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우외환 속 용산] ①엎친 데 덮친 격, 휘청이는 용산 PC업계
모뉴엘의 좌초로 인해 용산 PC 업계가 흔들리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 불황에 소비자 대상 PC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예기치 않은 악재를 맞은 용산은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어려움에 직면했다. 모뉴엘 사태의 여파로 또다시 위기를 맞은 용산 PC 업계의 현주소를 살펴본다.<편집자주>
요즘 용산 PC 업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갑작스레 터진 ‘모뉴엘 사태’의 후폭풍으로 인해 용산을 기반으로 하는 PC 업계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용산 위기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 년 전부터 조금씩 불안 요소가 쌓이면서, 끊임없이 위기론이 제기돼 왔다. 불안한 상태에서 속으로 곪아가던 문제점들이 이번 모뉴엘 사태로 한꺼번에 터지면서 재확인된 것에 불과하다.
대체 어떤 문제들이 한때 ‘아시아 PC 업계의 메카’로도 불리기도 했던 용산 PC 업계를 이렇게 휘청거릴 정도로 약화시켰을까. 용산 PC업계를 위기로 치닫게 한 내적·외적 요인들을 짚어본다
▲ 지난 5월 철거에 들어간 용산 터미널 상가의 모습. 용산 PC 업계의 위기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스마트폰·태블릿의 대두
용산 PC 시장의 위기를 초래한 외적 요인들은 먼저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스마트폰과 태블릿 같은 ‘대체제’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지난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시작으로 유발된 미국 금융 시장의 위기는 순식간에 유럽을 거쳐 전 세계의 금융 위기로 확대되었으며, 이는 세계적인 규모의 경기 침체 및 불황으로 이어졌다.
수많은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공급을 축소하고, 수입이 줄어든 소비자들도 지갑을 닫고 소비를 최소화하면서 수요가 줄어들었다.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금융권은 물론 유통과 서비스, 마케팅 등 모든 분야의 시장은 크게 움츠러들었고 장기적인 불황이 시작됐다.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경기 침체 및 불황은 올해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PC 시장도 타격을 입었다. 아무리 PC가 디지털 IT 시대의 필수품이긴 해도 다른 가전에 비하면 가격이 비싼 편이었기에 소비 위축의 여파를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국내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IMF 사태의 교훈 이래 갖추게 된 넉넉한 외환보유고로 금융 위기 자체는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었지만, 곧바로 불어 닥친 불황의 여파는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용산을 찾는 소비자들의 발길은 뚝 끊겼고, 업체들의 매출 역시 급락했다. 이 시기에 아예 장사를 접고 업계를 떠난 상인들도 크게 늘었으며, 용산을 비롯한 PC 전문 상가들은 주인없이 텅 빈 매장이 과거 IMF 시절보다도 늘어났다.
▲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대두는 자연스레 PC 판매량의 감소로 이어졌다. (사진=애플)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대두도 PC 시장에는 악재였다. 특히 세계적으로 손꼽힐 정도로 최신 IT 기술과 유행에 민감한 국내 소비자들은 휴대전화 기능은 물론, 다양한 앱으로 PC 못지 않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빠르게 적응했다.
당연히 스마트폰 중심의 모바일 IT 시장은 높은 성장을 거듭한 반면, PC 시장은 상대적으로 침체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PC 시장도 다수의 부품을 구성해 꾸미는 조립 PC보다 완제품 형태로 나오는 노트북으로 수요가 옮겨가면서 부품 위주의 용산 업계는 더욱 타격을 입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2011년 발생한 태국 홍수와 이로 인해 불거진 하드디스크 공급 부족사태는 PC의 가격을 큰 폭으로 인상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가뜩이나 침체 분위기인 용산 PC 시장에 다시금 비수를 꽂았다.
온라인 유통으로 인한 경쟁 심화 및 수익 저하
외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용산 PC 업계에는 쌓인 문제가 많았다. 우선 인터넷 쇼핑 문화의 활성화가 내적 요인의 첫 번째다.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면서 오프라인 중심이었던 용산 PC 업계 역시 온라인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온라인 유통의 도입은 용산 PC 업계에 ‘독이 든 성배’로 작용했다.
이미 용산 PC 시장은 ‘다나와’와 같은 가격비교 사이트의 등장으로 가격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개되던 상황이었다. 출범할 때만 하더라도 아는 사람만 참고하고 이용하던 정도였지만,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면서 가격 정보 확인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잡았다.
▲ 가격비교 사이트의 등장과 온라인 쇼핑 시대의 도래는 용산 PC 업체들의 수익 구조에 악영향으로 작용했다. (사진=다나와 캡쳐)
특히 가격 정보 제공뿐만 아니라 원스톱으로 그 자리에서 판매자와 연결해주기 시작하면서 업체간 경쟁도 치열해졌다. 같은 제품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고픈 소비자들의 습성상 업체들은 손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가격을 최대한 낮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는 10원단위로 가격 경쟁이 심화될 정도였다.
당연히 판매 가격을 낮추면 용산 업체들의 이익 또한 그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매장 임대료와 인건비 정도만 소요됐던 과거와 달리 오픈마켓 수수료와 물류비용, 광고 및 각종 이벤트를 위한 마케팅 비용이 추가되면서 업체들의 수익 구조 또한 악화됐다.
수요가 어느 정도 유지되는 시장이라면 박리다매 전략으로 타개할 수도 있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불황과 경기 침체, 수요 감소 등의 외적 요소가 겹치면서 그것도 불가능해졌다.
현재 용산 PC 시장은 오픈마켓과 연결되어 있는 ‘다나와’와 같은 가격비교사이트와, ‘컴퓨존’ ‘아이코다’ 같은 일부 대형 PC 전문 유통업체들만 살아남은 상황이다. 특히 대형 유통사들은 충분한 자금력으로 보다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물량을 확보함으로써 최소한의 수익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용산 PC 시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영세 업체들은 규모는 물론 자금력과 마케팅 등에서 대형 업체에 밀린지 오래다. 이들은 다른 업체와 합쳐서 규모를 키우거나, 시장을 떠나는 양자 택일의 기로에 서있다.
그 중에는 경쟁만 심하고 수익은 적은 B2C 시장을 포기하고, 판로만 확보하면 훨씬 규모가 크고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B2B 시장에만 전념하는 업체도 늘었다.
치명타를 날린 ‘모뉴엘 사태’에 미래 또한 밝지 않아
이토록 속으로 곪아가던 용산 PC 업계에 날벼락처럼 떨어진 모뉴엘 사태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모뉴엘이 좌초되면서 자회사인 잘만테크를 비롯해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일부 용산 업체들도 덩달아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피해를 입은 업체들 중 상당수가 현재 용산을 버티게끔 지탱하고 있는 핵심 업체들이라는 것이다. 집으로 치면 지붕을 받치던 대들보에 금이 간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현재 용산 PC 업계의 미래 또한 불투명하다. 뾰족한 대안이나 해결책 없이 문제점만 쌓이고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회생의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용산 PC 시장이 살아남는다 해도, 과거 화려했던 시절로 돌아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내우외환 속 용산] ②용산 PC업계, 정말 ‘미래’는 없는가
(미디어잇 2014.11.27 10:17:08)
모뉴엘의 좌초로 인해 용산 PC 업계가 흔들리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 불황에 소비자 대상 PC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예기치 않은 악재를 맞은 용산은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어려움에 직면했다. 모뉴엘 사태의 여파로 또다시 위기를 맞은 용산 PC 업계의 현주소를 살펴본다.<편집자주>
용산 PC 업계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침체일로를 걷던 PC 시장이 점차 바닥을 치고 회복세에 접어들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산만큼은 전혀 그런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다. 마치 죽음을 앞둔 늙은 코끼리를 연상시킨다.
이는 단순히 소비자 IT 시장을 이끄는 하드웨어가 PC에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넘어가 PC 판매량이 줄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용산 PC 업계가 새롭게 성장할 수 있는 성장동력 자체를 거의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용산의 위기는 끊임없 지적돼 왔다. 그러나 이번 상황은 아주 심각하다. 용산 PC 업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모뉴엘이 한순간에 몰락하면서 치명타를 날렸기 때문이다.
PC 시장이 한창 성장하고 있었던 1990년대만 하더라도 국내에도 메인보드와 그래픽카드 등의 PC 부품을 생산하는 설비를 갖추고 직접 제조하는 업체들이 꽤 있었다. 국내에서 생산을 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하드웨어를 기획과 개발, 설계 및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업체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PC의 핵심 부품인 CPU나 GPU, 메인보드처럼 오랜 세월 축적된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지 않고, 아이디어와 기획만 좋으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케이스나 확장기기, 주변기기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업체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그런 업체들 중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곳은 거의 없다. 중소업체들은 IMF나 외환 위기 같은 외부 요인이나 내부 사정으로 사업을 접은 곳이 상당수다.
남아있다 하더라도 본래의 모습은 퇴색된지 오래다. 그저 해외 브랜드 제품을 그대로 수입하거나, 이미 만들어진 샘플제품 중 적당한 것을 골라 자기 상표만 붙여서 들여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주로 대만이나 중국업체가 개발하고, 현지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들이다.
이제 국내 설비와 기술로 직접 생산되는 PC 관련 제품들은 모니터와 같은 일부 디스플레이 제품과 디지털 방송 관련 장비, 메모리 모듈, SSD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것도 주로 대기업들과 관련된 제품들이다.
물론 용산 PC 업체들만 탓할 일은 아니다.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용산 PC 업체들이 선택한 경쟁력 향상 방안이 장기적으로 독으로 작용했을 뿐이다.
케이스를 예로 들어보자. 새로운 디자인이나 기능을 갖춘 케이스를 개발하게 되면 대량 양산을 위한 금형도 새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싸게 하더라도 금형 하나 만드는 데만 천만원 단위의 비용이 들어간다. 그만한 비용을 들여 만든 케이스는 당연히 원가부터 비쌀 수밖에 없다.
만약 설계나 디자인에 문제가 있어 수정을 하더라도 금형은 수정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 만들어야 한다. 즉 제품 하나를 개발하는 데만 수천 만원이 넘는 돈이 소요된다. 중소규모 용산의 PC 업체들이 감당하기엔 부담스러운 비용이다.
하지만 중국 등지에 널린 케이스 제조 공장들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수많은 샘플 중에서 적당한 것을 골라 상표만 찍어 들여오면 기획과 디자인, 설계 및 금형 제조 비용 등이 거의 필요 없다. 필요한 만큼 주문하고, 그럴듯하게 포장할 광고·마케팅 비용만 필요할 뿐이다.
당연히 제조원가부터 큰 차이가 발생하면서 국내 업체가 직접 디자인 및 설계한 독자적인 제품들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은 우수한 디자인과 부가기능을 겸비한 비싼 가격의 제품보다는 적당한 디자인과 성능에 저렴한 제품을 더 많이 찾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행에 민감한 국내 소비자들의 특성상 어지간해서는 한 제품으로 롱런하기가 쉽지 않다. 최소 분기별로 새로운 상품을 선보여야 소비자들을 잡을 수 있는데, 비용과 시간 등의 측면에서 국내 개발 제품이 밀릴 수밖에 없다. 막상 직접 개발한 제품이 실패라도 하면 그 손해는 엄청나다.
결국 대다수 업체들은 위험 부담이 적고 최소의 비용만 있으면 되는 쪽을 선호하게 됐고, 국내 디자인 및 설계를 고집해 온 업체들은 경쟁에서 밀리고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용산 PC 시장에는 단순한 ‘수입 유통’업체만 남게 됐다. 케이스뿐만 아니라 모든 용산 PC 업계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상황은 비슷하다. 업체들의 경쟁력은 이제 신제품의 개발 및 제조 능력이 아닌 ‘어떤 괜찮은 제품을 어디서 싸게 들여오느냐’에 달렸다.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이 중심인 선진화된 시장에서 이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새로운 사업분야로 진출해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용산에 기반을 둔 PC 관련 업체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가 성공한 경우는 드물다. 성공적인 사례였던 모뉴엘도 이번 허위수출 및 대출사기 건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자회사로서 덤터기를 쓴 잘만의 경우도 한 예다. 한창 잘 나가다가 새로운 사업 아이템인 3D 모니터 등에 대거 투자했다가 실패했고, 회사 사정이 악화되면서 모뉴엘에 인수됐다. 이러한 좋지 않은 선례들을 본 용산 PC 업체들이 신규 투자 및 새로운 사업 아이템 발굴보다는 몸을 사리고 현실에만 안주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외적인 상황도 좋지 않다. 용산 PC 업계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용산전자상가’ 도 머지않아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미 용산 3대상가중 하나였던 ‘터미널 상가’가 호텔을 짓기 위해 해체되어 역사상으로 사라졌다. 이후 개발 계획에 따르면 남은 전문상가들도 순차적으로 정리될 예정이다.
그렇다고 이전을 통한 제2의 용산전자상가도 기대할 수 없다. 우선 IT 유통 시장의 흐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바뀐지 오래라 대규모 상가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용산과 비슷하다 할 수 있는 청계천 상가의 이전이 실패로 끝나면서 나쁜 선례를 남긴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이전 용산과 비슷한 역할과 특징을 지녔던 일본의 아키하바라는 아예 콘텐츠 중심의 테마 산업으로 방향틀어서 살아남았지만, 이미 정리 및 개발계획이 잡힌 용산전자상가는 체질을 개선하기에도 너무 늦어버렸다.
향후 용산 PC 업계는 자금력과 규모를 갖춘 ‘유통전문’ 업체들만 살아남을 것으로 보인다. ‘용산전자상가’가 사라져도 물류센터와 온라인 중심의 유통망만 건재하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능력 있던 업체들이 독자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담은 제품들로 세계 시장에 당당히 도전하던 시절의 용산은 이제 과거의 모습일 뿐이다.
[내우외환 속 용산] ③모뉴엘 사태, PC 시장에 불어닥친 ‘후폭풍’
(미디어잇 2014.12.04 08:06:49)
모뉴엘의 좌초로 용산 PC 업계가 흔들리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 불황에 소비자 대상 PC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예기치 않은 악재를 맞은 용산은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어려움에 직면했다. 모뉴엘 사태의 여파로 또다시 위기를 맞은 용산 PC 업계의 현주소를 살펴본다.<편집자주>
[미디어잇 노동균] 침체일로의 PC 시장이 바닥을 치고 회복세에 접어들 것이라는 기대감도 잠시, 지난 10월 20일 들려온 모뉴엘의 법정관리 신청 소식은 다시금 용산을 큰 충격으로 몰아갔다. 모뉴엘 사태는 단순히 한 IT 강소기업의 몰락을 넘어 현재 용산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유통 업계의 뿌리까지 흔들고 있다.
사상 초유의 사기대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는 모뉴엘 사태의 시작은 홈씨어터 PC(HTPC)에서부터였다. 관세청에 따르면 현재 구속된 박홍석 모뉴엘 대표를 비롯한 주요 경영진들은 지난 2007년 미국에 수출한 자사의 HTPC가 대량 반품되면서 사정이 어려워지자 범행을 모의했다.
이들은 허위로 은행 대출을 받아내기 위해 대당 몇 만원도 채 되지 않는 저가 HTPC를 대량으로 매입해 무려 250만원에 수출한 것처럼 관련 서류를 꾸몄고, 이 과정에서 용산 소재 PC 업체들이 대거 협력사로 참여했다. 물론 협력사들은 모뉴엘의 의도와는 별개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품을 공급했을 뿐이지만, 모뉴엘의 좌초로 인해 회수해야 할 자금이 공중에 떠버리면서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나아가 모뉴엘에 크게 데인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자금 풀기를 꺼려하면서 그 여파가 중소기업과 연관된 소기업들로까지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어 용산을 둘러싼 위기감이 더욱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돈맥경화에 세무조사 폭탄까지…‘후폭풍’ 거세
금융당국에 따르면 모뉴엘에 직접 납품하는 업체를 비롯해 2, 3차 협력 업체까지 모두 포함하면 약 1000여곳 이상에 거래선이 분포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중에는 최근까지 모뉴엘이 집중해온 로봇청소기와 같은 가전제품 관련 업체들이 다수지만, PC 업체들도 적지 않게 연관돼 있어 용산에도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당장 이들 협력 업체들은 모뉴엘로부터 받아야 할 대금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돈의 흐름이 일시적으로 막혀버리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실제로 최근 한 PC 주요 부품 업체의 경우 모뉴엘 사태 이후 운영이 힘들어지자 내부 임원이 독립해 별도의 법인을 차리고, 기존 업체의 사업을 인수하는 방식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기존 직원들만 뿔뿔이 흩어질 위기에 처했다.
규모는 작지만 해외 수출에 의존해온 업체들도 피해가 크다. 중소기업의 해외거래 심사가 강화된 데다 담당 실무자들이 모뉴엘 사건에 이리저리 불려 다니면서 업무 처리도 지연되기 일쑤라는 후문이다. 모뉴엘과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전반적으로 나빠져 투자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고 업계는 입을 모았다.
용산 일대에 세무조사 폭탄이 떨어진 것도 모뉴엘 사태의 큰 후폭풍이다. 모뉴엘에 놀란 금융당국이 제 2의 모뉴엘 사태를 방지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벌인 세무조사지만, 가뜩이나 위축된 시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통장 한 보따리를 들고 움직이는 직원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용산에서 볼 수 있었다”며 “세무조사로 일부 문제가 있는 업체들을 솎아내기도 했겠지만, 대다수의 선량한 업체들은 종일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말 그대로 폭탄을 맞은 셈이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모뉴엘의 여파는 업계뿐 아니라 소비자들과의 접점인 유통 시장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일체형 PC를 비롯해 모뉴엘 제품의 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칫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 모뉴엘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난 10월 22일 당일부터 모뉴엘의 AS 대행사인 TGS는 모뉴엘 제품에 대한 AS를 전격 중단했다. 이미 이전부터 모뉴엘이 TGS측에 지불해야 할 수천만원의 금액을 지불하지 않았고, 법정관리 소식이 전해지자 TGS는 즉각 행동에 옮긴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써 모뉴엘의 가전제품을 비롯해 일체형 PC 등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공식적인 AS를 받기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특히 일체형 PC는 부품 특성상 일반 데스크톱 PC와 달리 자가 수리가 쉽지 않기 때문에 고장 발생 시 사용자들의 불편이 더욱 클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모뉴엘의 완제품 PC에서 추려낸 부품들이 유통 시장에 대거 유입된 정황이 포착돼 소비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업계에 따르면 CPU, 메인보드, 메모리 등 주요 PC 부품들이 벌크 형태로 시중 단가보다 10~20% 저렴하게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카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PC 구성 부품이라는 점에서 일체형 PC 및 HTPC에서 빼낸 부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모뉴엘 사태 이후 모뉴엘 완제품 PC를 재고로 보유하고 있던 일부 업체들이 부품이라도 털어내 수익을 보전하고자 덤핑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해당 부품들이 인증 획득이나 품질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PC 부품 특성상 일반 소비자들이 외관만으로 부품의 출처를 파악하기에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덤핑 형태로 공급되는 탓에 정식 유통사도 불분명해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들이 추후 제대로 AS를 받지 못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환율 영향으로 PC 부품 가격이 전반적으로 소폭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덤핑 행위는 일종의 장물 거래와 같은 부도덕한 의도를 품고 있다고 의심해볼 여지가 많다”며 “이는 결국 다른 정상적인 유통 업체들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업계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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