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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물열전

여상 출신 첫 삼성 상무… 그녀의 비결은? (동아일보 2014-01-15 09:13:16)

여상 출신 첫 삼성 상무… 그녀의 비결은?

[여성 1호를 만나다]<1>여상 출신 삼성전자 첫 임원 양향자 상무
“아부지, 내가 알아서 할게” 그 무거운 약속을 평생 지켰다

 

양향자 삼성전자 상무가 14일 대전 충남대에서 열린 ‘열정樂서’ 토크콘서트에서 ‘삼성 드림클래스’ 겨울캠프에 참가한 중학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대한민국에서 새해 벽두부터 여성 은행장, 여성 검사장 등 여성 진출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었던 유리천장 깨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습니다.

본보는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총 6부 34회에 걸친 장기 시리즈 ‘신 여성시대’ 기획을 통해 대한민국 일하는 여성들의 현주소를 다양한 각도에서 짚어보았습니다. 새해에도 바통을 이어받아 ‘여성 1호를 만나다’라는 간판으로 여풍(女風)의 현주소를 소개하려 합니다. 그동안 인사 소식으로만 짧게 접했던 사람들을 포함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분야의 ‘여성 1호’들을 발굴해 심층 인터뷰한 뒤 매주 오피니언면 기획란을 통해 소개할 예정입니다. 이들이 살아온 이야기는 단순히 개인의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이 시대를 열심히 살고 있는 생활인들의 이야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온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 1호를 만나다’ 첫 회 주인공은 삼성전자에서 여상 출신으로 최초로 상무가 된 양향자 씨(사진)입니다. 》

지난해 12월 발표된 삼성그룹 임원 승진 인사에서 유독 빛나는 이름이 있었다. 양향자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상무. 전남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출신으로 광주여상을 졸업해 삼성그룹 설립 이래 최초로 여상 출신 임원이 된 인물이다.

세간의 관심에도 나서기를 꺼렸던 양 상무가 14일 오후 대전 충남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양 상무는 이날 ‘삼성 드림클래스’ 겨울캠프에 참가한 중학생들의 멘토가 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오르기 전 대기실에서 만난 양 상무는 “강연 요청을 받고 이틀 밤을 지새우며 인생을 되돌아봤다”고 했다. 남들에겐 평범한 강연일지 몰라도 자신에겐 누구보다 절실했고, 그래서 치열하게 살았던 날들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이날 초대된 중학생들은 모두 지방 중소도시나 산골, 섬 등에 사는 저소득층 아이들. 그는 30년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더 고민했다고 했다.

“제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제 고향은 전남 화순군 쌍봉리예요. 혹시 아세요?” 양 상무는 그렇게 산골소녀 시절의 향자로 돌아가 자신의 지나온 이야기를 꺼냈다.
전남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는 봉우리가 두 개인 산자락에 양씨와 정씨 200여 명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다.

“누나, 아부지가 얼른 안방으로 건너오란다.” 남동생이 불렀다. 폐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는 평생을 안방 이부자리에 누워만 계셨다.

“향자야, 이제 나는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어제보다 더 기력이 없었다. 퀭한 눈 때문에 별명이 ‘소 눈’이었던 아버지는 큰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동생들 잘 부탁한다.”

농사짓는 할아버지, 할머니, 광주 시내에서 장사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두 명의 오빠와 두 명의 남동생을 챙기는 건 어릴 적부터 나의 몫이었다. “아부지. 제가 알아서 할게.” 1982년 겨울 어느 날, 아버지와 했던 나의 첫 번째 약속이었다. 열다섯 살 때 일이다.

아버지를 떠올린 양 상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따 무대 위에서 이러면 안 되는데…. 기자님도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말 해본 적 있죠? 보통 사춘기 때는 선생님 잔소리 피하려고, 부모님한테 짜증이 날 때 하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저한테는 이 말이 내 인생, 그리고 우리 가족을 책임지겠다는 무거운 약속이었어요.”

한때 대학교수가 돼 강단에 오르는 꿈을 꿨던 소녀 향자는 곧장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말없이 일주일 전 꼬박꼬박 눌러쓴 인문계고 입학 원서를 반으로 접어 서랍 깊숙한 곳에 넣었다. 다음 날 광주여상 입학원서를 새로 썼다.

특별할 것 없었던 여상 시절이 지나갔고 1985년 겨울 또 한 번의 갈림길에 섰다. 대학을 갈 것인가, 취업을 할 것인가. 사실 대학에 정말 가고 싶었다. 가서 제대로 영어도 공부하고 싶었고 그토록 되고 싶었던 교수라는 사람들도 직접 보고 싶었다. 현실은 취업뿐이었다.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겠다던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경기 기흥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 메모리설계팀에 입사했다. 대졸 연구원들의 업무를 돕는 보조, 이른바 ‘시다바리’였다. 매일 오전 7시 출근해 복사 일부터 연구원이 던져주는 반도체 회로를 도면에 그려내는 단순 업무를 반복했다. 손은 주어진 대로 움직였지만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욕망했다. ‘회로를 왜 저렇게 그리는지 알아야겠다. 더 배워야겠다, 더 공부해야겠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이 반도체 업계 1위였다. 회사에는 일본 선진업체들이 일본어로 출판한 기술서적이 많았다. 기술을 알려면 일본어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8세 말단 직원은 겁도 없이 사내(社內) 일본어 학습반에 들어갔다. “고졸인 네가 공부를 할 수 있겠느냐”는 강사의 비아냥거림과 대졸 연구원들의 텃세를 견뎌가며 매일 3시간씩 공부했다. 주말에도 기숙사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공부했다. 그리고 3개월 만에 가장 먼저 일본어 자격증을 땄다.

‘일본어를 기가 막히게 하는 여사원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연구원들이 번역이 필요한 일본 서적을 들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기술 자료를 밤새워 번역하다 보니 반도체 설계 업무에 대한 이해는 덤으로 따라왔다. 어느덧 반도체 설계 업무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 됐다.

1990년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임신했다.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의 첫 임신부였다. 전례가 없던 일이라 ‘회사 관두지 않느냐’는 말도 수시로 들려왔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 그리고 나 스스로와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내가 알아서 잘하자.’

아이를 낳고 나니 바람은 더 커졌다. 부산 시댁에 맡겨놓고 한 달에 한 번밖에 보지 못하는 딸아이에게 훗날 부끄럽지 않을 엄마가 돼야 했다.

1993년 인사팀에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사내 기술대학 반도체공학과 입학원서였다. 여상을 졸업할 때 그토록 써보고 싶었던 대학 원서였다. “여사원은 사규상 뽑을 수 없다”는 인사팀 과장에게 ‘시험이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이었기에 매일 오후 4시 퇴근 직후부터 오후 9시까지 수업을 들으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다. 3년 뒤엔 함께 입학한 남자 직원들을 제치고 수석으로 졸업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입사 22년 만인 2007년 메모리사업부 D램 설계팀 수석 자리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성균관대에서 전기전자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도 땄다. 대학도 못 갈 줄 알았던 내가 석사라니….
양 상무는 조직의 일부를 책임지는 수석 자리에 오른 후 여성 리더로서의 장점을 본격적으로 발휘할 수 있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후배들 사이 그의 별명은 ‘이모’. 든든한 이모처럼 후배들의 뒤를 지켜준다는 의미에서다. ‘열혈 부장’ 시절 그의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중국 우한(武漢)에서 결혼하는 중국인 직원의 결혼식에 가기 위해 휴가를 내고 비행기에 오른 것.

“중국 사람이니 당연히 외동아들일 거 아녜요. 이왕 간 김에 돌아가신 직원 아버님을 대신해서 축사도 직접 읽었어요. 축사 준비하면서 덤으로 중국어 자격증도 땄으니 일석이조죠.”

그리고 부장 6년차이던 지난해 12월 5일, 아버지 30주기 제삿날이었던 그날 아침 그는 당시 상사였던 전동수 삼성전자 사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양 상무, 축하해.”

30년 전 아버지가 하늘의 별이 됐던 그날, 그는 삼성의 별이 됐다. 그는 삼성그룹 역사상 최초의 여상 출신 임원이다.

별을 달던 순간 아버지 얼굴부터 떠올랐다고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약속을 지키려고 열심히 살았으니까, 그 세월을 보상받은 거겠죠?” 아버지가 당부했던 대로 양 상무는 두 동생도 자랑스럽게 잘 키워냈다. 막냇동생은 누나를 따라 입사해 삼성맨이 됐다.

가족은 양 상무가 ‘지키기 위해’ 애써 온 존재이자, 입사 후 28년간 그의 삶에서 필요한 순간 가장 먼저 손길을 내어 준 은인들이다. “승진하고 나서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드렸어요. 이미 양씨 문중에서 고향에 플래카드를 걸었더라고요. 열혈 시부모님 생각도 났어요. 아이 둘 대신 키워 주시느라 부산에서 결국 제 회사 옆인 수원으로 짐 싸들고 올라와 주셨거든요.”
떨리는 목소리로 무대에 올랐던 양 상무는 이날 강연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었다. “제가 여러분의 30년 후 미래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제가 미리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고 생각하세요. 여러분의 30년 후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저는 여러분 모두 훌륭하게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2000명의 학생이 보내는 박수 소리가 강당을 가득 메우자 양 상무 눈에서는 끝내 참았던 눈물이 또 한 번 터져 버렸다.


▼ 양향자 상무가 걸어온 길

―1967년 출생

―1983년 인문계 진학 포기 후 광주여상 입학

―1985년 대학 진학 포기 후 삼성반도체통신 입사

―1990년 결혼 후 일과 가정일 병행

―1991년 출산 전날까지 근무하고 첫딸 출산

―1993년 메모리사업부 S램 설계팀 과장 승진

―1995년 삼성전자기술대 반도체공학 학사 취득

―2005년 한국디지털대 인문학 학사 취득

―2007년 메모리사업부 D램 설계팀 부장 승진

―2008년 성균관대 전기전자컴퓨터공학 석사 취득

―2013년 입사 28년 만에 상무 승진


 

삼성그룹 475명 임원 승진 인사… 눈에 띄는 3가지 키워드

 (동아일보  2013-12-06 03:00:00/ 2014-01-15 09:00:52)

 

남녀 안따지고 국적 안가리고 성과주의 발탁
여성 공채 1기 등 역대최다 15명 임원 승진
외국인도 사상최다 12명이 본사 임원으로
실적 뛰어난 85명 연차 상관없이 특별 중용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여성인재 중용론’이 20년 만에 꽃을 피웠다. 삼성그룹은 역대 최대 규모의 여성 임원을 승진시키는 내용의 임원 인사를 5일 발표했다. 1993년 첫 대졸 여성공채 입사자를 포함해 여성 인재 15명이 승진했다.

해외 현지법인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의 승진도 역대 최대 규모였다. 왕통 삼성전자 북경연구소장(51)이 외국인으로선 사상 두 번째로 본사 부사장에 오르는 등 12명의 승진자가 나왔다.

전체 승진 인원은 475명으로 지난해보다 다소 줄었지만 평균 근무연한보다 빨리 승진하는 발탁 승진은 85명으로 역대 최대였다.

올해 최대 실적을 올린 삼성전자에서 특히 승진이 많았다. 삼성전자의 상무 승진자는 총 161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해 사장단 인사에 이어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 꽃피운 여성인재들

올해 여성 임원 승진자는 15명으로 2011년 9명, 지난해 12명에 이어 사상 최대 기록을 이어갔다. 이들 가운데 9명이 발탁 승진했다. 삼성그룹은 “성별을 불문하고 성과와 능력에 따른 전략적 승진 인사를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1년 앞서 발탁 승진된 연경희 삼성전자 상무(42)는 삼성전자 최초 여성 주재원 출신의 마케팅 전문가다. 1994년 삼성그룹 여성공채로 입사해 2004년 ‘삼성전자 여성 1호 해외주재원’이라는 타이틀에 이어 올해 1월에는 최초의 여성 해외지점장으로 뉴질랜드에 부임했다. 부임 직후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2012년 2억6000만 달러이던 매출을 올해 3억2000만 달러로 끌어올렸다.

여성 대졸공채 1기로 1993년 입사한 송명주 삼성전자 상무(43)도 2004년 첫 해외 여성 주재원 중 한 명으로 현재 싱가포르에서 동남아시아 가전판매 총괄을 맡고 있다. 송 상무는 올해 초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년 전 삼성의 여성 공채 소식에 모교인 이화여대 교정 전체가 떠들썩했다”며 “여자 화장실조차 부족했던 20년 전과 달리 이제는 사업장마다 훌륭한 어린이집과 여성 직원을 위한 시설이 들어서 기쁠 따름”이라고 말했다.

양향자 삼성전자 상무(46)는 1986년 광주여상을 졸업하고 18세에 삼성반도체 메모리설계실에 입사해 현재까지 28년간 메모리 설계 업무를 맡고 있다. 1995년 삼성전자기술대학을 졸업한 데 이어 2008년에는 성균관대에서 전기전자컴퓨터공학 석사학위까지 취득했다. 중국인 부서원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까지 날아가 축하 연설을 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삼성카드도 이인재 전무(50)와 박주혜 상무(44) 등 두 명이 승진했고 삼성에버랜드에서도 이은미 상무(47)가 패션디자인 전문가로 역량을 인정받아 승진했다.


○ 현지인 출신 두 번째 부사장 탄생

올해는 해외법인 우수 인력의 본사 임원 승진도 역대 최대 규모다. 2011년 8명, 지난해 10명에 이어 올해는 12명이 승진했다. 본사 임원으로 승진하게 되면 현지 법인에 국한되지 않고 본사 및 글로벌 법인들을 오가며 다양한 업무를 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삼성그룹은 “현지인 직원들에게 국적, 인종에 관계없이 핵심 인재를 중용하겠다는 ‘인재 제일’ 원칙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삼성전자 북경연구소장 겸 휴대전화 영업담당을 맡고 있는 왕통 전무는 2013년 미국의 팀 백스터 부사장에 이어 두 번째 본사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왕 부사장은 중국 신식사업부(정보통신 담당 부처) 출신의 통신 시스템 개발 전문가로 중국 시장에 수출할 휴대전화 22개 모델의 개발을 주도한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이 밖에 스페인 네덜란드 미국 스웨덴 멕시코 등 대륙별, 법인별로 현지 시장 개척에 공헌해 온 외국인 직원들도 본사 임원으로 승진했다.


○ ‘젊은’ 조직 추구

올해는 2006년 이후 최대 규모인 85명을 발탁 승진시켰다는 점도 눈에 띈다. 부사장 발탁 10명, 전무 26명, 상무 49명으로 2011년(54명)과 지난해(74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144명이 전무나 부사장 등 고위 임원으로 승진해 예비 최고경영자(CEO) 층이 두꺼워졌다. 신임 임원 승진은 예년 규모인 331명으로 팀장급 실무 책임 임원을 보강하는 한편으로 젊고 역동적인 조직을 구현하는 선봉장 역할을 담당하도록 했다.

삼성전자 내부에선 ‘갤럭시 기어’ 등 시장을 선도하는 혁신적 제품과 마케팅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며 전 대륙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한 무선사업부에 승진 기회가 많이 돌아갔다.

무선사업부에서 시스템 소프트웨어(SW) 개발그룹장을 맡고 있는 박현호 전무(51)는 계명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88년 삼성전자 컴퓨터사업부 개발팀에 입사해 2010년 22년 만에 연구임원 자리에 오른 융합형 인재다. 삼성전자는 “박 전무가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도 컴퓨터공학을 부전공했다”며 “삼성그룹이 최근 양성 중인 인문계 출신 SW 전문가의 대선배 격”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중국영업 담당 이진중 부사장(53) △하드웨어 개발 김학상 전무(47) △구주영업 서기용 전무(53) △SW 개발 신민철 전무(47) 등이 발탁 승진했다.

▼ 삼성그룹 임원 승진자 명단 ▼


△삼성전자 ▽부사장 김용식 노희찬 박광기 박병대 박종환 박학규 배영창 안재근 안중현 이건혁 이준영 이진중 정민형 조인수 최영준 한갑수 한명섭 ▽전무 강봉용 강창진 김도형 김부경 김언수 김원경 김유영 김현준 명성완 박문호 박정준 박찬훈 배주천 서기용 석경협 손재철 신민철 신재경 안정태 양걸 오수열(글로벌제조) 이봉주 이상국 전용성 정경진 정광영 정재헌 조광우 채창훈 최진원 추종석 한재수 ▽상무 가르시아 김광진 김기건 김기훈 김대원(무선) 김덕민 김병도 김상백 김상용 김세호 김수진 김승민 김연성 김이섭 김재묵 김재준 김정우(구주) 김종균 김철기 김태경(경영지원) 김형준(VD) 김희선 노상석 데니맥글린 라스얀손 메노 문국열 박광준 박동찬 박순철 박영석 박정현 박천호(경영지원) 박태수 박효상 백종수 베난시오 서경욱 서기호 서형석 석종욱 손성원 송명주 신송승 신용인 안상호 안재우 양예목 양정원 여명구 연경희 오종훈 원종현 유택형 윤종상 윤준오 윤창훈 이경우 이규호 이동우(경영지원) 이동준(한국총괄) 이상훈(글로벌B2B) 이성현 이영순 이영호 이원준 이재성(LSI) 이재용 이철구 이청용 이충순 이환구 임성욱 임종규 장다니엘 장호영 전진욱 전필규 정규범 정규진 정훈 조강용 조기재 조성혁 조시정 조언호 조종욱 조홍상 쥬이시앙 진문구 짐엘리엇 채민영 천경율 최돈일 최익수 피재걸 필립뉴튼 하영욱 하헌환 한성우 함정수 허운행 홍범석 홍성희 황하섭 <연구임원> ▽부사장 김상학 박길재 박동수 박성호 왕 통 이효건 진교영 최정혁 한종희 ▽전무 경계현 김학상 문제명 박윤상 박재선 박현호 이덕형 이병준 이상훈 천강욱 최시영 최치영 ▽상무 강대철 강상기 강상범 고홍석 그렉듀디 김성훈 김용성 김우섭 김한규 노원일 도문현 문창록 박기철 박기태 박성준 박정훈(DMC연구소) 박효순 서영주 선호경 성정식 안수진 안원익 안정착 안해원 양향자 오현석 유웅환 이상봉 이시영 이영민 이은철 이종열 이주영 이진욱 임채환 장경훈 장세영 전찬욱 정성욱 조규일 조상연 조장호 지영배 최경세 최기환 최병기 최상진 최승현 최용원 최용훈 최윤희 키스호킨스 허성회 홍경헌 홍기돈 황기현 <전문임원> ▽부사장 엄대현 이수형 ▽전무 장호식 ▽상무 고상범 김상우 김유리 김진수 송현주 천문식 최승걸

△삼성디스플레이 ▽부사장 남효학 최성호 ▽전무 김영희 김창만 노일호 박남호 이우종 임관택 ▽상무 강정태 구상헌 김학 박진우(OLED) 오병민 유정근 윤정식 이동원 진승호 최권영 <연구임원> ▽부사장 김성철 김학선 ▽전무 공향식 박진호 ▽상무 신경훈 유재진 이재선 장용규 진동언 최준후 추창웅

△삼성SDI ▽전무 김우찬 김정욱 장태은 황성록 ▽상무 김동균 김정만 박득규 예필수 이병량 정석헌 차남현 <연구임원> ▽전무 김헌수 ▽상무 송의환 이종한 <전문임원> ▽전무 이용태

△삼성전기 ▽부사장 한우성 ▽전무 유진영 ▽상무 김시문 배광욱 신춘범 유충현 진연식 <연구임원> ▽상무 김동훈(ACI) 김창훈 서태준 여정호 위성권 이병화

△삼성SDS ▽부사장 오규봉 ▽전무 유홍준 윤상우 ▽상무 금기호 문진우 박세화 변영철 안성균 오구일 옥재준 윤중근 이실권 <연구임원> ▽전무 한인철

△삼성생명 ▽부사장 구성훈 ▽전무 김학영 조병익 ▽상무 강영섭 김원회 김이훈 박찬병 설구환 원석배 유제민 이경복 조재경 홍진욱

△삼성화재 ▽부사장 김연길 김정철 ▽전무 박춘원 이범 이석준 ▽상무 김규형 김영제 김태함 문병호 백창윤 이문화 장영철 차준호

△삼성카드 ▽전무 이인재 ▽상무 강병주 구형모 김상우 김영길 김철권 허준 <전문임원> ▽상무 박주혜

△삼성증권 ▽전무 이상대 ▽상무 신동석 안승찬 정재화

△삼성자산운용 <전문임원> ▽상무 문병철

△삼성중공업 ▽부사장 윤영호 ▽전무 남준우 박진용 송기정 ▽상무 강인표 김남길 김정환 문철현 성경철 여욱종 오민세 윤종현 이석조 장문찬 조용호 하덕진 <연구임원> ▽부사장 원윤상 ▽전무 서종수 여정운 ▽상무 박영준 <전문임원> ▽상무 권창수

△삼성물산(건설) ▽부사장 김형 이석 정현우 ▽전무 강응수 오세철 최남철 황대성 ▽상무 강진욱 김정환 박신경 박정남 박형식 원광석 이규식 이규용 이석용 이선웅 조정묵 조태윤 최호권 한선규

△삼성엔지니어링 ▽전무 이정구 조은제 ▽상무 강규연 김영 김종 송기활 오종남 유병강 이기훈 이상옥 장주섭 한상덕 현건호 <연구임원> ▽상무 이건상 <전문임원> ▽전무 유승엽

△삼성테크윈 ▽전무 하홍 ▽상무 김준수 문창영 박재우 <연구임원> ▽상무 홍성진 <전문임원> ▽상무 이채준

△삼성토탈 ▽부사장 윤영인 ▽전무 김병주 김용진 ▽상무 김현철 민병기 임채윤 전기우 <연구임원> ▽상무 김창희

△삼성석유화학 ▽전무 이경훈 ▽상무 유재만

△삼성정밀화학 ▽부사장 이희인 ▽상무 박장원 배성실 한용욱

△삼성BP화학 ▽상무 정동환

△삼성물산(상사) ▽부사장 부윤경 ▽전무 고정석 정주성 ▽상무 강우영 박노국 이승걸 이운봉 한영철

△제일모직 ▽전무 이영준 ▽상무 도재구 오세욱 이중현 채상윤 <연구임원> ▽부사장 송창룡 ▽상무 김상균 김윤기

△삼성에버랜드 ▽전무 유필상 함형준 ▽상무 김건우 이경훈 진병수 천병규 <전문임원> ▽상무 이상헌 이은미

△삼성웰스토리 ▽상무 강성호 허진

△호텔신라 ▽부사장 차정호 ▽전무 채홍관 ▽상무 박장서 이강일 조정욱 <전문임원> ▽상무 서상호

△제일기획 ▽상무 김기수 김석한 진우영 최헌

△에스원 ▽부사장 임석우 ▽상무 박채영 <연구임원> ▽상무 최윤기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 백재봉 <연구임원> ▽부사장 민승규

△삼성문화재단 ▽부사장 김은선

△삼성의료원 ▽상무 김승곤

△삼성서울병원 ▽전무 유석진

△삼성바이오로직스 ▽상무 이희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연구임원> ▽상무 백상현

△삼성인력개발원 ▽상무 오화종

 

 

“내가 알아서 할게”…자신과 약속 지켰다

 (광주매일 2014. 01.15. 00:00)

■‘호남·여성·고졸’ 3벽 뚫고 ‘삼성의 별’된 화순출신 양향자 상무 인생스토리

광주여상 졸업 후 연구보조원 입사
28년간 반도체메모리 설계 한우물
삼성 토크 콘서트 ‘열정樂서’ 강연

 

강연하는 양향자 상무

 

삼성에서 드물다는 호남 출신, 상고 졸업, 여성이라는 3박자를 모두 갖추고도 임원이 되는 특별한 영광을 안은 인물이 있다. 주인공은 최근 인사에서 ‘삼성의 별’이라는 임원 자리에 오른 광주여상 출신 양향자 상무. 30여년 전, 화순의 두메산골인 쌍봉리에서 조부모와 몸이 편찮으신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어린 동생들과 함께 넉넉치 않은 삶을 꾸려가면서도 ‘교수’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꿨던 시골 소녀는 이제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풀어 놓았다.

광주여상을 졸업하고 연구보조원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해 이제 삼성의 여성 임원이 된 양 상무는 14일 충남대 정심화 홀에서 열린 ‘열정樂서’ 삼성 토크 콘서트에서 시골출신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 후, 삼성전자에서 연구보조원으로 일하다 ‘삼성의 별’이라는 임원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전했다.

“우리나라 중학생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내가 알아서 할게’라면서요”라는 말로 운을 뗀 양 상무는 28년간 반도체 메모리설계라는 한 우물을 판 끝에 전문가가 된 인생 스토리를 소개했다.

교수를 꿈꾸던 그녀에게 고등학교 입학 원서 마감을 하루 앞두고 생각지 못한 시련이 닥쳤다. 아버지로부터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 동생들을 잘 돌봐달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당시 16세의 어린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알아서 할게요.”

광주여상으로 방향을 튼 양 상무는 1986년 고교 졸업과 함께 삼성에 입사해 옛 삼성반도체 메모리설계실에서 연구원 보조로 일을 시작했다. 연구원 보조는 말 그대로 ‘보조’. 연구원이 반도체를 설계하면 그것을 도면으로 그리는 단순업무였다. 그는 단순 작업을 하면서도 늘 ‘공부하고 싶다’, ‘저걸 알아야만 하는데…’라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지 못했다.

스스로 돕지 않으면 누구도 자신을 도와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한 양 상무는 또 한 번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약속한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그러고는 끊임없이 공부했다. 주변의 ‘반도체 고수’를 찾아 묻고 또 물었고 모르는 부분이 생기면 이해가 될 때까지 파고들었다.

노력을 눈여겨본 선배들이 하나 둘 도와주기 시작했다. 1995년 사내대학에서 학사를, 2008년 성균관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20여년이 지난 지금 반도체 설계 분야의 전문가가 됐다. 마침내 임원 자리에도 올랐다.

양 상무는 “현실을 원망하고 남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내가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여러분도 가장 먼저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스스로와 약속해보세요. 스스로 열심히 하고자 할 때 사람들은 도와주고 싶어하고 그럼 결코 외롭지 않아요.”

양 상무는 부모의 과잉보호 속에 수동적으로 공부하는 아이보다 ‘알아서 하는게’ 일상이 된 친구들이 훨씬 훌륭하게 커 나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날 콘서트에는 ‘영어 잘하는 개그맨’으로 유명한 방송인 김영철도 강연자로 나서 ‘10년 후 내 모습을 미리 그려라’ 등의 메시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