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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국제분야

기름 캐느라 물을 물쓰듯 하다 '500년만의 가뭄' (조선일보 2014.02.08 03:03)

기름 캐느라 물을 물쓰듯 하다 '500년만의 가뭄'

-美 남서부 가뭄은 人災
油井 하나 파는데 750만ℓ 사용… 물부족 지역에 1만6000개 굴착

은퇴자 많은 '선벨트' 수영장… 물 마구 쓰다 콜로라도江 말라
환경단체 댐 건설 반대도 한몫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주도(州都) 새크라멘토는 최근 가정집 정원에 물을 주는 실외 스프링클러 작동을 금지했다. 시민들이 집에서 물로 자동차를 세차하는 것도 금지 목록에 들어갔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이 같은 조치를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고, 주 전체에 걸쳐 제한 급수를 하는 특단의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세계 식량창고'로 불리는 미 남서부가 500여년 만의 가뭄으로 타들어가고 있다고 미 농림부 산하기관인 '미국 가뭄 모니터'가 6일(현지 시각) 밝혔다. 캘리포니아의 90%가 심각한 가뭄을 겪고 있으며, 주민 2500만명이 물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NBC는 작년 1월부터 시작된 남서부의 가뭄은 "지금부터 오는 5월까지 매일같이 비와 눈이 내려도 해결되지 않을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캐나다 CTV는 "남서부 가뭄으로 캐나다 채소와 과일 값이 곧 20% 오를 것"이라고 예상, 국제적 과일·채소 가격 폭등이 임박했다고 전했다.

이번 가뭄이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人災)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당국과 기업은 산업 개발과 생활 편의를 위해 그동안 수자원을 그야말로 '물처럼' 흥청망청 써댔고, 환경론자들은 환경보호만 앞세워 용수 확충에 반대하다 다 함께 최악의 상황을 자초했다는 반성이다.

"유정 굴착 중단하라" 시위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요즘 "마실 물도 없다. 식수로 기름 우물을 뚫지 말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5일 '가뭄과 유정(油井) 굴착의 대결'이라는 기사를 싣고 "물을 마구잡이로 사용해서 유정을 굴착하는 기술이 물 부족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셰일가스 추출 등을 위해 2011년 이후 4만여개의 유정(油井)을 뚫었다. 이 가운데 1만6000여곳이 물 부족 지역에 집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남서부 '심각한 가뭄' 지역 현황.
문제는 이 유정을 파기 위해 자갈이 섞인 고압의 물을 땅에 분사하는 '워터 제트' 방식을 쓴다는 점이다. 유정 하나를 파는 데는 750만L의 물이 들어가며, 이런 물의 90%는 증발해 재활용도 안 된다. 시민단체에선 "주정부가 세금 걷을 욕심에 정유회사의 물 낭비를 방치했다"며 "가뭄이 지속되는 동안 유정 개발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환경단체도 물 부족 사태에 책임

지역 환경단체들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70년대부터 댐과 저수지 확장에 맹렬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당국이 수자원 확보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연산 연어·희귀 빙어 등 멸종위기종 보호를 위해 막대한 분량의 담수를 사용하도록 주 정부에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도시민 440만 가구가 1년간 쓸 수 있는 분량의 물이 동물 보호에 사용됐다"며 "그 대가를 주민들이 치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12년 하원에서 생활용수 확충 법안을 발의했지만 상원은 '환경법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부결했다.

말라가는 콜로라도강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애리조나, 유타 등 7개주에 물을 공급하는 남서부의 '젖줄'인 콜로라도강(총연장 2330㎞)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로키산맥의 발원지인 콜로라도강은 풍부한 유량으로 가뭄을 완화하는 역할을 해 왔지만, 지금은 진흙탕 수준으로 전락했다.

이는 단지 가뭄 탓이 아니라 '선벨트'의 무분별한 개발을 방치한 것이 원인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뜨거운 태양 때문에 이른바 '선벨트(sun belt)'로 불리는 이 지역들은 1990년대 이후 20여년간 엄청난 인구 증가를 경험했다. 네바다주 인구는 216%, 유타주는 159%가 폭증했다.

선벨트에는 은퇴자와 자산가 등 비교적 여유 있는 중산층이 많이 산다. 이들은 집에 개인 수영장과 잔디밭을 두고 물을 마구 썼다. 당국은 그동안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2001년부터 10년간 캘리포니아주의 물 사용량은 23%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 때문에 강물이 가뭄 조절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콜로라도강에 물을 공급하는 미 최대의 인공호수인 미드호는 올 1월 말 현재 수위가 해발 337m로, 평소의 50%까지 낮아졌다. 각 주에 물을 배분하는 파이프는 해발 305m 지점에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수위에서 32m만 더 내려가면 주변 지역 물 공급이 차단되는 비상상황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