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세종대왕, 한자음의 표기 위한 발음기호로 한글 만들어”
◇한글의 발명/정광 지음/508쪽·1만9800원·김영사
‘한글의 발명’을 쓴 정광 교수
한글 연구 책 낸 정광 고려대 교수가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개인 사무실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위대한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완벽한 글자를 만들었다.”
‘한글’을 생각할 때 조건반사처럼 떠오르는 생각이다. 하지만 22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 개인 연구실에서 만난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오랜 기간 한글을 연구해온 그는 한글의 기원과 제정 동기를 담은 이 책을 최근 펴냈다.
“‘한글’이란 명칭은 1933년 주시경 선생이 지은 겁니다. 원래 언문(諺文)으로 불렸죠. 무엇보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한자음의 발음을 표기하기 위한 발음기호로 만든 겁니다.”
기존의 정설을 뒤집는 파격적 주장이다.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따졌다.
“고려 전기까지 사서오경(四書五經)으로 배운 한문으로 중국인과 소통했죠. 하지만 원대(元代) 이후 북경의 한어(漢語) 발음이 우리가 써오던 전통 한자음과 달라졌어요. 중국 사람과 소통이 안 됐죠. 그래서 우리가 쓰던 한자음을 교정해 ‘동국정운’이란 한자음을 만든 겁니다. 이어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올바른 발음’이란 의미에서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고요.”
기존의 정설을 뒤집는 파격적 주장이다.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따졌다.
“고려 전기까지 사서오경(四書五經)으로 배운 한문으로 중국인과 소통했죠. 하지만 원대(元代) 이후 북경의 한어(漢語) 발음이 우리가 써오던 전통 한자음과 달라졌어요. 중국 사람과 소통이 안 됐죠. 그래서 우리가 쓰던 한자음을 교정해 ‘동국정운’이란 한자음을 만든 겁니다. 이어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올바른 발음’이란 의미에서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고요.”
세종이 이 발음기호로 우리말을 표기할 수 있다고 보고 연구에 몰두해 한글을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월인석보’ 옥책을 근거로 ‘월인석보’는 세조가 아닌 세종 때 먼저 간행됐으며 여기에 훈민정음 언해본을 붙여 간행했다고 주장했다.
“건국 초기 조선 입장에서는 한자의 표준음을 정하는 게 중요했어요. 표준 한자음을 기준으로 과거시험을 열어야 했지요. 중국에서 이런 방법으로 자신들의 추종 세력에게 과거를 보게 했고 통치 계급을 물갈이했어요. 조선도 같은 맥락이었죠.”
그는 “한글은 북방 민족의 전통을 이어 만든 문자”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북방 민족은 한자로 자신들의 언어를 기록하기가 어려워 표음 문자를 만들어 썼어요. 티베트 서장 문자, 10세기 거란 문자, 12세기 금나라의 여진 문자가 그래요. 14세기 원나라는 파스파 문자를 만들어 한자음을 기록했죠. 한글도 이들 문자의 영향을 받았어요. 서장 문자, 파스파 문자, 한글 모두 첫 글자가 ‘ㄱ’, 즉 ‘k’ 발음 문자로 시작됩니다. 또 kh, g, ng 발음, 즉 훈민정음의 ㄱ, ㅋ, ㄲ, ㆁ 순서로 문자를 제정했어요.”
한글 창제에 불가의 학승들도 큰 몫을 했다고 한다. 이들 문자가 인도 음성학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고대 인도의 조음음성학이 팔만대장경에 포함돼 고려와 조선에 유입되면서 불가의 학승들이 음성학을 공부했다. 정 교수는 파격적인 주장임을 인식하는 듯 “책을 내면서 이민 갈 생각도 했다”며 웃었다. “그렇다고 한글의 위대함이 줄어들진 않아요. 한글은 과학적인 문자입니다. 서양에서 20세기가 돼서야 발전한 조음음성학과 구조음운론보다 500년이나 앞서 이 같은 언어학 이론을 동원해 한글을 만들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정 교수는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 한글과 한글 연구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정말 세종대왕이 어느 순간 머리에서 ‘ㄱ’, ‘ㄴ’이 딱 떠올랐을까요. 그런데도 한글에 대해 다른 견해를 이야기하면 학계에서 맞아죽습니다. 더 중요한 것이 ‘학문의 자유’라고 봐요. 틀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만 연구를 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한글의 신성불가침에서 벗어나야 한글이 더 발전합니다.”
“한글, 절에서 나온 겁니다”
(동아일보 2014-10-01 03:00:00)
훈민정음 창제 과정 그린 소설 ‘천강에 비친 달’ 펴낸 정찬주 작가
최근 발간된 소설 ‘천강에 비친 달’(작가정신)은 훈민정음을 만든 주역이 속리산 법주사 복천암에 머물던 신미 대사라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정찬주 작가는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이 작품은 세종과 신미 대사를 중심으로 한글 창제 과정을 그린 ‘팩션’(사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이지만 기본 줄거리는 여러 고문헌에 나오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했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조선시대 유교 문화에서 한자가 아닌 별도의 문자 창제가 커다란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어 집현전 같은 국가기관에서 훈민정음 창제를 주도하기는 힘들었다고 주장했다. 집현전 학사 정인지는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서 “학사들 중 누구도 훈민정음의 오묘한 원리를 알지 못한다”고 썼다. 정 작가는 “언뜻 겸양의 표현처럼 보이지만 집현전 학사들도 제대로 알지 못할 정도로 창제 작업이 비밀리에 추진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훈민정음을 만들면서 모델로 삼은 범어(梵語·산스크리트어)에 관해 신미 대사가 당대 최고 전문가였으며, 그가 세종의 부름을 받고 수시로 궁궐을 출입한 점도 유력한 증거로 꼽았다. 정 작가는 지난해 범어 연구를 위해 남인도로 여행을 떠난 얘기를 꺼냈다. “남인도에서 쓰이는 타밀어는 범어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타밀어와 우리말을 비교하면 유사어가 1000개가 넘어요. 엉덩이를 타밀어로는 ‘궁디’라고 하더군요."
그는 세종이 신미 대사에게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者)’라는 존호를 내리라고 세자에게 유언한 사실도 들었다. 정 작가는 “국왕을 도와 세상을 이롭게 했다는 뜻의 ‘우국이세’ 존호는 아무나 받을 수 없는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의 공을 기린 것”이라고 했다.
[충북]세종대왕 100리 길 따라… 시 한수 읊고 식사까지
(동아일보 2014-11-18 03:00:00)
청주 문화산업진흥재단
세종의 초정행궁 요양시절 옛 시-음식 다룬 책 2종 출간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이 ‘세종대왕 100리 길’을 노래한 옛 시를 다룬 책과 초정 행궁 당시 먹었던 음식 및 이를 현대화한 음식을 소개한 책 등을 펴냈다. 오른쪽 사진은 ‘세종 100리 행궁 도시락’.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제공
‘세종대왕 100리 길.’
세종대왕이 1444년 초정약수로 유명한 충북 청원군(현재의 청주시) 초정리에 행궁을 짓고 123일간 머물며 한글창제와 다양한 문화정책을 펼친 것에 착안해 조성된 길이다. 이 세종대왕 100리 길을 노래한 옛 시(詩)와 세종대왕이 초정행궁에서 요양을 하며 즐겨 먹었던 음식을 다룬 책 두 권이 나왔다. 책은 이 길을 중부권을 대표하는 문화관광 상품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진행 중인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이 펴냈다.
○ ‘길의 선비, 시심에 젖다’
‘적막에 싸인 백제의 옛 성에/구름이 아침마다 모여드네.//용이 동부로 돌아가니 산에는 습기가 돌고/말이 부상을 엿보니 바다 빛이 일렁이네.//…//곁에 있는 사람 구름이 무심히 나왔다 말하지 말게/오색 구름 피어오르다 푸르게 개이잖나.’
이 시는 세종대왕 100리 길 가운데 상당산성의 아름다운 풍광을 읊은 조선조 문신 변시환의 ‘상당산성의 아침구름’이다.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이 옛 한시(漢詩)를 번역한 책 ‘길 위의 선비, 시심에 젖다’라는 책에 수록됐다. 문화재단은 상당산성권(숲길), 초정약수권(물길), 증평율리권(들길)의 풍경을 소재로 한 옛 시를 조사 연구해 이번에 출간했다.
한시 조사와 번역은 임동철 영동대 호서문화연구소장(전 충북대 총장)과 김용남 호서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신범식 영동대 교수 등이 맡았다. 책은 세종 때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우암산과 상당산성, 초정약수, 증평율리 일대를 읊은 한시 70여 편을 모아 현대인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해석했다. 화가 강호생 씨가 옛 선비들의 글을 수묵담채화로 재해석했다. 3권으로 구성된 책에는 매월당 김시습, 세종 때 예종판서를 지낸 하연, 박팽년, 신숙주, ‘책벌레’로 이름난 김득신 등 여러 문신과 학자들의 한시가 담겨 있다. 임동철 호서문화연구소장은 “옛 선비들의 시를 통해 우리 고장의 역사문화를 이해하고, 수많은 학자와 시인들을 배출한 선비의 고장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길 따라, 맛 따라’
이 책은 ‘세종대왕이 초정행궁에서 요양을 하며 즐겨 먹었던 음식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해 만들었다. 청주문화재단의 의뢰를 받은 충북대 산학협력단은 각종 문헌을 통해 세종대왕이 당시 즐겨 먹었던 음식을 찾아냈다. 또 지역 특산품을 활용해 현대화하고, 상품화할 수 있도록 3개 권역별로 나눠 음식을 개발해 사진과 재료, 요리법 등을 담아냈다.
먼저 상당산성권에서는 새로 개발한 산성반상과 다과상을 소개하고 있다. 산성반상은 들깨영양밥, 매실청 간장소스, 아삭무김치, 유자청 오이지, 약고추장 등을, 다과상에는 군고구마 빼때기(말린 것), 단팥죽 등의 조리법을 알려주고 있다.초정약수권에서는 세종대왕 행궁밥상, 초정리 물길상, 세종 양로연상, 다과상 등이 담겨 있다. 이 가운데 세종대왕이 주변 마을 노인들을 초청해 양로연을 베풀었던 역사적 사실을 담아 만든 구선왕도고죽과 오이수삼김치, 황태포무침 등이 눈길을 끈다. 증평율리권에서는 지역 특산품인 산나물과 버섯, 인삼, 고추 등을 활용해 누구나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다.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 강태미 씨는 “이 책을 세종대왕 100리 길 권역내 식당과 주민들에게 보급해 관광객들에게는 색다른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주민들에게는 소득 증대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책 속으로] 한글 탄생 숨은 주역은 세종대왕 둘째 딸?
(중앙일보 2015.07.25 00:03)
한글의 발명
정광 지음, 김영사
508쪽, 1만9800원
국어학자이자 고려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한글 탄생을 흔히 생각하는 것과 사뭇 다르게 설명한다.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가 한자의 발음표기라는 것, 즉 일종의 발음기호로 한글을 만들었다는 주장부터 그렇다. 원나라 이후로 중국의 한자 발음이 우리네 기존 한자 발음과 달라지자, 이를 수정해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하려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 나오는 ‘國之語音 異呼中國(국지어음 이호중국)’이 이런 발음 차이를 가리킨다고 풀이한다. 또 한글 발명에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글자 가운데 몽고의 파스파 문자가 직접적 영향을 줬다는 것, 불경을 통해 고대 인도의 음성학을 접한 승려들이 이론적 기여를 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런 흥미로운 주장의 타당성을 여느 독자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이 책은 대중을 겨냥한 교양서로 집필된 게 아니다. 논문·저서로 저자가 연구해온 바를 집대성했다. 문외한에게는 판단은커녕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기도 종종 어렵다. 파스파 문자의 영향에 대한 대목이 특히 그렇다.
그럼에도 저자의 의지는 뚜렷이 전해진다. 한글 발명을 신비화하는 시각을 경계하면서 역설적으로 한글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것이다. 이는 한글이 세종의 그저 놀라운 업적이 아니라 치열한 분투의 산물임을 돌아보게 한다. 한글 탄생에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가 큰 공을 세웠다거나, 세종을 도운 학자 신숙주가 중국·일본·몽골·여진 같은 외국어에 고루 능통했다는 대목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새 글자에 반대하는 최만리 같은 유생의 상소에 부딪히면서도 한 나라의 군주로서 당대의 지적·창의적 역량을 최대한 한글 발명에 끌어모으려 한 세종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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