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 육

[주간조선] 자녀교육, 아빠밥상에서 길을 찾다 (조선일보 2013.09.14 16:08)

[주간조선] 자녀교육, 아빠밥상에서 길을 찾다

전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이충노 대표 & 이은규 父子

CEO 자리 던지고 전업아빠로 3년째 올인
반포의 일진 아들 양평의 범생이로

 

인재시교(因材施敎)는 획일적이 아니라 저마다 타고난 소질에 맞게 교육해야 한다는 뜻으로, 공자의 논어(論語)에 나온 말이다. 자녀에게 내재된 저마다의 특성을 잘 살려 행복한 삶으로 이끈 부모의 성공 교육철학을 연재한다.

이충노(49)씨는 2011년 6월까지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정림건축)의 CEO였다. 2006년 6월 국내 10대 건축설계 회사인 정림건축 대표이사로 발탁된 그의 인사는 업계의 큰 화제였다. 건축을 전공한 적도, 건축 관련업에 근무한 적도 없는 그가 30여년 동안 정림 건축을 맡아온 창업자 형제에 이어 대표이사에 발탁되자 크고 작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의 발탁 과정만큼 CEO로서의 행보도 특이했다. 500여 직원의 신상을 낱낱이 외우고, 딱딱했던 사무공간에 미술을 입혀 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취임 3년차, 매출액은 50% 성장했고, 이익률이 크게 개선돼 정림건축은 업계 선두권의 위상을 되찾게 됐다. 정림건축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과 청와대 본관 건물을 설계한 곳이다.

그는 지금은 앞치마를 둘렀다. 아들을 위한 결정이었다. 서울 반포의 한 중학교에 다니던 아들 은규(16)는 일진으로 불렸다. 일진은 학교폭력조직이다. 은규는 공부를 안 했고, 노는 아이들과 몰려 다니면서 폭력 사건에 연루된 적도 몇 번 있었다. 학교에 툭하면 빠졌고, 한 달 동안 가출한 적도 있다. 2011년 2학기 초 급기야 학교폭력방지위원회를 통해 강제전학 조치를 받았다. 늘 바쁘다는 이유로 아들 곁에 있어 주지 못한 아빠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판단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들 아빠로서의 삶에 올인하기로 했다.

그에겐 은규 외에 두 딸이 있다. 큰딸 하림이는 미국 버지니아주립대에 재학 중이고, 막내딸 은샘이는 초등학생이다. 그는 은샘이와 부인은 서울에 남겨 두고, 아들만 데리고 경기도 양평으로 왔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을 고민하다가 지인이 있는 이곳을 택했고, 그곳에서 아들을 위해 매끼 따끈한 밥을 짓고 매끼 새 반찬을 만들어 예쁜 접시에 담아 상차림을 내고 있다. 아들의 하교시간인 오후 4시쯤이면 어김없이 집을 지키면서 간식을 차려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들의 감정 상태를 주시하면서 그동안 못 다한 부성애를 아낌없이 쏟고 있다.


	‘은규 아빠’이자 ‘양평 아저씨’가 된 이충노씨.  그는 “나는 늘 바쁜 아빠였다. 은규 곁에 없을 때가 많았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못다한 아빠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은규 아빠’이자 ‘양평 아저씨’가 된 이충노씨. 그는 “나는 늘 바쁜 아빠였다. 은규 곁에 없을 때가 많았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못다한 아빠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산 지 2년, 아들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성실성이다. 학교에 빠지거나 지각 한 번 없이 꼬박꼬박 다니고, 은규가 다니는 실업계 학교인 A고등학교에서 학과 1등을 도맡아 한다. 성적우수 장학금도 받는다. 시험기간에는 도서실에 자발적으로 나가고,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학교 선생님한테 전화를 해서 궁금증을 해소한다. 또 하나, 아버지와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몸이 스치기만 해도 소스라치던 아이는 이제 아빠와 스스럼없이 포옹을 하고 아빠가 뽀뽀하자고 입을 죽 내밀면 못 이기는 듯 볼을 내준다. 욕도 거의 안 하고, 술도 잘 안 마신다. 담배도 끊었다.

이들 부자를 주간조선 연재 ‘新인재시교’에 소개하기 위해 섭외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아버지도, 아들도 인터뷰를 내내 고사했다. 아버지는 “내가 아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공치사를 하는 것 같아 내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들은 “이전에 인재시교에 소개된 자녀들을 보니 결과물도 있고 성공도 했는데, 나는 아직 이룬 게 없으니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은규 입장에서 보면 문제 많던 자신의 과거를 들춰내는 것이 내키지 않는 게 당연했다. 부자는 여러 날 새벽까지 대화를 나눈 끝에 인터뷰를 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아버지는 “내가 2년간 은규와 단둘이 있으면서 쌓은 경험을 다른 아버지들과 공유하고 싶다”며 허락했고, 은규는 “이건 내 자서전이 아니라 아빠와의 관계 회복에 대한 이야기니까 아빠가 대한민국 일진 아빠의 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유를 밝혔다. 부자가 신신당부를 한 말이 있다. 일진 시절의 은규와 지금의 은규를 이분법적으로 쓰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은규는 “일진으로 불리던 그때에도 생각 없이 논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이러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늘 있었고, 지금은 그것을 하나씩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9월 9일 오후, 부자가 사는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의 자택을 찾아갔다. 양평역 바로 옆에 있는 고층 아파트는 깔끔하고 정갈했다. 건축업계 CEO 출신답게 인테리어 감각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곳에는 현재 남자 셋이 산다. 부자(父子) 외에도 이태후 목사가 방 한 칸을 한시적으로 쓰고 있다. 이태후 목사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우범지역인 노스센트럴에 살면서 이곳 주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활동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필라델피아 언론에 종종 보도됐고, 주간조선 2173호(2011년 9월 19일자)에도 스토리가 소개된 바 있다. 이 목사는 잠시 국내에 들어와 있다.


	이충노씨가 은규를 위해 차린 밥상들. 그는 매끼 따끈한 밥을 짓고 새 반찬을 만들어 상을 차린다. 상차림이 끝나면 의식을 치르듯 사진을 찍어둔다. 그의 노트북에는 그동안 차려낸 은소밥 사진 100여컷이 담겨 있다. 그는 “200컷은 실수로 날렸다”며 속상해했다.
이충노씨가 은규를 위해 차린 밥상들. 그는 매끼 따끈한 밥을 짓고 새 반찬을 만들어 상을 차린다. 상차림이 끝나면 의식을 치르듯 사진을 찍어둔다. 그의 노트북에는 그동안 차려낸 은소밥 사진 100여컷이 담겨 있다. 그는 “200컷은 실수로 날렸다”며 속상해했다.

양평집 살림은 이충노씨가 도맡아 한다. 청소 도우미 없이 혼자서 다 해낸다. 이씨는 “살림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원래 정리정돈하기를 싫어한다. 다만 전업주부의 일을 하고 있으니 은규한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림건축 CEO 당시 인터뷰가 실린 경제 주간지를 꺼내왔다. 불과 몇 년 전인데 이씨의 인상이 딴판이었다. 각진 수트를 벗어던지고 편안한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그는 표정 역시 편안해졌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고, 과로와 스트레스가 많았다. 은규 아빠로, 양평 아저씨로 사는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며 그는 껄껄껄 웃었다.

인터뷰는 여러 차례 했다. 이충노 대표와는 서울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전화 통화를 여러 번 했다. 양평에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은규가 하교하기 전까지 1차, 은규가 하교한 후 양평 개울가를 거닐며 2차, 집에 다시 돌아와 은규와 단둘이 3차, 그리고 다음 날 은규와 전화 인터뷰로 4차 취재를 했다. 이후에도 이충노씨는 은규와 함께 생활하면서 보고 느낀 은규의 변화와 아버지의 생각을 여러 번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로 보내왔다. 이 모든 과정은 은규를 위한 아빠의 세심한 배려였다. 은규에게 자칫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은 최대한 배제했고, 한마디 한마디 은규의 마음을 살피는 게 보였다.

은규와의 인터뷰는 녹록지 않았다. 아이는 과묵한 편이었다. 답변은 담백했고, 아주 솔직했다. 긴 질문에 단답형 답변이 이어져 썰렁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 한 시간이 지나자 분위기가 좀 누그러졌다. 은규가 “기자 하기 힘드시죠? 처음 보는 사람의 마음도 사야 하고”라며 되물었다.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여는 게 보였다. 아직은 예민하고 1, 2년 후가 불확실한 고등학교 2학년.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것은 당연했다.

이충노씨는 이날도 어김없이 아들을 위한 저녁상을 차렸다. 아빠는 밥상을 ‘은소밥’으로 불렀다. ‘은규를 위한 소박한 밥상’의 준말이다. 이날 저녁 메뉴는 울타리콩 조밥과 차돌박이를 넣은 된장찌개, 콩나물과 비름나물에 두부김치, 더덕무침이었다. 고추장아찌와 오이피클도 직접 담근다고 했다. 이 모든 과정을 불과 30분 만에 뚝딱 해내는 이씨의 손놀림은 예사롭지 않았다. 웬만한 주부 9단도 울고 갈 베테랑 주부의 경지였다.

나와 사진기자 이경호 선배도 은소밥을 함께 먹었다. 밥그릇, 장아찌 담은 손길 하나하나에 정성이 느껴졌다. 다 차려진 밥상을 보니 마음이 찡했다. 아빠 이씨는 “평소에 5첩 반상이 기본인데 오늘은 한 가지 정도 더 많다”며 웃었다. 맛 또한 기대 이상이었다. 고추장과 된장을 섞어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 낸 비름나물이 특히 입에 착착 감겼다. 은규는 10분 만에 밥과 국을 뚝딱 비웠다.

은규는 아빠의 건강밥상으로 아토피를 고쳤다. 은규는 “예전에는 날이 좀 더워지면 가끔 심하게 가려웠는데 이젠 없어졌다”고 말했다. 은소밥에는 MSG가 일절 들어가지 않는다. 야채 위주로 구성돼 있고, 햄과 소시지, 어묵 등 가공식품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은규는 양평에 와서 건강이 훨씬 좋아졌다고 했다.

사진을 찍으러 나가는 길, 풀 냄새가 코를 훅 찔렀다. 느낌을 전하자, 나란히 걷던 은규가 “그래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시골 냄새”라고 답했다. 이외에도 양평에 와서 좋은 점을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양평에 왔을 때에는 후회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더 좋다. 여기에 있다가 서울에 가면 답답하다. 처음엔 실업계 학교라는 것도 싫었는데 지금은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학생의 질도 좋아지고 학교도 발전하는 게 느껴진다.”

은규는 요즘 토플 공부에 특히 열심이다. 토플 점수를 잘 받아서 누나처럼 외국의 좋은 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누나 하림양은 버지니아주립대에서 지난 학기 전과목 A학점으로 장학금을 받았다. 은규는 “지금 내신 1등급인데, 앞으로도 내신 관리를 잘하고 학교생활을 모범적으로 하려 한다. 11월에 있을 전교회장 선거에도 출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년 전의 은규와 지금의 은규. 서서히 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는 감동의 속울음을 삼킬 때가 많다. 툭하면 학교를 안 가고 PC방을 전전하다가 새벽에 들어와 오후 늦게서야 일어나던 아이였다. 그런 은규가 아침에 등교시간 늦었다며 뛰어가고, 하교하면서 “지각 겨우 면했다”고 소리치며 들어온다. 은규의 현재 담임교사인 민지언 교사는 1학기 말 성적표의 가정통신문란에 이렇게 적었다. “은규가 점점 나아지는 모습에 웃음 지어 봅니다. 은규는 이제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능력을 가진 아이라고 자부합니다. 학업능력뿐만 아니라 성품도 멋진 아이죠. 저는 요즘 학교에서 은규를 보기만 해도 기특하고 좋은데 부모님께서는 얼마나 행복하실까요?”

2년 동안 아빠와 은규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변화의 씨앗은 아빠의 결단에서 시작됐다. 경영 컨설턴트로, 정림건축 CEO로서 고액연봉을 받으며 인정받던 아빠는 늘 바빴다. 이충노씨는 퇴임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주위 분들의 만류가 많았다. 그러나 과로와 스트레스로 건강이 악화된 탓도 있었고, 사업이 정상화된 후에 오는 공허함도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은규였다. 퇴임 직전 은규는 여러 사건 사고를 일으켰다. 경찰서에도 두 번 불려갔고, 피해학생 학부모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빌며 용서를 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사업으로 바쁜 상태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많지 않았다. 아들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은규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아빠의 고투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회사를 그만두고 맞은 첫 방학, 아들과 단둘이 일본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소통 없던 부자가 여행 한 번으로 말문이 트일 리는 만무했다. 이씨는 “아무런 성과 없이 화병만 얻어 돌아왔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2학기 개학 직후 문제의 사건이 터졌다. 소위 함께 노는 일진 후배에게 폭력을 썼고, 공갈·협박·상해의 혐의로 결국 강제전학을 당했다.

경기도 과천의 한 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은규의 엄마는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로 은규를 전학시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은규를 돌아오게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아빠는 환경에 대대적인 변화를 주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직접 은규와 함께 시골에서 생활하기로 작정한 것. 서울에서 멀지 않으면서 시골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 순수함이 살아있는 곳을 찾았다. 그래서 낙점한 곳이 양평이었다. 강제전학을 당한 아이를 받지 않으려는 학교 측을 끈질기게 설득해 전학에 성공했다.

양평에 내려가 ‘은규 아빠’로서의 삶을 시작하면서 이씨의 각오는 분명했다. “나는 늘 바쁜 아빠였다. 엄마도 교사라 맞벌이였다.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애정결핍이 문제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그동안 못 다한 아빠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건 말로 되는 게 아니었다. 늘 은규 옆에 있어주면서 은규에 대한 사랑을 몸으로 보여주고 싶었다.”일단 좋은 부모 되기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상한 감정의 치유’ ‘어린 아이를 버려라’ ‘독이 되는 부모’ ‘10대들의 사생활’ 등의 자녀교육서와 성경이 특히 도움이 됐다고 한다. 주거 환경도 대대적으로 바꾸었다. 서울 반포 자이아파트 230㎡(70평)대에서 생활하던 부자는 양평의 50㎡(15평)짜리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40만원을 들고 양평 중고가전센터를 찾아가 살림에 필요한 가전제품을 구입했다. 7만원짜리 짤순이, 3만원짜리 중국산 밥솥, 탱크처럼 요란한 소리가 나는 냉장고 등. 따라다니는 은규는 연방 툴툴거렸다. 아빠 이씨는 “보는 나도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고 했다.

이씨는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내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자녀를 노엽게 하면 안 된다. 노여움이 쌓이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은규는 화가 많았다. 부모한테 불만이 많았다. 70~80%는 부모의 문제다. 성숙한 부모는 자녀를 화나게 하지 않는다.” 이씨는 “화를 참는 연습을 하라”고 한다. 화가 날 수 있는 상황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 보면서 참는 연습을 하고, 그래도 정 참기 힘든 상황이 닥치면 차라리 자리를 떠나라는 것. 화 내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은규는 양평에 있는 중학교로 전학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빠 이씨는 학교에 네 번 불려갔다. 아빠는 그때의 상황을 “갑자기 바뀐 문화적 충격으로 인한 혼란”이라고 받아들였지만 마음은 썩어 들어갔다. 그는 “강물에 빠져 죽고 싶은 적도 있었다”고 했다. 서서히 변화의 단초를 발견했다. 첫 징후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좋아하게 된 것. 은규는 “아빠, 여기 아이들은 이상해요. 수업이 끝나고도 학교에 남아 놀기를 좋아하고 선생님들을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또 “아이들이 순수하고 선생님들이 권위가 있어 좋다”는 말도 했다. 두 번째 징후는 만족을 알게 된 것이다. 사업에 능한 아버지 덕에 늘 부유하게 자란 은규에게 50㎡ 연립주택 생활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빠, 여기는 좁긴 하지만 양평에서는 깨끗한 편이에요. 양평에서는 1%에 속할 것 같아요. 대한민국에서는 10%이고”라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은규는 남은 중학교 생활의 마지막 학기를 무사히 마쳤다. 이씨는 “꼴찌였지만 어쨌든 은규가 중학교를 졸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뭉클했다. 은규 엄마와 함께 졸업식에 가서 담임 선생님과 오래 껴안는 은규를 보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했다. “은규로 인해 몰래 숨어 흘린 눈물이 한 바가지는 족히 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이충노씨는 “사실 은규가 나와 비슷한 면이 많다. 나를 닮아 자유로운 영혼이다”라며 과거를 털어놓았다. “나는 굉장히 말썽쟁이였다. 생활기록부를 보니 부정적인 말이 많더라. 주의가 산만하고 공부에 관심이 없다는 평이었다. 고2 때부터 심하게 망가졌다. 2교시 수업 끝나면 학교 담을 넘어 친구의 자취방에서 소주를 마시며 놀았다. 싸움도 많이 했고, 담배도 피웠다. 대학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고등학교 때 밴드를 시작해 졸업 직후엔 나이트클럽 밴드마스터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살면 내 미래는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부자들 파티에 동원돼 구석에 앉아 연주하는 모습이 그려졌다고 했다. ‘이건 아니다’ 싶었던 그는 일단 군에 입대했다. 군대에서 그는 인생이 백팔십도 달라졌다. 미친 듯이 성실히 일하면서 ‘성취감’을 맛본 것. 상사에게 인정받으면서 점점 더 삶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했다. 행정병을 하면서 육군 규범을 달달달 외웠는데, 이것이 훗날 경영 컨설턴트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체계적인 군 조직의 관리 체계 시스템은 그 당시 많은 조직의 기본이 되었기 때문이다.

제대 후 충남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7학기 동안 성적우수로 전액장학금을 받았다. 그는 “자기만 통제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남들이 정해놓은 규율을 지키기는 어렵지만 내 스스로 정한 규율은 무섭게 따르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경영컨설팅 회사 아더앤더슨(현 베이링포인트)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7년간 일하면서 1990년대에 이미 억대 연봉을 받는 등 직장인으로서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남들은 아들을 문제아로 봤지만 아빠는 달랐다. 아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가 뻔히 보였고 이해가 됐다. 이씨는 은규의 마음을 열기 위해 은규를 위한 맞춤 전략을 짰다. 첫 번째는 은규의 관심사 찾기. 바로 패션이었다. 아빠는 아들과 단둘이서 동대문 패션몰, 여주프리미엄아울렛 등을 탐방하면서 패션 이야기로 말문을 트게 했다. 아빠의 장점을 살려 브랜드 특성과 전략, 포지셔닝, 유통구조와 가격전략 등 패션산업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다.

두 번째는 아이와의 간극을 메우는 놀이 찾기. 바로 노래방이었다. 은규와 종종 노래방에 가서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불렀다. 때때로 은규의 친구들까지 불러서 함께 놀았다. 처음에는 아빠와 노래방에 가길 싫어하던 은규는 점점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게 됐다. 노을의 ‘청혼’, 성시경의 ‘너는 나의 봄이다’, 모세의 ‘사랑인걸’ 등을 불렀다.

이충노씨는 “‘학생은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은규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면서 아이의 마음속으로 비집고 들어가려 노력했다. 함께 술집에 가서 밤 늦도록 대화를 나눈 적도 많다. 단골집을 정하고 주인에게 “내 아들이 아직 미성년자인데 아버지와 함께이니 허락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는 “호프집은 그마나 마주보고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라고 설명했다.

은규를 등교시킨 후 이충노씨의 일상은 전형적인 주부의 삶이다. 매일 빨래하고, 다림질하고 2~3일에 한 번씩은 베란다까지 대청소를 한다. 매일 기본 두 끼의 ‘은소밥’을 차리고 이틀 걸러 밤참까지 만들려면 메뉴 구상, 장보기, 재료 손질 등 정신이 없다. 그는 “주부일만으로도 하루가 짧다”고 말했다. 틈틈이 재능을 살려 사업이 어려워진 지인들을 무상으로 컨설팅해 주기도 한다. 종종 일용직으로 일당을 벌어오기도 한다. “목돈이 생겨 몇 년 동안 생활비 걱정 없이 살았는데, 잔고가 푹푹 빠지는 것을 보면서 불안감이 생겨서 하게 됐다”며 웃었다. 일용직 현장에서 그는 “이씨”로 불린다.
그에게 “은규 아빠, 양평 아저씨로의 삶을 언제까지 살 것인지, 이후의 삶의 청사진은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막내인 딸 은샘이가 마음에 걸린다. 지난 주말 은샘이와 광화문 부근에서 뮤지컬을 보고 호떡을 먹으며 삼청동 거리를 다녔는데, 아빠가 오빠와 함께 지내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내심 서운해 하는 눈치였다. 은규가 자리를 잡으면 은샘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 나는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름 원없이 일하고 올라갈 만큼 올라가 봤다고 생각한다. 돈도 많이 벌어 봤고, 날려도 봤고, 정부기관과 기업, 대학교에서 강의도 많이 했다. 여한이 없다. 세상을 유익하게 만드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 내가 가진 재주를 살려 세상 사람들이 가치 있는 삶, 평화롭게 사는 삶을 살도록 돕고 싶다. 자녀와 관계가 깨진 부모를 지원하는 일도 하고 싶다. 이 일이 나를 더 흥분시킨다.”

얼마 전 은규는 수업시간에 엄마 아빠에 대한 장단점 쓰기에 이렇게 적었다. ‘엄마-장점:착함, 멘탈이 좋으심, 언제나 자식들을 이해, 위해 주심, 예쁨. 단점:걱정이 많으심, 요리를 못하는 듯, 운동 안 하심 / 아빠-장점:공평하심, 요리 매우 잘하심. 머리 매우 좋으심. 모든 면에 밝으심. 자식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심, 단점:융통성이 살짝 부족하심. 머리숱이 없으심’. 그리고 총평에는 ‘어머니, 아버지로 최고이심. 완벽함’이라고 적었다.
은규에게 먼 미래에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느냐고 묻자 “나 같은 아들을 키워보고 싶다. 재미있을 것 같다”는 답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은규의 속내는 뭘까? 하나 분명한 것은 아버지가 자신을 키우는 과정이 고통스럽고 힘겨워 보였다면, 아버지라는 자리가 하찮거나 시시해 보였다면, 은규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이다.
인터뷰 다음 날 이충노씨는 기자에게 이런 메일을 보내왔다.

‘지금 막 은규는 학교에 갔습니다. 이 시간이 저에겐 제일 편안한 시간입니다. 헨델의 수상음악이나 바흐의 무반주 첼로 같은 바로크 음악을 들으며 설거지하고 차를 마십니다. 오늘 아침 메뉴는 평소엔 잘 안 해주는 소불고기입니다. 재워둔 무항생제 한우설도에다 느타리버섯을 찢고 양파를 채 썰어 넣어 볶았습니다. 아욱된장국과 할머니표 깍두기를 함께 주었더니 금세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씩씩하게 문을 나섰습니다.
가끔 아침 먹을 시간이 급할 때는 제가 들고 다니며 먹여주기도 하는데 은규는 언제나 날름날름 잘 받아 먹습니다. 오늘은 야채를 먹이려 어제 먹다 남은 쌈채소에 불고기와 쌈장을 넣어 두 번을 싸 주었더니 맛있게 먹더군요. 저는 이런 은규가 귀엽습니다. 그 나이에 아빠가 먹여주는 밥을 받아 먹기 쉽겠습니까. 그런데 은규는 아빠 밥이라면 언제나 좋아합니다. ‘오늘도 풀밭이다’라고 인상을 쓰지만 그래도 잘 먹습니다. 아빠 말대로 하니 그 괴롭던 아토피가 없어졌잖아요. 그러니 믿을 수밖에 없지요.

그 나이에는 다 그렇지요. 아빠의 밥상에 감동해 눈물 흘린다면 그 나이가 아니죠. 그러기에는 아직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하지요. 저는 분명히 은규가 제 자식을 밥 먹여 키우면서 가고 없는 아빠를 그리워하며 눈시울을 붉힐 거라 생각합니다. 사랑이 대물림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사랑의 대물림이 인간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이충노씨의 TIP
자녀와 관계회복을 원한다면 절대로 화내지 마세요

❶  절대로 화내지 마세요.
부모와 자녀 간에 원만한 관계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화내지 않는 것이다. 화가 날 수 있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면서 화를 삭이는 훈련을 하고, 그래도 도저히 화를 못 참겠으면 차라리 자리를 떠라. 속으로 아무리 끓어올라도 표정과 행동에 나타내지 말라. 아무리 화가 나도 부모로서의 책임을 피하지 않는다. 감정과 상황은 별개다. 감정이 상했다고 평소 부모의 역할을 소홀히 하면 부모와의 신뢰가 깨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팽개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진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❷  부모가 다 짊어지려 하지 마세요.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스승은 부모 말고도 주변에 널렸다. 선생님, 동네 어른들, 할머니, 친척, 친구 등. 부모는 아이를 교정하는 존재가 아니다. 부모의 훈육으로 자녀가 바뀐다면 세상에 문제아는 없을 것이다. 잘못된 행동이 있어도 당장 아이의 행동 변화를 강요하고 확인하려 하지 말라. 뜻하지 않은 사람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아이의 스승이 될 수 있다.

❸  학생은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세요.
자녀와의 관계가 깨지는 가장 큰 원인이 성적이다. ‘학생은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아이와 부모를 둘 다 힘들게 한다. 아이의 마음이 편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면 공부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공부로 성공하는 사람은 1%도 되지 않는다. 학생은 공부를 잘해야 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정서적 안정, 성숙한 인성, 사회화가 더 중요하다.

❹  자녀를 어린애로 대하는 건 좋지 않아요. 대등하게 대하세요.
지혜로운 아버지는 자녀를 대등하게 대하고 미성숙한 아버지는 자녀를 어린애로 대한다. 자녀는 부모가 대우하고 생각한 만큼 자란다. 아이로 대하면 아이가 되고, 어른으로 대하면 어른이 된다. 청년기 때 대등해지니 중고등학교 때부터 서서히 대등한 인격으로 대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자녀와 우정의 관계를 잘 맺은 부모는 노년이 되어 장년의 자녀에게 존중받는다. 어린 시절 인격으로 대우받은 자녀는 힘 빠진 노년의 부모를 인격적으로 대한다.

❺  문제아는 없습니다. 문제부모만 있을 뿐!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아이는 부모의 행동 하나하나, 말투 하나하나를 그대로 보고 배운다. 부모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반응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부모도 함께 배우고 경험하고 자라는 과정이다. 자녀는 부모의 스승이다. 아이는 부모가 고민하는 만큼 자란다. 성숙한 부모가 성숙한 자녀를 만든다.
 
❻  부모의 사랑을 자식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마세요.
자녀가 부모의 나이가 돼 봐야 부모의 사랑을 알 수 있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아이에게 부모는 주어진 존재일 뿐,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녀가 부모에게 감사의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감사도 알고, 표현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부모가 표현하는 정도의 깊이와는 차이가 있다. 부모의 사랑이 객관적으로 보이고 마음으로 사랑을 느끼는 것은 자녀가 부모의 나이가 되고 부모의 상황이 되어봐야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