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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알기

`정조 독살설(說)은 시골서 떠돌던 야담(野談)`(조선일보 2009.02.11)

학계, 대중문화계 '음모론' 일관되게 비판해 와


일부 "심환지에게 편지 썼다고 가깝다 볼순 없어"

정조가 노론 벽파(僻派)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 299통이 공개되면서 '정조 독살설'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조가 자신을 독살한 것으로 알려진 심환지에게 여러 차례 병세를 알리고 의논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독살설은 일단 힘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조 독살설'을 다룬 소설과 드라마·영화에 익숙한 대중들은 정조가 개혁 반대세력인 노론 벽파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음모론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조 독살설'은 마흔여덟 한창 나이인 정조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정치적 동반자였던 남인 일부 사이에 퍼졌다. 그러나 지금처럼 강력한 힘을 얻게 된 것은 1990년대 100만부 넘게 팔린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의 소설 《영원한 제국》과 이에 바탕한 영화·드라마 때문이다. KBS 역사스페셜이 2006년 8월 방송한 '조선 최대의 의문사―정조는 독살됐나?'도 독살설에 불을 지폈다.

이인화 교수는 이번에 공개된 정조 어찰에 대해 "조선시대 사대부에게 간찰(簡札)은 요즘의 전화 같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불과했다. 편지를 많이 주고받았다고 해서 정조와 심환지가 가까운 사이였다고 단정할 순 없다"고 말했다. 또 정조가 심환지에게 병세를 털어놓는 것도 위협인지, 그냥 떠보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씨는 "정조는 성군(聖君)이 아니라 권모술수에 능한 군주였다. 심환지에게 쓴 편지를 독살설을 반박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그동안에도 '정조 독살설'을 일관되게 비판해왔다. 《정조실록》에 재위 말년 정조의 병세가 자세히 기록돼 있고, 정조는 자기 병을 치료할 약의 종류와 양까지 신하들과 의논해 치료법을 결정한 전문가였기 때문에 독살당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정옥자 국사편찬위원장은 "독살설은 남인 쪽에서 주로 나온 얘기다. 요즘 사람들이 노론 벽파를 싫어하기 때문에 (독살설이) 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노론 벽파는 정조의 개혁에 반대한 측면도 있지만, 왕에게도 할 말은 하는, 입장이 분명한 원칙주의자들이지 타도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조가 심환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정국을 이끌어나간 것도 세력이 큰 벽파를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1년 '정조 독살설'을 정면으로 반박한 《정조대왕의 꿈》을 쓴 유봉학 한신대 교수는 "독살설은 정보에 어두웠던 시골 남인들에게서 나온 야담(野談)에 불과하다. 정조가 한달간 투병하는 것을 본 한양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1806년 김조순 등 노론 시파가 벽파를 일망타진한 '병인경화'(丙寅更化) 때도 독살설은 나오지 않았다. 정조가 독살됐다면 권력을 장악한 시파가 벽파를 몰아내면서 독살설을 내걸지 않았을 리 없다는 것이다. 독살설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개혁 군주에 대한 동정과 음모론에 약한 우리 문화가 만들어낸 허구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