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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最古) `태극문양` 나왔다 (조선일보 2009.06.04)

국내 최고(最古) '태극문양' 나왔다

국내 최고(最古)의 태극문양이 그려진 나무판(왼쪽)과 그것을 적외선 사진으로 찍은 모습./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7세기초 백제 나무판 나주서 발굴… 목간 31점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太極) 문양이 그려진 나무판이 전남 나주에서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성범)는 3일 "지난해 나주 복암리 고분군(사적 제404호) 주변 발굴 조사 중 대형 구덩이에서 칼 모양의 독특한 형태를 띤 나무판에 태극 문양이 그려진 목제품 한쌍이 출토돼 최근 보존 처리를 끝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나온 가장 오래된 태극 문양은 경주 감은사지(感恩寺址) 장대석에 조각된 태극문(682년)이었다.

이번에 발견된 나무판은 백제 사비시대(538~660년)인 7세기 초반에 의례용 기물(器物)을 장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태극문 아래에는 동심원문과 방사 형태의 무늬가 뚜렷하게 묵서(墨書·붓글씨)돼 있는데, 동심원문은 부여 왕흥사지 목탑터에서 발견된 사리장치(577년) 뚜껑의 문양과 아주 흡사해 주역이나 오행 등 백제의 도교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같은 곳에서 출토된 목간(木簡) 31점도 공개했다. 이 중 13점은 글씨가 잘 남아 있어 판독이 가능하며, 문서목간·꼬리표목간·봉함(封緘)목간 등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이제까지 국내에서 출토된 목간 중 가장 길고 큰 것이 나와 눈길을 끈다. 길이 60.8㎝, 너비 5.2㎝, 두께 1㎝ 크기에 총 57자의 붓글씨가 쓰여 있으며, '수미지(受米之)' '공지(貢之)' 등의 글자가 확인돼 지방 관청의 공납 과정을 기록한 행정문서 목간으로 추정된다.

또 백제의 촌락 이름이 적힌 목간도 최초로 확인됐다. '대사촌(大祀村)'의 인명과 가축(소) 실태를 기록한 이 목간은 '수전(水田)' '백전(白田)' 등 토지의 경작 형태와 '형(形)'이라는 토지 단위, '72석(石)' 등의 소출량이 적혀 있다. 관청에서 문서 꾸러미나 물건을 운송할 때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썼던 봉함목간도 국내에서 처음 출토됐다. '幷之'(합하다)처럼 '之(~하다)'가 쓰인 목간에서는 백제가 이두식 표현을 썼음을 알 수 있다. 김성범 소장은 "이번에 공개한 목간은 백제의 지방에서 발견된데다 종류와 내용이 다양해 문헌 자료가 부족한 백제사 연구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나주 복암리에서 출토된 목간들과 목제품./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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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복암리 유적 출토, 60㎝ 목간 포함

지방 관청에서 공납과 그 과정을 기록하거나 관청에서 문서나 물건을 운송할 때 기밀 유지를 위해 사용한 백제 목간이 공개됐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성범)는
나주 복암리 고분군(사적 404호) 주변 지역에 대한 지난해 발굴조사에서 이미 공개한 3점 외에도 28점의 백제목간이 더 있음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보존처리를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 의뢰, 최근 완료했다고 3일 말했다.

김 소장은 “이로써 복암리 유적 출토 목간은 총 31점으로 집계됐다”면서 “이는 지금까지 백제지역 중 목간 출토량이 가장 많은 부여 능산리사지(37점) 다음으로 많은 수량”이라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이번에 공개한 목간은 “백제의 중앙이 아닌 지방에서 발견된 목간인 데다 무엇보다 그 종류와 내용이 다양해 백제사, 특히 백제 지방통치제도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이들 목간은 복암리 고분군 인접 지점에서 드러난 지름 5.6m, 깊이 4.8m 가량 되는 백제 사비시대(A.D. 538-660년) 대형 원형 수혈유구(일종의 구덩이)에서 일괄 출토됐다.

새로 공개한 28점 중 13점은 묵서(墨書.묵글씨)가 잘 남아있고 판독이 가능하며 그 종류는 문서목간, 물품 꼬리표(付札) 목간, 중국에서는 봉검(封檢)이라 하는 문서 봉함 목간(封檢), 다면(多面) 목간(나무 여러 면을 깎아 글씨를 쓴 목간), 습자(習字) 목간(글씨 연습용) 등을 포괄한다고 김 소장은 말했다.

이 중 한 목간은 길이 60.8㎝, 너비 5.2㎝, 두께 1㎝로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토된 목간 중 가장 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목간에는 총 57자에 이르는 묵서가 씌었다고 추정되며, 그 중 ’수미지…’(受米之…), ’공지’(貢之) 등과 같은 문구가 확인된다.

김 소장은 “이는 지방 관청에서 공납과 그 과정을 기록한 행정문서 목간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나아가 국내 최초로 출토된 봉함목간은 주로 관청에서 물건이나 문서 꾸러미를 운송할 때 기밀 유지를 위해 봉투처럼 사용한 것이라고 김 소장은 덧붙였다.

나아가 신라의 촌락문서에 대비되어 백제의 촌락문서 정도라고 할 수 있는 목간도 발견됐다.

이 목간에는 ’대사촌’(大祀村)이라는 마을의 인명과 가축 실태, 그리고 수전(水田.논), 백전(白田.미상), 맥전(麥田.보리밭 혹은 보리논) 등과 같은 토지의 경작 형태를 보여주는 내용과 더불어 ’형’(形)이라는 토지 단위 및 ’72석(石)’ 등의 소출량이 보인다고 연구소는 말했다.

이런 내용은 “백제 경제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를 제공한 것”이라고 김 소장은 설명했다.

나아가 ’병지’(幷之.아우르다)처럼 문장이 끝났음을 의미할 때 사용한 글자(혹은 부호)인 ’之’라는 백제식 이두 표현이 보이며 다른 한 쌍의 목간에서는 태극문양이 확인됐다.

이 태극문양은 경주 감은사지 장대석에서 확인된 국내 최고(最古)의 태극문(682년)보다 앞서는 것으로 주역이나 오행(五行), 혹은 그와 밀접한 도교사상의 흔적을 말해주는 자료로 추정된다.

이들 목간은 함께 출토된 백제시대 토기와 기와 등으로 볼 때 7세기 초 유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연구소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