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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별난인생

전설의 욕쟁이 할머니를 찾아서 (한겨레 2014.12.25 12:38)

전설의 욕쟁이 할머니를 찾아서

 

‘동백식당 욕보할매집’의 이점남씨.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x도 뭔 얘길 또 듣겠다고…. 니미 씨발, 저녁에나 오든가 말든가.”

오, 살아 있었다. 파괴력과 설득력을 겸비한 자신만만한 욕설, 오랜만에 듣는 높고 서늘한 육두문자였다. 전남 순천시 별량면사무소 앞 ‘동백식당 욕보할매집’의 이점남(80)씨. 10년 전 처음 찾아가 욕맛을 본 이래, 들를 적마다 벌건 짱뚱어탕에 궁시렁궁시렁 욕설을 듬뿍 말아 팽개치듯 내주시며 “그래, 오늘은 주뎅이가 찢어질 때까지 한번 처먹어보라”시던 순수 자연산 정통파 욕쟁이 할머니시다. 혹은 대통령 선거 광고에 나가기도 하고, 혹은 조폭처럼 행동하다 구속되기도 하며, 전국 욕쟁이 할매들이 되레 욕먹고 욕보는 이 시대에 과연 이 할머니는 건재하실까,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던 참이다.

“낮엔 x나게 바빠부러, 씨발놈들이 처먹겠다고 나래빌 서부니께로.”

지난 19일 몇년 만에 찾아간 이 식당, 옛날 그대로였다. 빨간색 간판도, 빨간 옷에 빨갛게 물들인 머리의 귀신 같은 할머니도, 벌건 짱뚱어탕과 시뻘건 욕설도 변함없었다. 할머니가 식탁의 그릇들을 거둬 설거지통에 와장창 쏟아부으며 말했다. “니기미 씨발, 혼자 일할랑게 x이 빠져부린당게.” 이날은 며느리도 안 나오고, ‘일하는 각시’(도우미 아줌마)가 휴가를 낸 탓에, 할머니 혼자 탕 끓이고, 밥하고, 반찬 만들고, 손님 받고, 설거지까지 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래도 손님이 뜸해지자 평정심을 찾고 욕도 표정도 다소 순화돼가는 모습을 보였다. “바쁠 땐 욕이 절로 나오지라. 어쩌것소, 새벽부터 한번도 앉아 있질 못했구마, 씨발거. 해해해.”

이 할머니가 이렇게 된 건 물론, “x겉은 세상” 때문인데, 결정적인 이유는 30여년 전 장사가 안돼 먹고살기 힘들던 때, 식당에 들른 한 중이 “이 집 집터가 세니 빨간 옷을 입고 기를 키워 귀신을 이겨내야 한다”고 조언한 뒤부터다. “요자리서만 40년 넘게 해왔응게. 참말로 x빠지게 했제잉. ‘씨발 x도’를 하루에 3천번씩은 했을 것이여. 귀신 이길라고.” 서른넷에 식당일을 시작해 욕설 섞인 짱뚱어탕으로 4남1녀 다 키워냈고, 17년 전 남편을 먼저 보낸 뒤엔 더욱 진해진 욕설을 입에 담으며 외로움을 버텨온 할머니다.

이날 할머니 욕설은 오랜만에 제대로 발동이 걸린 듯이 보였다. 손님들 일부가 박자를 맞추며 거들자, 할머니의 욕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앉아서도 하고, 왔다갔다하면서도 하고, 혼자서도 씨부렁거리길 그치지 않았다. 손님 둘이 들어와 주꾸미볶음을 시켰는데, 가위로 주꾸미 자르는 솜씨가 서툴러 보였다.

“x이나, 지랄 염병을 허네. x도, 다리 결대로 자르랑게, 니미 세로로 토막을 쳐부네, 문딩이들. 그럼 제맛이 안나부린당게로. 씨발 가르쳐줘도 못한당게.” 손님들은 욕을 먹으면서도, 땀까지 흘리며 흡족한 표정들이다. 수십년 욕으로 버텨온 이 할머니는 욕해도 좋을 사람, 안 할 사람을 가릴 줄 안다.

“참 웃겨부러잉. 겡상도 사람들이 전라도 욕 차암 좋아해. 욕 처먹을라고 겁나 많이 와부러. x나게 욕해불면 걍 헬렐레 한당게.”

알음알음으로, 당대 최고의 욕쟁이 할머니로 떠오르면서, 신문·방송에도 잇따라 소개됐다. 이래서 찾아오는 손님들 중엔 ‘x도 아닌 것들’과 ‘잡것들’이 섞여 있다. ‘x도 아닌 것들’은 주로 ‘사’ 자가 붙은 분들이다. “검사·판사·의사·변호사 요런 것들도 욕 처먹고 참 잘 먹었다고 하드먼. 지는 잘난 줄 알아도 x도 아니제. 거들먹거리는 놈들한텐 욕도 안해분당게. 씨발거.” ‘잡것들’은 어떤 분들일까. “점슴시간에 짝맞춰 오는 놈들은 다 지 각시를 델구 와. 그란디, 두시 세시 넘어 오는 놈들이 잡것들이랑게. 꼭 남으 각시를 델구 오는 것들이여. 잡것들.”

할머니는 이제 욕 안하고는 하루도 살 수가 없게 됐다. “욕 안허니께, x도 왜 욕을 안허냐고 욕함시로 아조 지랄덜을 해야. 씨발것들. 긍게 나가 늙었어도 쌍욕을 해분당게라.”

“욕도 헐 만큼 혔고, 돈도 불 만큼 불어본” 할머니는 요즘은 ‘테레비’ 보는 낙에다 몇달 전 가져온 “아조 영리한 겡아지(강아지) 사랑이와 노는 낙”으로 사신다. 할머니에게 지난 한 해는 어떻게 비쳤을까. “사고가 많아 맴이 아프고 승질도 나제라.” 할머니는 “요즘, 시상이 못쓰게 돼부렀다”고 말했다.

“그 뭣이라, 국회의원 그 늙은 기, 손녀딸 겉은 애를 거서기허고, 염병헐 놈, 자석이 지 에미를 안 때려죽이나, 잘났다고 염병허는 놈들이 쌔부렀어, 요새.”

오랜만에 짱뚱어탕 한 그릇, 걸쭉한 욕에 진하게 말아 먹고 식당을 나서는데, 발동 걸린 할머니는 세상을 향해 계속 욕설을 퍼부었다. “이 x겉은 세상에,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잘나긴 개씹이나. 사람은 못나도 잘나도 다 똑같은 것이여. x도. 잘나기로 허면 나가 제일로 잘났제라, 국민핵교만 나온 년이 욕도 허고 싶은대로 혔고, 살 만큼 살아봤응게.”

거침없으면서도 절제된, 걸쭉한 욕 몇바가지에, 정말 욕 나오는 한 해를 보내느라 답답했던 가슴도 조금은 후련해진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