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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 미/여행정보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광주매일 2014. 07.10. 19:14)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 공주 마곡사 ‘솔바람길’

 

마곡사에서 작은 암자로 가는 산책길. 하늘을 덮은 적송가지들의 지붕아래를 걷노라면 그 향에 가슴이 탁 트인다. 그 열린 마음으로 물소리, 바람소리, 목탁소리를 듣노라면 초록의 에너지가 내 마음을 가득 채워준다.

 

천년고찰 마곡사는 태화산·무성산·철승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어느 방향에서 접근하건 산골짜기를 굽이굽이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지형이다 보니 마곡사는 예로부터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로 택리지나 정감록 등에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임진왜란이나 한국전쟁 때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마곡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곧바로 마곡사로 향한다. 분주한 상가를 빠져나가자 ‘태화산마곡사(泰華山麻谷寺)’라 쓰인 일주문이 서 있다. 마곡사는 일주문을 지나서도 곧바로 나타나지 않고, 사람들로 하여금 마곡천변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부처님을 만날 준비를 시킨다. 자연 속에서 마음을 씻고 난 후에야 마곡사 경내로 들어가는 극락교와 전각들이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준다.


우리는 마곡사를 마지막으로 들르기로 하고, 곧바로 활인봉으로 향한다. 마곡사 주변에는 활엽수가 많지만 점차 소나무 숲으로 바뀐다. 굽은 듯 곧은 이곳 소나무는 줄기가 붉어 적송(赤松)이라 부른다. 굽은 듯 곧은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니 마치 나무가 집단으로 춤을 추는 것 같다.

가끔 소나무 사이로 마곡사 전각들이 모습을 드러내주고, 은은하게 들려오는 목탁소리가 마음을 가난하게 해준다. 백련암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난다. 마곡사 솔바람길은 마곡사에서 백련암을 거쳐 이곳으로 올라오는 것으로 되어있다. 백련암은 백범 선생이 1896년 명성황후 시해에 분노하여 황해도 안악에서 일본군 장교를 죽이고 인천 형무소에서 옥살이하다 탈옥하여 원종이라는 이름으로 1년 동안 출가하여 은거했던 암자다.

그윽한 적송숲길은 맨발로 걷고 싶을 정도로 부드럽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지만 하늘을 가린 숲이 그늘을 만들어주어 오늘처럼 무더운 날씨에도 걷는데 불편함이 없다. 이윽고 태화산 정상인 활인봉(423m)에 도착했다. 활인봉에는 사람들이 쉬거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사각정자에 나무탁자까지 설치해 놓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울창한 숲길은 잡다한 생각을 내려놓고 순수한 상태에서 마음을 나누기에 그지없이 좋다. 숲은 적송 일색으로 바뀌고, 우리는 소나무 향기에 취하여 걷는다는 생각도 잊은 채 발걸음을 옮긴다. 솔바람 솔솔 불어오는 이 길을 사람들은 ‘마곡사 솔바람길’이라 불렀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푸르고, 솔숲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자유롭다.

백범 김구 선생이 승려로 위장해 머물며 명상을 하던 길. 마곡사 곳곳에는 ‘백범명상길’이라하여 조성해놓은 좋은 산책길들이 많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나는 솔바람길을 걸으며 나를 얽매고 있는 그물을 걷어내고 자유인이 된다. 아름드리 적송들은 소박하면서도 근엄함을 잃지 않는다. 길가에서 미소 짓고 있는 나리꽃은 화려하되 천박하지 않은 미인을 연상케 한다. 가끔 만나는 나리꽃의 화사한 모습이 초여름의 산길을 아름답게 꾸며준다. 팔각정자를 지나자 계곡에서 물소리가 들려온다. 길은 마곡천변을 따라 이어진다.

템플스테이 전용관 앞으로 마곡천이 흐르고 건너편에 백범 선생이 탈옥 후 스님으로 위장하기 위하여 삭발을 했던 바위가 있다. 백범선생은 이곳 삭발바위에서 머리를 깎고 백련암에서 수행하며 은거했다.

삭발바위 아래로 마곡천이 흘러가고, 물 위에 놓인 징검다리를 통하여 마곡사 대웅보전으로 들어간다. 마곡천은 태극모양으로 돌면서 마곡사를 감싸고 돌아간다. 징검다리를 건너니 마곡사 가장 뒤편에 정면 5칸 측면 4칸의 2층 대웅보전이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조선 중기 17세기 건축양식을 하고 있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은 화엄사 각황전, 부여 무량사 극락보전과 같이 중층건물이지만 내부는 통층으로 되어 있다.

마곡사를 감싸고 있는 푸른 나무들은 절을 더욱 청정하게 해준다. 마곡사 주변의 활엽수가 새잎을 틔우는 봄이면 신록이 아름다워 공주에서는 ‘춘마곡 추갑사’라고 불렀다.

대웅보전에서 높은 계단을 내려오면 넓은 마당을 앞에 두고 대광보전과 심검당, 응진전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절의 중심 건물인 정면 5칸 측면 3칸의 대광보전(보물 제802호)은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화려하면서도 장중하다. 대광보전 현판 글씨는 표암 강세황(1713-1791)의 글씨다. 법당 안을 들여다보니 여느 절과는 달리 불상이 정면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서쪽에서 동쪽 벽면을 보고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영광 불갑사 대웅보전도 불상이 정면이 아닌 측면을 보고 있는데, 이는 매우 드문 경우다.

고려시대 세워진 마곡사는 특이하게 대웅보전이 두개가 있다. 대웅보전앞의 탑은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마곡사 오층석탑.

대광보전 앞마당에 우뚝 서 있는 오층석탑(보물 제799호)은 탑신이 홀쭉하고 지붕돌의 처마가 좁고 반전이 심해 날렵해 보인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탑과는 달리 라마식의 금속 상륜부가 모자를 쓰고 있는 것 같다. 대광보전과 응진전 사이에는 향나무 한 그루가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조국광복 이후인 1946년에 이곳을 다시 찾아 마곡사에서 은둔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심은 기념식수다.

마곡천은 마곡사를 태극모양으로 휘감아 돌면서 사찰을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눈다. 밖에서 들어오는 것을 기준으로 할 때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 극락교를 건너면 마곡사의 중심공간인 대광보전·대웅보전 영역이고, 개울을 건너기 전은 영산전 영역이다.

극락교를 건너니 곧바로 명부전이 있고, 명부전 옆에 영산전이 있다. 팔작지붕을 한 대광보전이나 대웅보전과는 달리 영산전(보물 제800호)은 맞배지붕으로 그 모습이 단아하다. 영산전은 마곡사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세조가 쓴 것으로 전해지는 현판도 눈길을 끈다. 세조는 매월당 김시습이 마곡사에 머문다는 말을 듣고 이곳까지 찾아왔는데, 정작 김시습은 만나지 못하고 ‘영산전(靈山殿)’ 현판 글씨만 남기고 갔다는 것이다.

천왕문과 해탈문을 지나 다시 속세로 돌아간다. 산문에 들어올 때 걸었던 길이고 만났던 나무들인데, 나갈 때는 그 길이 유난히 맑고 향기롭다. 바람이 불어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씻어준다.


여행쪽지

▶마곡사 솔바람길은 천년고찰 마곡사를 중심으로 백범길(3㎞), 명상산책길(5㎞), 송림숲길(11㎞)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송림숲길은 마곡사-천연송림욕장-백련암-활인봉-나발봉-전통문화연수원-군왕대-마곡사로 이어지는 11㎞에 이르는 길로, 4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천안-논산고속도로 공주 JC → 당진-대전고속도로 당진 방향 → 마곡사 IC → 사곡교차로에서 마곡사 방면 우회전 → 629번 도로 → 마곡사
▶마곡사 주차장 근처 상가에는 산채정식, 도토리묵, 백숙, 매운탕 등을 하는 식당이 많다. 대전식당(041-841-8026), 바람처럼구름처럼(041-841-9959) 등.

 

 

 ‘신선 노니는 섬’에서 신선이 되다 
 (광주매일 2014. 07.24. 19:35)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 선유도
‘구불길’ 눈길 닿는곳마다 그림같은 풍광이 할매바위에서 영원한 사랑을 기약하고

 

 

고군산군도의 맏이섬인 선유도는 발길 닿는 곳마다 절경을 자랑한다. 숨은 비경까지 속속들이 보고 싶다면 반드시 자전거를 이용해야한다. 무녀도와 선유도, 장자도가 연륙교로 이어져 있어 발품만 제대로 판다면 잊지못할 추억을 한보따리 담아 올 수 있다.

 

고군산군도는 군산 남서쪽 바다에 조개껍데기를 뿌려놓은 듯 떠 있는 63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있다. 16개의 유인도와 47개의 무인도로 구성된 고군산군도는 선유도를 중심으로 동쪽에 무녀도와 신시도·야미도가, 북쪽에 횡경도·방축도·명도·말도가, 서쪽에 관리도가 자리를 잡고 사이좋은 형제마냥 서로를 손짓하며 붕긋붕긋 솟아 있다.
선유도 선착장에 내리니 길가에 자전거가 진열되어 있다. 선유도에 온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이용하여 일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두 발로 걸어서 선유도의 비경에 푹 빠져볼 참이다. 선착장을 빠져나와 걷기 시작하는데, 두 개의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진 망주봉이 손짓을 한다.

선유도해수욕장에 도착하니 너른 백사장과 푸른 바다가 망주봉과 어울린 모습이 ‘신선이 노니는 섬’ 선유도의 이름을 실감케 한다. 선유도해수욕장은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곱디고운 백사장이 망주봉을 배경으로 길게 펼쳐져 있다 하여 ‘명사십리’라고도 불린다. 선유도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 1.2㎞, 폭 50m에 이르며 백여 미터를 나아가도 수심이 허리밖에 차지 않고 잔잔하여 가족·연인 단위 피서지로 안성맞춤이다.

선유도 본섬과 망주봉 사이에는 만조가 되면 폭 50m 정도의 해수욕장과 해안사구를 제외하고는 바닷물로 채워진다. 1.2㎞에 이르는 좁고 긴 모래언덕은 해저에 모래톱 형태로 쌓여 있던 모래 입자들이 파도로 운반되거나 썰물 때 바람에 의해 운반되어 이루어졌다. 이 모래언덕이 두 개의 섬을 지렛대처럼 연결해 하나의 섬이 되었다.

이러한 풍경을 위에서 내려다보기 위해 망주봉에 오른다. 망주봉은 옛날 선유도에 유배된 충신이 매일 이 산에 올라 한양에 계신 임금을 그리워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망주봉(152m)에 올라서는 순간 내가 곧 신선이 된 것 같다.

선유도해수욕장 앞에 떠 있는 솔섬은 그렇지 않아도 아름다운 명사십리의 풍경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꼬막껍질을 엎어놓은 것 같은 작은 두 개의 소나무 섬은 마침 썰물이 되어 해수욕장과 연결되어 있다.

간조 상태의 선유도·무녀도 갯벌과 무녀도 뒤로 보이는 해무에 감싸인 비안도·변산반도의 모습은 한 폭의 추상화다. 선유도는 장자도·대장도와 함께 선유도해수욕장 앞에 잔잔한 호수를 만들고, 더 크게는 무녀도·신시도·야미도와 계도·횡경도·방축도·명도·말도, 그리고 관리도가 선유도를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감싸 거대한 호수를 만들었다. 망주봉에서는 고군산군도 한 가운데에 선유도가 신선처럼 떠 있는 형국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망주봉을 내려와 해변을 따라 선유3구 마을 쪽으로 걷는다. 선유3구 마을 입구에서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 대봉전망대를 바라보며 산길로 접어든다. 대봉전망대에 오르니 망주봉의 두 봉우리가 진안 마이산 같은 느낌을 준다. 수평을 이룬 선유도해수욕장은 수직으로 솟은 망주봉·선유봉과 어울려 비경이 되었다.

구불길은 대봉에서 남악리 몽돌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이어진다. 대장도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마지막봉우리를 내려서니 남악리 몽돌해수욕장이다. 손에 쥐어질 정도로 작고 둥근 몽돌이 깔린 몽돌해수욕장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소박하다. 그러나 해수욕장 양쪽으로 해안절벽이 있어 운치를 더하고, 북쪽으로 방축도·명도 같은 섬들이 솟아 있어 외로움을 덜어준다.

장자도와 대장도로 향한다. 장자대교 근처에서 본 대장도는 좌우균형이 잘 맞는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자태 또한 위풍당당하다. 회색빛 바위와 진녹색 나무는 붉은 지붕을 한 민가들과 어울려 에메랄드빛 바다에 떠 있다.

장자도는 예전엔 멸치포구로 유명해서 1990년대까지만 해도 포구에 멸치젓갈 통이 빼곡하게 들어찼다고 하는데, 지금은 예전 같은 멸치어장은 형성되지 않는다. 섬 대부분이 암봉으로 이루어진 대장도는 대장봉 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민가와 팬션들이 예쁘다. 대장봉으로 오르는데, 등에 아기를 업은 모양의 할매바위가 보인다. 이 할매바위에는 과거를 보러 서울로 간 남편을 기다리다 등에 업은 아들과 함께 돌이 되어 버렸다는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 할매바위를 보면서 사랑을 약속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바위를 보며 아름다운 사랑을 염원한다.

가파른 암벽을 올라가니 대장봉(142m)이다. 무엇보다도 장자도와 선유도가 멀리 비안도·변산반도를 배경삼아 푸른 바다에 떠 있는 모습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명사십리를 이룬 선유도해수욕장과 망주봉이 신시도·야미도가 함께 어울린 모습도 또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화다.

다시 장자대교를 건너 다리공사로 한쪽 자락이 훼손된 선유봉으로 오른다. 무뚝뚝한 바위로 이루어진 선유봉(112m)에 올라서니 두 신선이 마주보고 바둑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선유봉으로 다가오는 풍경 역시 감동적이다. 가깝게 바라보이는 장자도와 대장도의 모습이며, 망주봉·대봉과 명사십리의 빼어난 풍경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한다.

무녀도와 선유도 사이에 떠 있는 세 개의 작은 무인도, 장구도·앞삼섬·주삼섬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세 섬은 갈매기와 물오리 등 바닷새의 천국이기도 하다. 선유봉이 내려다보고 있는 조용한 어촌마을, 선유1구의 작은 만에는 옥돌이 깔려있다. 옥돌해수욕장를 지나 선유도에서 무녀도로 통하는 선유대교로 올라선다.

무녀가 춤을 추는 형상의 무녀도를 다녀오고 싶지만 배 시간 때문에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다. 무녀도 기행은 군산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무녀봉(130.9m)과 염전 등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우리를 태운 배는 육지로 향하고, 우리는 신선의 기운을 가슴에 안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여행쪽지

▶선유도 구불길은 두 개 코스, 21.2㎞로 8시간 정도 소요된다. 두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선유도 비경을 구경할 수 있는 A코스가 좋다.
-A코스:선유도선착장-망주봉-대봉전망대-몽돌해수욕장-선유도해수욕장-장자대교-장자도-대장도-장자도-초분공원-선유도선착장(12.4㎞)
-B코스:선유도선착장-선유도해수욕장입구-초분공원-장자대교입구-선유봉-옥돌해수욕장-선유대교-무녀도염전-무녀봉-선유대교-선유도선착장(8.8㎞)
-.A코스와 B코스를 조합하여 선유도선착장-선유도해수욕장-망주봉-대봉전망대-몽돌해수욕장-선유도해수욕장-장자대교-장자도-대장도-장자대교-선유봉-옥돌해수욕장-선유도선착장을 걷는다면 17.2㎞로 6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 선유도로 오가는 배편은 군산에서 하루 4-5회 운행된다. 구체적인 시간은 평일과 주말, 물 때 등에 따라 달라지니 군산연안여객선터미널(063-472-2727)에 확인이 필요하다.

 

 

 첩첩한 산줄기를 휘감는 물줄기는 한편의 그림이 되고 
 (광주매일 2014. 08.07. 19:49)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 괴산 ‘산막이옛길’

 

총 길이 10리의 옛길의 흔적을 자연 생태계그대로 복원한 산막이옛길. 가슴까지 맑아지는 솔향을 맡으며 그 길을 걷다보면 출렁다리를 건너는 색다른 즐거움도 맛볼수 있다.

 

소백산을 지난 백두대간은 조령산·백화산·희양산·대야산·조항산·청화산을 솟구치면서 괴산과 문경을 가르고, 또 다시 줄기를 뻗어 괴산 땅에 도명산·낙영산·백악산, 막장봉·칠보산·보배산, 군자산·남군자산·비학산 같은 명산을 빚어놓았다. 이러한 괴산의 명산들은 골골이 화양구곡, 선유구곡, 쌍곡구곡, 갈은구곡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계곡을 만들었다. 이들 계곡은 보은 쪽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만나 달천이 되고, 달천은 괴산 땅을 적시며 흐르다가 충주 탄금대에서 남한강에 합류한다.


달천은 군자산·비학산·아가봉과 삼성봉·천장봉·등잔봉 사이를 굽이굽이 흘러가면서 깊은 골짜기를 이루는데, 이 골짜기에 1957년 괴산댐을 막아 괴산호라는 인공호수가 형성됐다. 괴산호가 담수된 후 호수 안쪽 산막이마을은 고립이 되어 상당기간 배를 타고 드나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괴산호변에 2011년 과거 마을사람들이 다녔던 수몰되거나 묵어버린 옛길을 복원하여 걷기 좋은 산막이옛길을 만들었다.

괴산댐 아래 넓은 주차장에서부터 걷기 시작한다. 길은 소나무 향기를 따라 이어진다. 솔숲에는 출렁다리를 만들어 출렁출렁 흔들리며 걷는 재미를 더해준다. 괴산호와 괴산댐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에 서니 산과 어울린 호수풍경이 가슴에 안겨온다.

나무의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정사목이라 이름붙인 소나무는 사랑하는 남녀가 정사를 하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길 아래로는 괴산호의 푸른 물이 출렁인다. 노루가 물을 먹고 가는 샘이라는 노루샘에서 등잔봉으로 오르는 산길과 호수가로 이어지는 산막이옛길이 갈린다. 우리는 등잔봉으로 오른다.

강변산책로와 등산로의 2가지 테마로 즐길수 있는 산막이옛길.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자연미를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움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소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고, 은은하게 다가오는 솔향기 그윽하다. 하늘나리가 한여름의 산을 화려하게 장식해준다. 청순하면서도 화려한 하늘나리에 눈을 맞추니 내 마음도 청순해지는 것 같다.

등잔봉에 도착하자 호수와 산이 어울려 풍경미의 극치에 이룬다. 괴산호는 호수가 그리 크지 않을 뿐더러 산자락을 돌고 돌아가는 형국이라서 호수라기보다는 큰 강 같은 느낌이 든다. 우뚝 솟은 군자산과 비학산에 감싸여 굽이돌며 곡선을 이룬 괴산호의 모습은 부드럽고 잔잔하되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괴산호 안쪽에 작은 분지를 이루고 있는 산막이마을은 세상과 동떨어진 별천지 같다.

등잔봉에서 천장봉으로 가는 능선에도 소나무 숲이 아기자기하다.

괴산호를 내려다보며 걷는 발걸음에 행복한 마음이 새록새록 스며든다. 한반도지형전망대에 서자 반도 모양으로 좁고 길게 뻗은 산자락을 휘감고 돌아가는 물길이 인상적이다. 그 모습이 한반도를 닮았다고 하여 한반도지형이라고 하는데, 한반도 모양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적송의 붉은 수피가 푸른 잎과 어울리고, 우리는 그 사이를 걷는다. 담백하게 피어있는 원추리가 우리에게 세상을 담백하게 살라고 한다. 삼성봉 가는 갈림길에서 우리는 산막이마을로 하산을 한다. 그 동안 소나무 일색의 숲에서 참나무류의 활엽수와 소나무가 공존하는 숲으로 바뀐다. 수직으로 두 번 꺾인 참나무가 신기했는데, ‘신령참나무’라고 이름을 붙여놓았다.

조망이 트이는 곳에 서면 달천이 괴산호로 진입하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도 있다. 호수 건너편에는 갈론마을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괴산호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이쪽의 산막이마을과 건너편의 갈론마을은 쉽게 오갈 수 있는 이웃이었을 텐데, 지금은 배편이 아니면 쉽게 갈 수 없는 먼 마을이 되었다.

바위 절벽이 아름다운 환벽정.

산막이마을에 도착하니 대부분의 집들이 새로 지어져 깨끗하다. 여섯 가구가 사는 산막이마을 주민들은 산막이옛길이 생기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민박과 식당으로 생업을 유지한다. 산막이옛길이 생겨 외부인이 찾아오기 전까지의 산막이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있고, 앞으로는 괴산호에 가로막혀 바람도 외로울 만큼 적막한 마을이다.

마을 아래는 산막이나루가 있어 괴산호를 왕래하는 유람선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호수 건너편은 15m 높이의 벼랑이 병풍처럼 펼쳐져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저 벼랑 위를 연천대라 부르는데, 2011년 산막이옛길을 조성하면서 연천대에 운치 있는 정자를 짓고 환벽정이라 했다. 괴산호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 연천대 일대는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연하구곡이 있었다. 연천대 자리는 예로부터 선비들이 풍경을 감상하고 바둑도 두며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호수에는 유람선이 수시로 오가고, 우리는 잘 닦인 호반 길을 걷는다. 길가에는 물레방아를 설치하여 옛 추억을 되살려주고, 가재가 사는 연못도 있다. 호수위로 10m 정도 돌출되게 데크를 설치하고 바닥은 두꺼운 유리를 깔아 호수 아래가 보이는 고공전망대에 서 보니 물위에 떠 있는 것 같다. 느티나무에 기대어 만들어놓은 데크에는 괴음정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호수전망대에 기대어 정담을 나누고 있는 부부의 모습이 훈훈하다. 듬직하게 서 있는 군자산·비학산·아가봉은 산자락을 휘돌면서 호수를 이루고 있는 괴산호와 만나 아름다운 산수화가 되었다. 앉은뱅이약수라 쓰인 샘터도 지난다. 앉은뱅이가 지나다가 이 물을 마시고는 걸어서 갔다는 전설이 있어 앉은뱅이약수라 부른다고 한다.

옷을 벗고 두 다리를 꼬고 있는 여자를 닮았다는 미녀엉덩이바위를 쳐다보니 재미가 있다. 산막이옛길에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나무나 바위에 의미를 부여하여 재미있는 이름들을 붙여놓았다. 스토리텔링을 잘해놓아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스핑크스바위, 여우비바위, 매바위, 호랑이굴 등도 마찬가지다.

연화담이라는 조그마한 연못엔 수련 몇 송이가 예쁘게 피어 있다. 연화담 아래에는 망세루라 불리는 전망대가 있다. 망세루는 남매바위 위에 세워진 데크형 전망대로 산과 호수가 행복하게 어울린 모습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서서 저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세상의 모든 시름도 잊어지는 것 같다. 세상을 잊어버린다는 의미로 망세루(忘世樓)라 했다. 세상을 잊어버리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여행쪽지

▶산막이옛길은 주차장-노루샘-등잔봉-한반도전망대-천장봉-산막이마을-앉은뱅이약수-노루샘-주차장으로 연결되는 풀코스가 12.4㎞로 4시간 정도 걸린다.
▶등잔봉과 천장봉을 오르지 않고 괴산호변만을 걷는, 주차장-노루샘-앉은뱅이약수-산막이마을을 왕복하는 코스는 8㎞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가는 길 : 중앙고속도로 증평IC → 괴산읍 → 칠성면소재지에서 산막이옛길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 → 괴산 산막이옛길(칠성면 외사리) 주차장
▶산막이옛길 주차장 근처에 식당이 많다. 괴산댐 바로 아래 둥지식당(043-832-1114)은 민물매운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매기·빠가사리·잡어 매운탕을 맛깔스럽게 끓여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