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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전율이 인다, 먹향 스민 옛 시편 (중앙일보

[책과 지식] 전율이 인다, 먹향 스민 옛 시편

내가 좋아하는 한시
민병수·김성언 외 지음
태학사, 408쪽
1만8000원

내가 좋아하는 한시
민병수·김성언 외 지음
태학사, 408쪽
1만8000원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한시(漢詩)와 달랐다. 한국한시학회 회원이자 한시 연구에 정진하는 서른한 분의 교수들이 필자로 참여했다. 그들이 고른 시는 사뭇 속 깊다. 책갈피에 먹물 향기가 은은히 스몄다. 역시 교수님들이시다.

 실토컨대, 양은냄비처럼 확 달아오르는 한시가 나는 좋다. 술 마시는 다음으로 내가 즐기는 일이 한시 읊기인데, 읊는 곳이 주로 술집이다 보니 그 농탕한 분위기에 올라타려면 굽이굽이 꺾이는 서사나 머릿골 싸매는 관념이 담긴 시들은 애저녁에 밉보일 수밖에 없다. 술친구야 으레 감동 받게 돼있다. 황진이나 이매창이나 김부용 같은 기생들의 지분 냄새 풍기는 상사시(相思詩)가 직방이다. 두어 수만 읊조려줘도 술값 서로 내겠다고 난리다.

 ‘걸물’ 임제가 ‘요물’ 한우와 동침을 놓고 대거리하는 시조가락까지 곁들이면 술병이 이열횡대를 짓고, 청산을 넘어가는 나비를 희떠운 말장난으로 돌아 세우는 김삿갓의 저지레며, 학사의 체신을 팽개치고 꽃의 마음을 얻으려 안달하는 손조서의 짓거리 들을 발설할 양이면 술안주는 처치 난감이다. 이러구러 나는 술과 한시와 더불어 만날 논다. 내게 후학(後學)이 없기 망정이지….

 하기야 술판에서 소강절의 잠언이나 주자의 권학문 따위를 입에 올리다간 깬다. 노래방에서 성가를 불러야겠는가. 내가 줄곧 ‘작업시(作業詩)’만 외는 것은 아니다. (이 작업을 그 ‘작업’으로 눈치 챈 독자는 언제 한번 술자리에 오시라)

삼의당 김씨(1769~1823)는 남편의 사랑가에 화답해 “달인 양, 꽃인 양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거늘/세상의 영욕은 누구 집에 속해 있는가?”라고 읊었다. 전(傳) 어몽룡의 ‘월매도’. [사진 서울대박물관]

 깐에는 당나라 이하와 이상은의 시를 엄지가락에 꼽는다. ‘그대는 잉어의 꼬리를 드시구려/ 첩(妾)은 성성이의 입술을 먹겠소’라는 대목에 비친 이하의 엽기적 시상을 누가 당하겠는가. 그가 토한 피가 시의 올에 뱄다.

 이상은의 ‘바닷가에 달 밝자 진주가 눈물 흘리고/남전(藍田)에 날 따뜻해 옥에서 연기 나네’라는 토막에서는 초현실적 비유가 읽는 자를 몽환에 젖게 한다. 대저 시를 읽고 외는 맛이 무엇일까. 술자리를 윤택하게도 하겠지만,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 하는 자의 몸짓을 제대로 느끼고자 하는 데 음송의 참맛이 있잖을까.

 『내가 좋아하는 한시』에 든 시들은 거듭 말하거니와 웅숭깊다. 자간(字間)이 천 길이고, 행간(行間)이 크레바스인 시도 나온다. 그 멀고 깊은 곳에 압축과 비유와 상징이 난분분한데, 술맛 돋우는 시든 사리를 밝히는 시든, 따라 읽다 보면 희한하게도 시인의 몸부림에 공명하면서 전율이 인다.

 필자들이 간택한 시 몇 편을 보자. 고려의 이미지즘 시인으로 꼽힌 정추의 시구는 마냥 살갑다. 이를 테면 이런 대목-. ‘봄바람은 그래도 다정한 생각이 있어서/ 때때로 버들꽃 날려 벼룻물에 떨어뜨린다.’ 시름겨운 시인을 쓰다듬는, 저 동풍의 실팍한 마음 씀씀이여. ‘한 점 꽃잎이 날려도 봄은 깎이어 나간다’며 엄살 부린 두보의 조급함보다 정추의 수굿함이 외려 윗길 아닌가.

 봄의 꿈결이 느껴지는 시는 또 있다. ‘천금으로도 오히려 좋은 시절을 살 수 없는데/ 뉘 집에 술이 익기에 꽃이 저리도 피었는가.’ 여말선초의 문신 정이오가 봄인지 꿈인지 헛갈리는 풍광을 거닐다 읊조린 구절이란다. 이리 몽롱한 발걸음으론 시인의 꽃집 들르기는 글렀을 테다.

 찧고 까부는 시는 살에 닿아도 정을 풀어내는 시는 마음에 남는다. ‘주렴 걷어 산 빛 끌어들이고/ 대통으로 물 받아 산골 물소리 나누어 갖는다’는 어떤가. 이 대문 하나로 여말의 스님 충지는 애써 통정하지 않는 경치를 펼친다. 좋기는 이런 시가 좋다. ‘경(景)’만 나열하는데 ‘정(情)’이 깔리는 그런 시 말이다.

 김혜숙 교수가 찬미한 율곡 시를 읽으며 경어(景語)로 정어(情語)를 대치하는 숙련의 경지를 깨단한다. ‘댕댕이 덩굴 길로 지팡이를 끌다가/ 늙은 나무뿌리에 머리를 괸다/ 돌샘이 그윽한 곳에서 졸졸거린다/ 솔바람이 고요한 가운데 시끄럽다/ 새가 움직인다, 바위에 핀 꽃에 그림자가 진다/ 이끼에 시내 물보라 자국이 남아있다/ 저녁 구름이 깊숙한 골짝에서 일어난다/ 그리하여 문득 산문을 잠근다.’ 김 교수는 이 시를 두고 말했다. “사물의 존재 혹은 사물의 모습을 처음으로 의식하는 그 순간보다 더 경탄스럽고 환희로운 순간은 없는 것 같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그 돌올한 깨달음을 오래고 오래된 옛글 우리 한시에서 만나고저 함이여.

손철주 미술평론가

●손철주  미술평론가·미술저술가·한시 연구가. 학고재 주간을 지냈고, 우리문화사랑 운영위원이다. 저서 『사람 보는 눈』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등

 

[책의 향기]입시, 목숨 걸고 공부해도…

 (동아일보  2013-12-28 09:15:47)

학력자본을 향한 전 지구적 혼란… 입시가족 24가구 인터뷰로 해답 모색
◇입시가족―중산층 가족의 입시 사용법/김현주 지음/236쪽·1만4000원/새물결

 


 

책을 머리에 이고 한숨을 내쉬는 아이의 표정이 참으로 안타깝다. ‘입시가족’의 저자는 원래 공부란 “성공적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라 말한다. 하나 실상이 그런가. 한숨은 둘째 치고 시험 점수 1, 2점 때문에 목숨마저 끊는 참혹한 현실. 부모와 자녀가 더욱 소통하고 인내를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새물결 제공

 

대학입시. 이쯤 되면 포기해야 되는 거 아닌가도 싶다. 수십 년째 폐해를 부르짖었지만 그다지 바뀐 게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아이들은 경주마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해도 늦단 소리가 나온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눈에 띄게 벌어졌다. 입시생을 둔 가족의 고통이 거론되면 이젠 무뎌지다 못해 그러려니 모른 척하게 된다.

허나 눈 감는다고 세상이 바뀌랴. ‘경쟁에서 밀리면 끝이다’라는 강박관념이 무슨 사회적 정의인 것처럼 판을 친다. 심지어 이런 교육을 벗어나자는 취지인 대안학교마저 입시 준비에 소홀하면 학부모의 지탄을 받는단다. 웬만했으면 대형 사교육업체 회장이 “목숨 걸고 공부해도 소용없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현실”이라고 개탄했을까.

하지만 저자는 그럴수록 더 속살을 파헤쳐야 한다고 외친다. ‘망국병’이니 ‘신도 못 고친다’는 소리만 할 게 아니라 실제 입시가족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농업농촌사회 분야 민간연구소인 ‘지역아카데미’에서 이사로 활동하는 저자는 프랑스 파리5대학에서 가족사회학을 전공한 학자.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자녀가 있는 ‘중산층’ 스물네 가족에 현미경을 들이댄 심층 인터뷰를 벌였다.

이 책에서 설정한 중산층이란 개념은 의미심장하다. 절반가량이 ‘노원구의 대치동’이라 불리는 서울 중계동과 하계동에 사는 가족들. 나머지는 강남과 서울 근교가 뒤섞여 있다. 저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크게 돈 때문에 포기해야 할 일이 없을 정도”의 경제적 능력과 교육적 열정을 가진 가족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중산층을 정의하는 개념을 너무 단순화(어쩌면 상향화)했다는 논쟁거리를 던져주지만, 그 때문에 입시생 가족의 얽매임 없는 계층적 욕망을 내밀하게 살필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뭣보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입시가족’이란 명제에서 기계적으로 떠오르는 뻔한 구도를 지양한다. 크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식으로 구성된 가족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피해갈 수 없는 교육제도를 맞닥뜨려서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살폈다.

예를 들어, 지방 농촌사회 혹은 서울이라 해도 20세기 가치관 속에서 자랐으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부모는 불가피하게 이중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자식 교육에 모든 걸 거는 옛 가족 구조를 꺼리면서도 현실에서 경쟁에 뒤처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체험했기 때문이다. 자본의 재생산 구조가 경제는 물론이고 학력까지 장악한 시대에 반발과 수긍을 동시에 품은 셈이다. 이런 인식은 당연히 자녀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목적의식을 갖고 나아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안전망으로 보이는 테두리에서 도태되지 않는 것을 욕망하는, 모순적 인식을 배우게 된다.

“부모들이 자녀의 대학 진학 문제에 노심초사하는 마음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욕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나온다. 욕망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소망이라는 말로 순화해볼 수 있겠지만 모든 부모들이 인생에 있어 끝내 ‘실현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소망이기에 결국 이것은 욕망이다. 명문대 출신의 최고 학력자의 삶의 궤도 위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하는 향연을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으로 내면화한 욕망인 것이다.”

물론 이 욕망은 당사자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추정컨대 이 땅에 너무나 급박하게 뿌리 내린 자본주의가 잉태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최근 훨씬 더 기형적 구조의 자본주의가 만개한 중국 사회를 보면 입시교육의 폐해가 이루 말로 못 한다. 게다가 책에서도 언급했듯 안정적으로 보였던 서구사회조차 최근 만성적 경기불황과 세계화의 물결 속에 입시 경쟁이 점차 과열되고 있다. 이제 ‘학력 자본’을 향한 전 지구적 혼란은 이미 제어할 수단을 잃어버린 듯한 양상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찾자면, 이런 극단적 치달음이 무쇠처럼 견고했던 벽을 깨뜨리는 창이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근사한 학력을 쌓아도 사는 데 별 소용이 없으니까. 이미 주위에서 명문대를 나와도 백수의 절망에 빠져 사는 젊은이는 쉽사리 발견된다. 이런 갈등이 켜켜이 쌓인다면 새로운 성찰의 시대가 생각보다 이르게 찾아올 수도 있다.

다만 그동안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할 입시생과 가족은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부제인 ‘중산층 가족의 입시 사용법’은 결단코 틀린 얘기다. 지금 시대는 ‘입시의 중산층 가족 사용법’이 더 맞는 소리다. 어쩌면 저자는 언젠가 그들에게 다시 사용 권한이 돌아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았던 걸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책의 향기]산업혁명 前 가난뱅이였던 스위스의 성공 비결은

 (동아일보  2013-12-28 09:17:03)

◇21세기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 스위스에서 배운다/장철균 지음/256쪽·1만5000원·살림

 


 

어린 시절 동화책 ‘하이디’에서 처음 접한 스위스라는 나라는 지상낙원이었다. 하이디가 천진난만하게 뛰놀던 아름다운 알프스 산자락은 동경하면서도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마침내 어른이 되어 스위스를 두 차례 여행하면서는 부러움을 넘어 ‘이런 천국 같은 곳에서 자기들끼리만 잘 먹고 잘살다니…’ 하며 배타성까지 느꼈다. 스위스는 1인당 국민소득 7만 달러, 세계 1위의 청정국가, 국민행복지수 세계 3위, 결정적으로 나라 이름 자체가 고급 브랜드인 나라다. 하지만 국토 면적이 남한의 40%에 불과하고 인구는 780만 명뿐인 이 작은 나라가 어떻게 선진국이 되었는지를 명쾌하게 알 순 없었다.

전 스위스 대사인 저자는 베일에 싸여 있던 스위스의 성공 비결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한국이 스위스에서 배울 점을 소개했다. 산업혁명 전까지만 해도 몹시 가난해 국민을 다른 나라에 용병으로 보내야 했던 스위스가 최고 선진국으로 부상한 것은 남다른 국민성과 독자적 시스템 덕분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스위스의 역사는 한국과 닮은 점이 많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같은 강대국에 둘러싸여 외세와 전란에 시달렸고, 국토의 75%가 산과 호수여서 줄곧 척박하고 가난했으며, 지하자원도 없어 믿을 건 인적자원뿐이다. 게다가 이 작은 나라에 독일계 프랑스계 이탈리아계가 모여 살며, 사용하는 언어는 4개나 된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다민족 다문화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정치적 안정을 이루며 국가 경쟁력을 강화한 스위스의 정신을 저자는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라고 요약한다. 스위스 연방이 마치 여러 개의 기능을 각기 수행하면서도 단단하게 하나로 통합된 ‘스위스 나이프’를 연상시킨다는 것. 그는 스위스의 정신을 독립성 중립성 자율성 타협성 실용성 창의성 근검성 준비성의 여덟 가지로 설명한다.

스위스는 세계에서 이민이 가장 까다로운 나라이면서도 인재라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데려온다. 기초자치단체인 게마인데에서 주민들이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며, 안정된 정치제도 덕분에 꾸준히 경제성장을 이뤄 낸 점은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한국에 시사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