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에 '틈'을 주었네… 삶에 쉴틈이 생겼네
최시영·방명철 건축가가 설계한 서울 수색 쌍둥이 오피스텔 '두빌'
"수익보다 입주자 삶의 질 배려" 곳곳에 틈새 만들고 옥상 정원 조성
수익을 목표로 하는 원룸형 오피스텔 건물은 '개성'과는 거리가 멀다. 건폐율과 용적률을 최대로 뽑기 위해 네모반듯한 빌딩 안에 똑같은 구조를 복사해서(ctrl+C) 붙여넣기(ctrl+V) 하듯 쑤셔넣는다.
이런 무성의한 원룸의 디자인 공식을 파격적으로 깨뜨린 주상복합 빌딩이 올 초 완공됐다. 최시영(58) 리빙엑시스 대표가 방명철(45) 애시스건축사사무소 대표와 함께 설계한 서울 수색의 쌍둥이 오피스텔 건물 '두빌(Deux Ville)'이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북쪽으로 보면 영화 '트랜스포머' 속 변신 직전의 로봇처럼 생긴 11층짜리 건물 두 동이 보인다. 테트리스 게임의 조각을 맞춘 것처럼 생겨서 주민들은 '테트리스 빌딩'이라 부른다.
최 대표는 30여 년간 우리나라 아파트 디자인을 이끌어온 디자이너 중 하나다. 1980년대부터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서초동 삼성가든스위트, 분당 로얄팰리스, 창원 시티세븐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해오면서 '거실 중심형 아파트' '책을 테마로 한 아파트' 등 새로운 주거 문화를 시도했다.
이번 원룸 프로젝트에서 주목한 화두는 '정원' 그리고 '공동체'였다. "원룸이란 게 얼마나 갑갑한가요. 집 안도 돌아설 곳 없이 협소한데, 문 열고 나와도 밀폐된 복도밖에 없어요. '사는 곳'이 아니라 잠깐 '잠만 자는 곳'이죠. 이웃과의 교류는 볼 수도 없고요." 그래서 2008년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내세웠던 모토는 '화분 하나라도 키울 수 있는 원룸'이었다. 운 좋게 건축주도 '입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자'는 데 동의했다. 가구(家口)를 하나 더 추가하는 대신 깊은 틈을 내 입주자들이 밖을 볼 수 있게 했다. 최 대표는 "이렇게 생긴 틈만 다 합쳐도 10여 가구는 족히 나올 것"이라고 했다. 임대 시작과 함께 계약은 거의 끝났다. 세입자의 절반가량이 외국인이다. 임대료는 실평수 6.4평(21㎡)형은 보증금 1000만원, 월세 55만원이다.
건축주 박준호·성호씨 형제는 "아무렇게나 지으면 아무나 오고, 정성 들여 지으면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올 거라고 믿었는데 정말 삶을 즐기는 입주자들이 모인 것 같다"며 "이 건물이 문화적으로 낙후된 수색 지역의 '문화 촉매'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했다. 그사이 애완견을 안고 지나가던 스타일 좋은 젊은 남성 입주자가 입구에서 건축주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들 뒤로, 이 건물 간판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삶의 새로운 방식(different ways of living)'. 삶의 새로운 방식이 작은 것에서부터 이미 시작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