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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치/법

대한민국 범죄의 흔적, 이 방에 다 있네 (조선일보 2014.10.04 03:01)

대한민국 범죄의 흔적, 이 방에 다 있네

[압수물 1만점 넘는 서울중앙지검 증거물보관실]

가짜 비아그라·현금 36억… 요즘은 스마트폰이 많아
3개월간 주인 찾는 공고낸 뒤 연락 없으면 國庫귀속·폐기

 

직경 50cm 자전거 바퀴, 1m 길이의 검(劍), '짝퉁' 루이뷔통 가방, 가짜 비아그라….

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1층 증거물보관실(330㎡·약 100평)에는 사건번호와 죄명(罪名), 피의자의 이름이 적힌 상자 안에 갖가지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증거물보관실에는 범죄 현장이나 피의자 집 등에서 압수한 물건들을 보관하는데, 중앙지검 청사에만 해도 13곳(약 1322㎡·400평)이나 된다. 이곳에는 현재 1만점 이상의 압수물이 보관돼 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1층에 있는 증거물보관실. 중앙지검 청사에는 이곳을 포함 총 13곳의 보관실에 1만점 이상의 압수물이 보관돼 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1층에 있는 증거물보관실. 중앙지검 청사에는 이곳을 포함 총 13곳의 보관실에 1만점 이상의 압수물이 보관돼 있다. /윤동진 기자
대부분의 압수물은 수사가 끝나면 '진짜 주인'에게 돌아가지만, 주인을 알 수 없는 물건은 관보(官報)에 '압수물 환부(還付·돌려줌) 공고'를 낸다. 서울중앙지검 형사증거과 이갑수 과장은 "압수물 환부 공고를 보면 시대별로 도둑들이 선호하는 물건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중앙지검은 66점의 압수물을 찾아가라는 공고를 냈는데 이 중 56점이 스마트폰이었다. 쉽게 팔아 현금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둑들이 많이 노리기 때문이다. 10년 전인 2004년 공고에는 일반휴대전화, 카오디오, CD플레이어, 카메라 등이 대세였다. 검찰 관계자는 "예전에는 다양한 종목에 전문 도둑들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스마트폰이 도둑질의 주종목"이라고 했다.

압수된 외화(外貨)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2004년에는 미국 달러와 중국 위안(元)화, 일본 엔(円)화 등이 다수였고, 유럽이나 동남아 국가 화폐가 가끔 등장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 남미,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등 동유럽,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의 화폐도 공고에 자주 나온다. 10년 전보다 우리 국민이 방문하는 나라가 그만큼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증거물보관실을 거쳐간 다양한 압수물들 사진
꾸준히 등장하는 물품들은 현금과 귀금속, 시계 등이다. 오토바이도 꾸준히 나오는 물건인데, '환금(換金)'을 목적으로 한 도둑질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재미 삼아 훔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따금 눈에 띄는 물건도 공고된다. 작년 2월 15일에는 현금 36억원과 수표 등 모두 121억여원이 공고에 나왔다. 이 돈은 2003년 '대북송금 사건' 때 박지원 당시 민주당 의원 등이 금강산관광사업 청탁 대가로 고(故) 정몽헌 회장 측에서 받아 숨겨둔 돈이라며 검찰이 압수한 것이다. 그런데 2006년 대법원에서 박 의원은 이 돈과 관련 없다며 무죄를 확정했고, 돈 배달자로 지목된 무기중개상 김영완씨도 자신의 돈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주인 없는 돈이 돼 버려 작년 5월 전액 국고로 환수됐다. 지난 8월에는 여성 브래지어 131점과 팬티 231점이 공고됐다. 한 20대 남성이 28회에 걸쳐 빈집이나 아파트에서 훔친 속옷들이었다.

공고해도 주인이 찾지 않는 압수물은 어떻게 될까? 압수물은 공고 후 3개월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국고로 귀속되거나 폐기된다. 명품 가방이나 귀금속 등 '돈 되는' 물건들은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인터넷 공매시스템 '온비드(onbid.co.kr)'를 통해 공매돼 낙찰대금이 국고로 들어간다. 하지만 나머지 교환 가치가 없는 압수물은 폐기된다.

특히 스마트폰은 비싼 물건이지만 개인 정보가 들어 있어 전량 폐기된다. 검찰 관계자는 "한때는 상표를 뗀 '짝퉁' 옷을 복지시설에 기증하기도 했지만 상표권 문제 때문에 지금은 전량 폐기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