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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투암(아프리카 가나의 한 마을) 왕이 된 여인, 男 원로들이 대놓고 무시하자… (조선일보2012.08.18 03:02)

오투암(아프리카 가나의 한 마을) 왕이 된 여인, 男 원로들이 대놓고 무시하자…

 

대사관 비서에서 왕으로 뽑혔지만 男원로들이 무시
위기의 부족 살린 패기 넘친 개혁에 주민들 신임 얻어

여왕 페기

페기린 바텔스·엘리너 허먼 지음ㅣ김미정 옮김
세종서적ㅣ544쪽ㅣ1만4000원

"가나 오투암 최초의 여왕, 만연한 부패를 척결하다."

2010년 3월 워싱턴포스트에 가나 오투암에서 최초로 왕(엄밀히 말하면 부족장)이 된 한 여인의 기사가 실렸다. 주인공은 페기린 바텔스(59). 주미 가나 대사관에서 손님들에게 커피를 타 주던 그녀가 7000명 부족의 왕이 돼 개혁을 추진한다는 기사였다. 이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여왕이 된 페기의 2년간 이야기. 페기 본인과 작가인 엘리너 허먼은 2년간의 좌충우돌 개혁 추진기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대사관 직원, 여왕이 되다

2008년 8월 어느 날 새벽, 워싱턴DC 외곽의 방 하나짜리 페기의 아파트 전화벨이 울렸다. 가나에 사는 이종사촌이었다. "축하합니다! 당신이 오투암의 새로운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가나에서 태어났지만 스물여섯 살에 미국으로 이주했고 그 후 30년간 미국에서 산 페기가 왕이 된 사연은 동화 같다. 그녀의 외삼촌이었던 선왕 '나나 아무아 아펜이 5세'가 별세하자 부족의 원로들은 새 왕을 뽑는 절차를 시작했다. 그 방식은 왕 후보 25명의 이름을 하나씩 부른 후 독주(毒酒)를 바닥에 붓는 것. 독주가 땅에 스며들면 탈락, 독주에서 김이 피어오르면 왕이 됐다. 다른 사람들한텐 요지부동이던 독주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김이 피어올랐다.

◇솔선수범·패기로 부정부패 없애

그러나 이 책은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니다. 왕도 왕 나름이다. 오투암은 없는 게 더 많은 곳이었다. 수도 시설도, 의사도, 고등학교도 없었고, 아이들은 매일 몇 시간씩 걸어 연못에서 흙탕물을 길어 마셨다. 마을회관 같은 '왕궁'은 폐허 직전, 왕실 곳간은 바닥이었다. 왕으로 선출됐지만 그녀는 여전히 워싱턴DC의 가나 대사관 직원으로 일한다. 여기서 나오는 봉급을 부족한 재정에 보태야 했고, 1년에 한두 차례 휴가를 얻어 부족을 방문하는 '비서' '여왕'의 이중생활을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여왕 페기가 오투암 선왕(先王) 사후 2년 만에 열린 영결식에 참석하기 위해 호텔을 나서고 있다. /세종서적 제공
왕으로 뽑아놓고 대놓고 무시하는 주민들은 더 문제였다. 아프리카 대륙의 남성우월주의는 커다란 벽이었다. 여왕이 되고 나서 첫 마을 회의를 열었을 때 참석한 사람은 7000명 중 달랑 5명. 이종사촌은 그녀가 선왕의 빚을 갚으라고 보낸 돈을 가로챘다. 한 달 휴가를 받은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원로들은 '어부세(漁夫稅)' 도입안을 들이밀었다. 늘 세금을 횡령하던 원로들이 물정 모르는 페기가 사정을 파악하기 전에 선수를 친 것. 하지만 페기는 미리 준비한 반격을 퍼부었다. "당신네들과 달리 나에겐 불알이 없습니다. 하지만 난 젖가슴 달린 남잡니다. 나는 남자이자 왕입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세요!" 좌중이 조용해졌다.

페기의 개혁이 시작됐다. 젊고 유능한 인재를 선발해 '원로'로 선정하면서 기존 원로들의 반발을 눌렀다. 대사관 직원 박봉을 쪼개 왕궁 수리비와 지하수 공사비를 댔고, 부족 어린이들을 학교에 보내줄 후원자를 물색했다. 뇌물만 찔러주면 시험을 안 봐도 운전면허증을 발급해줬고, 돈뭉치를 건네면 없던 병실이 순식간에 생기던 부정부패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이 대신 7000명의 가족을 얻다

페기의 개혁으로 바뀐 것은 오투암뿐만이 아니었다. 페기 본인에게도 큰 변화가 생겼다. 미국 생활 30년 동안 그녀는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다. 집에선 소파에 혼자 앉아 밥을 먹고 TV를 봤다. 가나 출신 남편 윌리엄은 사업을 한다며 가나로 가더니 젊은 여인 두 명에게서 아이 둘을 얻었다. 그 후 6년간 페기는 버림받은 상처를 잊기 위해 일에만 매달렸다.

(왼쪽 사진)여왕이 되기 전 젊은 시절의 페기. /세종서적 제공

그런데 오투암에서는 주민들 모두가 그녀의 남편이고 아이였다. 여왕이 자기 주머니를 털어 깨끗한 수돗물을 끌어오고,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구급차를 들여오는 걸 봤다. 워싱턴포스트 보도 이후 후원자들도 생겼다. 주민들은 외쳤다. "자나깨나 하루 일과 중 맨 처음과 마지막에 하는 일은, 나나(왕)를 위해 신께 기도를 올리는 겁니다. 나나가 자랑스럽습니다!"

'여왕 페기'는 아직도 대사관에서 근무하며 1992년식 혼다 어코드를 몰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