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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물열전

팀장과 몸 바뀐 이대리 `야근·폭언…당한만큼 갚아주마` (한국경제 2011.01.24 18:32)

金과장 & 李대리] 팀장과 몸 바뀐 이대리

"야근·폭언…당한만큼 갚아주마"

한국경제 | 입력 2011.01.24 18:32

◆ 직장판 '시크릿가든'
몇 시간만 회장님 된다면
킹카·퀸카로 '체인지'


인사팀 막내 김모씨(29)는 어느날 아침 인사팀장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출근하자 여기저기서 아부가 쏟아진다. 평소 '반골'을 자처하던 한 선배는 "지난주 출장을 다녀왔는데요"라며 양주와 골프채를 내놓는다. 비굴한 눈웃음과 함께였다. 후배들 앞에서 "할말을 하고 살아라,뭐가 무서워서 간부들한테 할말을 못하느냐"며 큰소리치던 그 선배였다.

저녁엔 팀장 자격으로 회식에 참석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인사담당 임원은 "거 인사부 막내 김모씨 있잖아.사람은 좋은데 믿고 일을 맡기기엔 별로 아냐"라며 동의를 구한다. 김씨를 귀여워하며 자기 사람인 척 굴던 그다. 역시 사람 속은 모르는 거다.

이는 TV드라마 '시크릿가든'에 푹 빠져 살던 김씨의 망상이다. 김씨는 "드라마에서 김주원(
현빈)과 길라임(하지원)의 몸이 바뀌는 걸 보며 하루만이라도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 과장,이 대리들은 단 하루만이라도 누구의 몸으로 살아 보고 싶어할까.

◆"전직원에게 안식년을 허하노라"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는 이모씨(31)는 '회장님'과 단 몇 시간만이라도 몸을 바꾸고 싶은 게 꿈이다. 회장님의 몸을 이씨가 차지하는 순간의 '행동강령'도 이미 짜 둔 상태다. 당장 이씨가 소속된 팀 전원에게 특별 성과급을 지급하라고 즉시 지시할 예정이다. 한 해 동안 성과가 계획만큼 나지 않아서 그렇지,정말 젖먹던 힘까지 다해 일했는데 성과급 한푼도 못 챙긴 게 너무 억울하다는 팀원들을 배려해서다. 물론 이씨 개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자신의 사리사욕만 챙길 수는 없는 일.이씨는 언론을 상대로 "당장 올해부터 전 직원에게 안식년을 주기로 했다"고 공표해 버릴 예정이다. 이씨는 "나중에 회장님과 내 몸이 다시 원위치하면 힘들게 만든 정책이 무산될 수 있으니 언론에 대대적으로 발표해 기정사실화하는 게 필요하다"며 철두철미한 모습을 보였다.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김모 대리(33)도 사장과 몸을 잠깐이라도 바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어떤 기업은 사상 최대 실적이라며 성과급 잔치를 벌인다는데,김 대리 회사는 깜깜 무소식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앞둔 김 대리로서는 한푼이 아쉬운 상황이다. 그는 "잠깐이라도 몸이 바뀐다면 그 틈을 이용해 전 직원에게 성과급 1000%를 지급하겠다"며 행복해 했다.

'재벌의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을 채울 기회로 삼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대기업 직원 박모씨(34)는 "오너 2세하고 몸이 바뀐다면 그의 단골 밥집 · 술집을 다녀 보고,친구들과 파티도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


대기업에 다니는 임모 대리(33)는 부장과의 '시크릿가든'을 꿈꾼다. 부장이 돈 많고,성격 좋고,유능한 '완벽남'이어서가 아니다. 임 대리의 스트레스성 위염의 '원인제공자'인 그를 회사에서 몰아내고 싶어서다. 폭언과 음주가무 강요 등을 일삼는 데다 불명확한 업무 지시,매일같이 이어지는 야근 강요의 주범인 부장을 내보내야 부서가 바로선다는 게 임 대리 및 팀원들의 지론이다.

임 대리는 "잠시라도 부장이 될 수 있다면 업무를 엉망진창으로 처리해 임원들 눈밖에 나게 하겠다"면서 "공금횡령과 성희롱 등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치명적 오점들을 잔뜩 만들어줄 생각"이라며 잠시나마 즐거워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최모 과장(34)의 '타깃'은 팀장이다. 출근부터 저녁 늦게까지 팀원들을 종부리 듯하고 인격모독까지 일삼는 팀장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최 과장은 자신의 영혼이 팀장 몸을 차지하면 가장 먼저 잔소리 공세로 눈물을 쏙 빼게 할 작정이다. 식사도 못하게 과도한 업무도 떠안길 생각이다. 최 과장은 "정말 하루만이라도 아랫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대기업 마케팅팀 조모 대리(31 · 여)는 팀내 음흉한 남자 직원들과의 '체인지'를 꿈꾼다. 팀내 홍일점인 조 대리에게 농담 수준을 넘어 성희롱 수준의 발언을 하는 남자 동료들에게 '쓴맛'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베이글녀'와 '몸짱'이 돼 봤으면…


외모도 실력인 세상이다. '영혼 체인지'를 할 수 있다면,사내 킹카 · 퀸카로 꼽히는 이들과 몸을 바꿔 보고 싶다는 김 과장,이 대리들이 적지 않다. 교육업체에 다니는 신모 과장(35 · 여)은 "내가 특별히 못난 얼굴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동안(童顔)에 S라인까지 갖춘 이른바 '베이글(베이비+글래머)녀'가 되고 싶다"고 털어 놨다. 신 과장은 "어리고 예쁜 여직원들에게 남자 직원들의 눈길이 쏠리고,업무 퀄리티가 떨어지는데도 후한 평가를 주는 것을 볼 때면 30대 중반 나이가 어쩐지 처량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남자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증권사에 다니는 펀드매니저 김모씨(33)는 외모 때문에 여자들에게 늘 인기가 없다. 작은 키와 배불뚝이 체형탓이다. 김씨는 "몸짱 후배랑 몸을 바꿔 살아보고 싶다"며 "내가 아무리 명품을 걸쳐도 중저가 브랜드를 입는 그 친구를 당해낼 수가 없어 그간 억울했다"고 토로했다.

◆이 한몸 바쳐 팀장 가정에 평화를…


의외로 '소소한' 생각을 하는 김 과장,이 대리들도 많다. 대기업 인사팀에 근무하는 정모 과장(35)은 '담배피우는 남자'와 몸을 잠시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친한 동료를 통해 사내 정보를 알음알음 듣는 자신에 비해 흡연실을 자주 드나드는 남자 동료가 사내 정보 수집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과장은 "흡연실 토크의 대부분이 신변잡기라고들 하지만 주옥같은 알짜 정보가 많이 유통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회사의 박모 대리(32)는 팀장과의 '체인지'로 팀장 가정에 평화를 안겨주는 게 꿈이다. 박 대리의 팀장은 '사모님'과의 불화로 이혼 직전이다. 팀장은 연이은 음주와 야근 등으로 가정관리에 소홀히 했다. 급기야 사모님은 우울증에 걸려 이혼을 요구하고 있다. 팀장은 "와이프 얼굴 보기 무섭다"며 야근을 자처하다 매일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간다. 울며 겨자먹기로 동반 야근을 해야 하는 박 대리도 죽을 맛이다.

박 대리는 "팀장과 몸이 바뀌면 집에서 청소,빨래,요리,애들하고 놀아주기 등을 도맡아 완벽한 남편 노릇을 하고 사모님에게도 선물 및 이벤트 공세를 펼치겠다"면서 "그러면 부서 회식 및 야근도 크게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