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 육/취업전쟁

"연봉 수억원 귀농(歸農)이 아니라 이젠 귀어(歸漁)다 (조선일보 2014.04.22 14:09)

"연봉 수억원 귀농(歸農)이 아니라 이젠 귀어(歸漁)다

 


	이진우씨가 배에 탑재된 소형크레인으로 전복 양식장에 다시마를 넣고 있다. 박혁진 기자가 양식장에 넣은 다시마를 막대기로 풀어주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이진우씨가 배에 탑재된 소형크레인으로 전복 양식장에 다시마를 넣고 있다. 박혁진 기자가 양식장에 넣은 다시마를 막대기로 풀어주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이진우(49)씨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아침을 먹고 간단한 작업도구 및 간식거리를 챙겨 6시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이씨는 전남 완도군 노화읍 동고리 인근 바다에서 전복 양식을 하고 있다. 기자가 이씨와 함께 전복 양식장으로 배를 타고 나갔던 4월 15일은 전복에게 먹이를 주는 날이었다. 전복은 미역과 다시마를 먹고 자라는데 10~15일 간격으로 먹이를 준다. 한창 살이 오르는 5월에는 전복의 식욕이 왕성해 1주일에 한 번씩 먹이를 주어야 한다.

이씨가 바다에 나가 처음 하는 작업은 전복에게 먹일 다시마 채취. 세 시간 동안 바다에서 끌어올린 다시마가 수톤에 달했다. 16~20㎡(5~6평) 넓이의 배 갑판에 다시마가 산처럼 쌓였다. 배는 이씨의 다시마 양식장에서 5분을 이동해 전복 가두리 양식장에 도착했다.

전복 양식장은 가로 세로 1.5m로 된 가두리 한 칸을 약 80개 정도 이어 붙여서 만들었다. 가두리 하나당 1500마리 정도의 전복이 있다. 이씨는 배에 탑재된 소형 크레인을 이용해 한 칸당 50㎏ 정도의 다시마를 가두리에 넣었다. 가두리에 넣은 다시마를 엉키지 않게 막대로 풀어줘야 가두리 속으로 가라앉는다. 먹이를 주는 일은 낮 12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보통은 오후 2시쯤 끝나는데 기자가 도구를 들고 다시마를 풀어주는 일을 도와줘서 2시간 앞당겨 끝낼 수 있었다고 이씨는 말했다.

기자는 취재를 하러 이씨를 따라나섰지만, 이씨가 일하는데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같이 일을 했다. 이씨는 “일꾼을 구하면 작업속도가 훨씬 줄어든다. (일꾼을 구하려면) 보름 전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봉 수억원 귀농(歸農)이 아니라 이젠 귀어(歸漁)다"

이씨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 완도에서 살다가 서울에 갔다. 서울에서는 식당을 비롯해 몇 가지 자영업을 했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는 더 어려워졌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결정타가 됐다. 이씨가 고향으로 내려오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2008년이다. 그가 귀향한 것은 서울로 올라온 이후에도 연락을 하고 지내던 고향 친구들 때문이었다.

그는 친구들로부터 전복 벌이가 쏠쏠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고민했다. 고향으로 내려간다 하더라도 거의 40년 만에 내려가는 데다가, 양식업은 해본 적이 없었다. 당시 그의 전 재산은 전세금을 포함해 1억5000만원에 불과했다.

그가 번민 끝에 귀어(歸漁)를 결심하고 내려온 것은 2009년. 살집을 마련하고 양식 시설을 만들었다. 한 개에 300원 하는 새끼 전복인 치패(稚貝)를 사서 양식장에 넣었다. 새끼 전복은 통상 육상의 물탱크에서 1년 정도 키운 후 이를 바다양식장에서 키운다. 바다에서 양식을 시작한 지 30개월 정도 지나야 상품으로 출하가 가능하다.

이씨가 당시 만들었던 양식장 규모는 지금의 절반도 안 되었고, 작업에 필요한 배도 없었다. 동네에서 전복 양식을 하는 사람들을 돕고, 작업이 끝나면 그들의 배를 빌려 일을 했다.

2011년에 전복을 처음 출하했다. 번 돈은 대부분 양식장을 키우는 데 재투자해 지금의 규모가 됐다. 현재 그가 키우는 전복은 30만마리 정도. 작년에는 배도 건조했다. 전복 양식에 필요한 배는 통상 1억~1억4000만원가량 한다. 귀어한 지 4년 만에 자기 배를 갖게 되었다.

올해까지는 번 돈의 대부분을 양식장 덩치를 키우는 데 쏟아부었지만 올해 말이면 그동안 투자했던 돈을 회수하게 된다. 내년부터 버는 돈은 그야말로 순수익이다. 이씨는 “내년부터는 매해 3억원에서 5억원 정도를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6년 만에 최소 연 3억원을 버는 어엿한 사장님이 됐다.

그는 작업 후 전복 몇 마리를 건져올렸다. 손바닥 크기의 전복이 살아서 꿈틀거렸다. 전복을 다듬어 기자에게 먹으라고 권했다. 소주도 한 잔 따라줬다. 한 손에는 소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전복을 잡아 베어 먹는 그의 표정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이 생활이 만족스럽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웃음으로 답했다.

이씨가 전복 양식을 하는 완도군 노화도는 해남 땅끝에서 30분 정도 배를 타고 가야 한다. 노화도와 인근의 보길도는 완도군에서도 전복 생산량이 가장 많다. 2600가구 중에 절반은 전복양식업에 종사한다. 두 섬에는 이씨와 같은 귀어 인구가 지난 수년간 급증했다. 전복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도시 생활을 하다 이곳으로 내려온 귀어 가구도 늘었다. 이씨와 같은 40대뿐만 아니라 30대 인구도 유입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폐교 위기에 몰렸던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늘고 있다. 유치원도 생겼고, 스쿨버스도 다닌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젊은이들이 어촌생활에 손사래를 치며 떠나갔던 것이 불과 10여년 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이씨는 “도시에서 1억5000만원으로 사업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잘된다는 보장이 없는데 이곳에서는 수고한 만큼 결실이 맺어진다는 확신이 있다”며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 요인들이 있지만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이진우씨가 전복 가두리를 살짝 들어올리니 양식 중인 전복들이 보인다.
이진우씨가 전복 가두리를 살짝 들어올리니 양식 중인 전복들이 보인다.
이씨와 같은 귀어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노화도 곳곳에서 느껴졌다. 기자가 노화도에 처음 들어갔던 4월 14일 오후, 노화도 한 마을회관 앞에 4시30분쯤되자 노란색 어린이집 셔틀버스가 와서 5~6명의 어린이를 내려놓고 갔다. 외딴 섬마을에 어린이집 셔틀버스가 다니는 것도 생소한 풍경이었다. 5분 정도 지나자 하얀색 중대형 승용차 K7이 놀이터 앞에 서더니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차에서 내렸다.

이곳에서 놀고 있는 한 아이의 엄마였는데 이내 애를 태워 사라졌다. 차를 타고 섬 곳곳을 다니는데 외딴 도서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고급승용차의 모습도 눈에 많이 띄었다. BMW, 에쿠스, 제네시스, 모하비, K7 등. 영락없는 도시 부촌(富村)의 모습이었다. 노화도 주민들은 지나치게 부촌으로 비쳐지는 것 때문에 취재에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보길도에서 전복 양식을 하는 30대 초반의 이모씨도 2010년 귀어했다. 그는 서울에서 IT회사를 다니며 연봉 2300만원을 받다가 4년 전 이곳으로 귀어했다. 현재 그의 수입을 연봉으로 환산하면 2억원가량. 서울에서 직장을 다닐 때보다 연봉이 10배 가까이 상승한 셈이다.

노화도와 보길도 주민들이 전복 양식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면 인근 황간도는 전복보다는 김과 파래 양식 가구가 많다. 전복 양식이 출하까지 30개월이 넘게 걸리는 데다가 투자 비용도 적지 않은 단점이 있다면, 김이나 파래는 초기 투자 비용도 적고 출하기간이 훨씬 짧다는 장점이 있다.

황간도에 사는 김모씨는 “김의 경우 여름에 시작하면 11월 중순이면 수확이 가능하다”며 “짧은 기간에 소득을 올릴 수 있고, 수출에 필요한 수요량도 늘고 있어 요즘은 전복보다는 김 양식을 하는 가구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귀어 인구가 늘고 있는 것은 통계 자료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3월 16일 전라남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남 어촌으로 온 도시 가구는 총 257가구였다. 귀어 가구는 순전히 도시에서 어촌으로 옮긴 경우만 가지고 집계했으며, 농촌에서 어촌으로 이주한 가구는 제외한 숫자다. 전체적으로 보면 4년 전인 2009년 47가구에 비해 5.4배나 늘어났다.

귀어 가구는 2010년에는 87가구, 2011년 177가구, 2012년 209가구로 꾸준히 늘어왔다. 시군별로는 완도군이 64가구로 가장 많았고 장흥군 57가구, 해남군 45가구, 여수시 25가구 순이었다. 업종별로는 해조류양식 105가구, 패류양식 84가구, 어선어업 33가구 등으로 양식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지난해 50대 이상 귀어 가구는 2012년 95가구에 비해 31%(125가구) 증가했다. 20~30대도 전체의 26%를 차지했다. 귀어 전 직업을 살펴보면 자영업이 67가구, 사무직 61가구, 건설업 29가구, 생산직 24가구 등. 귀어 전 거주지는 경기 88가구, 광주 53가구, 서울 41가구, 인천 18가구 등이었다.

	다른 양식장에서 사람들이 모여 전복을 매매하는 모습.
다른 양식장에서 사람들이 모여 전복을 매매하는 모습.
전라남도에 귀어 가구가 늘고 있는 것은 이 지역에서 양식하는 수산물이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품종이 많은 데다가, 전남도 차원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남도는 2012년 말 ‘전남 귀어인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 귀어 정보 제공과 어업경영 교육, 창업자금 지원을 하고 있다.

특히 20~30대를 겨냥한 수산업 취업과 창업 지원 프로그램도 적지 않다. 또한 귀어학교 등을 열어 전문 양식기술을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순만 전남도 해양항만과장은 “귀어 가구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수산업 창업 및 주택 구입·수리 등 융자지원을 확대하고 귀어 지원센터 운영으로 외지인의 애로사항 등을 반영할 수 있는 정책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귀어 가구가 전라남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지만 다른 지자체에서도 귀어 가구가 늘고 있다. 대표적인 지역이 대게로 유명한 경북 영덕이다. 경상북도 어업기술센터 영덕지소에 따르면 도의 창업지원을 받아서 귀어한 가구가 작년에 4가구였는데 올해는 벌써 15가구다. 도의 지원 없이 내려온 가구는 수십 가구에 달한다는 것이 영덕지소 이우회 계장의 설명이다. 이 지역 귀어 가구의 소득도 대부분 억대다. 이우희 계장은 “정확한 금액까지는 알 수 없지만 억대는 충분히 번다”며 “소득이 많아지면서 귀어하는 가구가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영덕 지역 귀어 가구의 특징은 지역 연고가 없는 가구가 절반이라는 점. 대게를 잡는 배를 사는 것이 곧 조업 허가권을 얻는 것을 의미하는데, 배는 개인택시처럼 사고 판다. 외지인도 배만 사면 된다.

경북도는 귀어 열풍에 힘입어 귀어 가구를 늘리기 위한 프로그램 등을 많이 개발하고 있다. 경북도는 어촌지역에 전입신고한 지 1년 이상 되는 사람으로서, 해양수산부 교육기관에서 귀어 교육을 1주 이상 받으면 이들에게 어업 창업과 주택 구입을 도와준다. 경북도는 양식이나 어업 지원자금을 연 3%의 이자로 2억원까지 빌려주며, 주택구입자금도 4000만원을 대출해준다.

귀농에 비해 귀어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단기간에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과 상대적으로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점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귀농은 작목 선정에서 파종, 그리고 수확까지 평균 3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반면 김과 같은 해조류는 5개월이면 수확이 가능하다. 특히 김의 경우 태풍과 같은 변수만 없으면 귀어 첫해부터 억대 수입이 보장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귀어 가구가 늘고 있는 반면, 귀농 가구는 감소세로 전환됐다. 지난 3월 20일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귀농 가구는 2010년 5405가구에서 2012년 1만1220가구로 증가하다가 지난해 1만923가구로 약간 감소했다. 통계청은 이에 대해 초기 준비 부족이나 주택 및 농지 확보 어려움으로 정착에 실패한 귀농인들의 ‘역(逆)귀농’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노화도에서 BMW나 에쿠스 같은 고급승용차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노화도에서 BMW나 에쿠스 같은 고급승용차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귀어 후 정착까지 어려움이 크다. 해조류나 어패류 양식은 연고가 없으면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 어업권으로 불리는 일종의 바다 사용권 때문이다. 어업을 하기 위해서는 단위수협이나 어촌계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허가권의 경우 기존 어민들의 권리가 우선적으로 보장되기 때문에 신규 진입이 쉽지 않다.

전복을 양식할 수 있는 인근 바다가 포화상태라고 보고 있어 신규 진입이 까다롭다. 노화도의 경우 양식권을 5년에 한 번씩 계약하는데 신규 진입의 경우 계약이 만료되는 가구의 어업권을 이어받아야 한다. 반면 앞서 언급했던 대게처럼 조업을 하는 경우는 배를 살 수만 있으면 바로 조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진입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양식장이 바다에 있기 때문에 태풍으로 인한 피해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점도 귀어의 어려움 중 하나다. 실제로 2012년 8월 태풍 볼라벤이 이 지역을 덮치면서 보길도 전복 양식 농가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일부 농가는 태풍으로 인해 전복 90만마리를 모두 잃기도 했다. 주민들은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대부분 보험에 가입했는데 월 평균 50만원 정도를 보험료로 낸다고 한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 교육문제도 발생한다. 이진우씨의 경우 현재 아이가 고 3인데 서울에서 공부 중이다. 이씨의 부인이 서울과 완도를 오가며 자녀를 뒷바라지하고 있다. 자녀교육은 30대나 40대 초반 귀어 가구도 조만간 맞닥뜨릴 문제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귀어 가구가 느는 것은 무엇보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과 일한 만큼 벌 수 있다는 성취감 때문이다. 노화도에서 만난 한 30대 귀어민은 귀어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도시에 가면 사는 데 어려움이 없나요? 사람 사는 게 다 어렵지. 그래도 바다는 일한 만큼 되돌려주는 정직한 직장입니다. 도시의 직장이 어디 그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