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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알기

비밀편지속 정조(正祖) `도덕군자`는 아니었네 (조선일보 2009.02.10)

정조가 1797년 4월 11일 노론 벽파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 벽파가 인사에서 밀리고 있다는 소문을 전하는 한문 편지 에서‘뒤죽박죽‘만 한글로 썼다. 정경렬 기자 krchung@chosun.com

'政敵'으로 알려진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 299통 공개


'호로자식·젖비린내 나는 놈'… 신하에게 서슴없이 거친 표현

'나는 요사이 놈들이 한 짓에 화가 나서 밤에 이 편지를 쓰느라 거의 5경(새벽 3~5시)이 지났다. 나의 성품도 별나다고 하겠으니 우스운 일이다.'

'이 사람(정조 측근 서용보)은 그저 염량세태만 볼 뿐이다. 참으로 '호로자식'(胡種子)이라고 하겠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김매순(金邁淳·19세기 대표적 문인)이는 입에서 젖비린내 나고 미처 사람꼴을 갖추지 못한 놈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개혁 군주로 꼽히는 정조(正祖·1752~1800)의 개인적 기질과 노회한 정치술을 보여주는 비밀편지가 대거 발견됐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과
한국고전번역원 번역대학원은 9일 정조가 자신과 대립각을 세운 인물로 알려진 심환지(沈煥之·1730~1802)에게 보낸 비밀편지 299통을 공개했다.

정조가 세상을 떠나기 전 약 4년 동안 쓴 이 어찰(御札)은 조선시대는 물론 우리 역사상 군주가 한 신하에게 보낸 편지로는 최대 규모다. 심환지는 정조 재위시절 이조판서와 병조판서, 예조판서, 우의정을 지낸 노론 벽파(僻派)의 영수로 정조를 독살한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다.
'정조어찰첩'에는 신하들의 스승을 자처한 '성군(聖君) 정조'의 숨겨진 개인적 기질을 보여주는 사신(私信)이 많다. 비속어와 속담, 구어체가 수시로 등장한다. 그는 '개에 물린 꿩 신세'(犬�s之雉) '누울 자리를 보다'(占臥) '입에 맞는 떡'(適口之餠) '한 귀로 흘리다'(一耳流) 같은 표현도 썼다.

'정조어찰첩'에 수록된 편지는 정조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에는 한 편도 실리지 않았다.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정치 메모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심환지와 서찰을 통해 미리 입을 맞춰 상소를 올리게 하거나 인사(人事)문제를 사전에 논의하고 있다. 정조가 노론 벽파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웠다는 이제까지의 정조시대 정치사 해석이 뒤집힐 정도다. 1797년 10월 6일자 편지에서 정조는 심환지에게 지방관이 백성을 수탈하는 정리곡(整理穀·백성을 구휼하기 위해 만든 제도)의 폐단을 제기하도록 미리 지시했다. 심환지가 이튿날 정조 지시대로 이 문제를 발언하자 정조가 칭찬하며 표피(豹皮) 1장을 내렸다.

정조는 타계 13일 전인 1800년 6월 15일자 마지막 편지를 포함, 여러 차례 자기 병세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심환지에게 털어놓고 처방도 알려주고 있다. 정조 사후 일부에서 제기됐고 최근 소설을 통해 널리 알려진 '정조 독살설'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정조는 편지 말미에 '찢어버려라' '불에 태워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나 '정조어찰첩'은 심환지가 왕명을 어기고 편지를 보관함으로써 살아남았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에서 정조가 당시 벽파의 수장격인 신하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어찰을 공개하고있다. /정경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