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현금화 눈앞인데 강제징용 해법 찾기 사실상 중단
일본 추가 보복에 한국 지소미아 파기로 맞대응 가능성
전문가 "현금화 전까지 대화 통해 최악 충돌을 막아야"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핵심 반도체 소재 수출을 규제한 지 1년이 됐지만, 수출규제도 한일갈등도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간 한일 갈등을 대화로 풀고자 하는 양국 정부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돌파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형국이다.
특히 연내에 일본기업 자산에 대한 현금화가 이뤄지고 이에 일본이 또 다른 보복으로 응수할 것으로 예상돼 양국이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충돌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수출규제 문제 열쇠인 강제징용 입장차 여전
수출규제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그 발단인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한일 간 입장차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통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이지만, 한국 정부는 청구권협정으로 피해자 개인이 일본기업에 배상을 청구할 권리마저 사라진 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지난해 6월 한일 양국 기업의 자발적 참여로 조성된 기금으로 피해자에 위자료를 지급하는 '1+1'안을 시작으로 기금 조성에 양국 기업은 물론 국민이 참여하는 이른바 '문희상 안'까지 여러 방안을 제시했지만, 일본은 모두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아직 일본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최대 수십만 명에 이를 수 있는 과거사 피해자에 대한 해법을 담지 않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한국이 더 나은 안을 내놓기를 바라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양국 모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시급한 현안에 대응하느라 외교력을 집중하지 못하면서 강제징용 해법 찾기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 빨라지는 현금화 시계…8월 전 해법 찾을 수 있나
문제는 한일관계가 더 악화하기 전에 대화로 문제를 풀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 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해 압류해놓은 일본기업 자산을 매각하는 현금화 명령이 오는 8월 4일 0시부터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현금화 절차에 협조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실제 자산 매각까지 수개월이 더 걸릴 수 있지만, 일본은 현금화가 실행될 경우 보복 조치에 나설 수 있음을 재차 시사하고 있다.
일본 신문들은 가능한 보복으로 일본 내 한국기업의 자산 압류나 한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 인상 등을 거론하고 있다.
이에 한국도 일본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재개하고, 일본의 추가 보복에 대비해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는 등 다가오는 전운에 대비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일본과 대화를 조건으로 보류했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언제든지 다시 살릴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지소미아 폐기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고리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강력한 반대로 한국에도 부담스러운 카드이지만, 일본이 추가 보복에 나설 경우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 "최악의 사태는 피해야"
한일 당국은 최근까지도 강제징용과 수출규제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기 위한 협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형식적인 소통에 그치고 있다.
지난 24일에도 김정한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타키자키 시게키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화상협의를 했지만, 기존 입장 교환 이상으로 더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일본이 메이지(明治) 시대 산업유산을 소개하는 정보센터를 개관하면서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이에 한국 정부가 강한 유감을 표하는 등 오히려 전선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다만 양국 모두 이런 상황에 위기의식을 느껴 대화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 분위기 전환이 가능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올해 한국이 의장국인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연내 개최되고 이를 통해 한일 정상이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누면 관계 개선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양국 모두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 회복을 위해서라도 한일갈등이 경제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고, 내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기대하는 일본에게도 한국과 관계 악화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현금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양국 정부가 지혜를 모아 해법을 찾아야 하며 적어도 강대강으로 충돌하는 최악의 사태는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수출규제 1년]②급소 찔렸지만..'소부장' 오히려 강해졌다(연합뉴스 2020.06.25. 09:41)
수입선 다변화로 규제 대상 3개 품목 일본 수입 비중 줄어
하지만 첨단소재 일본 의존도 여전히 높아 '갈 길 멀다'
일본 경제에 부메랑..'노 재팬' 바람에 일본 기업 고전
'위기이자 기회였다. 큰 피해는 없었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가 시작된 지 1년이 다가오는 가운데 한국의 관련 산업에 미친 영향을 요약하면 이쯤 될 듯하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인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불화수소 등 3가지 품목을 일반포괄허가 대상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바꿨다.
첨단 소재인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경우 대일 수입 의존도가 90%가 넘는 상황이어서 우리 경제의 견인차 구실을 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일본 언론에서도 한국 산업의 '급소'를 찔렀다는 분석이 나왔다.
1년 가까이 된 지금, 일본의 수출규제는 한국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한국 소재·부품· 장비(소부장) 산업 국산화와 수입선 다변화를 앞당기는데 일조한 것이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정부와 민간, 국회 할 것 없이 대책 마련에 발 벗고 나선 덕이다. 정부는 '소부장 경쟁력 강화대책'을 즉각 마련했다. 3대 품목에 미국, 중국, 유럽산 제품을 대체 투입하고, 해외기업의 투자를 유치했다. 더 나아가 100대 핵심품목에 대해 기술개발 지원에 나섰다. 성과는 서서히 나타나는 중이다.
◇ 일본산 수입 비중 줄었지만, 첨단소재는 여전히 의존도 높아
25일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5월 불화수소의 일본 수입액은 403만3천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의 2천843만6천달러보다 85.8% 급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다른 국가로부터 수입액도 20~30%씩 감소했지만, 일본으로부터 수입 감소 폭이 훨씬 컸다.
불화수소의 일본 수입 비중도 작년 같은 기간 43.9%에서 올해 12.3%로 대폭 낮아졌다. 불화수소는 웨이퍼의 산화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이나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해 반도체 패턴을 새기는 데 활용된다.
다만, 나머지 2개 품목은 여전히 일본 수입액이 높은 편이다. 같은 기간 포토레지스트의 일본 수입액은 1억5천81만5천달러로, 작년보다 33.8% 늘었다. EUV용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공정에서 빛을 인식하는 감광재로, 삼성전자의 차세대 반도체 공정에 투입되는 소재다.
일본으로부터 수입이 늘어난 것은 일본 정부가 작년 말 포토레지스트를 개별허가 대상에서 덜 엄격한 특정포괄허가 대상으로 변경한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이후 일본산 수입은 감소 추세를 보이다 올해 들어 다시 늘고 있다.
그러나 이 기간 벨기에로부터 수입도 48만6천달러에서 872만1천달러로 무려 18배가량 늘어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국내 업계가 일본 수출 규제 이후 벨기에를 통해 포토레지스트를 우회 수입한 것이다.
이에 따라 포토레지스트의 일본 수입 비중은 91.9%에서 88.6%로 소폭 낮아졌다. 대신 벨기에산 수입 비중은 0.4%에서 5.8%로 올라갔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일본 수입액도 1천303만5천달러로, 7.4% 늘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불소 처리를 통해 열 안정성을 강화한 필름으로,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제작에 쓰인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기업들의 수입선 다변화와 재고 확보 노력 덕분에 일본 수출 규제 강화로 인한 피해는 별로 없었다"고 진단했다.
이어 "반도체의 경우 한국은 그동안 선진국으로부터 소재 장비를 수입해 만들다 보니 소재 장비 개발에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면서 "이번 기회에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지는 못하더라도, 관련 기술은 보유해야 비슷한 사태가 벌어졌을 때 즉각 생산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일본, 수출 규제 유탄 맞아…한국, 대일 경상수지 개선
일본의 수출규제는 소부장 분야뿐만 아니라 대일 무역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의 대일 경상수지 적자가 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한국은행이 이달 19일 발표한 '2019년 지역별 국제수지(잠정)'를 보면 일본에 대한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2018년 247억달러에서 지난해 188억2천만달러로 줄었다. 2014년(164억2천만달러) 이후 5년 만에 가장 적다. 한국은행은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 자본재 수입이 준 데다, 여행 지급이 매우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수출규제는 한국에서 일본 불매운동을 촉발했다. 지난 4월 일본산 맥주 수입액은 1년 전보다 87.8% 급감했다. 2018년까지만 해도 한국은 일본 맥주 업계의 최대 시장이었다. 골프채(-48.8%), 화장품(-43.3%), 완구(-47.6%), 낚시용품(-37.8%) 등 주요 품목의 수입액 모두 큰 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일본 자동차 브랜드 닛산은 16년 만에 한국 시장에서 철수를 결정했고, 카메라 브랜드 올림푸스도 한국에서 20년 만에 카메라 사업을 종료한다.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가 들여온 패션 브랜드 지유(GU)도 8월 전후에 영업 중단할 예정이다. 일본 기업들이 뜻하지 않게 수출규제의 유탄을 맞은 것이다.
[일본 수출규제 1년]③반도체 공급망 '이상 無'..국산화 성과도(연합뉴스 2020.06.25. 07:01)
삼성전자·SK하이닉스, 수출규제로 다변화 '담금질'
반도체 소재 업체 잇단 생산량 확대·개발 성공
불확실성 '여전'.."장기적인 정부 지원 필요"
작년 7월 일본이 한국에 대한 3개 품목 수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반도체 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산 의존도가 낮게는 44%, 높게는 94%에 달하는 반도체 소재의 조달 차질은 '날벼락'이었다.
하지만 수출 규제 이후 1년이 가까워져 온 지금 반도체 업계는 당시의 위기가 전화위복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공급망 안정화의 핵심 조건인 거래처 다변화가 이뤄졌으며, 일부 소재에서는 국산 제품 비중이 일본산을 역전하는 성과도 내고 있어서다.
지난달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결정을 내리면서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업계는 보다 안정적인 속도로 다변화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 수출규제가 다변화 촉진…반도체 '전화위복'
2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연내 SK머티리얼즈가 생산하는 불화수소(기체)에 대한 테스트를 마치고 공정에 투입할 전망이다.
작년 10월 국산 액체 불화수소를 투입한 데 이어 상대적으로 기술 난도가 높은 기체 불화수소까지 국산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이 수출 규제를 강화한 3개 품목 가운데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는 정확히 국내 반도체 산업을 겨냥했다.
당시 한국무역협회 기준 불화수소 수입은 일본산이 44%를 차지했고, 포토레지스트는 일본산이 92%에 달했다.
이중 불화수소는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액체의 경우 일본 스텔라화학과 모리타화학, 사용량이 적은 기체의 경우 일본 쇼와덴코에 상당 부분 의존해왔다.
일본 수출 규제는 갑작스러웠지만, 불화수소 재고가 3∼4개월분에 불과했던 반도체 업계는 여유 부릴 시간이 없었다.
두 달 뒤에는 삼성전자가, 3개월 뒤에는 SK하이닉스가 잇따라 일본산 액체 불화수소 일부를 국산, 중국산 등으로 대체했다. 소재 조달처를 변경할 때 진행하는 테스트 기간을 절반 이상 단축한 결과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다변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안주해왔으나, 이번 위기로 다변화에 나서며 오히려 공급망이 더욱 안정화됐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기체 불화수소 일부는 미국 메티슨 등 기업 제품으로 대체했고, 8월부터 불화수소 수출 허가도 드문드문 이뤄지며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들었다.
EUV용 포토레지스트는 일본 기업 JSR과 벨기에 연구센터 IMEC가 합작해 설립한 포토레지스트 업체로부터 들여왔으며 수출 허가도 꾸준히 진행됐다.
이후 12월에는 일본 경제산업성이 EUV용 포토레지스트에 대해 수출심사와 승인 방식을 개발허가에서 덜 엄격한 특정포괄허가로 변경했다.
◇ 반도체 소재 국산화 '가속페달'
국내 반도체 소재 기업도 1년 만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였다. 생산능력 확대는 물론이고 제품 개발에도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솔브레인은 올해 액체 불화수소 공장을 조기 완공했고, 램테크놀러지는 내년 완공을 목표로 액체 불화수소 공장 증설을 진행 중이다.
솔브레인과 램테크놀러지는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각각 불화수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주목을 받았다.
SK머티리얼즈는 불화아르곤(ArF) 포토레지스트 생산시설을 내년 준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동진쎄미켐 또한 올 초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 공장 증설을 확정했다.
이 밖에도 동진쎄미켐은 EUV용 포토레지스트를 개발 중이고, 솔브레인은 기체 불화수소 개발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성과는 정부의 조기 인허가 승인 등 지원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업계 공통적인 평가다.
SK머티리얼즈에 따르면 정부가 특례 적용을 통해 기술 검토 및 안전업무 진단 처리 기간을 단축해 공정 허가가 보다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질 수 있었다.
램테크놀러지 또한 작년 7월 말 불화수소 등 6종의 유해화학물질 영업 판매업 허가 승인을 받았고, 솔브레인은 화학물질 조기 인허가 지원을 받았다.
정부는 국내 기업 지원뿐 아니라 듀폰으로부터 EUV 포토레지스트 생산시설 투자를 유치하는 등 공급 기반도 확보했다.
◇ 불확실성 '여전'…"정부 지원 끊겨선 안 돼"
일본 수출 규제에 따른 반도체 생산 차질은 사실상 전혀 없었지만, 한일 갈등이 장기화함에 따라 불확실성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한국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절차 재개를 요청하면서 악재가 늘었다.
특히 반도체 업계는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한 일본의 추가 공격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 호야가 독점 생산하는 EUV용 블랭크 마스크 등 차세대 반도체 공정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미 1년째 이어지고 있는 3개 품목 수출규제에 대한 우려도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다.
EUV 포토레지스트는 아직 국산화 성공 사례가 없어 우회로를 통해 일본 기업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고, 기체 불화수소도 사실상 미국 메티슨 물량으로 대체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다변화에 성공했다고 보기 힘들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EUV용 포토레지스트 국산화는 최소 5년은 걸릴 것"이라며 "정부가 현재까지 해온 지원을 변함없이 이어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내 반도체 소재 기업 가운데 매출 1조원 이상 기업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연구개발(R&D) 비용 지원, 기술 인프라 지원 등이 장기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일본 수출규제 1년]④ '부메랑이 된 보복' 역풍 맞은 열도(연합뉴스 2020.06.25. 09:41)
원료산업 실적 악화·관광산업 직격탄.."일본에 악영향"
"수출 규제 고집하는 진짜 이유는 징용문제" 분석
일본은 징용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으로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했다가 도리어 역풍을 맞은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은 핵심 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에 타격을 주려고 했으나 한국 정부와 산업계가 협력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공급망 안정화를 시도해 원하는 효과를 내지 못했다.
수출 감소와 한국의 불매 운동 등으로 일본 기업이 더 큰 타격을 입은 셈이다.
◇ 반도체 원료 수출하는 일본업체가 직격탄 맞아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불화수소 등 수출 규제가 강화된 주요 3품목을 생산하는 일본 업체의 실적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예를 들어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일본 업체인 스텔라케미화가 최근 발표한 2019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 실적을 보면 순이익이 전년도보다 18.2% 감소했다.
직전 1년간 순이익이 84.4% 신장하며 호조를 보였는데 실적이 급격히 악화한 것이다.
스텔라케미화는 "한국에 대한 수출 관리 운용의 수정(수출규제 강화) 등을 배경으로 반도체 액정부문의 수출 판매가 감소한 것"이 실적 악화의 원인 중 하나라고 꼽았다.
특히 이 업체의 작년도 고순도불화수소산 출하량은 6만9천306t으로 전년도(9만4천100t)보다 26.3% 감소했다.
2015년도부터 2019년도까지는 줄곧 출하량이 증가하는 추세였는데 작년도에 갑자기 감소로 반전한 것이다.
역시 불화수소업체인 모리타(森田)화학은 수출 규제로 인해 한국에 대한 수출을 반년 가까이 제대로 못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는 작년 7월부터 한국에 불화수소 수출을 하지 못하다가 12월 14일에서야 일본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아직 연간 실적이 나오지는 않았으나 악화가 예상된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닛케이)은 이 업체의 판매량이 수출규제 강화 전과 비교해 30% 정도 줄어든 상황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 '노(NO) 저팬' 운동에 패션·음식·관광산업도 휘청
한국에서 확산한 불매 운동으로 일본의 다른 산업도 영향을 받았다.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은 작년 9월∼올해 2월까지 반년 동안 순이익이 11.9% 감소했다.
이 업체는 올해 1월 보고서에 한국에서 사업이 원활하지 않은 것이 전체 실적 악화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계열사인 지유(GU)는 머지않아 한국 사업을 끝내고 철수하겠다는 방침을 최근 밝혔다.
일본 식품의 한국 내 판매도 급격히 줄었다.
아사히맥주를 생산·판매하는 아사히그룹홀딩스의 작년 순이익은 5.9%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으며 이 업체는 "한국에서 불매 운동의 영향에 의해 수출이 감소한 것"이 실적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닛산(日産)자동차는 한국 철수를 결정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그린 관광 대국의 꿈은 무너지고 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 통계를 보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여행객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발표한 작년 7월에는 전년 동월보다 7.6% 줄었으며 감소율은 8월 48%, 9월 58%, 10월 65.5%로 상승했고 연말까지 월 60%를 넘는 감소율을 유지했다.
올해 초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해 일본 정부가 올해 목표한 외국인 여행객 4천만명은 완전히 물 건너간 상황이 됐다.
◇ 실익 없는 수출규제 고집하는 진짜 이유는 "징용 문제"
일본 내에서도 징용 판결 맞대응으로 수출 규제를 택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도쿄신문은 최근 칼럼에서 "공급 불확실성이 높아져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는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업계 세계 최대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반도체 생산에 지장이 생기지 않았다"며 " "오히려 일본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일본 정부는 사태를 개선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수출 규제를 원상으로 되돌리라는 한국 정부의 최후통첩을 받고서도 "수출관리는 국제적으로 적절히 유지해야 한다. 수출관리 당국은 상대국과의 수출관리를 포함해 종합적으로 평가해 운용해 나간다는 방침"이라고 원론만 되풀이했다.
일본의 태도에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한 한국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한 분쟁 해결 절차를 재개하자 "한국 측의 일방적인 대응은 한일 양방이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현안을 해결하기로 한 지금까지 수출관리정책대화에서의 합의를 무산시킬 수 있는 것으로 매우 유감"(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라고 반응했다.
수출정책을 담당하는 가지야마 히로시(梶山弘志) 경제산업상은 "매우 유감"이라면서도 "(한일) 정책 대화를 계속해 해결하고 싶다는 것이 우리 쪽의 생각"이라고 언급했다.
아베 정권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징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 법원이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대법원판결에 근거해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강제 매각 절차를 재개한 상황에서 대응 카드인 수출 규제를 풀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의 한 소식통은 "일본 정부는 징용 판결과 수출 규제를 한 세트로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 정부가 피해자 배상 문제를 자체 해결하기 전에 일본이 스스로 수출 규제를 완화할 가능성은 작다고 평가했다.
그는 "징용 판결과 수출 규제가 연동돼 있다는 것을 일본 정부가 인정하면 세계무역기구(WTO) 룰에 위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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