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위험도, 4위와 200위 차이 … 배관·골목이 갈랐다
팔달, 골목 구불구불 … 사각지대
배관은 3~4층 타고 오르기 쉬워
도봉, 골목 곧고 배관도 높게 설치
서울서 가장 안전한 자치구 꼽혀
신도시 된 뒤 가로등 많아진 화성
'살인의 추억'흔적 찾기 어려워
전국 251개 시·군·구 성범죄 위험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성폭력 발생율과 인구밀도, 범죄취약 여성 구성비 등을 토대로 산출한 전국 251개 시·군·구별 성범죄위험도 지수. 강간·성추행을 종합해 성범죄 위험도 지수를 산출하고, 강간 위험도 지수와 성추행 위험도 지수를 별도로 산출했음. 전국 평균 100을 기준으로 숫자가 높을 수록 성범죄 위험성이 높다는 의미. '전국 251개 시·군·구 성범죄 위험도' 표 다운로드 [자료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동네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무너진 벽돌 담벼락이었다. 화재로 불타 새까맣게 그을린 폐가도 보였다. 골목길 구석에 보안등이 설치돼 있었지만 불빛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가 많았다. 길가 곳곳엔 주민들이 내다 놓은 쓰레기, 침대 매트리스 등이 버려져 있었다. 골목 담벼락엔 낙서가, 전봇대엔 빛바랜 전단이 가득했다. 주택가를 둘러보던 이경훈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는 “주민들 간의 의사소통이나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증거”라며 “범죄자들은 이런 곳을 첫 번째 타깃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해 질 무렵 기자와 이 교수가 셉테드(CPTED·범죄예방환경설계) 분석차 함께 찾아간 수원시 팔달구 A동네는 이른바 ‘수원 발바리’가 활동했던 지역 중 한 곳이다. 수원 발바리는 2003년부터 7년 동안 수원 주택가에서 8명의 여성을 성폭행했다. 온 국민을 경악하게 했던 오원춘·박춘봉 사건도 이 일대에서 발생했다. 팔달구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전국 성범죄 위험도 조사에서 전국 251개 시·군·구 중 4위였다. 이 지역은 성범죄 중 강간 위험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주택가 안쪽으로 들어가자 길은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골목이 꺾어지는 지점에서 한 취객이 불쑥 나타나 기자와 교수를 밀치고 지나갔다. 2~3m 앞에서 무엇이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이 교수는 “가시성과 예측성이 모두 떨어진다. 근처에 범죄자가 숨어 있어도 행인 입장에선 알 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가스배관이 창문 바로 옆에 설치된 주택도 많았다. 배관을 손으로 짚고 외벽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만 밟고 올라가도 금세 3~4층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2층 이상 주택엔 대부분 방범창이 없었다. 이 교수는 “침입형 범죄와 길거리 성범죄에 모두 취약하다”고 말했다. 방범용 폐쇄회로TV(CCTV)는 대부분 사거리 등 유동 인구가 많고 개방된 곳에 설치돼 있었다. 이 교수는 “범죄 예방보단 용의자를 추적하기 위한 시설에 가깝다”며 “어두운 골목길이나 우범지대에 CCTV를 분산 설치해야 예방 효과가 클 것”이라고 조언했다. 인근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노모 경위는 “밤늦은 시각 이 일대를 순찰할 때면 경찰들도 적잖이 긴장한다”고 말했다. 인근에 사는 여고생 최모(16)양은 “골목을 지날 때마다 휴대전화 통화버튼을 언제든 누를 수 있도록 주의한다”고 했다. 이철승 수원시의원은 “슬럼화가 많이 진행돼 마을 개발정책을 내놓기 쉽지 않다”며 “경찰행정력이나 시설이 부족해 촘촘한 치안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21일 찾은 도봉구 B동네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구불구불하고 좁은 골목길 대신 넓고 곧게 뻗은 골목들이 눈에 띄었다. 전방 100~150m가 훤히 보였다. 주택 사이의 후미진 공간은 슬레이트 판 등으로 막아 출입을 할 수 없게 돼 있었다. 도봉구는 성범죄 위험도가 서울에서 가장 낮고 전국 시·군·구에서도 하위권(200위)에 속했다. 가스배관들도 창문이 없는 주택의 측면 외벽에 주로 설치돼 있었다. 반지하 주택의 경우 창문 주위를 담벼락으로 막거나 꽃밭을 조성해 접근이 어렵게 돼 있었다.
20~30m마다 주민들이 눈에 띌 정도로 유동 인구도 많았다. 골목 한쪽에서 7세 된 아들과 배드민턴을 치던 이일훈(44)씨는 “산책이나 운동을 하는 주민들이 많아 인적이 드문 곳에 비해 훨씬 안심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주민 한 명 한 명이 일종의 걸어 다니는 CCTV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화성, ‘살인의 추억’은 옛말=“곳곳에 CCTV와 가로등이 많이 설치돼 있어 옛날처럼 끔찍한 범죄가 다시 발생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20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서 만난 한 주민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1986년 9월 첫 번째 강간살인이 일어났을 당시 목초밭이었던 곳은 4차선 국도와 주유소 등으로 뒤덮여 있었다. 주변에는 아파트와 상가들이 줄지어 들어섰고 가로등과 상가 간판의 네온사인은 거리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마지막 10차 사건이 발생한 동탄 일대도 신도시 건설로 학교와 각종 기관 등이 들어서면서 주변 환경이 확 바뀌었다.
80년대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연쇄살인 사건의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이번 조사에서 화성시는 전국 시·군·구 251곳 중 202위를 기록, 최하위권에 속했다. 주민 김모씨는 “유동 인구가 많고 파출소도 많이 생겨 30년 전과 비교하면 놀랄 만큼 안전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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