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바로알기

`다산`의 숨결..남양주 실학박물관 개관 (연합뉴스 2009.10.23)

'다산'의 숨결..남양주 실학박물관 개관(종합)

8년만에 완공..유물.자료 180여점 전시

조선 후기 실학사상과 관련된 유물과 자료를 한자리에 모은 실학박물관이 23일 문을 열었다.

실학박물관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다산 정약용 선생 유적지 바로 옆 4천75㎡에 연면적 2천38㎡ 규모로 건립됐다.

실학박물관은 상설전시실 3곳과 기획전시실, 80석 규모의 강당, 부대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제1전시실에서는 조선 후기 실학의 형성 과정, 제2전시실은 실학의 전개 과정, 제3전시실에서는 천문관측 기구나 책력, 지도류 등이 각각 정리돼 있으며 별자리찾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상설전시실에는 실학의 대표적 저서인 유형원의 '반계수록', 정약용의 '경세유표', 박제가의 '북학의', 조선시대 아라비아식 휴대용 천문기기인 '아스트로라베(Astrolabe)', 근대적 지도학에 영향을 끼친 '곤여전도' 등 130여점이 전시됐다.

특별전시실에서는 개관을 기념해 조선후기 최대 개혁정책 중 하나로 평가되는 대동법과 이를 주창한 김육의 저서인 '잠곡유고', '김육초상', '갑회첩', '십전통보' 등 관련 유물 50여점을 선보인다.

경기문화재단은 이날 김문수 도지사, 진종설 도의장, 김상곤 도교육감, 이석우 남양주시장, 공명식 남양주시의장, 유재천 상지대총장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실학박물관 개관식을 열었다.

개관식 후에는 행사장 인근 공터에서 한.중.일의 전통 화포인 총통, 홍이포, 조총 발사 시연회를 열었다.

김 지사는 기념사에서 "실학은 지배자 위주가 아니라 백성의 복리후생을 생각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양심"이라며 "실학박물관은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라 자신을 성찰하고 역사를 되돌아 볼 뿐만 아니라 미래를 구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문화재단은 박물관 개관을 기념해 30∼31일 서울 프레스센터와 실학박물관에서 국제실학학술회의를 개최한다.

경기문화재단은 2001년 10월 실학박물관 건립 공사에 착수해 2003년 말 완공할 예정이었으나 건립부지 결정과 매입이 지연되면서 개관이 늦어졌다. 실학박물관 건립에는 180억원이 투입됐다.

실학박물관장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실학박물관 건립을 계기로 실학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발전시킬 계획"이라며 "인근의 다산 유적지와 함께 수도권의 문화휴식공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실학박물관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무료로 운영된다.

<다산의 체취 묻어나는 실학박물관>

내달 23일 개관, "학문과 사상 전시"

다음 달 23일 문을 여는 실학박물관(관장 안병직. www.silhakmuseum.or.kr)은 그 주된 전시품이 구상이 아니라 학문과 사상과 같은 '추상'이라는 점에서 여타 박물관과 결을 달리한다.

경기문화재단이 설립, 운영하는 실학박물관은 '실학'(實學)의 상품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위치를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다산 유적지 앞으로 잡았다. 이 다산 유적지는 크게 그의 생가터와 무덤으로 나뉜다.

다산 정약용이 조선 실학을 집대성했다는 데는 이론이 없는 만큼, 그의 체취가 물씬한 이곳을 박물관 자리로 고른 것이다.

박물관은 대지 4천75㎡에 2층 규모이며 연면적은 2천993㎡다. 전시공간은 1개의 기획전시실과 3개 의 상설전시실로 구성되며, 전시 총 면적은 960㎡다.
건립공사는 2006년 5월17일 시작해 지난 4월 30일 마무리했다. 부지매입비와 건축비 등을 포함한 총사업비는 135억800만원이다.

3개 상설전시실에는 총 130여 건의 전시물을 선보인다.
'실학의 형성'이란 주제를 내건 1전시실에서는 실학 태동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서세동점(西勢東漸)을 배경으로 했음을 보여주면서, 자명종(自鳴鐘)과 조총(鳥銃) 등 서양 신문물과 그에 따른 조선 사회의 변화 양상을 소개하고, 한백겸ㆍ이수광ㆍ김육ㆍ박세당ㆍ유형원 등을 그 선구자로 자리매김한다.

제2전시실 '실학의 전개'에서는 실학 흐름과 그 분포도를 제시한다. 경세치용학(經世致用學)에서는 이익ㆍ이중환ㆍ정약용, 이용후생학(利用厚生學)에서는 박지원ㆍ박제가ㆍ홍대용ㆍ신경준ㆍ서유구 등을 각각 든다.
또, 실사구시학(實事求是學)에서는 김정희를 거론하고, 조선학(朝鮮學)에서는 국어와 역사, 지리, 농서(農書) 등으로 나눠 유희ㆍ안정복ㆍ유득공ㆍ한치윤 등을 들며, 근대로 향하는 실학의 흐름에는 최한기와 박규수를 내세운다.

제3전시실 '천문과 지리'에서는 조선 초기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통한 별자리 찾기 체험 코너를 제공하고, 천문관측 기구나 책력, 지도류 등을 전시한다.

신생 박물관인 까닭에 관련 유물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약점은 전자책이나 애니메이션 같은 보조도구를 활용해 극복하고자 했으며, 실학의 세계성 확인을 위해 동시대 동아시아 및 세계사의 관련 흐름을 비교하는 데도 주력했다.

개관 특별전 '김육(金堉)과 대동법(大同法)'을 통해서는 김육과 대동법을 총정리하고자 했다.




양수리④ 정약용 유적지, 다산이 예서 태어났구나




◇ 오후 4시, 세미원 ▶ 다산 정약용 유적지(4㎞, 약 10분)
두물머리 아래에 들어앉은 남양주 마현(馬峴) 마을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정약용이 나고 묻힌 곳이다. 정약용이 어린 시절에는 뛰놀고, 말년에는 여유당(與猶堂)을 지어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는 촌락이다.

마현 마을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정약용을 기리는 유적지가 조성돼 있다. 자그마한 민속촌처럼 꾸며져 있어서 어린아이들과 함께 들르면 좋다.




정약용이 마현 마을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사도세자 문제로 조정이 한창 시끄럽던 1762년, 생원시에 급제한 정재원이 관직에 오르기를 포기하면서부터이다.

노론과 소론, 남인이 얽히고설킨 조정에서 영원히 물러나기로 결심한 그는 마현 마을로 낙향한 지 24일 만에 넷째 아들인 약용을 얻는다.

정재원은 정약용이 당쟁에 휘말리지 않고 평탄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명을 '귀농(歸農)'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약용은 그의 소망과는 정반대로 정조에게 중용돼 국방부 차관보에 해당되는 병조참의에 오른다. 그리고 거중기를 고안해 수원의 화성을 쌓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즉위하면서 정약용의 삶은 완전히 바뀐다. 천주교도를 탄압한 신유박해와 황사영 백서 사건에 연루된 그는 강진으로 유배돼 18년을 보낸다. 아버지의 염려와는 정반대로 당파 싸움에서 밀려 농촌에 귀의한 셈이었다.

마현 마을로 귀향한 그는 눈을 감기 전까지 목민심서, 흠흠신서를 완성한다. 정약용은 생의 시작과 마무리를 합쳐 절반 이상을 이곳에서 보냈다.




다산 정약용 유적지에는 생가인 여유당, 다산 기념관, 다산 문화관, 다산과 부인 홍씨의 합장묘 등이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전형적인 가옥인 '여유당'은 낮은 돌담에 둘러싸여 있다.

자그마한 문을 통과하면 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마주 보며 서 있고, 방에는 정약용이 붕우와 담소를 나누는 모형이 설치돼 있다.

정약용이 당호를 '여유당'이라고 지은 것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머릿속에 품었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 문제라고 토로했다. 그래서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여(與)여! 겨울의 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유(猶)여! 사방이 두려워하는 듯하거라'는 구절처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생활하길 원했다.

하지만 그가 여유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본질적인 이유는 모함과 질시로 가득한 정쟁을 겪으면서 환멸적인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산 기념관은 정약용의 업적을 모아놓은 공간이다. 다산의 친필 서한과 서책의 사본, 축소 제작된 거중기와 도르래 등이 전시돼 있다. 또한 다산 문화관에서는 정약용이 설계한 배다리를 이용해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소를 참배하러 가는 모습을 담은 능행도, 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설명을 통해 실학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마현 마을은 앞쪽으로 한강이 흐르고 뒤로 예봉산과 운길산이 버티고 있어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췄다. 풍수지리학에서 명당으로 통하는 곳이다.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무덤은 여유당 뒤쪽의 언덕 위에 있다. 부인의 이름이 함께 적혀 있는 묘비만 없다면 한 사람의 봉분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크지 않다.

한편 경기문화재단은 다산 정약용 유적지 옆에 실학박물관을 건설하고 있다. 건물이 완공되면 이론 중심의 성리학에서 벗어나 실생활에 도움이 되고자 했던 학풍인 실학과 관련된 다양한 유물이 공개될 예정이다. 031-590-2481
▲ 관람 시간 : 오전 9시∼오후 6시, 월요일 휴관
▲ 관람료 : 무료
▲ 서울에서 찾아간다면 : 청량리에서 양수리로 가는 8번, 2228번 버스를 타고, 다산 유적지에서 하차. 강변 역에서 2000-1번 버스를 타고다산 유적지에서 하차


<사람들> 안병직 실학박물관장

"진열품은 학문과 사상, 실학의 메카로 육성"

전날 잠깐 내린 비 때문이었을까? 솜사탕 같은 구름이 뭉게뭉게 핀 8일 가을 하늘은 더욱 청명했다.

팔당댐을 지나고 팔당호 강변도로를 따라 5분 정도 차를 달리다 만난 '다산 정약용 선생 유적지'라는 도로 안내판를 따라 샛길로 빠지니, 이내 다산의 생가터와 묘소에 다다른다.

유적지 입구 한쪽엔 '실학박물관'이란 간판이 우뚝하다. 다산 유적지 전면에 철근 콘크리트 양식이긴 하지만, 목재 양식의 강화 패널을 붙인 깔끔한 지상 2층짜리 신축 건물이 바로 실학박물관이다. 남양주시 조안면 소재 이 박물관이 다음달 23일로 예정된 개관을 위해 한창 단장 중이다.

1층 특별전시실과 2층 상설전시실은 아직 비어 있어 조금은 을씨년스런 모습이지만, 조만간 '실학'을 선전하고, 홍보하며, 교육하는 각종 콘텐츠를 갖추게 될 것이다.

내부 회의를 마친 안병직(安秉直.73) 실학박물관 관장이 "잠깐만 걸으면 된다"는 말로, 인사를 건네는 기자를 대뜸 박물관 인근 식당으로 안내한다.

그를 따라 무성한 연밭 사이를 지나 5분가량 걸었을까? 카펫 같은 팔당호가 펼쳐진다. 그림 같은 풍광이다.

식당 창 너머로 호수를 내려다보며, 닭 백숙을 시켜 놓고는 한국 경제사의 대가이자, 지금은 뉴라이트 운동의 대부이면서,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서울대 경제학과 스승이기도 한 안 관장은 이렇게 말문을 꺼낸다.

"우리 실학박물관은 두 가지 점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중입니다. 첫째, 으레 박물관이라면 유물이나 소장품 중심 전시를 주로 하지만, 우리 박물관의 진열품은 실학이라는 학문과 사상입니다. 학문과 사상을 (박물관에서) 전달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지요. 우리는 그런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상설전시실 3군데는 각각 '실학의 형성' '실학의 전개', 그리고 '천문지리'로 주제를 잡았다고 했다. 이를 통해 실학이 어떻게 태동해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한편, "실학은 결국 천문지리학으로 발전했으니 이 부문(천문지리)은 별도 코너로 독립시켰다"는 것이다.

개관 특별전으로는 '대동법과 김육'을 잡았다고 귀띔했다.

"조선시대 세제개혁은 개국 초기엔 과전법이 시원을 열었다면, 대동법은 임진왜란 이후 모든 세금을 쌀로 통일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지닙니다. 다행히 김육 선생 집안에서 각종 고문서 1천점 가량을 기증했기에 개관 특별전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실학박물관의 두 번째 실험은 무엇일까? 그가 팔당호를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실학박물관은 관람객을 흡인할 수 있는 매력을 두루 갖췄습니다. 다산 유적지가 있고, 수중사라는 전통사찰이 있으며, 저렇게 아름다운 팔당호가 있습니다. 더불어 경기도에서 이 일대에 생태공원을 추진 중입니다. 비록 서울이나 남양주 시내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이런 호조건을 갖춘 박물관도 드물 것입니다."
김성환 박물관 학예실장은 "다산 유적지만 해도 연중 10만명이 찾는다"면서 "수중사는 다산 선생도 생전에 애용하던 곳으로 풍광이 특히 멋진 사찰"이라고 거들었다.

도심을 벗어난 박물관, 그 새로운 실험을 실학박물관이 시도하는 셈이다.

이들 주변 시설과 연계를 위해 "무엇보다 남양주시가 운영 주체인 다산 유적지는 실학박물관이 위탁 관리를 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안 관장은 덧붙였다.

실학박물관은 경기문화재단 산하 박물관ㆍ미술관으로는 다섯 번째로 문을 열게 된다. 경기도박물관과 경기도자박물관, 백남준아트센터, 경기도미술관에 이은 5번 타자이며, 실학박물관 뒤로는 경기도창작센터와 경기도어린이박물관, 전곡선사박물관이 타석에 대기 중이다.

지난 3월, 제자인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초대 실학박물관장에 임명한 안 관장은 초창기엔 일주일에 2-3일 정도 박물관에 들렀지만, 개관을 앞둔 요즘은 1시간 이상이 걸리는 경기 과천 자택에서 이곳으로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업무를 챙긴다.

개관 준비와 함께 안 관장이 최근 박차를 가하는 곳은 예산과 인력 확보 문제다.

"내년도 예산안에서 각 기관이나 부서별로 (올해보다) 20% 줄여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난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이제 출범하는 문화기관 예산을 깎을 수는 없지요. 연구직 인력도 7명 정도 보충할 생각입니다. 더불어 이에 걸맞게 연구동도 신축해야 합니다. 다행히 김 지사가 적극 도와주려 합니다."
이렇게 해서 실학박물관을 명실상부한 실학연구의 메카로 키우겠다고 안 관장은 강조했다.

그 일환으로 개별 실학자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하는 책자도 "50권 가량 내는 토대를 내 임기 중에는 마련할 생각"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런 토대들을 마련한 다음 "미련없이 물러날 것"이라고 안 관장은 말했다.



<<안병직 실학박물관장>>




<<남양주 실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