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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튀는 문제해결 방안/아이디어

세계 디자인계에 新바람 일으키다 한국의 `젊은 상상력`(조선일보 2011.05.13 03:01)

세계 디자인계에 新바람 일으키다… 한국의 '젊은 상상력'

3대 디자인 상 'iF' 입상작 100개 중 한국 대학생 작품 24개로 25% 휩쓸어
길쭉한 감자칩통 뚜껑 열면 입구 넓어지고, 인스턴트 커피 봉지 안엔 티스푼 넣어
예리한 관찰력에 아이디어 더해져…

한국 대학생들이 최근 몇 년 동안 잇따라 세계적 권위의 디자인 공모전에서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코리안 디자인 영(young)파워'라 할 만하다.

대표적인 무대가 최근 발표된
독일 'iF 콘셉트 어워드'이다. 한국 학생들이 전체 100개 입상작 중 24개를 차지했다. 52개국에서 8000여점이 출품돼 경쟁을 벌인 결과다.

입구에 홈을 파 페인트를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 따를 수 있게 한 상명대 팀의 ‘엣지 드랍’. 왼쪽 위 작은 사진은 컴퓨터 저장장치 USB와 시계를 결합한 경원대 팀의 ‘USB 왓치’. /iF 제공

iF는 레드닷(Reddot)·아이디어(IDEA)와 함께 세계 3대 디자인 상으로 꼽힌다. 이 중 '콘셉트 어워드'는 이미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라 새로운 디자인 제안과 아이디어 자체를 심사한다. 따라서 기발하고 신선한 상상력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주목받기 힘들다. 한국 학생들은 이 대회에서 2009년과 2010년에도 각각 34팀과 30팀이 수상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대학생들이 선전하는 이유에 대해 "무엇보다 예리한 발견에서 시작되는 상상력이 뛰어나다"고 평한다.
건국대학생 김석우·이범호·권도혁·서동한(25)씨는 좁고 긴 원형의 통에서 감자칩을 꺼내 나눠 먹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거 영 불편한데 디자인 좀 바꿔볼까?"라고 했다. 그러곤 '블룸 칩스(Bloom chips)'를 디자인했다.

"과자통 입구를 살짝 벌리면 꽃송이처럼 넓어지는 거죠. 여러 사람들이 둘러앉아 먹기 좋도록 바구니처럼 디자인했습니다." 일상 속 불편을 예리하게 포착해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바꾼 경우다. 이들은 이 작품으로 100개 입상작 중에서 8위를 차지, 상금 1000유로(약 150만원)을 받게 됐다.

건국대 학생 4명이 디자인한‘블룸 칩스’. 길쭉한 원형 과자 통을 감싸고 있는 종이 띠를 벗기면 입구가 자동적으로 벌어져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과자 바구니로 변한다. /iF 제공

삼성디자인학교(SADI) 학생 전환수(29)씨는 입상작을 2개나 만들었다. 그가 디자인한 '핸디 미터'는 수도꼭지나 물병 입구에 붙이면 물 사용량을 알려준다. "요리할 때 계량컵으로 물 양을 재는 걸 보고 그냥 물을 부어도 자동으로 양을 알려주는 장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또 다른 입상작 '인&아웃 도어'는 문 모양만 봐도 밀어야 할지 당겨야 할지 알 수 있다. 문 옆에 '미시오' '당기시오' 문구를 붙이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한국 학생들은 작은 차이를 새로운 디자인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도 나온다.
부천대 학생들이 만든 '자전거 핸들록(B.Y handle Lock)'. 보통 자물쇠처럼 생긴 자전거 잠금장치를 간결한 부착장치로 바꿨다. 장치 한쪽을 왼쪽 손잡이에 착 붙이고 줄을 자전거 바퀴에 통과시킨 뒤 다시 오른쪽 손잡이에 붙이면 그만이다. 상명대 팀의 '원 웨이'는 안경 케이스 위에 렌즈 케이스를 덧붙인 것. 안경도 쓰고 렌즈도 끼는 사람이 케이스를 모두 들고 다닐 필요가 없도록 둘을 합쳤다. 국민대 팀의 '스푼인'은 인스턴트 커피 봉지를 뜯으면 안에서 티스푼이 나오도록 했다. 커피를 어떻게 저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사진 위부터)아이들이 왼쪽 오른쪽을 헷갈려 하지 않도록 그림을 그려넣은 서울과학기술대팀의 신발디자인 ‘에듀케이션 슈’, 안경과 렌즈를 같이 쓰는 사람들을 위해 안경케이스 위에 렌즈 케이스를 덧붙여 간편하게 만든 상명대팀의 ‘원 웨이’, 손잡이에 가볍게 붙이고 뗄 수 있는 자전거 잠금장치, 부천대팀의 ‘B.Y 핸들록’. /iF 제공

인적(人的) 자원이 풍부한 점도 디자인 영파워의 원동력이다. 삼성 같은 대기업이 자체 디자인학교를 운영할 정도로 투자에 적극적인 데다 매년 전국 대학에서 배출되는 디자인 전공자만 3만여 명이나 된다.

iF 홍보 담당자 안나 라이서트(Reissert)씨는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 대학생들은 매년 많은 수의 작품을 응모한다. 응모작 수만 많은 게 아니라 작품 수준도 혁신적"이라고 했다. 그는 "다른 나라보다 한국의 입선작 수가 많은 건 그 때문"이라며 "놀랍고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남은 문제는 이처럼 빛나는 상상력을 실제 상업성 있는 제품 생산으로 연결하는 것.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이돈태 교수는 "국내외 업체 등이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베끼지 못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특허·의장등록을 지원해주고, 학생 아이디어와 기업을 연계하는 장터를 만드는 데도 힘써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