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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의 카메룬 감독 (동아닷컴 2009.12.24)

‘아바타’의 카메룬 감독

지독한 혁신자 카메룬, 21세기 영화의 새로운 세계를 열다


'아바타'의 독주가 무섭다.

이 영화는 12월 둘째 주 전 세계 109개국에서 동시 개봉해 주말에만 2억32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개봉 첫 주차에 20억 달러는 무난히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전 세계 박스 오피스 역사상 여섯번째로 큰 수익인데, '아바타'가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처럼 사전 인지도로 초기 흥행의 발판을 마련하는 시리즈물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성적이라 할 수 있다.



'타이타닉'의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12년 만에 선보이는 영화 '아바타'의 홍보 포스터

최첨단 3D 기술로 무장한 SF 영화 '아바타'는 '터미네이터' '타이타닉'을 포함해 굵직한 작품들로 영화사의 여러 페이지를 장식한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신작이다. 이미 기존 영화들을 통해 충분히 보여준 바 있지만 이 양반, 큰 판 벌리는 데는 정녕 선수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는 블록버스터의 제왕

'아바타'는 3억 달러의 순 제작비와 1억 5000달러의 마케팅비를 썼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5000억 원이 넘는 금액이다. 일 년 동안 전체 한국영화 제작에 들어가는 액수인 4000여 억 원 보다(그것도 잘 나가던 시기에!)도 많은 규모이다.

요즘처럼 불황인 때에 이 정도 돈이면 거의 백 년을 이어온 제작사인 이십세기 폭스사의 명운을 결정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카메룬의 21세기형 화끈한 도박은 성공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처럼 거대한 도박을 밀어붙인다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다.

제임스 카메룬은 왜 이렇게 엄청난 판을 벌였을까. 이런 도전의 의미는 무엇일까.

최근 몇 년간 전 세계 영화계는 3D라는 거대한 지각변동을 준비해왔다. 스크린 속 평면 영상이었던 영화가 이제는 관객들이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3차원 형식으로 진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여러 장벽들이 있다. 2D보다 1.5~2배 정도 더 비싼 제작 장비가 있어야 하고, 평소 촬영보다 더 복잡하고 많은 카메라를 동원해야 하며, 이를 상영할 고가의 스크린과 영사기가 있어야 한다.

제작과 배급 중 어느 쪽이 초기 투자위험을 감수하느냐 하는 업계 내부의 알력도 있고, 과연 이 엄청난 비용이 드는 도전에 관객들이 호응해줄지도 불투명하다.



3D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 이 영화는 12월 둘째 주 전 세계 109개국에서 동시 개봉해 주말에만 2억32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영화의 미래가 무엇? 바로 3D 영화!

그럼에도 3D 영화 제작은 조금씩 진행되어왔다. 몇 초짜리 짧은 동영상에 불과했던 초창기의 영화가 소리를 내고, 컬러로 바뀌고, CG 기술과 결합하였듯, 영상산업의 집약체인 영화는 앞으로 앞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수익성의 개선이라는 업계의 절실한 필요 역시 원동력이 되어 북미를 중심으로 3D 스크린이 증가세를 보였고 3D를 도입한 영화도 꾸준히 선을 보였다.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3D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도 지난해에 비해 올해 스크린 수가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간단하게 말해 앞으로 대세는 3D다.

제임스 카메룬은 이러한 대세를 이끌 선구자로 나섰다.

12년 전 '타이타닉'으로 혁신적인 CG 기술을 선보임과 동시에 영화 역사상 최대 수익을 올려 자칭 '세상의 왕'이 된 그가 이번엔 3D 영화의 리트머스 시험지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 엄청난 금액을 쏟아 부은 영화가 수익을 낼 때까지 연출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역사를 선도하는 혁신자에 걸맞은 승부사의 기질과 배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바타'는 전 세계 1만4500 여 개의 스크린에서 개봉을 했다. 그리고 이 중 25% 정도인 3600 여개 관이 3D 스크린이다.

하지만 이 3D 스크린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전체 수익의 56%를 차지한다. 이마저도 일반 스크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매진되고 있다. 관객들은 '아바타'를 제대로 보기 위해 일반 상영관의 두 배에 이르는 3D 티켓 값을 기꺼이, 그리고 적극적으로 지불하고 있다.

이로써 제임스 카메룬은 3D 영화의 잠재성을 둘러싼 오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3D 블록버스터 '아바타'로 12년 만에 신작 내놓은 제임스 카메룬 감독. ‘타이타닉’으로 현란한 CG 기술을 작품에 반영했던 카메룬 감독은 '아바타'를 통해 3D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카메룬 "영화가 수익이 날 때까지 연출료 안 받겠다"

2008년 한 컨퍼런스에서 '아바타는 3D 세상의 원년이 될 것'이라던 한 전문가의 예언("Avatar will be the BC/AD of the 3D cinema world", Phil Clapp, CEO of the UK's Cinema Exhibitors Association)은 현실이 됐다.

물론 기술의 혁신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스토리의 식상함을 간과했다는 비판도 있다. 소재나 스토리 라인이 어디서 많이 본 듯 익숙하고, 여러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섞인 잡탕식 구성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적지 않다. 일견 동의한다. 나 역시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너무나도 쉽게 예측했으니까.

하지만 이것이 기술에 신경을 쓰다가 스토리를 놓친 결과라는 비판에는 좀 다른 생각이다. 이미 전작들에서 파격적인 소재와 상상력이 돋보이는 캐릭터로 그 창의력을 마음껏 발산했던 카메룬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그는 다작()을 하는 감독이 아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매 영화마다 실험 정신을 가지고 완벽을 추구하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다. 나이가 들어 감이 떨어진 거라는 단순한 추측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필자는 오히려 이것이 카메룬 감독이 의도한 결과라고 본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은 판도라 행성을 현실과 혼동할 만큼 몰입해야 한다. 그래서 가상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 속 인간이 자신의 아바타와 정신적으로 링크 되어 움직이는 것처럼, 관객들 역시 영화 속 아바타에 충분히 자신을 투영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이 가장 기대하는 것이며, 따라서 영화의 성공을 좌우하는 키포인트이다.

그런데 만일 관객들이 낯선 캐릭터와 복잡한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면 이런 몰입은 자연히 방해 받게 된다. 일반적인 영화에서는 가장 중요하기 마련인 창조적인 스토리가 '아바타'에서는 가장 큰 즐거움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머리 좋은 카메룬 감독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너무 많은 것을 담기보다는 넘칠 수 있는 요소를 희생시켰던 것이 아닐까 한다. 2시간 40분의 러닝타임이 지겹지 않았던 것도, 바로 이 영화가 쉽게 지칠 수 있는 두뇌게임보다는 보는 즐거움으로 관객의 혼을 빼앗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아바타'는 헐리우드가 제공하는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진수이지만 스토리는 여전히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2시간 40분간의 전혀 다른 차원으로의 여행

가상의 캐릭터인 '나비 족' 에서도 카메룬 감독의 비상한 재치를 엿 볼 수 있다. 영화 전반에 등장하는 이들의 호감도는 영화의 성공여부를 결정짓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이다. 인간과 너무 비슷하면 참신성이 떨어질 것이고 인간과 너무 다르다면 '아바타'로서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반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개체)들은 인간은 아니나 인간과 최대한 교감할 수 있는 캐릭터여야 하고, 섬세하게 살아 움직이지만 관객들에게 두려움을 주지는 않아야 한다. 가상 캐릭터를 창조해 낸 모든 CG 영화의 숙제였던(그리고 푸는 데 대부분 실패한) 이 쉽지 않은 줄타기를 카메룬은 '역시!' 라는 찬사가 나올 만큼 훌륭하게 요리해냈다.

'아바타'를 기점으로 영화는 다시 한번 진화했다.

더 이상 발전할 것이 없어 보일 정도로 놀라운 기술의 발전을 거듭했던 21세기 영화를 카메룬 감독은 또 한번 새로운 경지로 끌어 올렸다. 이와 함께 전 세계 영화산업의 거대한 변화에도 물꼬를 텄다.

이제 영화계에는 카메룬 감독이 보여준 성공을 등대 삼아 거대한 새 판짜기가 진행될 것이다. '2009년 12월,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아바타'의 포스터 카피는 전 세계 관객들에게 던지는 카메룬의 예언이었던 셈이다.

12년 전 카메룬 감독은 '나는 세상의 왕이다'라는 오스카 수상 소감으로 질투와 부러움을 샀다. 영화 '타이타닉'의 한 대사를 차용한 것이었지만 한편으론 너무 잘난 체를 한다는 욕도 좀 먹었다.

하지만 만일 그가 올해에도 이런 소감을 말한다면 관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비싼 티켓 값을 내고 2시간 40분 동안 좌석에 꼼짝없이 앉아 콧등에 빨간 자국을 만들어야 했음에도 즐거운 표정으로 상영관을 나선 바로 그 관객들은 말이다.

정주현 / 영화진흥위 코디네이터 janice.jh.j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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