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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기업

"당신 회사, 주인 바뀌었던데?" 社長 몰래 350억짜리 기업 '꿀꺽'(조선일보 2014.11.27 05:28)

"당신 회사, 주인 바뀌었던데?" 社長 몰래 350억짜리 기업 '꿀꺽'

"투자하겠다"며 접근, 인감·사업자등록증 등 복사
위조서류 만들어 사장 해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전시·디자인 업체 O사를 운영하는 안모(52)씨는 지난달 29일 업계 동료로부터 "너희 회사 주인이 바뀌었다는 소문이 돈다"는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곧바로 인터넷으로 회사 법인등기부 등본을 확인한 안씨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회사 대표가 박모(44)씨로 바뀌어 있었고, 낯선 이름들이 사내이사 명단에 올라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안씨는 O사 대표이사에서 해임된 상태였다.

박씨는 2주 전 "투자를 하고 싶다"며 안씨 회사를 찾아왔던 인물이었다. 당시 박씨는 한 정보통신업체 대표라고 적힌 명함을 건넸고, 동행한 또 다른 박모(54)씨를 건설회사 대표이사를 지냈다며 소개했다. 그러면서 "O사가 매출 350억원대, 자산 150억원대로 건실하다고 들었다. 50억~60억원 정도 투자하고 싶다. 회사 가치를 극대화해 코스닥에 상장되면 수익을 크게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두 사람은 315억원이 든 통장 사본을 메일로 보내 자금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후 박씨 일행은 사흘간 투자 실사를 벌였다. 안씨에게 회사 재정과 영업 상황을 꼬치꼬치 캐묻고, 일주일 안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없었던 일이 된다는 양해 각서도 체결했다.


	기사 관련 일러스트

실사를 마치고 돌아간 박씨 일행은 차일피일 연락을 미뤘다. 이들이 사채를 빌려 투자 금액을 조달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안씨는 약속했던 21일이 지나자 박씨에게 전화를 걸어 "투자를 받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이후 안씨는 사흘간 중국 상하이로 출장을 다녀왔는데, 그 사이 회사가 박씨 손에 넘어간 것이다.

알고 보니 실사를 핑계로 O사에 머물던 사흘간 박씨 일당은 법인 명의를 바꾸기 위한 사전 작업을 벌였다. 회사를 빼앗아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생각으로, 법인 주주명부, 법인 인감증명서, 사업자등록증, 회사 정관 등을 복사하고 인감 도장을 휴대폰으로 몰래 촬영했다. 이런 서류들을 이용해 열리지도 않은 긴급 주주총회 의사록을 만들어 안씨를 대표 이사에서 해임하고 자신들이 새로 선출된 것처럼 꾸민 것이다. 위조한 주주총회 의사록, 법인 인감 증명서, 주식 양도 양수 계약서, 경영권 양수 계약서 등을 공증한 공증사무소, 등기 변경 신청을 접수한 관할 등기소에서 서류의 진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바람에, 박씨는 서류 몇 장을 위조하는 간단한 방식으로 안씨가 20여년간 키워온 회사를 일사천리로 가로챌 수 있었다.

주범 박씨는 대포폰 4대와 옷가지, 세면도구가 든 가방을 들고 도망 다니다 지난 3일 검거돼 구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