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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하며 말없이 이별하고 (광주매일 2013. 02.12. 00:00)

부끄러워하며 말없이 이별하고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24)

 

無語別 (무어별)
백호 임 제

열다섯 아리따운 월나라의 소녀가
부끄러워 고개 숙여 말없이 이별하고
돌아와 덧문을 가리고 달을 향해 눈물짓네.

十五越溪女 羞人無語別
십오월계녀 수인무어별
歸來掩重門 泣向梨花月
귀래엄중문 읍향이화월

조선 여인의 간절한 마음의 속내를 보는 작품이 많다. 시인과는 다르게 시적 화자를 여성으로 등장시키는 작품도 있다. 사랑하는 임을 만나거나 임을 보내면서 헤어지면서도 남이 부끄러워 이별의 말 한마디 못하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손에 잡힐 듯 한 느낌을 받는다. 시인의 낭만주의적 경향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권위와 법도가 중시되는 봉건주의 시대의 남녀사랑을 절실하게 묘사하며 읊은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부끄러워하며 말없이 이별하며(無語別)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백호(白湖) 임제(林悌:1549-1587)로 예조 정랑을 지냈으나 당파싸움에 환멸을 느끼며 전국을 유람하며 많은 시문 남겼다. ‘청초 우거진 골에’로 시작되는 시조와 한우와 수창했다는 ‘한우가’와 한시를 남겼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열다섯 살 아리따운 월나라 소녀가 / 부끄러워 말없이 이별하고 // 돌아와 덧문을 가리고 / 달을 향해 눈물짓는다]라고 번역된다.

임제는 속리산에 있던 성운(成運) 문하에서 수학했다. 그는 일시 벼슬에 있으면서 숱한 일화를 남겼는데, 서도병마사로 임명되어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黃眞伊)의 묘에 제사를 지내고 시조 1수를 지어, 부임하기도 전에 파직 당했고, 기생 한우(寒雨)와 주고받은 시조의 일화 등은 잘 알려진다. 그는 문장과 시에 뛰어나 당대의 명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호방하고 쾌활한 시풍을 지녔다.



시인은 월계녀(越溪女)란 중국 고대미인 서시(西施)가 월(越)나라의 시냇가에서 빨래하던 여인이었다 하여 미인을 지칭하던 말이었다.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만났지만 남을 의식하여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와서는 대문 중문 다 닫아걸고 호젓한 뒤뜰에서 달을 바라보며 남몰래 눈물짓는 광경을 그리고 있다.



화자가 그린 조선 여심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별을 했었다면 떠나는 임을 붙잡기라도 했어야지 말없이 이별을 했고, 이별을 했다면 누구에게 하소연이라도 했어야지 끝내 덧문까지 가리고 혼자 울고 말았다. 울어서 마음을 다독거려 주지도 못할 달을 향했으니 월계녀는 분명 그랬다.

※한자와 어구

十五: 15세. 越溪女: 아름다운 여인, 월나라의 서시(西施)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지칭함. 羞: 부끄러워하다. 無語: 말없이, 말을 못하다. 別: 이별하다. 歸: 돌아가다, 혹은 돌아오다. 掩: 가리다. 重門: 덧문 혹은 중문. 泣: 울다. 梨花月: 배꽃 달, 곧 배꽃처럼 고운 달.

/시조시인·(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