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한 아라이 … 알자지라 특파원도 참관
소말리아 해적 첫 공판
“피고인 송환 법 근거 없어”
변호인, 재판권 문제 삼아
23일 오전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부산지법 301호 법정. 형사합의5부(재판장 김진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해적 압디카더 이난 알리(21)의 변호인인 정해영 변호사가 갑자기 이렇게 주장했다.
“이 법원이 이번 해적 사건을 재판할 권한이 없습니다.”
여성 7명, 남성 5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국내에서 처음 열린 해적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정 변호사는 “해양법 등 국제법과 조약에 의해 피고인들을 체포할 수는 있지만 체포한 피고인들을 대한민국에 데려오는 절차는 국제법이나 조약에 근거가 없다”고 제동을 걸었다. 검찰은 “이 법정은 피고인들의 해적행위를 놓고 유· 무죄를 따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양측의 대립이 계속되자 김진석 재판장이 재판 관할권 문제를 결정문에서 밝히겠다면서 일단락됐다.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첫 공판은 이렇게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시작됐다.
변호인들은 검찰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마호메드 아라이의 변호인인 권혁근 변호사는 “해적들이 몸값 900만 달러를 받았다면 1인당 2만 달러(약 2200만원) 정도를 챙기는 것에 불과한데, 과하게 처벌한다고 해적행위가 근절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2만 달러를 소말리아인의 연평균 소득 300달러(약 33만원)로 환산하면 66년을 벌어야 하는 돈”이라며 “한번 해적질로 팔자 고친다”고 반격을 폈다.
재판은 순차 통역 때문에 느리게 진행됐다. 재판장의 한마디가 영어로 통역되면 소말리아어 통역이 이를 받아 다시 해적에게 전달했다. 해적들의 발언도 역순으로 재판장에게 전달됐다. 보통 피고인 4명의 이름과 주소 등을 묻는 인정신문에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2분 안팎이지만 해적 4명의 인정신문 때 걸린 시간은 14분이나 됐다. 재판은 27일까지 계속된다.
◆외신들도 취재 경쟁= AP·AFP·로이터·블룸버그 등 통신사와 일본 아사히신문이 취재진으로 등록했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도 특파원을 파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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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해군 총알, 치명상 아니다… 석 선장은 우리와 다른 종족”
25일 오후 부산지법 301호 법정에서 열린 해적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선 석 선장의 주치의인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는 “석 선장이 소말리아 해적이 쏜 AK 소총 탄에 치명상을 입었고, 해군의 유탄에는 비교적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석 선장의 왼쪽 배 윗부분에서 오른쪽 옆구리로 관통한 것으로 추정되는 총알은 대장을 터트리고, 간 일부를 손상하는 치명상을 줬고, 왼쪽 손목과 팔꿈치 사이를 관통한 총알도 동맥 한쪽을 거의 끊을 정도의 가장 심한 손상을 입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왼쪽 대퇴부에서 나온 AK 소총 탄도 뼈가 밖으로 나올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혔으며 이들 총알은 모두 왼쪽에서 발사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왼쪽 팔과 대퇴부에 상처를 준 총알은 모두 위에서 아래쪽으로 발사됐고, 몸을 관통한 총알도 누워 있다가 맞았을 수 있다”면서 “이들 총알은 모두 석 선장이 총알을 피해 도망가거나 몸을 비틀면서 맞은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는 해적 마호메드 아라이가 엎드려 있는 석 선장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는 검찰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반면 석 선장의 오른쪽 엉덩이 위쪽과 오른쪽 무릎 위쪽에서 각각 발견된 해군 탄환에 대해 이 교수는 “직사 화기에서 발사된 총알이 근육층을 뚫지 못했다는 것은 직사(일직선상에서 발사)된 것이 아니라 어디에 맞고 튄 유탄으로 비교적 가벼운 상처를 입혔다”고 증언했다.
- ▲ 석해균 선장을 치료했던 이국종 교수.
이 교수는 “석 선장의 오른쪽 하복부에서 나왔으나 오만 현지에서 분실한 것은 탄환과 다른 은색이었고, 얇은 것으로 미뤄 철판 같은 게 튀어서 구부러진 것처럼 보였으며 탄환이라기보다는 파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석 선장은 쓰러지면서도 부하에게 먼저 피하라고 말할 정도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으로 우리와 다른 종족”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귀화 희망’ 해적, “동료가 피격 현장에서 총 든 것 봤다”
‘한국에 귀화하고 싶다’던 해적 아울 브랄랫은 이날, 우리 측 선원이 아닌 해적으로서는 처음으로 동료 마호메드 아라이가 석 선장을 쐈을 정황을 증언했다. 아라이는 “당시 (석 선장이 총에 맞은) 조타실에서는 총을 든 적도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브랄랫은 이날 법정에서 검사가 1월21일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의 상황을 묻자 “조타실에 아라이가 있었고, 총을 든 것을 봤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해적 압디하드 아만 알리도 증인신문에서 “아라이가 당시 조타실에서 총을 들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들은 또 ‘조타실에서 내려가는 계단에서 아라이가 총을 버리는 것을 봤느냐’는 질문에 “봤다”고 분명하게 답하거나 “총을 버리는 것을 본 것 같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그러나 아라이가 총 쏘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브랄랫은 “아라이가 조타실에서 선원의 셔츠를 잡고, ‘토크(talk·말해라), 토크’라고 하는 것을 봤다”고 말했고, 알리는 “해군의 1차 진압 후 두목으로부터 ‘해군이 또 공격해 오면 선원들을 윙 브리지로 내세우자’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를 바탕으로 “해적들이 선원들을 ‘인간방패’로 활용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아라이의 변호를 맡은 권혁근 변호사는 당시 석 선장이 총격을 받은 조타실에는 수많은 선원과 해적이 있었지만, 아라이가 석 선장에게 총을 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한명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총격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권 변호사는 또 ‘인간방패’와 관련해서도, “선원들을 윙 브리지로 나가게 한 것은 선원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지, 인간방패로 쓰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알리의 증언을 통해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전날에 이어 동시통역을 계속했지만, 영어와 소말리아어 통역인 사이에 의사소통이 잘못되거나 영어 통역인이 검사의 질문을 잘못 전달해 엉뚱한 대답이 나오는 등 혼선을 빚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날 증인신문을 모두 끝내고, 26일부터는 증거 조사와 아라이, 알리에 대한 피고인 신문에 들어갈 예정이고, 27일에는 검찰의 구형과 해적들의 최후진술, 배심원단의 평결을 거쳐 선고된다.
한편, 구치소에서 한글과 우리 말을 배우고 있는 브랄랫은 서툰 우리 말로 “검사님, 앞으로는 다시 해적질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고, “형집행 후 한국정부에 시민으로 살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며 또다시 귀화의사도 밝혔다. 알리도 증언 과정에서 우리나라 말로 “오른쪽, 왼쪽”이라고 말해 법정에서 한때 미소가 번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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