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색뉴스/정이 있는 삶 안타까운 이야기

[`착한 기업`이 뜬다] 17년 만에 123배 성장런던 (조선닷컴 2010.05.11 03:07)

['착한 기업'이 뜬다] 일반기업과 서비스로 경쟁… 17년 만에 123배 성장

입력 : 2010.05.11 03:07

['착한 기업'이 뜬다] [4]봉사단체들이 만든 英버스회사 'HCT그룹'
수익은 전액 공익사업에… 노인·장애인 운송 서비스 지하철 표보다 싸게 운영

태어난 지 17년 만에 매출은 123배, 직원은 110배로 늘어난 회사가 있다. 회사 이익은 모두 지역사회에 돌아간다. 주주가 없으니 배당금 줄 일도 없고, 경영진 거액 보너스도 없다. 영국 런던과 요크셔에서 대중교통 사업을 하는 착한 기업(사회적 기업) '해크니 커뮤니티 트랜스포트(HCT) 그룹' 이야기다.

소외 계층에 일자리를

냉혹한 시장경제 사회에서 HCT그룹은 별종이다. 매년 5% 정도 되는 수익 가운데 차량 구입 등 운영 비용을 제외한 전액을 공익사업에 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교통 서비스도 하고, 직업 교육 훈련도 벌인다. 직원들은 대부분 장기 실업자였거나 외국 출신 이민자다.

지난 7일 애시그로브 차량기지 사무실에서 만난 레이먼드 듀버그(Dewberg·45)도 장기 실업자였다. 8년 전 해크니 시장에서 하던 생선 장사를 때려치운 뒤 2년 놀았다. 그는 "중학교에 다니던 아들 둘이 눈에 밟혀 뭐라도 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했다. 듀버그는 HCT그룹에서 교육을 받은 뒤 버스 운전기사로 취직했다. 올해로 6년째 근무 중이다. 그는 "인생에서 주사위를 던질 때 나쁜 숫자도 좋은 숫자도 나올 수 있다. HCT는 내게 가장 좋은 수였다"고 했다.

영국의‘착한 기업’HCT그룹 버스 운전사들이 애시그로브 차량기지에서 환호하고 있다. 운전사들 피부색이 다양하다.
남성 중심인 영국 버스산업에 여성 참여를 늘리는 것도 HCT의 목표 중 하나다. 이날 HCT그룹 훈련센터의 한 강의실엔 피부색도 나이도 제각각인 여성 22명이 버스운전기사 교육을 받고 있었다. 이중 영국 태생 시민권자는 4명뿐이었다. 말레이시아 출신 초이퐁 림(Lim·55)은 영국인과 결혼한 뒤 작년 5월 이민을 왔다. 림씨는 "남편이 주는 생활비로 사는 건 진짜 정착이 아니다. 버스기사로 취업해 당당한 런던 시민이 된 뒤 12살, 16살인 두 아들을 데려올 것"이라고 했다.

봉사단체에서 중견기업으로

HCT그룹의 사업 근거지인 해크니는 런던에서도 실업률·범죄율·문맹률 높기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1982년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을 위해 각자 차량 봉사를 하던 30여개 지역 단체가 "힘을 모아 효율적으로 차량을 운행해보자"고 뭉쳤다. 10년이 지나 조금씩 경험이 쌓이면서, 수익 모델을 고민했다. 1993년 직원 5명에 미니버스 2대로 회사를 차렸다. 지역 관청과 맺은 운송계약으로 올린 첫해 매출이 20만2000파운드(약 3억4000만원). HCT그룹의 시작이었다.

지역사회 밀착 서비스로 고객을 확보하고 운영 노하우도 쌓이면서 매년 20~25%씩 꾸준히 성장했다. 지금은 차량기지가 런던에 6곳, 요크셔에 3곳 있고, 빨간 2층 버스 20여대를 포함해 차량 280대를 굴린다. 현재 직원은 550명, 작년 매출은 2500만파운드(약 420억원)였다.〈그래픽


런던의 버스 노선 700여개 중 8개를 책임진다. 곳곳에서 통학버스도 운영한다. 지난 3월 런던 교통국이 발표한 서비스 품질 평가에서 300여개 버스회사 중 4위를 차지했다. 내로라하는 민간기업들과 동등하게 서비스 비용과 품질로 겨뤄 이겨낸 성과다. 주식 공모 대신 최근 발행한 연리 5%짜리 채권도 300만파운드 어치가 팔렸다. 망할 걱정없는 탄탄한 기업으로 입소문을 탄 덕분이다.

지역사회에 변화 바람

HCT그룹의 진짜 가치는 공익 활동에서 발휘된다. 대표적인 것이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여러분의 자가용(Your Car)' 서비스다. 빅토리아파크에 사는 파밀라 래비슨(Rabison·62) 할머니는 관절염으로 거동을 거의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HCT 서비스 덕분에 1주일에 2번은 바깥나들이를 한다. 쇼핑도 하고, 극장에서 영화도 보고, 커뮤니티 센터에서 친구도 사귀었다. 지역 관청에서 심리 상담사로 일하는 조이 로(Law·여·47)는 왼쪽 다리를 곧게 뻗어 고정시킨 채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다. 버스는 당연히 탈 수 없고, 휠체어를 싣는 장비를 갖춘 밴 택시는 불러도 잘 오지 않았다. 출퇴근 자체가 전쟁이었다. 그녀는 "지금은 지하철 표보다 싼 1회 1파운드만 내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변화 덕일까. 악명높았던 해크니의 범죄율도 2000년 이후 30% 정도 낮아졌다. 다이 파월(Powell) HCT그룹 CEO는 "당연한 혜택에서 소외당하면서도 숨죽여 지내던 주민들이 제 목소리를 얻었다. 지역사회에 자존심을 되돌려 준 것이 가장 자랑스러운 변화"라고 말했다.


☞ 착한 기업

공익과 수익 창출을 동시에 추구하는 기업. 취약 계층에 일자리 제공을 하는 동시에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복지법인이나 민간기업과 다르다.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 ‘소셜벤처(social venture)’ 등으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