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아시아 카지노 전쟁
19개 섬으로 이뤄진 대만 최북단 마쭈(馬祖) 열도. 중국 푸젠(福建) 성 샤먼(廈門)에서 배로 30분 거리인 이곳은 대만 본섬보다 중국 본토에 훨씬 가깝다.
대만인들에게 마쭈 열도는 중국과의 군사 대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현장이다. 대만 국민당 정부는 중국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해 1949년 대만으로 건너온 뒤 이곳에 제1선 군사 방어기지를 세웠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국가주석은 끝내 함락시키지 못한 마쭈 열도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끊임없이 이곳을 공격했다. 1958년 벌어진 대규모 포격전이 대표적이다. 포격전 초기 중국은 마쭈 열도와 진먼(金門) 섬을 향해 하루 수만 발의 포탄을 쏴 댔고 미국과 국교를 수립한 1979년까지 20년 넘게 포격을 계속했다.
그런데 지난해 7월 7일 마쭈 열도에 대만인들의 이목이 다시 집중됐다. 한때 최전방 군사기지였던 이곳을 중국 본토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제2의 마카오’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따라 대만 최초의 카지노 단지 조성을 놓고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가 진행된 것.
결과는 찬성 57% 대 반대 40%.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교통부 장관과 함께 직접 마쭈 열도를 방문해 ”마쭈 열도의 관광산업과 교통 발전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면서 주민투표 결과를 반겼다. 중국을 겨냥한 대만의 노골적인 카지노 공세에 중국 정부도 곧 반격에 나섰다. 대만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쭈 열도와 마주 보고 있는 푸젠 성은 올해 초 이례적으로 “중국의 법은 중국인들의 도박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마쭈 열도에 카지노가 들어서면 우리는 법에 따라 중국인이 마쭈 열도를 방문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마카오 등 특별행정구역을 제외한 지역에서 도박을 금지하고 있는 중국 법을 사실상 대만 영토에까지 확대 적용하겠다는 일종의 ‘협박 메시지’였다. 중국 정부는 2월에 마쭈 열도의 카지노 특구 조성에 대응해 중국 본토에서는 처음으로 하이난(海南) 섬에 카지노 영업을 허용하며 맞불을 놨다.
아시아가 ‘카지노 전쟁’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함께 세계 최대 카지노 도시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마카오, 주저앉던 경제성장률을 카지노를 통해 반전시킨 싱가포르의 성공에 자극받은 나라들이 ‘굴뚝 없는 황금 산업’이라고 불리는 카지노 산업에 대해 너도나도 빗장을 풀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식어 가는 경제성장의 엔진을 다시 타오르게 할 산업으로 관광산업이 각광받으면서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고 일본 등 동북아시아 나라들까지 중국 관광객 유치를 놓고 카지노 전쟁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
▼ 싱가포르 59억달러 '잭팟'… 성장률 1.7%P 끌어올려 ▼
한국은 아시아 카지노 전쟁의 주요 변수다. 중국과 일본을 양옆에 두고 한류(韓流)를 무기로 연간 1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는 한국은 세계적인 카지노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 약속을 내걸며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낼 만한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하지만 카지노가 가져다 줄 긍정적인 경제 효과와 사행산업 확산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 사이에서 갈등하는 정부는 좀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도덕국가’ 싱가포르의 변신
“다이, 다이, 다이!”
지난달 13일 오전 10시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카지노. 한쪽 테이블 위 유리관 안에서 튀고 있는 3개의 주사위에 시선을 고정한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른다. 중국인들이 가장 즐긴다는 카지노 게임인 ‘식보(Sic Bo)’ 테이블에서 벌어진 광경이다. 이들이 외치는 ‘다이’는 ‘대(大)’의 중국어 발음. 식보는 3개 주사위의 합이 11∼17이면 ‘대’에 베팅한 참가자가 돈을 따고 합이 4∼10이면 ‘소’에 돈을 건 참가자가 승리한다. 마침내 주사위가 멈추자 테이블 주변에는 희비가 엇갈린다. 주사위의 합은 15. 목이 터져라 ‘다이’를 외친 중국인들은 카지노가 떠나갈 듯 환호성을 질렀다.
마리나베이샌즈 카지노에서 만난 중국인 관광객 왕위하오 씨(47)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휴가를 보내기 위해 싱가포르를 찾았다”며 “예전에 출장 왔을 때는 지루한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카지노 등 즐길거리가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인구 530만 명의 도시국가 싱가포르에는 요즘 돈 쓸 곳을 찾아 헤매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넘쳐 난다. 지난해 싱가포르를 찾은 관광객은 모두 1440만 명으로 싱가포르 인구의 세 배 수준.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관광산업이 뒷걸음질하는 동안에도 싱가포르의 관광객 수는 매년 10% 안팎의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의 증가가 폭발적이다. 지난해 1∼9월 싱가포르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152만 명으로 5년 전인 2007년 같은 기간 83만 명의 2배 수준으로 불어났다. 그 덕분에 싱가포르의 2011년 외국인 관광객 수 순위는 한류를 앞세운 한국(979만 명)보다 3계단 높은 22위(1039만 명). 관광수입 순위는 한국(123억 달러)보다 7계단 높은 15위(180억 달러)를 차지했을 정도다.
2009년까지만 해도 외국인 관광객이 900만 명 수준에 그쳤던 싱가포르가 한국을 추월한 데에는 2곳의 카지노 리조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2010년 미국과 말레이시아 카지노 기업의 투자를 받아 55층 호텔 빌딩 3개를 연결한 호화 리조트 마리나베이샌즈와 유니버설 스튜디오, 세계 최대 규모의 수족관 등을 갖춘 리조트월드 센토사를 세웠다. 싱가포르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3분의 2 이상이 두 곳의 카지노 리조트를 방문한다.
‘도덕과 청결을 중시하는 국가’라는 자부심이 강한 싱가포르는 196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40여 년간 카지노에 단단한 빗장을 걸어 뒀던 국가다. 1980년대 중반 산업 구조조정 지연으로 극심한 경제 불황기를 겪으면서 일각에서 “마카오처럼 카지노를 허용해 경제를 살리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여론의 강한 반대에 부닥쳐 카지노 허용이 무산됐다. 당시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는 “도박은 사람을 나태하게 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카지노를 허락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며 공개적으로 카지노 허용을 반대했다.
하지만 2004년 8월 리셴룽(李顯龍) 총리가 아버지 리콴유 전 총리의 뒤를 이으면서 싱가포르의 카지노 정책은 180도 바뀌었다. 리 총리는 취임 직후 카지노가 포함된 복합리조트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싱가포르 경제의 기초를 이루던 제조업 기반이 노동비가 저렴한 해외로 이전하면서 하락하기 시작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관광산업을 핵심 전략 산업으로 삼은 것이다.
카지노에 대한 리 총리의 태도 변화에는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사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에 퍼진 사스 바이러스 때문에 싱가포르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70% 감소하는 동안 마카오가 카지노를 무기로 해외 여행객 수를 늘리며 막대한 관광 수익을 챙기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는 후문이다.
리 총리의 파격적인 카지노 정책은 즉각 거센 논란을 불렀다. 거리 시위를 금지한 싱가포르의 법 때문에 주로 온라인으로 이뤄진 카지노 반대 서명 운동에 3만여 명이 동참했다. 26년간 싱가포르를 통치하며 자신이 구축한 ‘청정(Clean & Green)’ 싱가포르가 망가질 것을 우려한 리 전 총리 역시 아들의 정책을 반대했다.
하지만 리 총리는 “문제는 카지노 허용이 아니라 카지노를 통해 벌어들일 막대한 자금을 포기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모두가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만 변하지 않는다면 20년 후 싱가포르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며 의회를 설득해 카지노 정책을 밀어붙였다.
‘도덕’이라는 명분 대신 ‘실리’를 택한 싱가포르의 변신은 적중했다. 두 곳의 리조트 카지노는 개장 첫해 51억 달러(약 5조8000억 원), 2011년에는 59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면서 싱가포르의 성장률을 1.7%포인트가량 끌어올렸다. 직접 고용 인원 2만 명을 포함해 약 5만 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내면서 싱가포르 전체 인구 100명 중 1명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2009년에 ―2%포인트로 뒷걸음질했던 싱가포르의 경제성장률은 2010년에 역대 최고인 14.7%로 반등했다.
카지노 허용에 반대했던 여론도 반전됐다. 택시운전사인 제이슨 리 씨(39)는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카지노로 데려가 달라’는 중국인 관광객이 넘쳐 난다”면서 “카지노가 들어선 뒤 관광객이 눈에 띄게 늘어 경기가 확 살아났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싱가포르에서 16년간 거주한 교민 김은정 씨(38·여)는 “카지노 허용 방침이 나왔을 때 고령층을 중심으로 반발이 심했지만 서민들도 체감할 만큼 경제 효과가 두드러져 지금은 부정적인 여론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공통적인 목표는 ‘중국 관광객을 잡아라’
“싱가포르와 마카오는 그동안 황금알을 낳는 이 지역(동남아시아) 관광산업의 파이 대부분을 차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그들과 경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올 3월 16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관광 명소 마닐라베이에서 2만5000여 명의 유력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대형 카지노 리조트 솔레어의 개장식이 열렸다.
개장식 축하 연설을 한 인사는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 마르코스 독재체제에 반기를 들다 암살돼 필리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된 베니그노 아키노 전 의원의 아들인 그는 2010년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관광산업 육성을 기치로 내걸고 대형 카지노 단지 조성에 앞장섰다. 10여 개의 소형 카지노만으로는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는 싱가포르와 경쟁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필리핀 정부는 수도 마닐라에 대형 카지노장을 갖춘 호화 리조트와 쇼핑몰, 대형 컨벤션센터, 외국인 전용 병원 등을 갖춘 카지노 단지를 세울 계획이다.
필리핀 정부는 카지노 영업세를 마카오(39%)보다 훨씬 낮은 15%로 책정하면서 세계적인 카지노 자본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이를 통해 현재 19억 달러(약 2조 원) 수준인 필리핀의 카지노 관련 매출을 60억 달러(약 7조 원) 수준으로 늘리고 3년 내에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을 유치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베트남은 카지노에 국운을 걸었다. 과거 베트남은 한국처럼 외국인 전용 소규모 카지노 건설만 허용했다. 하지만 2008년 남부 휴양지인 붕따우 지역에 대규모 카지노 단지 조성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올 4월에는 북부 꽝닌 성과 하장 성에 카지노 휴양 단지를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두 곳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할롱베이와 자연유산 덩반 고원이 있는 지역으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환경단체들이 자연 훼손 우려를 들며 카지노 단지 조성에 반대하고 있지만 베트남 정부는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적극적이다.
여기에 불교국가로 도박을 금기시해 온 캄보디아와 스리랑카까지도 지난해부터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대규모 카지노 시설 유치에 나서면서 동남아시아 지역의 카지노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카지노 전쟁에 뛰어든 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적인 목표는 중국인 관광객 유치. 싱가포르 정부는 카지노 허용을 결정한 뒤 국회에 낸 보고서에서 아예 “중국이 부유해지고 있는 만큼 부자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카지노가 매력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홍콩 언론들에 따르면 중국인들이 한 해 해외 카지노에서 쓰는 돈은 1000억 달러(110조 원)로 추산된다. 지난해 한국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해 벌어들인 관광수입 142억 달러의 7배 수준.
‘카지노 도시’ 마카오의 성장은 중국 관광객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포르투갈령이었던 마카오는 1999년 중국 반환 직후 관광과 카지노 수입이 줄면서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그러나 중국이 2001년 독점시장이던 카지노 산업을 외국 자본에 개방하고 2003년에는 중국인 단체관광뿐 아니라 개인관광까지 허용하면서 마카오 경제는 2008년까지 연평균 14%의 고속성장을 했다.
마카오는 2007년 타이파 섬과 콜로안 섬 사이의 바다를 메워 대규모 카지노 단지 코타이스트립을 조성하면서 카지노 산업 확대에 박차를 가했다. 이곳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카지노를 갖춘 베네시안마카오 호텔 등이 들어서 있다. 그 효과로 중국 반환 전인 1999년 690만 명이던 마카오 방문 관광객은 2011년에 2800만 명으로 늘었다. 그중 58%, 1616만 명이 중국인이다.
최근 중국 정부가 부패와 돈세탁 등을 막기 위해 중국인 한 명이 마카오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현금을 2만 위안(약 350만 원)으로 제한했지만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마카오의 카지노 수입은 계속 늘고 있다.
▼ “아시아서 한국만 카지노 수익 줄어들것” ▼
실제로 중국인에게 마카오 관광이 개방되자 2003년 36억 달러였던 마카오의 카지노 수입은 지난해 360억 달러로 불어났다. 미국의 대표적인 카지노 도시 라스베이거스가 연간 벌어들이는 돈의 6배에 이르는 금액이다.
에드워드 트레이시 베네시안마카오 호텔 사장은 “마카오의 성장에는 중국인 관광객의 증가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라며 “최근 각국이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카지노 설립에 나섬에 따라 마카오는 컨벤션 산업 등 카지노와 연관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북아로 확산되는 카지노 전쟁
싱가포르와 마카오가 카지노 산업을 통해 터뜨린 ‘잭팟’은 아시아 경제 패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동북아시아 국가들에 자극제가 됐다.
가장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나라는 경제정책의 중심을 재정위기에 빠진 유럽에 집중하는 대신 동북아로 옮기며 ‘동진(東進)’ 정책을 가속화하고 있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2010년부터 블라디보스토크 외곽 지역에 6개의 대형 리조트와 12개 카지노가 들어서는 대규모 카지노 단지를 개발하고 있다. 중국, 북한 국경과 가까운 블라디보스토크는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의 대도시에서는 비행기로 10시간이 걸리는 반면 서울과 베이징, 도쿄에서는 2∼3시간 거리에 있다. 러시아 정부는 외국 카지노 운영 업체들이 이 지역에 투자하면 세금을 면제해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카지노 합법화에 소극적이던 일본에서도 카지노 도입 논의가 불붙고 있다. 형법상 도박을 금지하고 있는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으로 관광객이 줄고 막대한 국가 부채로 재정건전성이 흔들리자 지난해부터 여야를 불문하고 카지노 합법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과 러시아 등 동북아 지역의 카지노 유치 움직임은 한국에 큰 위협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찾은 관광객은 238만3000여 명. 전체 외국인 관광객 5명 중 1명꼴로 카지노를 찾은 셈이다. 이 중 중국인은 97만 명, 일본인은 79만 명으로 두 나라 관광객이 차지하는 비율은 70%가 넘는다.
이 때문에 일본에 내국인 입장을 허용하는 카지노가 들어서고 러시아에 중국인 대상 대규모 카지노 단지가 만들어지면 한국으로 원정 도박을 나서는 일본과 중국 관광객이 급감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국제 컨설팅 업체인 PWC는 최근 세계 카지노 산업에 대한 전망 보고서에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카지노 수익이 줄어들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싱가포르와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카지노 산업의 성장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분산되는 데다 2014년부터 일본이 카지노 산업을 허용하면 한국 카지노 방문객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일본과 러시아에 카지노 단지가 조성되면 외국인 관광객 감소는 물론이고 한국인 관광객의 해외 원정 도박 역시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카지노 딜레마에 빠진 한국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카지노 유치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경기도는 최근 김문수 도지사가 “(남북 접경지역에) 중국인 전용 카지노를 유치하면 평화안전벨트가 조성될 것”이라며 백령도와 김포 애기봉, 파주 지역에 중국인 전용 카지노 설치를 제안했다. 또 황해경제자유구역청도 지난해 황해경제자유구역청과 화성 유니버설스튜디오(USKR), 고양 한류월드 등 3곳을 유치 후보지로 정해 카지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충북은 청원군 오송경제자유구역에 카지노 유치를 검토하고 있으며 대구는 낙동강변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크루즈 모양의 수상관광호텔 안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설립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셸던 아델슨 샌즈그룹 회장도 올 초 부산을 방문해 부산 북항재개발 사업에 투자 의향을 내비쳤다. 국내에서 카지노 유치에 가장 진전을 보고 있는 곳은 인천.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영종도에 추진하고 있는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 리조트 사업에는 이미 미국계 시저스 그룹과 일본계 오카다 홀딩스 등이 투자 의사를 밝혔다.
일본의 빠찡꼬 재벌인 오카다 홀딩스도 자회사인 유니버설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인천공항 국제업무단지에 3조 원을 들여 카지노가 포함된 3500실 규모의 호텔 3동과 컨벤션 시설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영종도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들어서면 싱가포르 못지않은 막대한 경제 효과를 누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저스그룹에 따르면 영종도 카지노 건설로 늘어나는 관광 수입은 최대 4조5000억 원, 고용 창출 효과는 5만2000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문가들도 영종도 카지노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김철중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인천국제공항은 물론이고 서울과도 가까운 영종도는 입지 조건이 매우 좋아서 카지노가 들어서면 중국인 관광객 유치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며 “카지노 허용으로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는 싱가포르보다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경제자유구역 내 카지노 설립 규제를 완화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정작 지자체들이 카지노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오자 오히려 한발 뒤로 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자체들이 앞다퉈 카지노 설립을 추진하게 된 데에는 정부가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카지노 사전심사제’를 도입한 영향이 컸다. 지금까지는 카지노 투자자가 3억 달러를 먼저 투자해야만 카지노 면허 취득 자격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전심사제가 도입되면서 카지노 설립을 원하는 투자자가 5000만 달러를 내고 설립 신청서를 제출하면 서류 심사를 통해 카지노 운영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카지노 설립 문턱이 낮아진 것.
하지만 새 정부 들어 기류가 바뀌고 있다. “정부가 사행산업 확대에 앞장선다”는 일각의 비판이 나오면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사전심사제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당초 지난달 중순까지 최종 결론을 낼 예정이던 영종도 카지노 허가도 계속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 관계자는 “한국은 이제 카지노 유치를 놓고 주변국과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규제 완화 방침을 믿고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했는데 최종 결정이 미뤄져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카지노, 경제인가 범죄인가
정부가 카지노 규제의 방향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내국인 출입 허용을 포함한 카지노 산업에 대한 찬반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카지노 산업 확대에 찬성하는 이들은 카지노가 관광산업 육성의 첨병이 될 것으로 본다. 카지노의 외화획득률은 93.7%로 자동차(71%), 휴대전화(52%), 반도체(43%) 등을 훌쩍 뛰어넘는다. 외국에 반도체 1000달러어치를 팔면 국내로 들어오는 외화는 430달러에 불과하지만 외국인 관광객이 국내 카지노에서 1000달러를 쓰면 이 중 937달러의 외화가 국내에 남는다는 의미다.
특히 카지노는 새 정부가 중점 육성 산업으로 분류하고 있는 ‘마이스(MICE)’ 산업 등 다른 서비스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마이스는 기업회의(Meeting), 보상관광(Incentive), 컨벤션(Convention), 전시회(Exhibition)의 첫 글자에서 따온 용어로 국제적인 규모의 회의, 전시회 관련 산업을 뜻한다.
마리나베이샌즈가 카지노와 함께 대규모 컨벤션센터를 설치한 싱가포르는 국제회의 개최건수가 카지노 개장 전인 2009년 689건에서 2011년 919건으로 급증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마이스 산업 국가로 부상했다.
일부 전문가는 국내에서 이미 막대한 자금이 불법 도박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만큼 차라리 내국인 카지노 출입 허용 등을 통해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수 확대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불법 도박 규모는 5년 전보다 22조 원가량 늘어난 75조 원 규모. 국가 세출 예산의 20%에 이르는 규모다. 서원석 경희대 교수(관광학)는 “막대한 불법 도박 규모를 볼 때 카지노를 통한 양성화 방안에 대해 논의해 볼 시점”이라며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 리조트는 마이스 산업 등 경제에 미칠 긍정적인 효과가 큰데도 이를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가로막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카지노 반대론자들은 도박 중독 등 카지노의 부작용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카지노로 얻을 경제 효과보다 크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전종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연구팀이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2010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09년 카지노, 경마, 복권 등 전체 사행산업의 매출 규모는 16조5337억 원이지만 도박 중독자들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78조2358억 원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카지노 업계는 외국에 비해 낮은 수준인 국내 카지노 출입 규정을 강화하면 카지노 확대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반박한다. 싱가포르는 내국인이 카지노에 출입할 때 하루 100싱가포르달러(약 7만 원)의 입장료를 내도록 하고 있다. 도박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이 카지노에 중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또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이 특정인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면 카지노는 이 사람이 카지노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면서 싱가포르의 도박 인구 비율은 2008년 54%에서 카지노가 개장한 후인 2011년 47%로 오히려 하락했다.
조지 타나시예비치 마리나베이샌즈 리조트 사장은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에서 차지하는 면적은 3% 정도인 카지노가 호텔 전체 수익의 80% 정도를 내고 있다”며 “한국이 추진하는 마이스 산업이나 관광산업 육성은 관련 인프라를 갖추는 데 막대한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데 카지노 없이 투자에 나설 외국 기업은 없다”고 말했다.
‘카지노 타짜’ 를 꿈꾸는 사람들
(동아일보 2012-12-06 08:30:03)
“카지노 타짜가 되기 위해 밤낮 없이 바카라 게임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강원 정선군 강원랜드 주변에 ‘카지노 타짜’를 꿈꾸는 고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과거 007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카지노가 강원도 폐광촌에 개장되자 ‘색다른’ 게임을 즐기기 위해, 또는 외국에서 맛보던 ‘짜릿한 손맛’을 보기 위해, 혹은 대박의 꿈을 좇아 발길이 이어지며 강원랜드는 새로운 명소가 됐다.
이런 강원랜드에 테이블이나 슬롯머신 등 카지노 게임으로 용돈이 아니라 아예 생활비를 벌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려는 사람들이 카지노를 ‘만만하게’ 보고 타짜에 도전하는 무모한 경우도 생겨났다.
하루 몇 시간 게임으로 수십~수백만원을 벌려는 ‘예비타짜’들은 2003년 3월 메인카지노가 개장한 뒤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그 발길은 현재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는 전 재산을 탕진하고도 ‘한 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타짜의 꿈을 꾸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 예비타짜들은 매일 연구와 실전을 병행하며 험난한 타짜의 길을 걷는다.
강원랜드 단골 고객들과 강원랜드 고객들의 사이트인 ‘강친닷컴’ 등에 따르면 스몰카지노 시절부터 카지노 타짜를 노리는 수십명을 포함해 타짜 지망생이 최소 수백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한 사북지역에 찜질방이나 민박에서 생활하며 단순히 생활비를 버는 부류는 ‘생활 바카라족’으로 분류되지만 풍족한 여윳돈을 벌기 위해 ‘진검 승부’를 노리는 사람들은 ‘타짜 지망생’인 것이다.
생활 바카라족은 하루에 5만~30만원 수준의 수입에 만족하지만 타짜 지망생은 ‘시스템 베팅’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실험하고 연마해 원하는 수입을 올리려고 오늘도 타짜 수련에 열중하고 있다.
고한에서 3년 넘게 거주하고 있다는 임모(51)씨는 카드를 수십 벌 구입해 밤낮없이 연습하고 게임 스코어지를 가져다 연구하는 한편 강친닷컴 사이트에서 게임 노하우를 찾는 생활이 일상이 됐다.
임씨는 “카지노에 자주 출입하는 고객들 가운데 하루 수십명 이상은 타짜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며 “몇 년간 열심히 연습하고 실전에 도전하지만 타짜가 환상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또 임씨는 “완벽한 수준에 도달한 것 같아 마카오에 원정을 나간 타짜 후보들도 결국 모든 걸 탕진하고 말더라”면서 “분명 전략이 있을 것 같은데 그 비결을 습득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강릉에서 보험대리점을 하며 강원랜드를 수시로 출입하는 정모(46)씨는 10년 넘게 카지노 게임을 하고 있지만 연간 출입일수가 30일을 넘기는 일이 없다고 한다.
정씨는 “게임으로 돈 따는 방법을 연구했지만 게임이 풀리지 않을 때는 돈을 잃을 수밖에 없고 본전 수준에 머물 때도 자주 있다”며 “이길 때도 여러 번 있지만 자만심이나 승부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무조건 패하고 만다”고 말했다.
강원랜드 관계자는 “카지노 타짜는 있을 수 없는 환상이고 착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카지노를 이기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에 자신의 처지에 맞게 부담 없이 즐기는 차원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2005년 10월 중국인 타짜 8명이 강원랜드 VIP 고객으로 방문해 7시간만에 17억3000만원을 챙겼지만 CCTV를 통해 확인한 결과 사기도박으로 밝혀져 딴 돈을 모두 환수당한 뒤 추방됐었다.
특히 강원랜드 주변에서 돈 따는 방법을 배운 뒤 동남아 카지노에 원정도박을 권유하는 호객꾼들은 100% 순진한 고객을 노리는 사기유형이라고 경찰은 이에 속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강원랜드 ‘카지노 노숙인’ 500여명 다 어디로?
(동아일보 2013-06-08 14:34:10)
■ 12년 만에 첫 휴장하던 날
멈춰선 게임기 몰래카메라 사건이 발생한 강원랜드 카지노가 10일 개장 12년 만에 처음으로 휴장한 가운데 국내외 전문가 48명으로 구성된 일제점검단이 불법 시설물 설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이날 직원들은 자정결의대회를 갖는 한편 윤리 워크숍을 진행했다. 정선=이인모 기자 imlee@donga.co
몰래카메라 사건이 발생한 강원랜드 카지노가 개장 12년 만에 처음 휴장한 10일 오전 6시경 카지노는 밖으로 나오려는 손님들로 북새통이었다. 오전 5시까지 고객 2000여 명으로 북적이던 카지노가 순식간에 썰렁해진 것. 카지노 영업장 앞 휴게공간에서도 손님들이 자취를 감췄다. 카지노 앞에는 평소처럼 찜질방과 음식점 승합차들이 손님을 태워 가려고 줄지어 서 있었다.
강원랜드는 카지노에서 돈을 탕진한 뒤 인근에서 생활하는 일명 ‘카지노 노숙인’이 400∼500명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개장 초기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강원랜드와 지역 상인들은 이들이 휴장을 맞아 찜질방이나 PC방, 음식점 등에 몰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대부분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그 바람에 카지노가 위치한 정선군 사북읍과 고한읍 상가는 평소보다 한산했다.
이날 오전 11시경 고한읍의 한 찜질방은 평소보다 적은 60여 명이 잠을 자거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60대 남성은 “며칠 전부터 휴장일을 통보했기 때문에 기차를 타고 동해안으로 놀러가는 등 노숙인 대부분 이날 하루 카지노를 떠났다”며 “어차피 한 달에 15일간만 출입할 수 있어 별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북읍의 한 PC방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업주는 “잠시 잠을 청한 카지노 손님들이 낮 12시 전후로 몰리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태백∼고한∼동서울을 운행하는 시외버스는 9일 오후 2차례, 10일 6차례 운행 횟수를 줄였다. 최경식 고한사북남면 지역살리기 공동추진위원장은 “강원랜드의 휴장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줬다”며 “강원랜드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강원랜드는 이날 오전 8시부터 국내외 전문가 48명을 투입해 1100여 대의 테이블 및 머신 게임기에 대한 일제점검을 벌였다. 강원랜드는 불법 장치물 설치와 전파 발신 여부, 무선 주파수 검색 등에 대해 조사했고 이르면 11일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또 직원 1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자정결의대회를 열고 전 직원이 반부패 청렴 서약서를 제출했다. 최흥집 대표이사는 “최초의 임시휴장일로 기록되기보다 강원랜드가 투명하고 깨끗한 기업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날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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