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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치/법

['사법致死' 고리 끊자] 피해자·참고인한테까지 막말·모욕… (조선일보 : 2015.05.13 18:06)

['사법致死' 고리 끊자] 피해자·참고인한테까지 막말·모욕…

[上] 인권 짓밟는 검찰·법원

혐의 규명 못하면 심리적으로 압박해 자백 받기 급급
50代 공무원 자살하자 검찰 자체 수사 후 "혐의 없음"
"늙으면 죽어야" "여자가 말이 많으면…" 판사도 막말
"심문에 변호인 적극 참여… 재판과정 녹음 허용해야"

 

"김○○씨, 이 양반 이거 제정신이가 진짜. 말귀를 그렇게 못 알아먹어요? (사실대로 불면) 없었던 걸로 해주겠다, 처벌 안 받도록 해 주겠다는데…. 나중에 뇌물 준 거 있으면 어떡할래요?"(검찰 수사관)

"달게 (벌) 받겠습니다."(피의자 김모씨)

"달게 받는 게 아니고, 죽어야지."

"예, 죽겠습니다."

"내가 언제 죽으라고 했어요? 죽어도 안 줬다면서. 뇌물 준 게 드러났으면 죽어야지. 뇌물 준 거 맞네."

"안 줬습니다. 여기 앉아 있는 게 너무 수치스러워서…(한숨)."

"뭐가 수치스러워? 여기는 누구나 올 수 있어요."

"(격앙된 목소리로) 어떻게 누구나 여길 옵니까. 후~"

"그러면 전직 대통령은 왜 옵니까. 노무현(전 대통령)도 검찰 조사받고 자살했잖아요."

"저도 그런(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작년 10월 한 지방검찰청 특수부에서 검찰 수사관이 건설업자 김모(60대)씨에게 공사를 따내기 위해 공무원에게 뇌물을 줬는지를 추궁하는 장면이다. 6시간가량 이런 수모를 당한 김씨는 검찰청 화장실에서 대성통곡했다. 이후 검찰은 김씨의 아들과 딸, 사위까지 모두 소환했고 일가족이 조사받은 횟수는 모두 9차례나 됐다. 김씨는 이때 받은 충격으로 아직도 병원에 다니고 있다. 김씨 아들은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아버지께서 억울함을 당할까 봐 조사받으러 들어갈 때 휴대폰 녹음 기능을 켜 드렸는데, 그걸 들어보니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판, 검사들의 모욕적, 고압적 언어폭력 사례 정리 표
/그래픽=박상훈 기자

2011년 4월 뇌물수수 혐의로 대구지검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공무원 김모(당시 54세)씨가 사흘 뒤 목을 매 숨졌다. A4용지 26장의 유서에서 '내 말은 믿지 않고 다른 사람 말만 믿어 억울하다. 검사들이 나를 강압적으로 조사하며 욕설을 하는 등 모욕을 줬다. 뺨을 3번이나 맞고 가슴도 맞았다'고 썼다. 조사받은 검사실 방 번호와 검사 이름 등도 정확하게 적었다. 김씨는 뺨 맞은 귀를 치료하기 위해 이비인후과를 들렀고, 지인들을 만나 억울함을 털어놓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김씨를 조사한 C검사에 대해 감찰 조사를 한 뒤 "폭행 가능성이 있다"며 정식 수사로 전환했다. 김씨의 한 직장 동료는 "김씨가 내연녀랑 모텔에서 나오는 사진까지 들이밀며 추궁했다고 들었다"며 "나도 이틀에 한 번씩 불려가 9~10시간씩 조사를 받았는데, '맞았다는 말을 확실히 들었느냐'는 질문만 수십 번을 해서 결국 '잘못 들은 것 같다'고 했더니 더 이상 부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3개월 뒤 C검사는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

검찰과 법원의 모욕적·고압적 태도는 여전히 당사자들이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지만 이에 대해 책임지는 수사 책임자나 판사들은 거의 없다. 폭행과 욕설 등 직접적인 강압 행위는 제도적으로 보완됐지만, 인격을 무시하거나 심리적 충격을 주는 모욕 행위는 여전히, 오히려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인권보호수사준칙 등 기준이 엄격해지고, 내부 감찰에 의한 처벌 규정도 까다로워져서 갈수록 범죄 혐의 규명이 어려워지자 피의자를 무리하게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털어놨다.


	일반 형사사건 1심 무죄 인원과 무죄율 그래프

난폭한 언사는 법원도 예외가 아니다. 재판 과정에서 모욕감을 느꼈다며 자살한 사람도 있다. 2011년 5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증인 신문을 받은 성폭행 피해 여성 A(당시 29세)씨는 재판 다음 날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서 "판사가 가해자를 무고(誣告)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나의 행실을 물어 충격을 받았다"며 재판 상황을 지켜봤던 담당 검사의 연락처도 유서에 남겼다. 담당 판사는 이 일로 처벌받거나 징계받지 않았다.

2012년엔 서울동부지법 소속의 부장판사가 60대 증인에게 "늙으면 죽어야 해요"라고 해서 징계를 받고서도 이듬해 또다시 여성 민사재판 피고에게 '여자가 말이 많으면 안 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가 결국 사표를 냈다. 의정부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남성 피고인에게 "초등학교 나왔죠? 부인은 대학교 나왔다면서요. 마약 먹여서 결혼한 것 아니에요?"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해당 부장판사는 감봉 2개월의 징계만 받았다.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은 "아직도 수사기관의 강압적인 조사로 인한 인권침해 사례가 많다"며 "검찰은 심문 지침을 좀 더 명확하게 하고, 변호인이 심문에 적극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법원이 올해부터 재판 과정을 녹음하고 있지만 재판 당사자나 검찰에게도 녹음을 허용해 법정 안에서 일어나는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법致死' 고리 끊자] [中] '윗선 뜻' 따른 표적 수사, 성과 보이려 먼지털기式 악습 되풀이

(조선일보 2015.05.14 03:00)

[정권 코드 맞추기 수사]

충분한 내사 거쳐야 하지만 빨리 성과 내기에 급급… 증거 못찾으면 자백 압박
기업 수사서 결과 안 나오면 경영주가 임의로 쓴 돈과 분식회계 처벌하는 게 공식

 

이 과정에서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비극이 이어졌다. 검찰은 이때마다 '정치 검찰'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같은 검찰의 '코드 맞추기' 수사가 '짜맞추기 수사' '강압 수사' '표적 수사' '먼지떨이식 수사' '별건 수사' 등 갖가지 무리수를 낳고 있다. 충분한 내사를 거쳐 차근차근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윗선의 뜻에 맞춘 수사는 빠른 성과를 요구하고, 수사 실패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에 무리한 수사 기법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작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고질적 병폐인 민관 유착을 뿌리 뽑겠다"며 공기업 개혁을 공언했다. 전국 검찰청이 일제히 나섰다. 첫 대상은 '철피아(철도+마피아)'. 그러나 수사 개시 한 달여 만에 대전지검에서 납품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던 철도시설공단 간부 이모씨가 자살했다. 그는 유서에 "이미 자백을 했는데 검찰이 윗선 연관성을 찾겠다고 해 힘들다. '큰 건'을 잡아야 출세하나 보다"라고 썼다. 7월엔 김광재 전 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이 재직 시절 부하 직원들이 뇌물 수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 수사를 받자 한강에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역대 정권별 주요 수사 정리 표

지난해 10월 박 대통령은 "조그마한 비리 하나가 군(軍)의 핵심 전력을 약화시킬 수 있고 국방 전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방위산업 비리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한 달 뒤 정부합동수사단이 꾸려졌다. 한 달 뒤인 올 1월 합수단에서 2차례 조사를 받은 예비역 해군 소장 함모씨가 한강에 투신했다.

검찰 관계자는 "MB 정부 시절에도 공기업 비리 수사 지시가 떨어졌는데, 검사별로 공기업 3~4개씩을 할당받아 '무조건 찾아내라'는 지시가 내려오기도 했다"며 "그럴 때는 실적을 채워야 하는 부담과 더 큰 건을 만들려는 욕심 때문에 100% 무리한 수사를 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이 관계자가 밝힌 무리한 수사로 이어지는 과정은 이렇다. 무리한 수사는 특수부 등에서 진행하는 인지(認知) 수사 부서에서 주로 일어난다. 인지 수사는 장시간 꼼꼼한 내사를 거쳐 혐의 입증에 자신이 있을 때 수사 개시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하명(下命) 수사의 경우 단기간에 가시적인 결과를 내야 하는 부담 때문에 감사원·국세청 등에서 제보·신고·첩보 자료 등을 제공받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설익은 자료로 수사하다 보면 증거보다는 자백에 의존하게 되고, 자백받기가 쉽지 않으면 광범위한 압수수색, 가족 등 주변인들 조사, 별건 수사 등으로 이어진다. 이 관계자는 "검사들 사이에 '인지 수사=구속'이라는 인식이 있어 불구속한 사건은 실패로 본다"며 "기업 수사는 당초 예상했던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분식회계를 밝혀 사기로, 경영주의 가지급금을 문제 삼아 업무상 횡령과 배임으로 처벌하는 게 공식(公式)"이라고 털어놨다.

코드 맞추기에 의한 무리한 수사의 대표적 사례가 이석채 전 KT 회장 사건이다. 당시 검찰 내부에선 'MB맨'인 이 회장은 꼭 구속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검찰은 2013년 10월부터 3차례에 걸쳐 KT 사옥과 임직원 집 등 40여곳을 압수수색했고, KT 임직원 70여명을 소환해 200차례 이상 조사했다. 이 전 회장도 4차례나 소환 조사했다. 이 회장 주변을 탈탈 턴 검찰은 작년 1월 이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되자 석달 뒤 불구속 기소했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검찰의 인사권은 정부에 있고, 그 정부는 검찰을 통치 수단으로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며 "내부적으로 시스템을 만들고 교육을 시행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