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 미/연 예 가

‘카트’에 눈물짓던 관객들…영화관 알바들 ‘투명인간’ 취급 (한겨레 2014.11.27 16:44)

‘카트’에 눈물짓던 관객들…영화관 알바들 ‘투명인간’ 취급

 

한국 상업영화 사상 처음으로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카트’의 한 장면. 영필름 제공

영화관 알바에게 ‘카트’란?
“눈물이 여기서 그치지 말았으면 하고 빌지만 여기서 그친다
팝콘과 콜라를 쏟으면서 그건 치우는 사람의 몫이라 말한다
결국 영화는 하나의 가상현실?…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카트>는 영화지만 ‘누군가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현실’을 보며 눈물 흘린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자신만의 현실’로 복귀합니다. 하지만 멀티플렉스 영화관 아르바이트생 ‘박복숭아’(@peach_nebula)씨에겐 되돌아갈 ‘자신만의 현실’이 없습니다. 1분 지각하면 근무 시간에서 30분을 깎지만, 1분 늦은 퇴근은 연장 근무로 인정하지 않는 노동 환경, 실수하면 써내야 하는 반성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금 대출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관둘 수 없는 그의 현실은 영화 카트의 현실과 닮아 보입니다. <한겨레>는 우리 주변의 ‘카트’를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박복숭아씨가 지난 23일 밤 11시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지운 영화 카트의 소감문을 허락받고 전제합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너와 나의 사이에, 스크린 / 박복숭아

‘카트’를 보고 나왔다. 주말 미들조 2시간 연장 근무해서 총 8시간 근무하고, 퇴근하면서 보고 나왔다. 오늘 10시간을 같은 영화관 안에 있었던 셈이다. 보고 싶기도 했고 보고 싶지 않기도 했다.

영화의 결말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영화관 알바는 퇴출이란 걸 한다. 영화가 끝나기 5분 전에 미리 들어가서 대기했다가, 엔딩 롤이 올라가면 앞서 나가서 출구를 열고 인사를 한다. 엔딩만 다섯 번을 넘게 봤고 그때마다 눈물 때문에 애를 먹었다.

때문에 나는 영화의 엔딩이 다가오는 걸 체감할 수 있었고, 엔딩을 보는 게 두려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엔딩이 끝난 뒤 마주칠 마감조 (아르바이트생) I씨의 얼굴을 보는 게 두려웠다. 나는, 혹은 우리들은 계약기간이 명시되지 않은 백지계약서를 썼다.

영화 속 그녀들처럼 똑같은 색 립스틱을 발라야 해서 바르고, 똑같은 모양 머리망을 해야 해서 한, 2시간 전만 해도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I씨를 봐야 하는 게 두려웠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뛰어가야 하는 I씨를 보는 게 너무 두려웠다.

많이들 울고 나가는 영화다. 나만 해도 눈물범벅이 됐고 내가 일할 때마다 흐느끼는 손님이 꽤 많았다. 하지만 그 눈물은 지금 여기서 그치고 말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말았으면, 하고 빌지만 결국 여기서 그치고 말 것이다.

영화 속 염정아는 우리를 투명 인간 취급하지 말아달라고 울부짖지만 그걸 본 관객들은 출구를 열고 인사를 하며 쿠폰을 나눠주는 직원들을 투명 인간 취급하면서 나간다. 팝콘을 쏟고 음료를 쏟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그건 치우는 사람의 일이라고 말한다.

결국 영화가 아무리 현실 같아도, 혹은 현실이라고 울부짖어도, 스크린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막이 있는 한 관객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하나의 가상현실일 뿐이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서울 용산 CGV 티켓 창구가 영화표를 사기 위한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나는 혹은 우리들은, 그저 기계처럼 묵묵히 표를 뽑고, 주문을 받고, 쿠폰을 나눠주고, 인사를 하면 될 일이다. 여전히 우리의 타임카드는 1분 지각하면 30분을 깎지만 1분 늦게 퇴근해도 연장으론 인정되지 않는 그들의 시계에 맞추어져 있다.

언제나 알바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오늘처럼 그만두고 싶은 날이 없었다. 하지만 2달이라도 밀리면 당장 너의 재산을 차압하겠다는 한국장학재단의 경고장이 눈앞에 아른거리니. 손님에게 쿠폰을 맞아가며 열심히 ‘인터스텔라’와 ‘퓨리’를 팔 수밖에.

이건 사족인데, 이 알바를 시작하고 나서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상영관에 앉아 있는 일은 내게 길티 플레져가 됐다. 누구야, 스텝 롤을 다 보는 게 예의라고 말한 사람. 알바들은 타임 스케줄에 맞춰서 다른 상영관의 출구를 열어야 한다.

그걸 못 맞추면 손님들이 출구가 아닌 입구로 쏟아져 나오는, 일명 ‘역퇴’ 상황이 발생하는데 한번 발생 시마다 벌점이 매겨진다. 그게 보통 세 번 정도 일어나면 반성문을 쓰고 매달마다 받는 초대권을 받지 못한다. 더 일어나면 물론 돈도 깎인다.

아, 그냥, 극장 문화 뭐 이런 거 다 개소리라고 말하고 싶다. 문화는 개뿔 뭐가 문화야! 스크린처럼 문화를 가로막고 있는데 뭐가 문화냐고. 문화인처럼 행동해야 문화지. 문화인 아닌 사람에게 당당하게 나가야 문화가 알아서 생성될 거 아냐. 한국의 서비스직 문화란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그냥 조금 싱숭생숭해졌다. 매니저에게 자진퇴사를 권고받아 일을 그만두고 오랜만에 놀러 온 오전 알바생을 만나서 그런 걸 수도 있고,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쿠폰을 줬다고 매니저에게 쿠폰을 뿌리는 손님을 만나서 그런 걸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