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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가 고통에 굴복하라면, 나는 알라를 거부하겠다` (조선일보 2010.10.09 03:01)

"알라가 고통에 굴복하라면, 나는 알라를 거부하겠다"

입력 : 2010.10.09 03:01

이단자 아얀 히르시 알리
아얀 히르시 알리 지음|추선영 옮김|알마|2만2000원

소말리아 출신 인권운동가 이슬람권 對여성 폭력 증언… 절대복종이 낳는 재앙 일깨워

'2004년 11월의 어느 아침, 테오 반 고흐는 낡은 검은색 자전거를 타고 암스테르담의 영화사로 가는 출근길을 서두른다. 부예리라는 이름의 모로코 남자가 권총과 두 개의 푸주칼을 지닌 채 테오가 큰 도로로 나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부예리는 총을 들어 리나외스트라트 거리로 막 들어서는 테오를 향해 몇 발을 연거푸 쏜다. 쓰러진 그의 몸에 네 발의 총알을 더 박아 넣었고 마지막으로 푸주칼로 그의 목을 벤다. 다른 한 개의 칼은 다섯 장짜리 편지와 함께 테오의 가슴에 꽂힌다. 편지의 수신인은 나였다.'

전형적인 스릴러물의 도입으로 읽히지만, 영화가 아니다. 실제 이야기다. 테러가 나기 두 달 전, 테오 반 고흐라는
네덜란드의 젊은 영화감독은 알라에 대한 이슬람 여성들의 저항을 표현한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복종 1부'란 제목의 이 단편영화에는 간통했다는 이유로 채찍질당하는 여성, 끔찍하게 싫은 남자와 강제로 결혼한 여성, 일상적으로 폭행당하는 여성, 삼촌에게 강간당한 여성이 등장한다. 네 명의 여성은 선언한다. 알라에 대한 복종이 그들을 큰 불행에 빠뜨리는데도 알라가 침묵한다면 더 이상 그에게 복종하지 않겠노라고.

알마 제공
테오 반 고흐를 살해한 것은 이슬람을 모욕한 영화를 만든 데 대한 처참한 복수였다. 또 다른 푸주칼에 꽂혀 있던 편지의 수신인인 '나'는 테오와 함께 영화를 제작한 아얀 히르시 알리로 이 책의 저자다. 이름 앞에 '이단자'라는 말이 붙은 것은 테오와 함께 이슬람을 모욕한 그녀 역시 이슬람 신자였기 때문이다.

책은,
소말리아에서 태어났으나 먼 친척 남자와의 강요된 결혼을 피해 난민 신분으로 네덜란드로 망명한 뒤 유럽 내 이슬람 여성들을 위한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회고록이다. 그 내용은 단순한 개인 삶의 기록만이 아니다. 소말리아 내전의 실상을 전하는 동시에 이슬람 여성들의 참혹한 인권 유린 현장을 적나라하게 증언한다.

저자가 겨우 다섯 살이었을 때 할례를 받는 장면은 잔혹하다. 가위를 든 남자 앞에 가랑이가 벌려진 채 공포에 떨고 있는 어린 손녀에게 외할머니는 비장하게 말한다. "이렇게 길게 늘어진 킨티르(클리토리스)를 자르고 나면 너는 순결한 여자가 될 게다." 800년 전 부계(父系)의 조상 이름까지 달달 외우게 하고, '아내는 남편의 성실한 노예(바리)로 순종하며 살아야 알라의 복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이 늙은 여인으로 인해 어린 알리는 '탈출'을 꿈꾼다. "돼지고기·과식·음주를 삼가는 규율은 따르기 아주 쉬웠다. 하지만 성(性)을 금기시하거나 개인의 정신을 통제하는 규율은 따를 수 없었다. 나는 나의 두 발로 땅을 딛고 설 수 있는 하나의 온전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네덜란드로 건너간 알리는 거침없이 성장한다.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를 취득한 뒤 노동당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했고, 정계에 입문하여 자유민주당 소속 하원의원으로 활동한다. 네덜란드 내 이슬람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 성적 학대, 근친상간을 목격하면서 그녀는 이슬람 여자들에게 '저항의 언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결심한다. 영화 '복종'은 그런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일부 무슬림들의 끊임없는 살해 협박에 특수경호를 받고 있지만, 그녀의 이슬람 극단주의 비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독자에 따라서는, 저자가 자신이 겪은 끔찍했던 경험만으로 이슬람 본연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알리는 '이슬람 국가들의 도덕적 타락이 서구의 타락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꾸란(코란)은 학대가 적법한 행위라는 근거를 제공한다, 가해자들은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공동체의 비난을 받는 일은 더더욱 없다'는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전하는 울림이 잦아드는 것은 아니다. 고통의 새장 속에 갇혀 있는 여성이 다수이든 소수이든,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불평등과 억압은 용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성찰이 아닌 절대복종과 굴종을 강요하는 종교, 신앙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 얼마나 끔찍한 폭력과 재앙을 낳는지 일깨우는 책이다. 그리고 그게 어디 이슬람 문화권에만 해당하는 일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