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여의도의 ‘씨받이 책’
정치인과 책, 미묘한 함수관계
국회의원에게 책은 화폐나 마찬가지다. 찍어 내는 순간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액면가’는 없다. 책의 직접적 ‘수요자’가 때와 상황에 따라 교환가치를 매긴다. 책 자체의 정가(定價)는 무의미하지만, 시장 가격은 있다. 권당 최저가는 보통 10만원. 때론 20만~30만원, 200만~300만원까지 치솟는다. 가치가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채권 같은 유가증권의 성격도 띤다.
돈을 아무 때나 찍어 냈다가는 나라가 망하듯 국회의원의 책도 그렇다.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살피는 게 중요하다. ‘시기’와 ’위치’가 맞아떨어지면 ‘십수억원’이 만들어진다. 선거가 없는 해 모금할 수 있는 정치자금의 한도액이 1억 5000만원이니 10년짜리 행사를 한몫에 하는 셈이다. 게다가 모두 현찰이고 선관위의 감시도 받지 않는다. 프로스포츠 선수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뒤 7~10년의 장기계약을 맺어 ‘대박’을 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행사 개최 여부와 시기를 정하는 의원들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올가을 이후 열린 국회의원 출판기념회는 40여 차례. 19대 국회 개원 이후 80차례 정도다. 그만큼 눈치를 보고 있다는 얘기다.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 초청장은 계절을 알리는 ‘전령’과도 같다. 초청장이 돌면 선거철이나 국정감사가 임박했다는 얘기다. 책의 실질 수요자인 피감기관, 즉 정부기관이나 산하단체, 기업들에는 번거롭게 초청장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모두들 알고 찾아와 최소한의 흥행을 보장해 준다.
출판기념회장은 ‘세’(勢)가 드러나는 현장이기도 하다. ‘저자’를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밀려드는 검은색 대형 세단과 늘어선 화환, 놀이공원을 연상시키는 겹줄을 보고 나면 ‘실세’(實勢)라는 말의 의미가 피부로 느껴진다. 국회의원이 다 같은 국회의원이 아님을 절감하게 되는 장소이다. 그래서 출판기념회는 정치 이벤트다. 의원들은 국회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의원회관 대회의실을 차지하려고 예약 사이트가 열리는 이른 아침부터 컴퓨터 앞에서 예약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올 한 해 출판기념회는 주로 현직 의원들의 판이었지만 해가 바뀌면 3월까지는 6월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의 책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선거 출정식’이다. 예비후보들은 출판기념회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 현장에 모인 사람들을 후원회로 조직할 수도 있고 이들이 낸 책값으로 선거비용을 마련할 수도 있다.
이렇게 정치인들의 책이 쏟아지는데도 출판계는 대체로 시큰둥하다. 아이러니다. 책은 정가도 없고, 서점 서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인터넷 거래도 되지 않는 이상한 것들인 데다 결정적으로 독자가 없는 유령시장을 형성하고 있어서다. 진짜 저자가 누군지도 불확실하다. 여의도에 책이 넘쳐나면 이름도, 얼굴도 없는 ‘대필작가’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1000만~2000만원에 한 권의 책이 태어나고, 초판만 있을 뿐 재판 인쇄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상한 구조다. 그래서 출판계는 정치인들의 책을 대리모(대필작가)가 생산한 ‘씨받이 책’이라고 부른다.
[커버스토리] 구술 인터뷰 10시간 3일 안에 녹취 풀고 베테랑 작가가 일필휘지 보름이면 의원님 책 뚝딱
(서울신문 2013-12-21 14면)
정치인 자서전 대필작가 H씨의 고백
“10시간 인터뷰하고 빠르면 2주 정도면 한 권 만들어 낼 수 있지요.”
정치인 책 대필작가로 4년째 활동 중인 H(43)씨. 그는 “정치인들의 책은 정형화돼 있어요. 일대기 형식의 라이프 스토리에 ‘도전’, ‘열정’ 등의 콘셉트를 잡아 버무리면 되죠. 틀도, 주제도 정해져 있는데 어려울 게 뭐 있겠어요. 사건 구성만 조금씩 바꾸면 끝이에요”라고 내뱉듯이 말했다.
그가 소속된 출판사의 직원은 6명. 작가는 H씨 달랑 1명이다. 최근 몰려든 인터뷰 일정 때문에 겨우 짬을 냈다는 H씨는 “원래 글 쓰는 걸 좋아하긴 했는데 이런 식으로 대필작가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 “오히려 제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게 아니라서 더 편하게 쓸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전했다.
대필 경험이 풍부한 새누리당의 한 보좌관은 “도전이나 열정 같은 주제로만 10권 넘게 책을 썼다”고 밝혔다. “초선 의원들은 주로 라이프 스토리를 통해 이름을 알리는 데 주력하는 반면, 재선 이상 의원들은 의정 활동 소개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밖에도 의원의 전공 분야에 대한 이야기, 의정 활동을 소개하는 정책보고서 형태 등도 있다. 정치인의 책을 많이 다룬 A출판사의 대표는 “국회의원 자신이 초고를 쓰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대필작가에게 요구되는 제1 덕목은 ‘스피드’다. 아예 출판기념회 날짜를 정해 놓고 작가를 섭외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일단 계약이 성사되면 밤을 새우는 일도 부지기수다. 대필작가에게 맡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작가를 교체하는 일도 종종 생겨난다. 대부분 인맥으로 맺어진 관계라서 계약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지인들이나 보좌진의 입장이 난처하게 되는 상황이 적지 않다. H씨는 “글을 완성해 초고를 의원에게 줬는데, 맘에 안 든다고 다시 쓰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용을 추가하고 문체도 바꾸는 등 전반적으로 다시 손질해야 하는데 시일이 촉박해 작업을 그만둘까 말까 고민했던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도 대부분은 책의 질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아 마음은 편하다고 했다. A출판사 대표는 “선거 때 공격할 거 없나 하고 읽어 보는 선거의 상대 진영이 최대 독자라고나 할까. 책의 질로 따지자면 형편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H씨는 4년 전 뜻이 맞는 몇몇 사람과 함께 선거기획사를 만들어 일을 시작했다. 선거 때마다 홍보물을 만들어 왔으나 이 일만으로는 기획사를 유지하기가 어려워 대필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H씨는 “선거가 끝나고 다음 선거가 돌아올 때까지 특별히 할 일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치인 출판 시장에 주목하게 됐다”며 “평소에 선거 홍보물을 만들면서 알게 된 정치인들이 있어 의뢰를 받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역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의 의원실로 직접 찾아가 구술 인터뷰를 진행한다. 인터뷰는 하루에 2~3시간, 두세 차례 하면 된다. 이후에는 2~3일에 걸쳐 녹취를 풀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초고가 완성된 뒤에는 출간될 때까지 늦어도 3개월 이내에 작업을 끝낸다.
H씨가 속한 출판사는 최근에만 현역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용 책을 3권 출간했다. 이 출판사는 사무실 하나를 빌려 작가, 디자이너, 인쇄 등 업무를 분담해 작업하고 있다. H씨는 “요즘에는 외부에 연결된 프리랜서 작가들이 많아져 따로 의뢰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종의 재하청이다.
A급 유명 작가들은 건당 1500만~2000만원 정도고, 그 외 평범한 작가들은 1000만원 이하의 보수를 받는다. A출판사 대표는 “A급 작가란 기존 포트폴리오가 있는 작가로 3~4건 정도 작업한 사람들이고, 책을 쓰거나 도운 경험이 그나마도 되지 않을 때는 B급으로 분류한다”고 밝혔다. 대필 비용과 인쇄·출판 비용은 별도로 책정된다. 그는 “보통 정치인들이 한번 출판기념회를 하면 2000~5000부를 찍는데, 정치인들의 책은 초판만 찍고 재판은 안 찍는 특이한 시장”이라고 덧붙였다.
대필작가가 쓰는 책들을 굳이 나쁜 시각으로만 봐야 할까. A출판사 대표는 “외국에서는 대필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만드는 과정에서 구술을 통해 참여하기 때문에 이것도 책을 내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준 낮은 책을 후원금 모금을 위해 출간하지 말고, 책의 수준을 높여 진정성을 담는다면 의미 있는 출판기념회도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커버스토리] 그곳에 가면 ‘정치권 실세’가 보인다
(서울신문 2013-12-21 13면)
연말 이틀에 한번꼴… “국회서 제대로 되는 건 출판기념회뿐”
정치권에서 누가 실세인지는 출판기념회에 가 보면 안다. 줄줄이 늘어선 검은색 대형 승용차와 행사장 입구의 화환, 놀이기구를 타려고 서 있는 줄처럼 겹겹이 에두른 하객들을 보고 나면 해당 의원의 위세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최근 개최된 행사 중 최대 규모는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민주당 안희정 충남지사의 출판기념회가 꼽힌다. 지난 11월 21일 윤 원내수석부대표 행사 때는 국회 도서관 앞에 검은색 승용차가 꼬리를 물고 늘어서 ‘차량 정체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장에서만 책 3000여권이 나갔다는 얘기가 나왔다. 같은 달 23일 안 지사의 행사에는 각계 유력인사 3000여명이 참석해 “대선 출정식 같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 위세가 부러웠는지 최근 있었던 새누리당 C의원의 출판기념회에는 버스 11대가 동원됐다. 이 의원의 보좌관은 “동원이라기보다는, 의원으로서 지역 구민들에게 홍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회의원의 책이 몇 부가 나가고 몇 쇄를 찍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당일 행사에 얼마나 ‘모금’됐는지가 관심사일 뿐이다. 위세를 느낄 수 있는 행사의 수입은 대략 10억원으로 잡는다. 보통은 1억~2억원, 행사가 잘됐다 싶으면 3억~4억원의 수입을 거둔다. “두 자리 숫자가 될지 안 될지는 (돈을)거둬 본 의원들이니 눈대중이 가능하다”고들 한다. 국회의원이 선거가 없는 해에 받을 수 있는 후원금이 연간 1억 5000만원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큰돈이다. 게다가 출판기념회는 현행 정치자금법상 수입과 사용 내역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 여야 의원들이 만나는 곳은 출판기념회라고 한다. 출판기념회가 갖는 몇 안 되는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윤 원내수석부대표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지난달 21일은 전날 검찰이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트위터글 121만여건을 추가로 발견, 공소장 변경을 신청하면서 여야 대치가 절정에 이른 날이었다. 이날 아침부터 서로 죽자사자 비난전이 펼쳐졌고 민주당은 오전 시청앞에서 광화문광장까지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는 가두 행진을 벌였다. 오후에 열린 출판기념회의 상황은 반대였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와 정성호 원내수석부대표는 행사장을 방문해 축하인사를 건네며 덕담을 나눴다.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가 국정원개혁특위와 국회 정상화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던 지난 3일에도 새누리당 A의원의 출판기념회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화기애애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예산안 법정처리 기한이 하루 지나 식물국회라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던 날이다.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열렸거나 예정 중인 여야 의원들의 출판기념회는 총 28건이다. 이틀에 한 번꼴로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셈이다. 때문에 ‘국회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출판기념회뿐’이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출판기념회는 의원들에게 ‘상부상조’의 장이다. 성공적인 출판기념회를 위해 의원들은 ‘품앗이’를 한다. 돈도 돈이지만 출판기념회를 여는 당사자의 체면을 살려 주기 위해 행사장을 찾는 경우가 많다. 참석한 국회의원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출판기념회를 찾은 지역구 유권자나 기업인 등에게 ‘유력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출판기념회가 같은 날 동시에 열려 ‘두 탕, 세 탕’을 뛰어야 할 때도 많다. 좀처럼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의원들이 대거 몰리기 때문에 “국회의원의 값이 제일 떨어지는 날이 출판기념회”라는 말도 있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다른 일정은 놓쳐도 의원들의 출판기념회를 건너뛰었다가는 당내 선거에 나설 생각을 말아야 한다. 지난 17일 국회의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김진표 민주당 의원의 출판기념회에서 김한길 대표는 “정동영 상임고문의 출판기념회에도 가야 한다”며 축사를 한 후 바로 자리를 떴다.
품앗이라고는 하지만 출판기념회가 워낙 많다 보니 비용도 만만찮다. 당 대표나 원내대표는 대개 20만~30만원을 낸다. 평의원은 10만원 정도가 적정선이다. 한 초선 의원은 “10만원만 낸다고 하더라도 출판기념회가 너무 많다 보니 부담이 된다”면서 “본전 생각이 나서라도 출판기념회를 빨리 해야겠다”고 말했다.
책은 알아서들 가져간다. 출판기념회 행사장 앞에는 대개 책을 대량으로 주문하는 이들이 있다. 기업체에서는 보통 50~100부를 주문한다. 해당 국회의원 지역구나 상임위와 연관 있는 업체들이 많다. “100만~200만원을 책값으로 지불하는데 그 이상도 적지 않다”고 한 국회 관계자는 전했다. 수표를 내는 ‘황당한 사람’은 거의 없다. 추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현금으로 낸다. 해당 의원이 속한 피감기관에서는 자료구입비 등의 명목으로 책을 구입하고 대기업의 대외협력부서 등에서는 대외사업비 명목으로 구입한다.
시·도의원 등을 꿈꾸는 예비후보자들은 이 자리를 비켜 갈 수 없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시·도지사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B의원의 출판기념회에서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시·도의원으로 출마하려는 사람들이 눈도장을 찍기 위해 많이들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의원들이 출판기념회를 통해 벌어들이는 돈의 규모는 상임위와 선수(選數) 등에 따라 차이가 난다. 야당보다는 여당 의원들의 수입이 더 좋다. 비례대표보다는 지역구 의원이 낫다. 개별 위원회 중 1순위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꼽힌다. 상임위를 거쳐 올라온 예산을 삭감 또는 증액하는 막강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출판기념회를 여는 시점도 중요하다. 대개 국회 회기 중이나 선거를 앞둔 시점에 몰린다. 요일로는 참석자들의 편의를 고려해 월·금요일보다는 화·수·목요일, 오전보다는 오후 시간대를 선호한다. D의원은 국회 본회의가 있는 날 출판기념회를 열어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어떤 의원들은 ‘출판기념회는 편법 정치자금 모금 행사’라는 비판에 “출판기념회는 의원이 재력가에게 손을 벌리거나 이권 개입을 통해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지역구 주민이나 지지자를 한데 모으는 정치 행사로는 출판기념회만 한 게 없다”는 평가도 있다.
국회의원들의 책은 유형이 대강 정해져 있다. 의정활동을 홍보하거나 활동에 대한 소회,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밝히는 내용이 대다수다. 재선을 염두에 둔 초선들의 출판기념회 빈도가 비교적 높은 편이다.
박민수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4일 ‘정치가 농촌을 살릴 수 있다고’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농민들을 위한 입법안 등이 담긴 자신의 의정보고서를 책으로 엮었다. 김현 민주당 의원도 지난달 26일 ‘소통과 기록의 정치인 김현 25시 파란수첩’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책 전반부에는 참여정부 청와대 춘추관장을 지낸 김 의원이 가까이서 바라본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담았고 후반부에는 19대 국회의원으로서의 활약을 소개했다.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6일 ‘역사창조의 힘이 되자’라는 제목의, 김관영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7일 ‘즐거운 정치’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발간했다.
중진의원 중에도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책으로 엮은 의원들이 적지 않다. 원유철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6일 ‘나는 오늘도 도전을 꿈꾼다’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정치인이 되기까지 삶의 역정을 전하며 독자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추미애 민주당 의원은 지난 3일 ‘물러서지 않는 진심’이라는 제목의 첫 자서전을 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판사로서의 경험,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으로서의 활약 등 자전적 정치 인생을 기록했다.
대선이라는 큰 정치적 경험은 의원들의 ‘회고록’ 형태로 출간된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처럼 대선 후보가 직접 내기도 하고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처럼 대선 캠프 대변인으로서의 관찰기를 출간하기도 한다.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을 담은 책도 적잖게 눈에 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4월 2일 ‘삐라에서 디도스까지’라는 제목으로 보고서 형식의 책을 출간했다. 하 의원은 북한 전문가로서 대남 사이버테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깊이 있는 정보를 다뤘다. 국세청장·관세청장 등을 역임한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경제 해설서인 ‘성장과 행복의 동행’을 지난달 11일 선보였다.
[커버스토리] “의원들이여, 책을 읽으세요… 아주 많이”
(서울신문 2013-12-21 14면)
‘술탄과 황제’로 작가 반열에 오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고언
김형오(66) 전 국회의장은 ‘책과 정치인’을 주제로 인터뷰를 한단 말에 즉시 긴장감을 내비쳤다. 혹시 동료 의원들을 폄훼하는 인터뷰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눈치였다. 그는 “정치인의 출간이 마냥 나쁜 것으로 인식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정치인의 책은 ‘현대 정치사의 기록’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그의 개인 사무실을 찾았을 때 벽면을 두른 책장에는 역사·종교 서적들이 원서와 함께 빼곡히 꽂혔고, 테이블 위에는 손으로 쓴 초고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그는 한국 정치사에서 ‘작가’의 반열에 오른 몇 안 되는 정치인의 하나다. 국회의장 퇴임 직후 저술한 ‘술탄과 황제’는 큰 화제가 됐다.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1453년 5월 29일을 중심으로 오스만 제국 술탄과 비잔틴 황제, 두 영웅의 고뇌를 소설의 형식에 담은 인문학적 역작으로 꼽혔다. 464쪽짜리 책 한 권을 내기 위해 김 전 의장은 코란 등 100권이 넘는 방대한 문헌을 읽고 4년간 5차례에 걸쳐 터키 이스탄불을 다녀왔다. 작업 막바지인 지난해 4월부터 47일간 현지에 머무르며 원고를 다듬었다. 책은 이달까지 34쇄를 찍었다. 앞서 현역 시절 역대 정권의 도청 비화를 파헤친 ‘엿듣는 사람들’(1999)을 시작으로, 수필집 ‘돌담집 파도소리’(2003), 국토탐방기 연작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2009),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2010) 등을 출간했다.
국회의원 책에 왜 날림 출간이 많으냐’고 묻자 그는 “책을 내는 타이밍을 맞추려다 보니 그런 것 아니겠느냐”면서 “진지하게 읽는 용도보다는 후원금 모금을 위해 서로 품앗이로 봐 주고 지역구에 증정하는 용도로 쓰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은 특히나 자기 자랑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책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책에 존엄성을 부여하면 함부로 쉽게 책을 쓰는 일은 사라지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조언을 내놓았다. 내용이 아니라 저자 이름 덕에 책이 팔리는 트렌드도 경계했다. “(저자의) 이름값으로 책이 나가다 보면 결국 책 자체의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책 쓰는 국회의원 이전에 책을 많이 읽는 의원이 되어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바빠도 많이 읽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당부했다. 그는 다독가이기도 하다. 국회의장 퇴임 이후에도 국회 도서관에서 수시로 책을 빌렸고, 한 달에 두어 번 시내 대형서점을 둘러보며, 인터넷에서 수시로 도서 동향을 살펴 구매한다. 여기서 그는 한국 의원과 미국 의원을 비교했다. “한국 의원들은 결혼식·상갓집, 조기축구회·등산대회 쫓아가느라 바쁘죠. 유권자들과 스킨십을 갖지 않으면 낙선되기 때문인데, 그건 미국 의원들도 마찬가지예요. 대신 학교 어머니회, 로터리클럽 같은 각종 사회단체에서 현안을 토론하느라 바쁘거든요. 토론하려면 읽고 익히고 공부해야 하잖아요.”
이후 계획에 대해 김 전 의장은 “한국 정치 현실을 소회하고 우리 정치의 미래 지향적인 방향을 인문학과 결부시키는 책을 내 보고 싶다”고 밝혔다.
■ 김형오 전 국회의장
1947년생,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국무총리 정무비서관을 거쳐 14~18대 5선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대표, 18대 국회의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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