들어, 남에게 건넬 명함이 사라지는 때), 이 사내들은 끝없는 나락에 떨어지는 느낌의 우울증을 앓게 된다.

남자들을 둘러싼 사회심리학적 시스템의 대부분은 '느끼지 않도록' 체계화되어 있다. 일을 처리해 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생각, 무슨 느낌이 드는가는 별로 중요치 않다. 남자는 오직 성과로 이야기할 뿐'이라는 결과지향주의적 행동양식이다. 이 시스템에서 남자는 오직 두 종류뿐이다. 목적을 이룬 남자와 이루지 못한 남자. 그러나 목적을 이룬 남자 또한 그다음 목적을 다시 세우지 못하면 허무해진다. 영원히 또 다른 목표를 세우며 살아야 한다. 결국 남자들의 세상에는 오직 목표를 이루지 못한 '루저'들만 남게 되는 것이다.

꼭꼭 숨겨진 남자들의 비밀스러운 감정의 영역을 저자는 아주 집요하게 파헤친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두려움·불안·분노·슬픔·무력감·수치심의 실체를 다양한 임상사례들을 들어가며 면도날처럼 쑤셔댄다. 아프다. 많이 아프다. 그러나 이렇게 아픈 다음에야 비로소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깨닫게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많이 공감하며 읽었다. 개인적으로 가슴이 철렁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내, 혹은 여성으로부터 독립'하라는 저자의 충고다. 나이 들어 갈수록 아내에게 정서적으로 의존적이 되는 것은 자신의 내면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운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란다. 인정하기 싫지만, 맞는 이야기다.

저자는 경고한다. '늙으면 마누라밖에 없다'고 하는 사내들은 언젠가 반드시 아내로부터 실망하고, 더 나아가 배신감까지 느끼게 된다고. 이런 식의 아내에 대한 애증의 모순적 감정에서 남자들이 도망갈 곳은 더 이상 없다. 막다른 골목인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정서적으로 홀로 서란 이야기다. 어차피 혼자라는 거다. 정서적으로 독립할 수 있어야만 아내와의 진정한 사랑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나이에 아내와 또다시 사랑을? 한국의 중년부부는 의리와 우정으로 산다고 우기고 싶었다. 아울러 한국의 여인들은 저자가 경험한 독일의 그 뻣뻣한 여인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설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또한 늙을수록 아내에게 더욱 의존하게 되는 한국 남자들의 무모한 착각일 뿐이다. 아, 이제 한국의 중년 사내들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