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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서는 반드시 눈을 떠야 생존 확률 높다 (중앙일보 2014.08.09 09:48)

물속에서는 반드시 눈을 떠야 생존 확률 높다

대형사고 잇따르는 재난시대 생존법
침몰 배에서 탈출 땐 목 안 꺾이게
손으로 턱 꽉 잡고 시선은 아래로

 



 

“어어, 잠깐만! 으아악~.”

 지난달 31일 오후 대전 엑스포 다이빙센터. 수심 5m에 달하는 수영장을 앞에 두고 한 20대 여성이 난간에서 쭈뼛쭈뼛 뛰어내릴 듯하다 그대로 발을 헛디뎌 고꾸라졌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선박에서 바다에 뛰어내리는 상황에 대비한 생존법 교육현장이다. 이 여성은 “수영을 못해 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려 참여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대전 엑스포다이빙센터에서 초등학교 3학년 문창욱(10)군이 바다에 빠졌을 상황에 대비한 생존법을 배우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강사는 실제 상황일 수 있다고 상기시켰다. 그는 “배에서 탈출할 때 뛰어내리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며 “목이 꺾이지 않도록 손으로 턱을 꽉 잡고 시선은 아래로 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가 1.5m 높이에서 수심 5m 깊이의 물에 직접 뛰어들어보니 물속으로 한없이 처박히는 데다 몸이 한 바퀴 굴러 머리가 밑을 향했다. 코에 물이 들어가 따끔거리고 수압 때문에 공포감이 엄습했다. 결국 강사의 도움으로 구명튜브에 매달린 채 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김종도(40) 생존법 강사는 “바다는 물속 유속도 빠른 데다 파도까지 쳐 생존이 더욱 어렵다”며 “마포대교에서 장난 삼아 뛰어내리다 사망하는 것도 물에 부딪히는 충격과 빠른 유속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드시 물에서는 눈을 떠야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재난·재해에 대비해 생존법을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이들은 이날 4시간에 걸쳐 구명조끼 없이 물에서 살아남기, 인공호흡법 등을 익혔다. 20~40대 참가자 5명 중 초등학생 아들을 데려온 학부모가 2명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데려온 박현희(41)씨는 “임신 중에 갑자기 수도가 끊기는 상황을 경험했다”며 “전기가 끊기면 가스도 안 나오는 세상이라 외부 도움 없이도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 문모(45)씨는 “우리나라에 매일 사고가 일어나니까 애들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관심이 많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지하철 방화사건 등이 잇따라 일어나는 ‘재난시대’를 맞아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며 생존법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10년 생긴 생존법 공유 인터넷 카페 ‘생존21(cafe.daum.net/push21)’은 수백 명에 불과했던 회원 수가 동일본 대지진, 북한 침공 위협, 세월호 사건을 지나면서 급격히 늘어 현재 1만 명에 달한다. 카페 운영자 우승엽(41)씨는 “생존법을 연구한다고 하면 ‘쓸데없는 데 걱정하지 말라’며 조롱했던 주변 시선이 진지하게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우씨가 지난 7월 출간한 『재난시대 생존법』도 초판 2000부가 모두 팔려 한 달 만에 2쇄에 들어갔다. 600여 페이지 분량으로 국내 현실에 맞는 재난 대비법을 담았다. 저가 생활용품 매장에서 파는 1000원짜리 화장품용 스포이트로 락스를 이용해 물을 정화하는 내용 등이다. 미국의 생존지침서를 번역한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남는 법』은 9년 만에 개정판이 나왔다. 출판사 관계자는 “세월호 사건으로 생존에 대한 지식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생존지침서 포켓북』과 같은 생존지침서가 잇따라 출간되면서 높은 곳에서 물에 떨어지는 방법, 공공장소에서 테러범을 구별하는 방법 등 일상생활에서 벌어질 만한 상황에 대비한 생존법이 소개되고 있다.

 본지는 최근 출간된 생존지침서와 전문가들의 조언, 생존자 증언 등을 토대로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재난사고 7가지에 대처하는 생존법을 정리했다.
 
① 폭우로 인한 차량 침수

 지난 3일 경북 청도군 삼계계곡에서 물이 불어난 구조물 위를 건너가던 승용차가 급류에 휩쓸리면서 탑승자 7명 모두 숨졌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경산소방서 관계자는 “차량이 1.1㎞가량 휩쓸려 가 전복돼 있었다. 이미 유리창은 깨어져 차량 내부에 물이 차 있었다”고 말했다. 생존법 전문가들은 “차량이 물에 차면 일단 창문을 밑으로 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침수로 전기가 합선되면 창문을 열지 못하는 데다 막상 물이 차오르면 수압 때문에도 열기 힘들어서다. 안에 갇힌다면 뾰족하고 단단한 도구로 창문을 깨야 한다.

② 여객선 침몰

 1993년 10월 전북 부안군 위도 앞바다에서 서해 훼리호가 침몰해 승객 362명 중 292명이 목숨을 잃었다. 위도 주민인 신명(59)씨는 당시 사고로 막내 동생을 잃었다. 사고 지점으로 배를 몰고 갔지만 건져 낼 수 있는 것은 빳빳하게 굳은 시신뿐이었다. 신씨는 “거친 바다에 들어가면 심장이 먼저 언다. 건져 내 인공호흡을 해도 살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생존지침서는 바다에 빠졌을 경우 소매와 발목, 목둘레의 옷을 꽉 조이고 다리를 꼬고 팔짱을 껴 체온을 유지하라고 안내한다. 물론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에서다.

③ 비행기 비상착륙

 2013년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아시아나항공기가 비상착륙해 3명이 사망했다. 현장으로 급파됐던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비상착륙을 할 때 좌석도 앞으로 쏠려 승객들의 안면과 흉부가 손상될 수 있다”며 “이를 방지하는 자세가 있지만 당시 상황이 워낙 급박해 안내할 겨를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승객들은 비상탈출을 하면 비행기 날개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름이 많아 폭발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생존지침서는 탈출에 대비해 굽이 높은 신발은 버리고 가방도 챙기지 말아야 한다고 안내한다.

④ 아파트 화재

 2013년 12월 부산시 북구의 한 아파트 7층에서 불이 났다. 희생된 엄마는 아이들을 끌어안은 채 베란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산 북부소방서 관계자는 “주방에 워낙 큰불이 나서 현관문으로 빠져나오지 못해 베란다에서 구조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아파트에 화재가 나 대피를 하지 못한 경우 베란다에서 옆집과 연결된 칸막이를 이용해야 한다. 발로 차면 쉽게 부서지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연기를 피해 달아날 수 있다. 하지만 칸막이에 창고처럼 무거운 짐을 쌓아 놓는 경우가 많다. 외국의 생존지침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대형 쓰레기통으로 뛰어내리라고 조언한다. 철제 쓰레기통이나 큰 상자를 겨냥해 머리를 숙이고 두 다리를 들어 올린 상태에서 등으로 착지하는 것이다.

⑤ 묻지마 칼부림

 2012년 8월 서울 여의도에서 퇴근시간대에 묻지마 칼부림이 일어났다. 행인 4명이 칼에 맞아 쓰러졌다. 칼을 휘두르던 30대 남성을 발차기로 제압했던 이각수(53) 명지대 무예과 교수는 “시민들이 노천 카페에 있던 의자를 던져서라도 도와줬더라면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피해 여성뿐 아니라 근처 시민들도 갑작스러운 칼부림에 놀라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생존지침서에 따르면 우발적인 싸움이 일어나면 일단 피하되 어쩔 수 없으면 주변에 나무막대기나 우산 등 무기가 될 도구를 찾아보라고 조언한다. 큰 소리로 경고를 하면서 기선도 제압해야 한다.

⑥ 지하철 방화

 지난 5월 서울 지하철 3호선 매봉역에서 도곡역으로 들어오던 전동차 네 번째 객차에서 70대 남성이 불을 질렀다. 그는 시너가 담긴 페트병 5개의 뚜껑을 열어 바닥에 굴린 뒤 불을 붙였다. 다행히 같은 객차에 타고 있던 권순중(47) 역무원이 소화기로 불을 진화했다. 권씨는 “창문 쪽을 보고 있다가 ‘불이야’ 하는 소리에 긴급히 대응했다”며 “시너 옆 부탄가스가 터졌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하공간은 모두 금연구역이다. 앞사람이 라이터를 만지작거린다면 의심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생존지침서에는 배낭을 메거나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 중 불안해 보이거나 수상하게 두리번거리는 사람을 주의하라고 일러 준다.

⑦ 무정부 상태

 199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 폭동이 일어나자 참전 경험이 있는 한국인과 해병대 전우회의 활약이 돋보였다. 이들은 권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건물 옥상에 올라가 방어했다. 신효섭(52) 재미 해병대 전우회장은 “경찰을 불러도 오지 않는 절박한 상황이었다”며 “수년간 군에서 경험한 사격과 방어훈련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생존 전문가들은 “한국 남자들이 군대 경험이 있어 폭동 피해를 최소화했다”며 “방아쇠를 무조건 당긴다고 총을 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 공권력과 치안이 무너졌다면 무리를 이뤄 아파트 단지 정문이나 빌라 입구를 중심으로 지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순번을 정해 경비를 서고 무리를 지어 세를 과시하면 외부인의 침입을 막아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