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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에 '틈'을 주었네… 삶에 쉴틈이 생겼네 (조선일보 : 2014.04.15 03:00)

원룸에 '틈'을 주었네… 삶에 쉴틈이 생겼네

최시영·방명철 건축가가 설계한 서울 수색 쌍둥이 오피스텔 '두빌'
"수익보다 입주자 삶의 질 배려" 곳곳에 틈새 만들고 옥상 정원 조성

 

수익을 목표로 하는 원룸형 오피스텔 건물은 '개성'과는 거리가 멀다. 건폐율과 용적률을 최대로 뽑기 위해 네모반듯한 빌딩 안에 똑같은 구조를 복사해서(ctrl+C) 붙여넣기(ctrl+V) 하듯 쑤셔넣는다.

이런 무성의한 원룸의 디자인 공식을 파격적으로 깨뜨린 주상복합 빌딩이 올 초 완공됐다. 최시영(58) 리빙엑시스 대표가 방명철(45) 애시스건축사사무소 대표와 함께 설계한 서울 수색의 쌍둥이 오피스텔 건물 '두빌(Deux Ville)'이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북쪽으로 보면 영화 '트랜스포머' 속 변신 직전의 로봇처럼 생긴 11층짜리 건물 두 동이 보인다. 테트리스 게임의 조각을 맞춘 것처럼 생겨서 주민들은 '테트리스 빌딩'이라 부른다.

(사진 위)테트리스 게임의 조각을 맞춘 것처럼 생긴 서울 수색의 오피스텔 건물 ‘두빌’. 가구 수를 최대한 늘리기보다 외벽에 숭숭 틈새를 뚫어 입주민들이 쉴 공간을 만들었다. (사진 아래 왼쪽)널찍이 데크를 깔아 전망을 둘러보게 한 옥상. 채소를 키우는 ‘키친 가든’도 보인다. (사진 아래 오른쪽)건물 외벽에 난 틈을 내부에서 바라본 모습. 입주민들이 나와서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다. /리빙엑시스 제공
외관에 요철(凹凸)이 있고, 그 사이로 군데군데 숭숭 뚫린 사각 틈새가 눈에 띈다. 건물 3층 높이로 길쭉하게 뚫은 틈도 있고, 모서리 부분을 탁 틔운 공간도 있다. 입주자들의 쉼터로도 쓰이고, '공중 정원'으로도 쓰이는 공간이다. 옥상에 올라가니 널찍이 데크를 깔아 만든 휴식 공간과 채소를 키우는 '키친 가든'이 조성돼 있었다. "답답한 건물에 숨구멍을 낸다는 심정으로 틈새를 만들었어요. 빌딩으로 바람이 들어가게 하고, 숨통도 틔워준다고 해서 '바람길'이라고 불러요." 이달 초 만난 최 대표는 "원룸에 '삶의 여유'를 불어넣고 싶었다"고 했다.

최 대표는 30여 년간 우리나라 아파트 디자인을 이끌어온 디자이너 중 하나다. 1980년대부터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서초동 삼성가든스위트, 분당 로얄팰리스, 창원 시티세븐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해오면서 '거실 중심형 아파트' '책을 테마로 한 아파트' 등 새로운 주거 문화를 시도했다.

이번 원룸 프로젝트에서 주목한 화두는 '정원' 그리고 '공동체'였다. "원룸이란 게 얼마나 갑갑한가요. 집 안도 돌아설 곳 없이 협소한데, 문 열고 나와도 밀폐된 복도밖에 없어요. '사는 곳'이 아니라 잠깐 '잠만 자는 곳'이죠. 이웃과의 교류는 볼 수도 없고요." 그래서 2008년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내세웠던 모토는 '화분 하나라도 키울 수 있는 원룸'이었다. 운 좋게 건축주도 '입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자'는 데 동의했다. 가구(家口)를 하나 더 추가하는 대신 깊은 틈을 내 입주자들이 밖을 볼 수 있게 했다. 최 대표는 "이렇게 생긴 틈만 다 합쳐도 10여 가구는 족히 나올 것"이라고 했다. 임대 시작과 함께 계약은 거의 끝났다. 세입자의 절반가량이 외국인이다. 임대료는 실평수 6.4평(21㎡)형은 보증금 1000만원, 월세 55만원이다.

건축주 박준호·성호씨 형제는 "아무렇게나 지으면 아무나 오고, 정성 들여 지으면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올 거라고 믿었는데 정말 삶을 즐기는 입주자들이 모인 것 같다"며 "이 건물이 문화적으로 낙후된 수색 지역의 '문화 촉매'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했다. 그사이 애완견을 안고 지나가던 스타일 좋은 젊은 남성 입주자가 입구에서 건축주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들 뒤로, 이 건물 간판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삶의 새로운 방식(different ways of living)'. 삶의 새로운 방식이 작은 것에서부터 이미 시작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