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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여객선 운항관리 서로 맡지 않으려고...” 海水部 마피아의 고백 (조선일보 2014.05.20 11:36)

[월간조선] “여객선 운항관리 서로 맡지 않으려고...” 海水部 마피아의 고백

⊙ 해양경찰은 對국민서비스 기관 아닌 권력기관·甲이라고 생각해
⊙ 운항 까다로운 인천-제주 항로, 인천-옌타이보다 안전기준 낮아

 


	정유섭(鄭有燮) 전 한국해운조합 이사장
정유섭(鄭有燮) 전 한국해운조합 이사장

“연안 여객선의 문제점이 총제적으로 드러난 참사입니다. 선장이나 항해사, 운항관리자, 해경 등 어느 하나라도 제 역할을 했다면 이 정도까지는 되지 않았을 겁니다.”

정유섭(鄭有燮) 전 한국해운조합 이사장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요즘 얘기하는 ‘해수부 마피아’의 전형이다. 해양공무원으로 25년, 또 해양수산부를 나온 뒤에는 유관업체인 한국해운조합 이사장을 지냈다. 한국해운조합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 검찰의 집중 조사를 받고 있는 곳이다. 조합의 업무 중 하나가 여객선 운항관리여서다.

해운조합은 2100개의 국내 선사들이 모인 이익단체인데 운항관리규정교육·여객선 입출항 보고·여객선 승선지도·구명기구 완비 여부 등을 확인한다. 세월호가 인천항을 출항했던 지난 4월 16일에도 청해진해운은 출항 전 점검 보고서를 썼다. 탑승인원수, 선원수, 화물 적재량을 모두 엉터리로 썼지만 운항관리자는 배의 출항을 허가했다. 검찰은 지난 4월 26일 한국해운조합을 압수수색했다.

지난 1962년 출범한 이래 12명의 이사장 중 10명이 해수부 고위 관료 출신이어서 ‘해수부 마피아’ 논란의 중심에 선 곳이다. 바로 이 당사자인 정유섭 전 해운조합 이사장이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그간 있었던 내용을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회개의 한 방법이라 생각해 글을 썼다”고 했다. 해양 업무로 30여 년을 보낸 전직 해수부 마피아의 눈에 비친 세월호 참사는 어떨까.


“해수부가 여객선 운항관리를 해운조합에 떠넘겨”

세월호 사고가 터진 후, 사람들은 여객선 주인들의 조합에서 여객선 출항 여부를 관리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는 것이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4월 26일, “해운조합이 가지고 있는 운항관리 기능을 떼 내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말을 들어보면 흡사 해운조합이 가지고 있는 어떤 기득권을 내려놓게 하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정유섭 전 이사장은 “한국해운조합이 정말 하기 싫은데 정부에서 강제로 떠맡긴 업무가 여객선 운항관리 업무였다. 정부에 이 업무를 떼어가라고 여러 번 요청했다”고 말했다.

“남영호 침몰 사고(1970년)가 난 후에 정부와 해운조합이 여객선 운항관리 업무를 같이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무원이 혼자 관리하는 것보다 민관(民官)이 함께 여객선 운항관리를 하자는 뜻이었습니다. 이관 폭이 정부에서 조합으로 점차 늘다가 서해페리호 사건(1993년)으로 292명이 사망한 후에 전적으로 해운조합으로 이관됐습니다. 감독기관도 지방해운항만청에서 해양경찰로 바뀌었습니다.”

―왜 이렇게 됐습니까.

“서해페리호 사고 발생 이후에 교통부장관, 해운항만청장, 해운국장, 군산항만청장 등 주요 인사가 옷을 벗었습니다. 그런 일을 겪어서인지 해운정책당국은 책임선에서 빠지고 해운조합에 여객선 안전점검 업무를 맡겼습니다.”

―공무원들이 책임 회피를 위해서 이런 결정을 했다는 겁니까.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능성은 있죠. 이렇게 해운조합이 전적으로 운항관리 업무를 맡게 됐고, 정부에서는 90명의 운항관리사, 연간 수십억원의 예산을 주는 것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기능이 이관된 후에 운항관리사들이 제대로 업무를 하지 않은 건가요.

“여객선 인명 사고는 10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합니다. 서해페리호 사건 이후에 여객선 사고가 없자 정부의 예산 지원이 슬그머니 없어졌습니다. 대신 여객선 승선 운임 중 일부를 징수해서 그 돈으로 여객선 운항관리를 하는 것으로 변질됐습니다. 제가 해운조합 이사장으로 간 지난 2007년에 운항관리자는 55명뿐이었고, 정부의 예산지원은 한 푼도 없었습니다. 운항관리자들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왜 사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까.

“부두에 한번 가보세요. 그들이 현실적으로 운항관리를 제대로 하기 어렵습니다. 운항관리사들은 항해사, 기관사 등 거의 배 타던 사람들이에요. 해상 근무가 싫어서 육상에서 일하겠다고 온 사람들입니다. 오전에 30분 만에 배가 전부 나가는데 기껏 3~4명의 관리사가 승객 인원수 세고, 짐을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배를 꼼꼼하게 살피느라 출항이 늦어지면 선주(船主)들이 ‘우리 돈 벌어야 하는데 왜 못 나가게 막느냐’고 난리가 납니다. 선주가 운항관리사에게 ‘너희, 우리 조합 돈으로 봉급 받으면서 왜 우리 돈 버는 거 까다롭게 해’라고 하면 이길 수가 없습니다. 어떤 선주는 꼼꼼한 운항관리자를 다른 지역으로 배치시켜 달라고도 했습니다.”

―이사장 시절에 그런 요청을 받은 적 있습니까.

“네. 선주들이 이사장인 저한테 전화를 해서 ‘걔 좀 혼내주라’고 했습니다.”

―왜 조합 돈으로 월급을 받습니까. 정부 예산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여객선 승선 운임 중 일부가 운항관리 예산이라면서요.

“해운법에 여객선 운임비에 붙여서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돈을 받고 호주머니에서 내놓는 주체는 해운조합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기들이 운항관리사들에게 봉급을 준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정부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운임비에서 나가는 것이니 조합 돈은 아니라는 식(式)인 겁니다. 제가 정부에 ‘선사들에 돈을 받아서 정부가 갖고 있다가, 그중 운항관리 몫을 떼서 정부에서 우리에게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면 운항관리사들이 심적으로 ‘나는 정부에서 위임받은 업무를 하는 사람이고, 내 봉급을 주는 것이 정부’라고 느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요.

“공무원들이 꼼짝도 안 했습니다. 예산상 세입과 세출이 다르니 정부회계에 납부했다가 그대로 지출할 수 없는 제도적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운항 관리 감독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설득해도 ‘아무 사고가 없는데 무슨 문제?’라고 반문했습니다.”

―세월호 말고도 숱한 배들이 이런 식으로 확인 없이 출항을 했겠군요.

“운항관리사들은 자기들이 열심히 해봐야 시끄럽기만 하다는 걸 잘 압니다. 공무원에게 이런 권한이 주어졌다면 선주들이 꼼짝을 못했겠죠. 하지만 운항관리사는 회사 선장 면허 취소나 선박 회사에 과징금을 물리는 등, 아무 권한이 없습니다. 운항관리사는 해양경찰이 관리합니다. 여객 선주한테 듣기 싫은 소리 듣지, 또 위에서는 해경한테 터지지, 중간에 끼인 거죠.”

여객선 운항관리 업무는 천덕꾸러기?

정유섭 전 이사장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그동안 여객선 사고가 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기적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색이 이사장인데 운항관리사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그래도 막아줬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해운조합은 해운회사들이 상전입니다. 이사장 상위에 존재하는 회장과 부회장이 있습니다. 이들은 선주사들이 회의를 거쳐 뽑습니다. 회장단 회의인 총회가 최상위 기관이고, 그 밑에 이사회가 있습니다. 회장단에 이사장 해임 권한이 있습니다. 모든 일은 회장단에서 승인합니다. 저뿐 아니라, 전직 이사장들이 어떤 문제를 개선하려고 할 때 회장단과 부딪쳐 봤지만,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할 때도 많습니다.”

정 전 이사장은 “해운조합의 치부인데…”라며 말을 이었다. “회장이 자신의 임기가 끝났으니 금 30냥을 기념으로 해달라고 하더군요. 말이 안 되는 일이라 거절했는데 회장단에서 그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렇게 결정되면 이사장이 따르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겁니다.”

정 전 이사장의 얘기에 따르면 이사장 연봉은 약 1억6000만원 선. 회장과 부회장은 월급은 없지만 꽤 많은 판공비를 받는다고 한다. 도대체 해운조합은 왜 그 높은 연봉을 주면서 퇴직한 정부 관료를 받으며, 또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정부부처를 나와서 유관기관으로 가는 것일까. 정 전 이사장은 “문제가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고 했다.

“공무원 옷을 벗으면서 선배가 ‘조합에 좀 나가 있으라’고 했을 때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큰 문제의식 없이 조합에 갔죠. 조합 입장에서는 자기들의 일을 해결해 주는 사람을 원합니다. 관료 출신은 무조건 와야 하고, 정부에서 보내면 그냥 받습니다.”

―공모 형식을 취하지만 내정인 거죠.

“그렇다고 봐야죠. 사실 다른 사람은 응모를 할 수가 없어요. 해운조합은 이익단체예요. 정부에 가서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을 바라겠습니까. 공사(公社) 사장이나 공단(公團) 이사장은 셉니다. 그런데 사업자 단체의 이사장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럼 해운조합에서 이사장 자리는 대관업무 로비용 정도인가요.

“그런 정도지요. 자기들이 결정하는 것을 집행하는 사람 정도.”

정 전 이사장의 얘기를 들어보자면 오늘날 문제가 생긴 여객선 운항관리 업무는 정부에서도 관심이 없고, 해운조합 내에서도 큰 의미가 없는 사각지대였던 셈이다. 그의 말이다.

“여객선 안전관리는 조합의 주력 업무가 아니었습니다. 보험 등 공제사업 부문이 제일 컸습니다. 여객선에는 선원보험, 여객보험, 선체보험, 유류보험 등 큰 규모의 보험이 들어갑니다. 여객터미널 관리, 배에 기름 넣어주는 면세유가 훨씬 중요하게 다뤄졌죠.”

―면세유요.

“육상에서는 자동차에 기름을 넣으면 60%가 세금이지만 여객선은 다릅니다. 어민들의 생활수준을 감안해 어선에는 세금이 안 들어가는 기름을 씁니다. 농민들 트랙터에 쓰는 기름도 면세유죠. 어선에 대한 면세유는 수협, 농민에 대한 면세유는 농협이 관리합니다. 여객선, 화물선에 대한 면세유는 해운조합에서 관리합니다. 외항선은 다 면세유예요. 만약 면세유를 해주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아니라 중국에서 기름을 넣습니다. 이런 관리가 여객선 운항관리보다 중요한 업무였죠.”

―해운조합 내에서도 여객선 운항관리는 순위 밖의 업무였단 얘기군요.

“여객선 운항관리를 조합에서 하는 것부터가 맞지 않았으니까요. 처음에는 불합리한 운항관리 제도를 바꾸기 위해 정부에 전적으로 운항관리 비용을 부담해 달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원래 없던 예산 하나를 새로 넣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처럼 하면 여객선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니까 여객선 안전 업무를 정부에 다시 가져가라고도 했습니다.”

―해양수산부가 이제 와서 이 업무를 독립시키겠다는 움직임인데요.

“그게 오늘 내일의 얘기가 아닙니다. 벌써 2000년대 중반부터 줄기차게 해왔던 얘기입니다. 정부에서 예산도 주지 않고, 여객선 운임비에서 분리해서 지급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업무를 도로 가져가래도 관심없고, 나중에는 여객선 안전점검 업무를 독립해 기관화해 달라고 했는데 묵살당했습니다.”

한국해운조합은 지난 2009년 여객선의 안전점검 업무를 전담하는 독립기관을 만들어 달라고 건의했다고 한다. 또 정유섭 전 이사장이 퇴임한 이후에도 해운조합 집행부는 여객선 안전 업무를 분리시키기 위해 ‘해양교통안전공단법’(2010년)을 만들어 국회에 의원입법 형식으로 제출했다. 하지만 이 공단법은 상임위원회 심의에서 폐기됐다. 정 전 이사장은 “숱한 시도를 했지만 당시 힘이 있다는 국회의원에게 부탁을 해서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으로부터 운항관리 지원금 10억원을 받아 운항관리자 몇 명을 뽑은 것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해경은 서비스 기관이 아니라 권력기관이라 생각”

여객선 침몰 사고는 발생하면 대형이다. 타이타닉호 사고(1912년·영국)로 1500명, 도나파즈호 사고(1987년·필리핀)로 4375명이 사망했다. 남영호 사고(1970년)로 326명, 창경호 전복사고(1953년)로 3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많은 이는 ‘해경의 대처’에 분노했다. 해경이 공개한 사건 당시 동영상을 보면, 기울어진 배 안에 갇힌 승객을 구조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이는 없다. 해경에 대해 본격적인 검찰 수사와 함께 지난 5월 13일에는 감사원의 감사가 시작됐다. 정 전 이사장은 “해경 출신이 아니어서 조심스럽지만 오랫동안 해양 업무를 한 이로서 얘기하겠다”며 말을 이었다.

―진도VTS와 세월호의 교신을 두고 과거 콩코르디아호(이탈리아) 사고 당시와 비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탈리아 담당자는 선장에게 호통을 치는데, 우리는 ‘선장이 알아서 하라’만 반복했습니다. 해경도 마찬가지고요.

“해양경찰은 자신들이 대국민서비스 기관이라기보다 권력기관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해양경찰이에요. 어떻게든 해경에게 약점 잡혀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해경의 일이 육상 경찰 수사처럼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없는 일을 만듭니다. 얼마 전에 해경이 남대문 시장의 수입판매점을 압수수색해서 밀수업자를 잡아들였다고 했지요. 그게 어떻게 해경의 영역입니까. 세관 사람들에게 맡겨도 되는 일까지 할 만큼 일이 적은 겁니다. 예전에 제가 인천지방청장을 할 때도 보면 해경이 수시로 들락거립니다. 그러다 보니 해양 종사자들은 해경이 귀찮은 겁니다.”

―해경의 주요 업무가 해안경비 아니었습니까.

“밖에서는 해안경비, 중국어선 단속, 밀항 단속, 해안구조, 오염방지 등이 해경의 주요 역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해경 생각은 다를걸요. ‘해양’이 위주가 아니라 ‘경찰’이라 이겁니다. 해경에서 우수 인력은 힘 있는 부서 쪽으로 몰릴 겁니다. 해상의 경찰이라는 게 폼 나니까, 예산이 그리로 가지 않을까요. 권력기관이 점점 권력기관화되고, 그것이 해경으로 하여금 해난 구조에 스스로 소홀한 기관으로 변질시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월호에 접근한 후에 창문 깨고 선내에 진입하겠다는 해경 한 명이 없더군요.

“많은 분이 해경이 사람 구해야지라고 하는데 그런 준비가 안 돼 있었다고 봅니다. 평소에 그런 훈련을 받아 왔어야 위급 상황에 대처를 할 것 아닙니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소방방재청이 이번에 투입됐으면 생존자가 좀 더 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적어도 침몰하는 세월호를 그냥 허무하게 바라보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선체 창문을 깨고 들어가려는 시도 또한 했을 겁니다. 정주영 회장이라면 어땠을까요. 크레인선이 있으니 선수(船首) 구멍 뚫린 곳에 쇠사슬을 넣어 배가 더 침몰되지 않도록 노력을 했겠죠. 목포에 있는 삼호중공업 플로팅 도크를 빌려와 세월호 밑에 끼워넣겠다고 나서지 않았을까요. 구조대원이라면 공격적으로 뭐라도 했어야 했는데, 해경은 45도 기운 세월호가 땅바닥에 가라앉기까지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대통령이 사고 해역을 찾아가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하라’고 지시했는데도 그냥 바라만 본 사람들입니다. 어떤 조직인지를 보여주는 단면이죠.”

세월호 사건으로 존폐의 위기에 빠진 해양경찰은 지난 1953년 부산에서 내무부 산하 해양경찰대로 출범했다. 지난 1991년 경찰청 소속의 해양경찰청으로 격상됐다가, 1996년 경찰청에서 독립했고, 1998년 해양수산부에서 독립된 외청으로 승격돼서 해양경찰청이 됐다.

해양경찰청 조직 개편은 사실 여러 차례 논의돼 온 일이었다. 정 전 이사장은 해경 개편에 주도적이었던 사람으로 해양수산부 기획관리실장을 지낸 백옥인(白玉寅) 광양만권발전연구원 이사장을 꼽았다. 정 전 이사장은 “백 당시 실장이 YS 시절에 해경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나섰지만 그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해경의 개편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10여 년 전에도 우리 정부가 해경을 미국의 연안경비대처럼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경찰 기능에 집착한 해경의 극단적인 반대로 실패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한 사무관의 소신발언으로 참사 면한 동남점보페리

정유섭 전 이사장은 이번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1984년을 수차례 떠올렸다고 했다. 1984년 4월 오후 9시, 부산과 제주를 오가던 동남점보페리가 폭풍우를 만나 엔진이 꺼졌다. 배 앞문과 뒷문이 열려서 바닷물이 배로 밀려들었다. 바닷물 수압으로 선실 내 짐이 다 쏟아지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었다. 폭풍우 속에서 구명정을 타려던 동아대생 12명은 벌써 파도에 휩쓸려간 뒤였다. 해운항만청에 상황반이 구성됐다. 당시 정 전 이사장은 3년차 공무원이었다.

“파도가 너무 세서 배가 요동을 치니까 구명정이 제대로 떨어지지 못하고 뒤집혀버렸습니다. 국장들이 상황실에 앉아서 인상만 쓰고 모른 척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임상철 사무관이 ‘동남점보페리는 절대 침몰하지 않으니 퇴선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주무부서였던 교통부의 손수익(孫守益) 장관이 ‘자네 자신 있나’고 물었습니다. 임상철 사무관이 해군사관학교 출신이었습니다. 임 사무관은 자신이 최고 전문가라면서 ‘동남점보페리는 현재 뱃머리와 배 뒷부분의 차량 출입구가 열려 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상태일 뿐이라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 벌써 한두 시간 동안 저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뜻이다. 폭풍우가 잦아들 때까지 견디기만 하면 예인선으로 안전하게 끌어올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손 장관이 설명을 듣더니 ‘자신 있지? 그럼 너 믿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선장에게 통신해서 절대 퇴선시키지 말라고 지시하고 상황실에서 나갔습니다.”

―이번 사고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을 장면이군요.

“그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봤습니다. 일이 잘못되면 임 사무관이 옷을 벗는 것은 물론이고 형사상 책임을 지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동남점보페리는 다음날 추가적인 인명 피해 없이 안전하게 예인됐습니다. 임 사무관의 전문성과 소신, 또 이를 받아준 상급자의 책임 있는 결정이 더 이상의 사태 악화를 막은 것이었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이때 일이 얼마나 많이 생각나던지….”

―그러고 보니 배에는 복원력이라는 것이 있다더군요.

“배의 밑부분에 평형수(balanced water)가 실립니다. 가령 30만 톤의 유조선이 여기서 사우디 갈 때 빈 채로 가면 배가 넘어갑니다. 배 밑바닥에 물을 채우는 겁니다. 배가 어느 정도 내려가서 안정이 되면 운항을 하고, 현지에서 물을 빼고 다시 기름을 싣는 겁니다. 처음에 세월호가 홀랑 뒤집어진 보도를 보고 경악했던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왜요.

“페리는 뒤집어지는 배가 아닙니다. 어선이나 유람선은 뒤집힐 수 있지만, 저 정도로 큰 배는 쑥 밑으로 내려갈 수는 있지만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밑에 평형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TV에서 뒤집힌 세월호를 보고 왜 저럴까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평형수를 뺐다는 생각은 아예 못 했습니다. 평형수는 생명입니다. 해운하는 사람이 평형수를 채우지 않고 출항한다는 것은 아예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금방 재벌된다’는 인천-제주 항로가 적자라고?

정유섭 전 이사장은 세월호 보도를 접할수록 경악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그는 “세상에 어떻게 저런 선사와 선장이 있었는지 놀라는 공무원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이틀 후, 그는 인천 항만에서 전직 선장 출신 한 명을 만났다.

“한 연안부두 업자가 그들을 불러서 쓰레기라고 표현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천에서는 ‘이 선사 저 선사에서 받아주지 않던 사람만 청해진해운으로 갔다’는 말이 파다했다고 합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선장 월급이 270만원, 3등 항해사가 170만원이랍니다. 선원교육비가 1년에 54만원인 곳의 승무원이 배에 대한 사명감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청해진해운은 업계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회사인 모양이군요.

“목포-제주 항로를 운항하는 ‘씨월드고속페리’는 선원 대우가 매우 좋다고 알고 있습니다. 청해진해운은 상상할 수 없는 특수한 경우입니다. 청해진해운이 적자라는 얘기를 듣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여객선주들 사이에서 ‘인천-제주 항로만 운항하면 금방 재벌된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이 회사는 1997년부터 인천-제주 항로를 독점한 곳입니다. 이런 곳이 적자라면 돈 되는 해운회사는 단 한 곳도 없을 겁니다. 선원 교육을 국비(國費)를 들여서라도 해야 하나 해수부가 심란할 겁니다.”

―1차 책임이 선장에 있는 것은 자명하지만, 총체적인 사회 문제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사실 선장 한 명만 잘했으면 문제점이 하나도 드러나지 않을 사고였죠. 결국 연안 여객선의 문제점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사고입니다. 세계 무역교역량의 80%가 바다를 통해 거래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여객선사들은 영세합니다. 여객선 운임이 싸기 때문이죠. 비싸게 받을 수가 없습니다. 여름 피서철이 지나면 겨울에는 배 타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버스는 한 명이 움직이지만, 배에는 적어도 5~6명의 선원이 있어야 합니다.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지만 유지는 해야 합니다. 정부에서는 사람이 얼마 살지 않는 섬을 오가는 선박 등에 한해서 ‘낙도 항로’를 위한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정부의 입장에서 최소한의 교통수단은 유지시켜 줘야 하니까요. 무조건 최저 금액을 쓴 업체가 정부 보조금에서 일정 수익을 남기며 선박을 운행합니다. 비싼 설비를 쓸 수 있을까요? 비싼 선원을 쓸 수 있나요? 그러니 젊은 사람은 오지 않고, 결국 퇴직한 사람들이 예전에 배를 탔으니까 할 수 없이 타는 구조예요.”

―노후한 선박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얘기되고 있죠.

“그건 전혀 아닙니다. 2009년에 해운법 시행령을 개정해서 여객선 선령(船齡)을 25년에서 30년으로 연장한 것이 문제가 아니냐는 얘기는 사실과 다릅니다. 이건 우리도 선진화된 제도로 가자는 취지였습니다. 일본, 영국, 유럽의 어느 나라도 선령을 제한하는 곳은 없습니다. 아시아 여객선 시장은 일본에서 15년 정도 쓴 후 한국에 팔고, 한국선사가 10여 년 쓰고, 다시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 파는 구조예요. 세월호는 오히려 젊은 선박입니다. 이번 사고를 불러온 이유는 선박 개조예요. 선박검사를 철저히 해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요즘 관피아 척결이 화두입니다. 자칭 해수부 마피아로서 어떤 생각이 듭니까.

“일장일단이 있을 겁니다. 이익단체에서는 퇴직 공무원을 써야 그나마 정부에 말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쓰면 자기네들 일이 안 되는 겁니다. 퇴직한 판검사들을 로펌에서 데려가는 것과 같은 얘기입니다. 관련 없는 사람이 가면 깨끗할 겁니다. 하나 유관단체 일은 과거보다는 조금 안 풀리겠죠. 저도 공무원 옷을 벗어 보니까 관료일 때 모르던 것들이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다못해 구청에 가면 아는 사람이 전화 한 통을 해준 경우와 그냥 찾아간 경우 대우가 다릅니다. 전관예우가 장기적으로는 없어져야겠지요.”

3시간이 넘게 목소리를 높이던 그에게 해운업계 30년 종사자로서 어떤 대책을 내놓고 싶은지 물었다.

“우리나라 여객선은 173척뿐입니다. 여객선은 인명을 수송하니까 한 군데가 아닌 두 군데 기관에서 합동선박 검사를 받게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인천에서 제주 가는 카페리는 인천에서 중국 옌타이나 웨이하이 가는 항로보다 어려운 항로예요. 단순히 국내 항로라고 규정해서 안전 기준이 낮습니다. 국내 카페리도 국제 카페리 수준으로 안전 기준을 올리면 어떨까요. 연안 여객선은 배 한 척밖에 없는 영세사업자가 대부분이라서 안전에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객선사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하면 어떨까요. 너무 늦어버렸지만…. 아무리 힘없는 해운조합 이사장이었지만 뭐라도 더 했어야 했는데 미안합니다. 사고를 예방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해수부 마피아 출신 인사의 미안하다는 고백은 어쩌면 오늘날 우리 기성세대 모두가 되뇌어야 할 사과일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