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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문화재 발굴… 서울의 재발견 (조선일보 2008.12,15)

2008년 문화재 발굴… 서울의 재발견
궁궐 담장·육조거리·서울성곽… 옛 모습들 고스란히 드러나

숭례문 불타는 참사… 서울市·문화재委 태평홀 철거 갈등도

2008년 문화재 발굴의 키워드는 '서울의 재발견'이었다. 광화문 일대와 육조거리, 숭례문, 동대문운동장…. 파는 곳마다 마치 묻어둔 타임캡슐이 땅에서 솟듯이, 수백 년 전 서울 도심의 옛 모습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서울이란 도시는 한 꺼풀만 벗겨도 화석이 돼 버린 역사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는 곳이었다.

궁궐도 수문(水門)도 옛 모습대로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일대 땅 밑에선 광화문과 동십자각을 연결하는 총 길이 168m의 궁장(宮墻·궁궐 담장) 아랫부분이 거의 완벽한 형태로 나왔다. 광화문과 그 안쪽 흥례문 사이에서는 고종 때 만든 궁궐 안 담장과 용성문(用成門)·협생문(協生門)의 흔적이 발견됐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담장 유구(遺構·옛 건축물의 흔적) 아래층에서 동·서 회랑으로 추정되는 임진왜란 이전 조선 초기의 건물터까지 나왔다는 사실이다. 태조 당시 경복궁 창건 때의 모습까지 드러나게 됨에 따라 경복궁을 고종 중건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려던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새로 짓는 광화문만 해도 창건 당시의 유구 보존을 위해 높이가 48㎝ 올라가게 된다.


광화문광장 조성에 앞서 발굴된 세종로 이순신 장군 동상 뒤편에서는 옛 육조거리의 토층이 나왔다. 600년 전 조선 초기의 흔적은 현재의 지표 1.5m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복원을 앞두고 발굴작업을 벌인 숭례문(남대문) 아래에서는 박석(얇고 넓적한 돌)이 깔린 조선 후기의 도로면, 동서 성벽의 기초부와 주변 가옥터 같은 '조선의 숨결'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서울시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조성을 추진 중인 옛 동대문운동장 밑에서도 예상을 뛰어넘는 유적들이 나왔다. 남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청계천으로 유입되도록 만들었던 이간수문(二間水門)이 아치형의 자태를 세상에 드러냈고, 하도감 관아터와 50m에 이르는 서울성곽의 아랫부분도 발견됐다.

▲ 2008년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땅 속에 있던 자신의 맨 얼굴을 드러낸 해였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한 서울 도성의 지도〈조선성시도〉(1830) 위에 올해 새로 발굴된 곳을 표시했다.

영종도 여인에서 난중일기까지

백제 초기의 왕성(王城)으로 추정되는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에서도 제사용 대형 우물로 추정되는 '206호 유구'와 왕실의 창고 시설로 보이는 88개의 구덩이 등이 발굴됐다. 인천 영종도에서는 2000년 전의 성인 여성 인골이 온전한 상태로 출토됐다.

신라 '천년 고도'인 경북 경주에서도 수많은 발굴 성과가 있었다. 임해전지 북쪽에서 궁성으로 추정되는 대형 유적이 나왔고, 분황사가 황룡사에 버금가는 대형 사찰이었음도 밝혀졌다. 경북 고령에서 발굴된 대가야의 대형 고분에서는 순장(殉葬)이 확인됐다. 러시아 연해주의 콕샤로프카에서는 왕성에 필적하는 대규모 발해 유적이 발굴됐는데, 발해가 고구려의 전통을 강하게 계승했으며 연해주 중북부까지 세력을 미쳤음을 입증했다.

대전 상대동에서는 축구장보다 더 큰 고려시대 건물터가 나와 당시 귀족의 위세를 짐작하게 했다. 지난해 2만여 점의 유물과 청자 운반선이 나왔던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는 올해도 500여 점의 고려 청자가 인양됐다.

서지학적인 발견도 이어졌다. 충남 아산 현충사가 소장한 《충무공유사》에서는 지금까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 빠져 있었던 32일치의 일기가 발견됐는데,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부하 병사들을 아끼는 마음과 권율·원균 등에 대한 불편한 심정 등 충무공의 솔직한 육성이 담겨 있었다.

지난 2006년
인천 계양산성에서 출토된 《논어》 목간은 5세기 백제 때 만들어졌다는 것도 밝혀졌다.

▲ 2008년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땅 속에 있던 자신의 맨 얼굴을 드러낸 해였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한 서울 도성의 지도〈조선성시도〉(1830) 위에 올해 새로 발굴된 곳을 표시했다.

불타고 훼손된 문화재들

하지만 2008년은 새로운 '발굴' 못지않게 '훼손'의 상처가 큰 해이기도 했다. 지난 2월 10일에는 방화로 인해 국보 제1호 숭례문이 불타는 전대미문의 참사가 일어났다. 4월에는 충남 당진에서 한 부품제조업체가 공장 설립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발굴 현장에서 굴착기를 동원해 고려시대 고분으로 추정되는 유적을 훼손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8월에는 서울시가 시청사의 태평홀에 대한 철거를 시작하자 문화재위원회가 시청사를 사적으로 가(假)지정하는 등 갈등을 빚었는데, 최근 문화재위원회는 '태평홀을 현재 위치에서 높이만 낮춰 지하 1~2층으로 옮기기로 했다'고 밝혀 '황당한 결정'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 ▲ 2008년 서울 땅 밑에서의 주요 발굴들. 육조거리(9월 18일), 광화문 일대(11월 18일)와 숭례문(11월 25일)에서의 발굴현장 공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