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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국제분야

① 그리스 디폴트 이후의 시나리오는? (조선비즈 2011.09.14 15:53)

[유럽진단] ① 그리스 디폴트 이후의 시나리오는?

그리스의 디폴트(국가 부도)가 임박한 것일까.

그리스가 '사실상 디폴트'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그리스 국채 금리와 신용부도스와프(CDS)는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고, 제2차 구제금융이 이뤄질지 점점 불확실해지고 있다.

그리스가 "3500억 유로에 달하는 국가 채무를 더는 감당할 수 없다"고 선언을 하지 않았을 뿐,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명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리스가 '질서있는 디폴트'를 선언하고 손실이 확대하지 않게 방어하는 것뿐이란 신중한 조언도 나오고 있다.

그럼 도대체 그리스가 실제로 디폴트 될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리스 디폴트가 왜 세계 경제 전체를 흔든다는 얘기일까?

◆ 첫번째 시나리오 = 다시 오는 2008년

① 1단계 = 그리스 디폴트는 유로존 은행위기로 이어진다.

그리스의 디폴트로 가장 먼저 그리스 국채를 가지고 있는 은행들이 타격을 받게 된다. 단순히 그리스 은행들뿐만 아니라 그리스 국채를 많이 가지고 있는 다른 나라 은행들도 문제다. 현재 그리스 국채는 아무래도 가까운 유럽 은행들이 많이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은행들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디폴트를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라도 하듯,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14일 프랑스 대형은행 소시에테 제너럴과 크레디 아그리콜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씩 하향 조정했다.

이 두 은행들의 공통점은 그리스 국채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

특히 프랑스 은행들이 그리스 국채를 많이 들고 있는데
국제결제은행(BIS)의 6월 보고서를 보면 프랑스 은행권의 그리스에 대한 위험노출도(익스포저)는 유로존에서 가장 큰 567억달러에 달한다. 자국 은행들이 크게 엮여 있는 프랑스는 일부에서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는 루머조차 돌고 있다.

손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도미노처럼 확산할 것이다. 증시에서는 은행권을 중심으로 '패닉셀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요제프 아커만 도이치뱅크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유럽 은행들이 보유하는 유로존 국채를 현재 시장 가치로 재평가하면, 이를 견뎌낼 수 있는 은행들은 거의 없다"고 말해, 부채위기가 은행권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스페인 전체에 대한 글로벌 은행의 위험노출도는 2조달러에 달한다. 유로존에서 그리스의 GDP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음에도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확산 위기' 때문이다.

② 2단계 = 자금경색…파생상품 판매자도 파산

은행들은 매일 중앙은행으로부터 단기 자금을 빌리는데 그리스 은행권의 신뢰가 떨어져 유럽중앙은행(ECB)으로부터 자금을 더는 조달할 수 없게 되면 은행들이 줄도산할 것이 뻔하다.

씨티그룹은 ECB가 자금을 공급해주지 못하면 그리스 은행권은 1000억유로의 자금 고갈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금고갈이 지속되면 은행들도 현금을 쥐고 내놓지 않게 된다. 자기가 거래하는 은행이 도산될지 모르면 예금자들은 은행으로 달려갈 것이다.

은행이 돈을 풀지 않으면 재정 상태에 문제가 없는 기업들까지도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다. 경제·산업 활동에 지장이 생기고 정치·사회적 불안감이 고조된다.

그리스 국채를 대신 지급해 주는 계약인 신용부도스와프(CDS) 판매자도 파산 위험에 몰릴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전민규 이코노미스트는 "그리스 국채가 부도에 빠지면서 그리스 국채의 CDS 판매자도 파산하게 되고, 이를 바탕을 만들어진 파생상품도 위험에 빠진다"고 분석했다. 전 이코노미스트는 "유럽 은행들에 단기 자금을 많이 빌려준 미국의 머니마켓펀드(MMF)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며 미국의 단기 금융 시장도 심각한 경색을 겪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리스가 금융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가 지난 2001년 재정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모라토리엄을 선언, 국가 부도에 빠진 뒤 거의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경제 대국'의 위상을 되찾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③ 3단계 = 2008년의 재래

문제는 이것이 전 세계로 전염될 경우다.

유럽 은행들은 전 세계에 자금을 투자해 놓고 있다. 이 자금이 대량으로 자국으로 돌아갈 경우 다른 나라에도 위기가 전염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2008년의 재판. 세계가 우려하는 시나리오다.

◆ 두번째 시나리오 =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하게 되면 유로존 탈퇴 가능성도 커진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리스가 부채 상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일시적으로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로존 정상들이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디폴트가 임박한 가운데 옛 화폐인 '
드라크마화'로의 복귀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그리스가 정말 유로존 탈퇴를 결정한다면, 우선 그리스 정부가 가진 유로화 자산을 모두 자국 통화인 드라크마화로 환산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유로 대비 드라크마 가치가 하락하면서 그리스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경제 성장률에 도움이 된다. 다만 그리스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유로화 사용국에 비해 크게 낮아지게 된다. 또 유로존 선진국이 재정불량국의 구제금융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가라앉힐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 예금자들이 대거 예금을 인출해가면서 그리스 은행들이 파산을 피하지 못할 것이란 위험도 있다.

씨티그룹의 윌리엄 뷰터는 "최근 들어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이 커졌다"며 "그리스가 드라크마화로 복귀하게 되면 그리스뿐만 아니라 나머지 16개 유로존에 닥칠 경제·금융 후폭풍이 엄청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로존에 대한 신뢰 자체가 무너지면서, 그리스 다음으로 유로존을 탈퇴할 재정불량국이 어디일지 투자자들이 불안해할 것이란 말이다.

뷰터는 "다른 국가들도 줄줄이 유로존을 탈퇴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투자자들은 더는 자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고,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같이 유로존에 계속 남아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들로만 자금이 몰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 세번째 시나리오 = '질서있는 디폴트'

희망적인 시나리오는 없을까

전문가들은 그리스가 무방비상태로 디폴트에 빠지기 보다, '질서있는 디폴트'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질서있는 디폴트는 그리스가 채무 불이행 사태에 처했음을 인정하고 손실 방어와 자본 충당을 준비하면서 디폴트를 선언하는 것을 말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로존 은행권이 자금 충당에 나서고 그리스 디폴트에 따른 손실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그리스 디폴트로 인한 손실 방어를 위해 유로존의 38개 은행이 300억~920억 유로의 자본을 충당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은행들이 손실을 보는 과정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질서있는' 처리가 이뤄지기 때문에 금융시장에 주는 영향은 단기간에 끝나고 사태는 점차 진정될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가 '질서있는 디폴트'를 인정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리스가 실제로 디폴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면 당장 금융시장이 혼란에 휩싸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의 전 이코노미스트는 "그리스가 겉으로는 말을 하지 않아도 현재 디폴트를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