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한류'가 김종학을 죽였다면 견강부회일까?
2002년 제작된 ‘겨울연가’는 연출자 윤석호 피디의 계절 시리즈 중 두 번째였다. ‘가을동화’는 주로 중화권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겨울연가’는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윤석호 PD는 일본을 겨냥한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드라마 ‘여름향기(2003)’, ‘봄의 왈츠(2004)’, ‘사랑비(2012)’와 같은 작품들을 이어 내놓지만 성적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일본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감성터치의 작품들이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즉 지나치게 일본인들의 감성을 건드리기 위한 전략이 부자연스러움을 낳으면서 시청자의 외면을 받은 것이다. 한국 시장은 물론 일본에서도 반응이 시원찮았다. ‘사랑비’(2012)는 일본 한류 스타 장근석이 출연했음에도 그의 효과가 드러나지 않았다.
일본의 한류 열풍은 한국에서 내노라하는 제작자들의 일본 진출을 촉진했다. ‘겨울연가’의 주인공 배용준은 욘사마로 최고의 인기를 끌었고, 당대의 최고 연출자이자 제작자인 김종학 피디도 그를 캐스팅하여 일본 진출 계획을 세운다. 그 작품이 바로 ‘태왕사신기(2007)’였다. 알려진 제작비만 520여억 원이었다. 이 작품에는 배용준이 최대 주주로 있는 키이스트도 크게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학 프로덕션과 배용준의 키이스트는 합작으로 일본 시장을 공략해려 했던 것이다. 즉 ‘태왕 사신기’는 한국 시장도 그렇지만 배용준의 드라마 출연작으로 일본 시장을 위한 콘텐츠였다. 만약 배용준을 통한 일본 시장 공략 계획이 성립하지 않았다면 제작될 수 없었다. 그러나 ‘태왕사신기’는 막대한 투자 제작비에 비해 그 성적이 그렇게 흡족하지 않았다.
지난해 4월, 김종학 피디는 서울중앙지검에 사기 및 강제집행면탈 혐의로 피소됐다. 드라마 세트장 제작에 들어간 대금과 용역비 등 2억6500만원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드라마 세트장은 바로 ‘태왕사신기’촬영지였다. 올해 5월에도 김종학 피디는 피소되었다. 배임 및 횡령 혐의였다. 드라마 '신의'에 출연한 배우와 스태프들의 출연료, 인건비 등을 지급하지 않았다. 출연료·편집료·제작료 등 17억원을 주지 않고 20억 원을 개인 용도로 횡령한 혐의도 받았다. 지난해 9월 '신의'의 OST 이중계약 건으로 사기죄로 고소도 당했다.
이렇게 많은 돈을 왜 어디로 사용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태왕사신기’로 인해 빚어진 채무의 악순환으로 보인다. 드라마 ‘신의’마저 저조한 성적표를 얻으면서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던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이른바 돌려막기다.‘태왕사신기’가 여러 차례 방송연기를 했듯이 많은 제작비의 ‘신의’는 여러 차례 작가가 교체되었다. ‘신의’ 와 ‘태왕사신기’에서도 드러났듯이 모험적이고 불도저 같은 방식으로 밀어붙이는 제작 연출 방식은 한국 드라마의 특징이기도 했고, 이의 상징이 바로 김종학 피디였다. 만약 그러한 뚝심과 기개가 없었다면 ‘여명의 눈동자’나 ‘모래시계’ 등은 없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치밀하고 구조화된 투자와 제작 배급전략이 부재한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위기를 불러 올 수밖에 없었다.
▲ 드라마 '태왕사신기' ⓒMBC |
‘태왕사신기’는 일본 시장의 소구성도 파악하지 못하고, 작품의 대중성도 담보하지 못한 채 한류 열풍 속에서 배용준의 브랜드 파워에 의존해 너무 무리한 제작비를 투입했다. 윤석호 피디처럼 한류의 달콤한 열매를 너무 의식해 주체적인 작품세계의 구축에서 멀어졌다. 누군가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점은 이미 싸이의 ‘잰틀맨’에서도 드러났다. ‘강남스타일’의 우연한 성공에서 작정한 성공 전략은 ‘젠틀맨’ 제작에 오히려 독이 되었다. 용이성과 유희성의 강화는 오히려 싸이의 장점을 떨어뜨렸다. 이러한 점들은 한류 붐에서 우리가 무엇을 이제 더 신경 쓰고 집중해야 하는지 가늠하게 한다.
무엇보다 글로벌 미디어 그리고 세계적 콘텐츠를 만든다면 이제 한국은 좀 더 세심하고 치밀하여야 한다. 연출자가 투자, 배급, 마케팅, 프로듀서 역할까지 다해야 하는 비전문적인 제작행태는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다. 무엇보다 제작사가 안정적으로 존립할 수 있는 공정한 창작 배분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세계 속의 한국 문화콘텐츠는 없을 수밖에 없다. 편성권을 앞세운 제작비 다운 행태는 외주 제작자의 투자 조달을 당연히 어렵게 한다. 판권까지 방송사가 움켜쥐고 있다면 이는 투자비 회수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이번에도 짐작되었듯이 드라마나 영화, 공연, 이벤트에서 이제 돌려막기는 우선 사라져야 한다. 결국 외주 시스템의 신화이자 모범 모델이었던 김종학 피디도 그 벽을 넘지 못하고 말았다.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무분별한 확장이다. 얼마전 스스로 타계한 예당 대표는 '겨울 연가' OST의 대박으로 연예매니지먼트는 물론 유전 사업에도 손을 대어 재정 위기에 봉착했다. 이러한 무분별성은 SM의 활발한 타 영역 진출에서 확인할수 있다. 이러한 점은 한국 대중문화의 내실을 기해 한류를 하나의 확실한 글로벌 콘텐츠로 만드는데 장애가 될 뿐이며, 스스로 위기를 불러 오는 것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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