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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치/법

간통은 들킨 罪다? (중앙일보 2015-03-03 17:07:04)

간통은 들킨 罪다?

 

간통사건 재판에서 재판장이 선고를 하기에 앞서 한참동안 남성 피고인을 훈계하고 있었다. 머리를 숙인 채 묵묵히 재판장 말을 듣고 있던 피고인이 고개를 들었다

 

  “잠깐 제가 말씀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판사님께 여쭤볼 것이 있어서요.”

  재판장이 길지 않게 말하라고 하자 피고인이 입을 열었다

  “판사님, 판사님은 오입하신 적 없습니까?”

  재판장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멍하니 피고인을 내려다 봤다. 법정에 있던 검사와 변호사, 방청객들은 숨을 죽이고 재판장을 주목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재판장이 드디어 침묵을 깼다.

   “당신은 들킨 죄()! 들킨 죄!”

 

  제가 법조 취재를 시작한 1993, 기자 3~4년차 때 들은 얘깁니다. 당시 대검 간부로 있던 검사장은 자신이 초임 검사였을 때 직접 목격한 장면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얘기를 전하면서 범죄의 본질은 들킨 죄라고 강조했습니다. “자신만 적발됐다고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의 말대로 간통 뿐 아니라 뇌물, 횡령 등 많은 범죄들이 들킨 죄입니다. 들키지 않았다면, 발각되지 않았다면 수사 받거나 재판 받는 일은 없었겠지요. 거꾸로 말하면 들키지 않아 처벌받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지난주 간통죄 위헌 결정이 나온 뒤 문득 들킨 죄얘기가 떠올랐습니다. 그 검사장의 말대로 들킨 잘못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들킨당사자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죄를 지은 범죄자도 억울해한다는 겁니다.

  법정에 서는 피고인들을 지켜보면서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한때의 잘못으로 인생 전체가 매도당하는 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뒷돈 수천만 원, 수억 원을 받은 건 분명 잘못이지만 그것 하나로 한 인간의 삶을 판단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죄 값에 상응하는 처벌과 비난을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형사재판에서 판사들이 남의 삶에 너무 깊이 주관적 잣대를 들이대는 건 과도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초년병일 때는 그런 판사들의 훈계가 멋있다고 느낀 적도 있지만 갈수록 거부감이 커졌습니다. 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나 참고인이 자살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체면, 최소한의 자존감은 살려주는 수사, 재판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판사와 검사들이 피고인, 피의자, 참고인들에게 욕설이나 막말을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 수술같은 수사와 재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SNS도 다르지 않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한 사람의 삶 전체를 평가하고 힐난하는 건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2001년 헌법재판소가 세 번째 간통죄 합헌결정을 했을 때 당시 권성 재판관은 8명의 다수의견에 맞서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사람을 죽일 수는 있어도 모욕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이번 간통죄 위헌 결정이 인격적 모욕을 주지 않는 수사와 재판이 어떻게 가능한지 고민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