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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육

쓰레기 더미서 피어난 공부열정 미(美) (조선일보 2009.06.22 03:02)

[오늘의 세상] 쓰레기 더미서 피어난 공부열정 미(美) 노숙소녀, 하버드대(大)에 안겼다

대학 "그를 합격시키지 않으면
제2의 미셸 오바마 놓치는 것"

하버드대에 합격한 노숙자 소녀 카디자 윌리엄스./로스앤젤레스타임스

미국 하버드대는 올해 2만9112명의 입학 지원자 중 7%(2046명)만 합격시켰다. 사상 최고의 경쟁률이었다. 합격자 중에는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흑인 소녀 카디자 윌리엄스(Williams·18)도 있었다.

카디자의 평균 학점은 만점인 4.0에 가깝지만, 이는 하버드에 지원하는 다른 우수학생들과 차별이 안 된다. 그의 지원서에는 '이렇다' 할 봉사 경력이나 지도력 발휘와 같은 특기(特記) 사항도 없었다.

그런데 하버드대의 입학사정관 줄리 힐든(Hilden)은 그를 면접한 뒤 "카디자를 합격시키지 않으면 제2의 미셸 오바마를 놓치는 실수가 될 것"이라며 학교 당국에 강력히 추천했다. 퍼스트레이디인
미셸 오바마가 또 다른 최고 명문인 프린스턴대 출신임을 빗댄 발언이었다. 카디자는 하버드 외에도 컬럼비아·브라운 등 미국의 명문대 20여곳에 합격했다.

친구들에겐 '공부 독종'으로만 알려졌지만 하버드가 주목한 것은 그의 생활이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20일 "카디자는 노숙자 홀어머니 밑에서, 쓰레기봉투를 덮고 잠을 자고, 무료 급식소에서 배를 채우면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그가 '노숙 학생'이라는 사실은 친구들도 전혀 몰랐다.

카디자의 어머니는 14세 때 그를 낳았고, 카디자는 갓난아기 때부터 매춘부와 마약상이 들끓는 거리에서 살았다. 노숙하는 장소가 위험해지거나 몸을 의탁했던 쉼터가 문을 닫으면 짐을 싸야 해, 초등학교 때부터 12번 학교를 옮겨 다녔다.

그러나 카디자는 쓰레기 옆에서도 책을 읽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치른 캘리포니아주(州) 전체 고사에서 상위 0.01%에 드는 성적을 거둔 것이 자극이 됐다. 담임 선생님은 그를 격려해줬고, 영재반에도 편입시켰다. 학교 친구들이 '공붓벌레'라고 따돌리고, 노숙자들이 "뒷골목에 사는 주제에 무슨 대학이냐"며 비웃을수록 그는 더 책 읽기에 몰입했다.

고3 때는 오전 4시에 일어나 등교하고 밤 11시 이후 귀가했다.

카디자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교육의 가치를 알려줄 수 있을까 늘 고민했죠. 결국 나를 '공붓벌레'라고 괴롭히던 친구들도 차츰 날 존중하게 됐다"며 "나와 같은 처지의 친구들도 더 큰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말했다.

[사설] 쓰레기봉투 덮고 자던 노숙 소녀에게 열린 하버드 문(門)

(조선일보 2009.06.23 03:23)

올해 입시에서 하버드에 합격한 미국 LA제퍼슨고(高)의 카디자 윌리엄스양 이야기가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카디자는 어머니·여동생과 함께 노숙자 센터와 홈리스 모텔을 전전하던 노숙자였다. 카디자의 어머니는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 출신으로 14세 때 카디자를 낳은 뒤 집에서 쫓겨난 처지였다. 카디자는 안정적인 거처가 없어 초·중·고 12년 동안 학교를 12번이나 옮겨다녔다.

LA타임스는 "카디자는 쓰레기봉투를 덮고 잠을 자고 무료 급식소에서 배를 채우면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카디자는 초등 3학년 때 캘리포니아주(州) 학력평가에서 상위 1% 안에 들면서 공부에 자신감을 가진 후 새벽 4시에 거처를 나와 학교에서 공부하다 밤 11시에 돌아가는 생활을 해왔다.

카디자의 고교 학점은 4.0에 육박했지만 다른 하버드 지원학생도 성적은 그 못지않게 좋았다. 하버드가 카디자를 뽑아준 것엔 입학사정관 줄리 힐든씨의 힘이 컸다. 힐든씨는 카디자를 면접한 후 "카디자를 합격시키지 않으면 제2의 미셸 오바마를 놓치는 실수가 될 것"이라고 학교에 강력히 추천해줬다. 카디자는 하버드의 전액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다닐 수 있게 됐다.

미국에서도 명문대에 들어가려면 학업성적뿐 아니라 남과 차별되는 특기와 스포츠, 봉사활동 경력을 쌓아야 한다. 노숙자 센터와 홈리스 모텔을 옮겨다녀야 했던 카디자에게 그런 특별한 경력이 있을 턱이 없다. 그래도 하버드는 14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올 입시에서 카디자를 뽑아줬다. 하버드의 선택은 미국의 다른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줬다.

서울대도 올해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통해 한번도 사교육을 받은 일이 없는 전남 화순 어느 광산촌의 아이를 공대에, 수능 6개 과목 중 1·2·3등급이 각각 두 과목씩으로 성적이 최상위급은 아니지만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전남 담양의 어느 학생을 생명과학부에 입학시켰다. 2010학년도 대학입시에서 50여개 대학이 입학사정관제로 4500명의 신입생을 뽑게 된다. 같은 성적, 같은 특기라 하더라도 가정형편이 얼마만큼 뒷받침해준 환경에서 자라났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입학사정관의 가장 큰 임무는 성적, 봉사활동, 특기의 이면에 숨어 있는 수험생의 특성과 잠재력을 판별하는 일이다. 좋은 대학일수록, 집안형편이 어려워 사교육 기회를 갖지 못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교육을 통해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타고 오를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을 보여줘 사회통합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미국 노숙자 소녀의 하버드 합격기

  • 연합뉴스 2009.06.21 10:51

’홈리스(노숙자) 소녀가 마침내 하버드대에 둥지를 틀다.’

미국 일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가 20일 이러한 제목으로 18세 흑인 소녀가 노숙자보호소와 우범지대 거리를 전전하면서도 불굴의 의지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하버드대 장학생이 된 사연을 소개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카디자 윌리엄스. 그는 어머니와 한 평의 누울 자리를 찾아 미국 서부의 여러 지역 노숙자 쉼터와 값싼 모텔 등을 찾아다녀야 했고 이 때문에 12학년을 마치는 동안 12곳의 학교에 다녔다.

카디자는 매춘부와 마약상들이 들끓는 거리의 쓰레기봉투 더미에서 지내면서 먹을 것을 구하고 안전하게 잠자는 곳을 찾는 법을 터득했다. 노숙자처럼 보이지 않게 아침마다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해 학교에 갔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카디자는 3학년 때 처음으로 시험성적의 위력을 알았다. 주(州) 단위 시험에서 아주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담임교사가 당시 아홉 살인 그를 영재프로그램 대상자로 등록시켰다.

카디자는 “성적을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면서 “내 시험성적보다 나은 학생이 0.01%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카디자는 어머니를 따라 여덟 번이나 학교를 옮겼다. 어머니는 노숙자보호소가 문을 닫거나 노숙하던 곳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짐을 꾸려 버스를 타고 LA와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 오렌지 카운티 등지로 옮겨다녔다.

다만 카디자는 학교를 옮길 때마다 그 학교의 영재프로그램에 늘 참여했다. 10학년 때는 성공하려면 사회단체나 좋은 지도자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여러 조직에 문을 두드렸고 컴퓨터 이용과 장학금 신청, 소셜네트워킹 등에서 도움을 받았다.

카디자는 제퍼슨고교에 11학년으로 입학하고 나서는 어머니가 다른 지역으로 옮기더라도 더는 학교를 옮기지 않기로 했다. 대학에 가려면 자신에 대해 잘아는 선생님의 추천서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통학하면서 밤 11시에 집으로 돌아오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4.0에 가까운 학점을 유지했고 토론동아리 등 다양한 학교활동에도 참여했다.

지난 19일 졸업한 카디자는 브라운과 컬럼비아, 암허스트 등 미 전역의 20여개 대학으로부터 합격통지를 받았고, 그 중 하버드대를 선택했다.

카디자의 인생은 출발부터 얼룩이 있었다. 그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14세밖에 안 된 어머니에서 태어났다. 이 일로 어머니가 집에서 쫓겨난 것으로 카디자는 생각하고 있다. 어머니는 카디자가 아주 어릴 때 캘리포니아로 이사했다.

그는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는다. 카디자는 어머니가 항상 공부할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어 줬다고 말했다.

카디자의 입학 인터뷰를 했던 하버드대의 줄리 힐든은 “카디자를 강력히 추천했다”면서 “학교 당국에 ‘카디자를 합격시키지 않으면 제2의 미셸 오바마를 놓치게 될 것이다. 그런 실수를 하지 말라’고 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