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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료/힐링푸드

곤충 요리 세미나 가보니 (중앙일보 2014.10.04 09:21)

곤충 요리 세미나 가보니

거저리 양념볶음·전병
식품 전공 여교수 "악" 비명
눈 감고 먹으니 새우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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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양식실습실에서 최수근 교수가 곤충인 갈색 거저리 튀김을 뿌린 스테이크를 선보이고 있다. 식용유에 30초 튀긴 거저리는 바삭바삭한 과자 맛이 난다.

“으아악.”
살아 있는 곤충을 본 40대 여교수는 비명부터 내질렀다. 1일 오후 서울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양식실습실. 곤충을 이용한 한식·양식 세미나에 교수·학생 6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올해 2월부터 정부 지원을 받아 곤충 요리 개발을 시작했다. 곤충 손질을 지켜본 김수희(49) 경민대 식품영양학 교수는 “원래 벌레를 너무 싫어한다. 죽은 걸 만지게 된 것만도 많이 발전한 것”이라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요리에 사용된 곤충은 ‘갈색 거저리’. 1~2㎝ 길이로 커피 빛깔을 띠는 애벌레다. 김 교수는 “곤충의 몸에 있는 노폐물을 제거하기 위해 2~3일간 굶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리사들은 거저리를 흐르는 물에 잠시 씻고 센 불에 볶았다. 커피 볶을 때 썩은 콩을 걸러내듯이 이미 번데기가 됐거나 죽은 거저리는 제거한다. 7분30초간 볶은 거저리는 고소하고 바삭한 맛이 난다. 새우에 들어 있는 키틴질이라는 물질이 있어 눈을 감고 먹으면 잔 새우를 먹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날 거저리를 이용해 주먹밥과 전병, 양념볶음 등이 만들어졌다. 주먹밥은 고추장이나 된장에 버무린 거저리가 사용된다. 프라이팬에 볶은 거저리를 칼을 이용해 0.5㎝ 정도로 다져서 고추장이나 된장 양념장에 버무린 다음 밥으로 감싸면 완성된다. 고추장의 매콤한 맛과 거저리의 담백한 맛이 어우러졌다. 거저리가 입속에서 바삭바삭 으깨지는 것도 새로운 식감이었다.

 전병은 밀가루 반죽에 거저리를 으깬 가루를 넣어 만든다. 버터를 녹여 밀가루와 거저리, 설탕, 달걀 흰자 등이 들어간 반죽을 만든 다음 얇게 펴서 오븐에 10분가량 구웠다. 거저리 맛이 거의 없어지기는 했지만 단백질과 무기질까지 함유된 훌륭한 영양 간식이 됐다.

 양념볶음은 올리고당을 묻혀 그 위에 매콤한 칠리파우더를 뿌리면 완성된다. 볶은 거저리는 껍질이 매끈하기 때문에 분말 형태의 파우더가 잘 묻지 않는다. 그래서 끈적끈적한 올리고당을 미리 묻혀야 한다. 파우더에 거저리가 파묻히기 때문에 곤충 먹거리에 아직 거리감이 있는 사람들에게 적당하다.

 스테이크 위에 뿌리는 거저리는 기름에 튀겨서 만든다. 170도 기름에 튀기면 거저리가 급속도로 팽창하면서 다소 커진다. 약 30초 튀겨 건져 올린 거저리는 바삭바삭한 과자 맛이 난다. 스테이크에 뿌리면 육즙과 고소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정부는 올해 7월 갈색 거저리를 식품으로 인정한 데 이어 지난달 30일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굼벵이)도 먹거리로 인정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달 청와대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식용 곤충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목소리가 대통령에게까지 전달돼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는 신청한 지 한 달도 안 돼 식품으로 허가가 났다”고 말했다. 갈색 거저리는 지난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식품으로 인정해 달라고 신청한 뒤 6개월이 지나서야 허가가 났다. 정부는 향후 장수풍뎅이와 애벌레, 귀뚜라미 성충 등 두 가지 곤충도 인체에 유해한지 판단해 식품 허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거저리 이전까지 식품으로 인정된 곤충은 메뚜기와 번데기, 백감장(하얀 누에)이다. 홍성진 농식품부 종자생명산업과장은 “2016년까지 곤충 7종을 식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품업체에서도 관련 세미나를 여는 등 식용 곤충 사업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 사업에 관여하는 한 대학 관계자는 “최근 한 대형 업체가 라면 수프에 쇠고기 가루 대신 거저리를 일부 넣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있다”며 “광우병을 의심할 만한 불량 쇠고기를 넣었다는 근거 없는 루머를 원천 차단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곤충을 새로운 식량 자원으로 활용하는 건 이미 세계적인 흐름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도 지난해 곤충을 미래 식량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고기에서 얻는 동물성 단백질을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구 온난화에 한몫하는 소의 방귀나 트림을 줄일 수도 있다. 농촌진흥청 곤충산업과 윤은영 박사는 “중국은 곤충을 먹은 역사가 이미 100년을 넘었고 최근 네덜란드와 같은 유럽도 미래 환경을 대비해 곤충 식량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에서 갈색 거저리의 식용화를 벤치마킹한 정부는 대학과 기업에 의뢰해 2년 전부터 사업을 준비해왔다. 최근에는 지방 농가에서 거저리 사육이 확산하는 추세다. 경기도 양주에서 2층 높이의 공장 건물에서 거저리를 키우는 김경호(53)씨는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는 공장을 운영하다 3년 전부터 곤충 사육을 준비해왔다”며 “각 농가에서 연 3000만~5000만원 정도 부수입을 올릴 수 있는 블루오션 사업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올해 초 거저리 사육 방법을 전수하는 창업 교실을 열었는데 40여 명이 몰렸다”고 말했다.

김씨가 운영하는 공장에는 교실 반만 한 공간에 신문 넓이의 플라스틱 박스 200개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온도는 28~32도. 거저리가 플라스틱 통 안에서 썩은 톱밥을 먹고 사는 탓에 케케묵은 냄새가 났다. 한 직원이 통 안에 손을 한번 넣어보라고 했다. 거저리 수십 마리가 손 주변에서 굼틀거리며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김씨는 “거저리가 알에서 유충에 이어 번데기, 성충이 되기까지 3~4개월 걸린다”며 “1년에 ‘삼모작’을 할 수 있어 생산성도 높다”고 말했다.

 곤충을 먹는 우리나라 풍습은 『동의보감』에도 나올 정도로 뿌리 깊다.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매미·메뚜기·풍뎅이·꿀벌 등 수십 가지 곤충이 약용으로 사용됐다는 기록이 『동의보감』에 있다”고 말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연산군이 ‘귀뚜라미·메뚜기 같은 미물을 잡아 대궐을 들이게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은 “뒷다리가 튼튼한 메뚜기가 정력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연산군이 이를 통해 양기를 회복하려 했다”고 말했다.

 식용 곤충 사업의 성공 여부는 곤충에 대한 혐오감을 얼마나 개선하느냐에 달려 있다. 곤충 요리 세미나에 참석한 한 연구원도 “벌레가 식당에 들어오면 위생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느냐”며 “개인적으로 아직 거부감이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조리 경험 30년의 최수근 경희대 교수는 “랍스타도 20세기 이전 미국에서는 하층민이나 먹던 천한 식재료였다”며 “곤충도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면 얼마든지 고급 요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S BOX] 당뇨 치료 누에, 어혈 푸는 지네, 월경 개선 맹충 … 약재로도 곤충 많이 쓰여

 

한약재를 전문으로 파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약령시장에서도 꿈틀꿈틀 살아 있는 곤충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달 17일 오후 약령시장 한 가판에는 살아 있는 말벌과 농구공만 한 벌집이 망에 쌓여 있었다. 가격은 17만~30만원. 50대 남성으로 보이는 상인은 “도수가 높은 술에 담가 먹으면 신경통과 혈액 순환에 좋다”며 “나도 가을마다 담가 먹는데 정력에도 좋다”고 귀띔했다.

 살아 있는 누에도 꼼지락댔다. 상인은 “당뇨와 혈압에 좋고 간 해독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며 “두 달치 먹는 양을 30만원에 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점에는 북한산 지네가 눈에 띄었다. 2010년 5·24 대북 제재로 북한산 물품의 수입은 금지됐지만 중국을 통한 비공식 수입이 이뤄지고 있 다. 30마리 한 묶음에 3만원. 뭉친 피인 어혈(瘀血)을 푸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곤충의 효능은 『동의보감』뿐 아니라 중국 명나라 때 지어진 약학서적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도 기술돼 있다. 굼벵이는 발이 저리거나 눈을 뜨고도 못 보는 증세에 효능이 있고, 파리 종류인 맹충은 어혈을 제거해 월경에 문제가 있는 여성에게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한 한의사는 “곤충은 환경 적응의 산물”이라며 “소변을 못 보는 사람에게 물가에 사는 곤충을 처방해 주면 약효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동의보감』과 『본초강목』 등에 기재된 곤충과 그 부산물 등 13종을 한약재로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