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총영사된 김석기 前 서울경찰청장 "다시 나라위해 일할 기회 감사"
경찰이 외교관? 난 일본통… 용산 생각 한시도 못 잊어
가해자 취급, 가슴 아프죠""발령장이 나와서 외교통상부에 들렀다 오는 길이에요. 2년 만에 국민과 나라를 위해 일할 기회가 다시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17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김석기(57) 전 서울경찰청장은 주(駐)오사카 총영사 임명장을 보고 있었다. 임명장 밑부분에 찍힌 이명박 대통령의 붉은 직인이 선명했다.
그는 경찰청장 내정자 신분이던 2009년 2월 소위 '용산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서울 용산의 5층 빌딩을 점거하고 농성하던 철거민들을 진압하려다가 이들이 던진 화염병의 불이 번져 철거민 5명과 김남훈 경사가 순직한 직후였다.
- ▲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김 전 청장은 "'왜 경찰관한테 외교관 일을 맡기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본에 나만큼 지인이 많은 사람도 드물다"고 했다. 그는 1991년 양천경찰서 정보과장을 지내던 중 일본에 유학, 일본 경찰대학 본과 76기로 졸업했다. 이어 90년대 주오사카총영사관, 2000년대 주일본대사관의 경찰 파견관으로 총 6년을 일본에서 근무했다. 그는 "우리나라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안도 다카하루 일본 경찰청 장관, 서울청장 격인 이케다 가쓰히코 경시총감이 전부 함께 공부한 친구들"이라고 했다.
김 전 청장은 경찰을 떠나 자유총연맹 부총재를 맡았지만 사실상 야인(野人)으로 지냈다. '강성'으로 알려졌던 이미지와 달리 지난 2년 사이 흰 머리가 많이 늘고, 살도 3~4㎏ 빠졌다. "1년간 미국에 갔다가 귀국해서 30년 경찰생활을 정리하는 글을 썼습니다. 그러면서도 한시도 용산 생각, 죽은 김 경사 생각을 잊지 못했지요. 김 경사가 '미국 같으면 영웅 대우를 받았을 텐데'하고…."
그는 "미국 사회는 경찰을 존경하니까, 제가 한국에서 경찰 지휘부였다고 하면 다들 얘기해달라고 했어요. 우리 경찰이 미국·일본 경찰보다 자질이 못한 게 아니라, 그런 지원을 못 받아서 힘들다고 생각해요."
그는 최근에도 김 경사 부친을 만났다고 얘기하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불교신자라서 경찰을 떠난 뒤에도 그때 희생된 분들을 위한 천도재에 참석했습니다. 김 경사가 순직했는데 그걸 높이 평가해주지 않고 심지어 정치권에서 가해자 취급하는 분위기, 그게 너무 가슴 아픕니다."
그가 경찰청장 내정자에서 탈락한 뒤, 그 자리엔 강희락 청장이 올랐다. 강 전 청장은 지금 '함바비리'로 검찰에 구속된 상태다. 김 전 청장은 "강 청장 얘기는 가슴 아파서 하기 싫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어려운 환경에서 고생하는 경찰관들에게 조금만 더 애정을 가져 달라"고 했다. 외교관으로 변신했지만 그는 천생 경찰관이었다.
“일본 경찰에게 아리랑 가르쳤다”
[중앙일보] 입력 2011.02.26 02:12 / 수정 2011.02.26 02:12
오사카 총영사 임명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글=예영준 기자
김 총영사 또한 세간의 수군거림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 한편에 서운한 마음이 생기는 게 인지상정이지요. 하지만 적임자가 임명됐다고 격려하는 분도 많습니다. 내 지난 경력을 아는 분들이 그런 얘기를 하죠. 결국은 일로 평가받는 길밖에 더 있습니까. 경찰이든 외교관이든 나라를 위한 일이란 점에선 매한가지니까요.” 다음달 6일 오사카 부임 준비에 여념이 없는 그를 만나 일본과의 인연과 새로운 직책에 임하는 각오, 용산 사건 2년을 맞는 소회 등을 물었다.
● 2년 동안 어떻게 지냈나.
“경찰 그만두니 처음에 많은 분이 밥 먹자, 소주 한잔 하자고 했다. 고맙긴 했지만 매일 소주 폭탄주 마시면서 하는 얘기들이 똑같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짐을 싸서 미국으로 갔다. 보스턴 대학에 적을 두고 미국은 어떻게 법질서가 확립돼 있는지 유심히 살펴봤다. 현직 경찰관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유치장이나 교도소도 여러 곳 둘러봤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미국 경찰이 법 집행을 엄정히 잘하는데, 특별히 자질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공권력을 신뢰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9·11 8주년 추모식 현장에 직접 갔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조셉 바이든 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진심으로 소방관, 경찰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모습을 봤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관이나 소방관들이 다시 국민의 인명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느낀 점과 경찰 생활 30년 동안의 기록들을 묶어 책도 한 권 썼는데 이번에 갑작스레 총영사 발령이 나는 바람에 출판은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
●경찰대학을 졸업했다는 것만으로 인맥이 쌓이는 건 아닐 텐데.
“오사카 총영사관에서 3년, 도쿄의 한국대사관에서 3년씩 근무하면서 경찰 이외 분야에도 많은 사람을 알게 됐다. 지난 연초에 일본 내에 있는 지인들에게 800통의 연하장을 보냈다. 우표 값만 100만원이 넘는다. 일본 사람들은 그렇게 공을 들여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처음엔 쉽지 않지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성의를 갖고 대하면 신뢰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일본 경찰 동기생 가운데는 내가 우리 민요 ‘경기아리랑’을 보급시킨 에피소드를 지금도 말하는 사람이 많다. 경찰대학 다닐 때 ‘문화제’에서 내가 뭔가 한국적인 것을 알려야 했기에 한복 차림으로 ‘아리랑’을 불렀다. 그 준비를 하느라 아리랑에 대해 조사해 봤더니 일본 경찰로부터 탄압을 받아 금지된 노래였다. 일제시대 춘사(春史)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이 경찰에 체포돼 가면서 부르는 노래가 아리랑인데, 당시 단성사의 관객들이 모두 그 노래를 합창했다. 당시 영화관에는 맨 뒷자리에 경찰관이 항상 앉아 관객의 동태를 감시했다. 그 이후 아리랑이 상영 금지되고 노래는 금지곡이 됐다. 그런 역사를 가진 노래의 가사를 일본어로 써 전 동기생에게 나눠준 뒤 합창했고, 그 이후에도 노래방에 갈 때마다 아리랑을 일본 경찰들과 같이 불렀다.”
●용산 사건으로 화제를 바꿔 보자. 지금 같은 직위에 있다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최대한 안전 진압을 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불상사가 생겨 희생자가 난 것은 정말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내 친구 중에 스님이 있는데 그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천도재를 지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작전에 대해서는 지금 똑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마찬가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아니라 다른 경찰 간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현장에 직접 가보니 수도 한복판에서 화염병이 날고 염산병이 떨어져 건물 바로 앞 도로를 지나는 차량들이 곡예 운전을 하고 있었다. 이를 어떻게 무한정 방치할 수 있나. 그 과정에서 김남훈 경사가 순직한 것도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 사람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임무였기 때문에 꽃다운 나이에 순직한 것이다. 그 죽음을 높이 평가해야 하고 용산 사건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후 지금까지 폭력시위가 일어나지 않고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당시 경찰청장 취임을 눈앞에 두고 사퇴했는데 스스로 결정한 것인가.
“처음엔 사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당한 법 집행이었고 지금도 똑같은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런데 당시 경찰청장에 내정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었는데 내가 스스로 사퇴하지 않으면 야당에서 국회 문을 닫겠다고 했다. 그때가 미국발 금융위기가 덮친 때였다. 경제 현안 대책이 시급한데 늦어질수록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게 돼 있었다. 나 하나의 거취문제로 국민에게 피해를 줄 순 없는 것 아닌가. 고민 끝에 내가 먼저 그만두겠다고 했다. 청와대에서 고민은 했겠지만 나한테 그만두라고 한 적은 없다.”
●얼마 전 용산 사건 2주년이었는데.
“부하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 지휘관으로서 죄스러운 마음은 평생 갈 것 같다. 김남훈 경사 영결식 때 마지막 운구를 보면서 거수경례를 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나오더라. 2주기 무렵 김 경사의 아버지께 식사를 대접하고 위로해 드렸다. 그런데 오히려 그분이 나를 더 걱정해 주시더라. 그래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내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 것, 그게 바로 김 경사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라고.”
김석기
1954년 경북 경주 출생. 영남대. 동국대 대학원 졸업. 경찰 간부후보생 27기(수석 졸업), 일본 경찰대 본과 76기 졸업. 경북·대구지방경찰청장, 경찰청 차장. 서울지방경찰청장, 주일 한국대사관 외사협력관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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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일 하지 말라”
포돌이 만들기까지 10년
미국·일본 신임 총영사들이 서둘러 짐을 싸서 떠나는 이유는?
외교통상부 춘계 공관장 인사를 통해 최근 임명된 미·일 지역 신임 총영사들이 예정보다 3주가량 먼저 짐을 싸서 출국하게 돼 눈길을 끈다.
정부 당국자는 28일 “신임 총영사들이 당초 3월 하순 본부에서 열리는 총영사회의에 참석한 뒤 말경에 출국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앞당겨 초순에 떠나게 됐다.”며 “이들 중 한명이 사정상 서둘러 떠나겠다고 해서 부임 날짜를 맞추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예정보다 3주 먼저 부임
이와 관련, ‘보은 인사’로 논란이 됐던 김석기 신임 주오사카 총영사가 지난 1월 10일 총영사로 내정된 뒤 임명 직후 하루라도 빨리 떠나겠다는 의사를 청와대 등에 전달했으며, 이 같은 요청이 받아들여져 부임 날짜를 조정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김 총영사가 서울지방경찰청장이던 지난 2009년 1월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뒤 용산 참사의 책임론이 불거져 낙마했던 경험이 있어 총영사에 내정된 뒤 인사 논란이 불거지자 불안해했던 것으로 안다.”며 “이에 따라 하루라도 빨리 부임할 수 있도록 청와대 등에 요청했고, 그 결과 함께 임명된 미·일 지역 총영사 6명이 함께 부임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재입국… “예산낭비” 지적
김 총영사와 함께 다른 총영사들도 예정보다 빨리 각 공관에 부임하게 되면서 오는 21~23일 본부에서 열리는 총영사회의 참석을 위해 다시 귀국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외교 소식통은 “부임 일자를 앞당기면 현지 상황 적응 등에 장점도 있지만 총영사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들어와야 하는 것은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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